(대표 이미지 출처 : 페퍼 구단 홈페이지)
이제 겨우 네 경기만을 남겨둔 페퍼 배구단의 2023-2024 시즌, 그 마무리는 작년보다 더 꼴불견이다. 배구를 못하는 걸로는 모자랐는지, 배구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간 괴롭힘 의혹으로 스포츠 뉴스면을 연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제는 실명이 모두 공개된 세 선수, 팀 내 최고참인 오지영 선수가 이민서-문슬기 선수를 괴롭혔기에 그 둘이 선수단을 떠났고, KOVO 상벌위에는 오지영에게 책임을 물어 1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어 페퍼 구단도 오지영과 계약을 해지했다. 신속하고도 엄정해보이는 징계에 일단락 되는 것 같았던 이 번 사태는 오지영 선수가 재심을 청구하며 법적 대응을 선언하고, 이에 이민서 선수도 여론전을 시작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득 예전 역사수업 중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 때 난 1차 세계대전 원인에 대해 발표를 맡았고, 그 원인에 대해 펼쳐진 다양한 학계 주장에 대해 요약 발표를 하고, 내 의견을 밝혔었다. 그때 어려운 논문 여러 편을 읽으며 느꼈던 소회가 한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어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어떤 크고 복잡한 사건에서 A와 B가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면, 대개 진실은 A와 B사이의 어딘가에 있기 마련이다.
지금 이 사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오지영이 분명 두 선수를 괴롭힌 측면도 있을 것이고, 두 피해자 선수도 숙소 무단 이탈 등 잘못한 행동이 드러나고 있다. 주목해야할 부분은 두 주장이 매우 상반된다는 건데, 이렇게 되면 한 쪽은 일방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 그 후폭풍이 작을 수 없다.
그 와중에 오지영 선수 주장에 따르면 코칭스태프의 과한 음주와 감독의 감정적인 질타 등 구단 잘못도 큰데, 단순히 선수간 괴롭힘 이슈에서 점점 전선이 확대되는 양상이라... 구단에서 어떤 대처를 할지도 흥미롭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구단은 이미 입장을 정했다는 점이다. 오지영 선수와 계약 해지를 택했다는 것 자체가. 최고령 고액연봉자 선수보다는 젊은 유망주를 택했다는 의미인데, 아마도 KOVO 사무국에 이 사태를 보고했을 때부터 구단은 이 정도 각오는 했을 것으로 보인다. 구단에서 이를 내부적으로 수습하는 길을 택하지 않은 것만 봐도 어느 정도 실체적 진실을 알고 있을 테고... 오지영 선수는 억울하다지만, 커리어 중 경기 외적인 이유로 잡음을 일으킨 것이 처음도 아니라서.. 이미 조롱거리가 된 팀 입장에서는 안고가기가 매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결정 연장선상에서 구단은 조용히 여론이 가라앉으면 이민서 선수라도 복귀시키길 바랄 것 같은데... 두 선수간 흙탕물 싸움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지 구단도 난처할 듯 싶다. 계획과 달리 이민서 선수도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만신창이가 된 이미지를 생각하면, 어쩔수 없는 일이다.
오지영 선수는 은퇴하더라도 명예만은 회복하겠다며 법정투쟁으로 갈 것 임을 명확히했다. 글쎄다. '괴롭힘'이라는 다소 주관적 행위.. 게다가 구타 등도 없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없었음을 어떻게 증명할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사실 친했다'라면서 반박하는 수준인데, 친했지만 괴롭혔다 라는 간단한 주장으로 오지영 선수 입장은 더욱 곤란해질 수 있다.
어쨌든 둘의 싸움은 길어질 듯 하고... (그 와중에 문슬기 선수는 침묵하는 것도 이채롭다) 페퍼 구단은 단순히 오지영 선수를 내보냈으니 할 일을 했다라고 멍하니 있지 않지 말고, 관련 후속조치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적어도 오지영 선수가 지적했던 술판을 벌렸던 코칭스태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고, 이 번 사태 관련을 배구 게시판에 흘러나온 소문들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즉, '페퍼는 구단 사무를 대행사에서 하고 있다', '배구단 중 유일하게 조건 없이 수당을 전액 지급한다' 등을 살펴보고, 단순히 폼나는 감독 만 선임할게 아니라 관련 매니지먼트가 허술하지 않았나를 되돌아봐야 한다.
파벌문제가 불거지고, 팀은 압도적 꼴지이며, 팀 내 고액연봉 선수는 선수단을 장악하려 든다. 지금 페퍼와 마찬가지로 이런 위기가 중첩되었던, '스토브리그'의 재송 드림즈를 구원한 것은 감독도 특정 선수도 아니었다. 결국 팀을 바꾼건 백승수 '단장'이었음을 잊지말자. 어찌보면 지금 페퍼에 필요한 것도 명감독, 그리고 고액 FA 라기 보다는 기본부터 개혁해나가야할, '책임지는 행정가'일지도 모르겠다.
'영원한 친구 -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티빙(TVing)이 야구를 모르는 게 이렇게 죽을 죄로 내몰릴 일인가? - 독점중계권자가 일처리가 미숙하면 계약해지 사유 (77) | 2024.03.18 |
---|---|
1군보다는 2군에 가까운 페퍼 배구 실력 - 페퍼배구단 정관장 후보팀에 진땀승 (85) | 2024.03.17 |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한국 농구 - 라건아 다음을 생각하다 (60) | 2024.02.29 |
잘가요 내 고마운 사람 - KOVO 페퍼 배구단 조 트린지 감독 결별 (65) | 2024.02.28 |
보고싶다 케이타 - KB손해보험 배구단 후인정 감독 사퇴 (70) | 2024.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