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의 썰렁한 패배로 페퍼저축은행 배구단(이하 '페퍼')의 세번째 시즌은 끝이 났다. 5승 31패로 압도적 최하위인 건 당연하고, 어쩌다보니 구단 최초 연승도 기록했지만, 그보다는 내주지 않아도 될 김세빈을 내주는 바보짓으로 시작해서, 오지영 vs 이민서/문슬기 사태로 마무리한 이 시즌은 여전히 페퍼에게는 잊지 못할 초창기 구단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이 번 시즌 총평은 다음 포스팅으로 미루도록 하고, 그나마 페퍼가 기록한 긍정적 역사인 2연승에 대해 다뤄보자.
꼴지 막내팀 페퍼에게, 이 번 시즌 유일한 긍정적인 기록은 3월 13일 기록한 2연승이다.
세 시즌 연속 꼴찌를 확정한 데다, 연이은 내홍으로 팀 분위기도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승리'보다 더한 낭보는 없다. 게다가 창단 후 첫 연승이니, 팀 차원에서는 그야말로 3년 만의 경사이다. 세트 스코어도 3:1이였고, 공격기록도 골고루 잘 나왔지만, 승리의 여운을 만끽하기에는 뭔가 찝찝했다.
이유는 이미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정관장 팀이 모든 주전 선수를 관중석에 앉히고, 후보 선수들로만 경기에 임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도, 아시아쿼터 선수도, 주전세터, MB, OH, OP도 관중석에 앉아 즐겁게 경기를 지켜본 정관장은 야스민과 박정아가 활약한 페퍼 상대로 3:1로 패했다. 하지만, 주전들의 표정은 밝았고, 감독 또한 후보선수들이 힘을 합쳐 외국인 선수가 포함된 페퍼 상대로 한 세트를 따냈기에 얻은 것이 많았다. 특히, 늘 가능성만 인정받았던 이선우는 개인 최다 27득점을 기록하며, 언제든 팀 주포로 자랄 수 있는 재목임을 증명했다. 페퍼도... 어쨌든 연승을 기록했기에 의미있는 경기였다.
하지만, 다시는 이런 경기는 없어야 한다.
첫번째, 이런 경기운영은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 대한 모독이다.
KOVO 경기 티켓은 매우 싸다. 대부분 경기당 10,000원 이하 돈만 내면 쾌적한 좌석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그래도 경기장에 온 팬들은 자기 시간을 내서, 그리고 돈을 써서 찾아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한국은 어느 프로스포츠도 그렇게 입지가 탄탄하지 않다. 여자배구는 김연경 덕분에 일시적 호황이어서, 시청률과 관중입장에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당장 임박한 김연경 은퇴...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KOVO를 포함 어느 프로스포츠 종목의 어떤 구단도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 못한 건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당연시되는 적자가 리그 발전에 큰 저해요소라고 다들 말은 하면서도, 찾아오는 관중들에게는 관심도 없다. 만약 내가 평일 저녁 소중한 시간을 내어 구장을 찾았는데, 주전들은 부상도 아닌데 코트에서 볼 수 없고, 관중석에서 간식이나 먹고 있다면... 이게 '날강두' 사태랑 뭐가 다른가? 큰 경기를 앞두고 주전에게 휴식을 준다는 발상 자체는 프로스포츠에서도 있을 수 있으나, KOVO보다 훨씬 장기레이스에 부상자 관리가 필수적인 NBA에서도 '로드 매니지먼트'로 대표되는 스타 출전 관리가 몇 년전에 이슈가 되었음을 있지 말자. 내가 만약 13일에 대전충무체육관을 찾은 배구팬이었다면, 구단에 항의 메일이라도 보냈을 것이다. 기자들이나 전문가들도 별 문제의식 없이 넘어간 것 같은데, 배구팬들은 경기를 뛰는 활약을 보러 돈 내고 경기장에 오는 것이지, 간식 먹으며 인터뷰나 하는 모습을 보러 경기장에 오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리그 사무국이면 경고를 해야할 경기운영인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KOVO 분위기를 보면... 도대체 프로 라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관중석에서 염혜선 인터뷰를 진행한 SBS스포츠 채널도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고, 이에 대한 비판하지 않는 전문기자들도... 프로스포츠 존재이유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저 선수들이 경기장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꼬집었던 박미희 해설위원이 그나마 원로다운 모습을 보였다.
두번째, 페퍼는 정관장 후보팀과 이런 경기를 한다는 걸 부끄러워해야한다.
최고 외국인 선수와 국대 주전 공격수를 보유한 페퍼가 상대팀 후보 선수들 상대로 쩔쩔맸다. 3:1로 이기긴 했지만, 해설위원이 경기 긴장도가 떨어진다 지적할 정도로 경기수준이 떨어졌고, 범실과 손발이 안맞는 플레이를 남발하며 한 세트를 빼앗길 때는.. 정말 야스민과 박정아를 쓰고도 지는 구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정관장 입장에서 보면,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주전을 쉬게하고 어린 선수들을 쓰고도 세트를 이기는 경험을 쌓았으니 그야말로 도랑치고 가재잡은 격이다. 원래 프로라는 게 모든 걸 걸고 상대방과 싸우는게 당연한 거라면, 이런 상대방에게 셧아웃 승을 거두지 못한 페퍼 팀은 아직 프로 수준이라 보기 어렵다. 2군이 없는 KOVO현실이라 비교당하지 않을 뿐이지... 냉정하게 보면 2군 수준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페퍼 팀.. 연승에 기뻐하기에는 경기를 지켜본 팬들은 기분이 참 별로다....
13일 정관장 전 경기에 대해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아니 감독에게 묻고 싶은 것이... 팀 주전 세터는 박사랑인가? 이고은인가? 아니면 실력은 이고은이 위라고 생각하지만, 망한 시즌 어린 박사랑에게 경험을 쌓게 하며 시즌을 운영한 것인가? 13일 경기에서도 역전당하자 이고은이 출장했는데, 그렇다면 중요한 순간에는 이고은이 낫다고 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코칭스태프도 갈팡질팡하고 있는 거라면 이는 팀의 미래와도 직결된 문제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앞으로 감독이 누가 되던, 명확하게 방향을 정해야 할 것이다.
이제 시즌은 끝났고. 산적한 문제점들만을 남긴 채, 페퍼는 다시 다음 시즌을 기약하게 되었다. 이제는 샐러리캡에도 여유가 없고, 외국인 선수 탓도 할 수 없고, 아시아쿼터 탓도 할 수 없다.. 출발점은 훨씬 밑바닥이지만, 시즌 5승 밖에 못 거둔 팀이 더 떨어질 곳도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경수 대행이 드디어 정식 감독이 될 지, 아니면 다른 외국인 감독이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은 어린 선수들이 좋은 감독을 만나 앞으로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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