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49 - 알로하, 나의 엄마들(2020, 이금이)

마셜 2025. 1. 12. 06:52
728x90
반응형

 

(출처: 알라딘)

 

 

1.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새로움

 문학 등 예술이 역사의 행간을 메워주고, 외연을 확장해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대표적인 순기능이다. 한국 또한 근현대를 거치며 깊은 굴곡을 겪었기에, 많은 예술작품이 순간순간을 기려왔다. 특히, 여러 소설이 역사적 사건을 조망하여, 의미를 찾아내고, 그 안에 인간이 있었음을 알려왔다.

 하지만,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매우 새로웠다. ‘하와이 이민’이라는 한국 역사를 입체적으로 다루면서도, 이야기가 슬픔에 젖어있지 않다. 참혹한 현실에 부딪히면서도 모든 등장인물은 너무나 열심히, 생동감 있게 살아간다.
 슬픔으로 가득찰 법한, 사기극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민과 결혼을 다루면서도, 계속해서 희망을 보여주고, 그 조선인들이 얼마나 그 희망을 잡기위해 노력했는지를 절절하게 표현해낸다.

 슬픔과 희망의 균형, 그리고 가끔씩 번뜩이는 엄마들의 유쾌함. 이 모든 것들이, 비극으로만 점철되거나, 파국을 향해 서서히 나아가는 슬픈 이야기를 넘어선, 새롭고도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하겠다.

 

2. 포기를 모르는 버들, 시스터즈 런드리를 만들다.

 사실 모든 엄마는 강하다. 모두가 동의할 이 간단한 문장으로는 희망을 찾아 사진신부의 길을 택한 버들의 삶을 설명할 수 없다.

 절망 뿐인 조선을 떠나, 희망을 찾아, 불안감을 안고도 선택을 강요당한 사진신부, 우여곡절 끝에 하와이에 도착한 5명은 오래지 않아 이 결혼이 사기극임을 깨닫는다. 단, 지주는 아니었으나 겉으로 멀쩡한 태완을 남편으로 맞은 버들만은 안도한다. 그 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보내고도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 배신감이 극에 달하지만, 역시 포기를 모르는 버들... 시어머니 산소 앞에서 담판을 통해 해결해버리고, 송화도 구출해내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남편도 뒷바라지하면서 부지런히 삶을 일궈간다.

 잊혀질 때쯤, 다시 나타나고, 떠나길 반복했던 홍주와 송화, 결국 버림받고, 사별하고.. 각자 사연 속에 셋은 다시 만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울고 웃지만, 셋의 노력으로 사업도 자리를 잡는다. 그 이름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시스터즈 런드리.... 세 주인공이 또 헤어지지는 않을까,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는 않을까.. 맘 졸이던 난, 자가용을 타고 소풍을 떠나는 셋의 모습을 보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러한 버들의 끊임없는 전진은 약간은 동화에 가깝다. 을사조약이 있던 1905년 금지되기까지 하와이 이민은 약 7,200명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조선인들을 기다리던 현실은 노예와 다를 바 없었고, 나라없는 조선인은 그 어떤 민족보다도 더 핍박받았다.

 버들 또한 평생 가시밭길을 걷고,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지만 결국 남편과 농장을 일구면서 자식들을 키우는 진정한 ‘지주’가 된다. 남편감이 지주라는 말에 속아 결혼했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지주가 된 버들. 남편 또한 무장투쟁에 뛰어들지만 목숨을 건져 돌아오고, 노선갈등으로 사이가 멀어졌던 친구들은 모두 다시 무지개회로 단결한다.

 이 모든 하나하나가 사진신부에게는 크나큰 행운이었을 것이다. 어찌보면 행운이 겹친 버들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이지만, 많이 공감되는 이유는 절망 뿐이던 당시 역사를 모르지 않는 독자에게 희망을 주는 동화이기 때문이다.

 온통 어둠 뿐이었던 일제 강점기, 한 줄기 빛조차 없다면, 버들의 노력조차 어둠에 묻혔을 터, 그 한 줄기 빛으로서 사진신부에게도 행운이 필요하진 않았을까. 그 시절, 끝내 자식들에게는 원하는 길을 열어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그 엄청난 헌신 위에, 행운 한 스푼이 더해져야한다는 것도... 어찌보면 현실적이다.

 

3. 모계사회, 그 안정성을 극대화하는 반전

 시스터즈의 에너지로 소풍까지 다다른 여정은, 시스터즈의 딸인 펄이 출생의 비밀을 깨닫게 되면서 큰 반전을 맞는다. 그 반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우둔한 독자인 나는 충격에 해당 부분을 여러번 읽었다. 송화가 낳고, 버들이 입양하여, 홍주가 양육한 펄은 진정 셋을 엄마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진신부들의 핵심 공통분모가 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계사회의 변형을 보는 듯한 편안함은 뭐지? 책을 덮고, 이야기를 되돌아보니, 시스터즈를 둘러싼 가족구조가 모계사회처럼 느껴졌다. 늘 노인이거나 무능하거나, 가족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남편) 옆에서 헌신적이고, 포기를 모르는 엄마(아내)가 있다. 그리고 이 엄마들은 각자를 위해서도 헌신적이고, 이타적이어서 함께할 때 편안함은 배가된다.

 마지막 장에서 시스터즈의 딸인 펄이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나라와 민족, 그리고 바깥일이 어떻게 돌아가던 늘 그 자리에서 가족을 지켜온 셋은 모두 엄마임이 분명해진다. 친구가 남편 없이 출산할 상황이 되자, 걱정 말고 순산해라, 공부까지 시켜주겠다고 큰소리치는 홍주를 보면, 이제는 보기힘든 이런 호언장담이... 모든 것이 힘들었던 일제 강점기 하와이를 살아가던 엄마들의 특유의 에너지 발현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일시적으로 모계사회처럼 느끼게 해준 시스터즈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고 싶다.

 

4. 유쾌한 한국 근현대 이야기의 가치

 ‘식민지-분단-전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는 그 자체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제 그 고통과 너무 멀어진 MZ세대에게 근현대에 대한 이해를 당위로 말하긴 어렵다. 먼 과거는 누구에게나 잊혀지는 법이니까.

 그러기에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유쾌한 한국 근현대 이야기로서 더욱 가치있다. 어떻게든 다양한 세대에게 한국 근현대를 알리고 세대간, 계층간 이해를 확장시킬 수 있다면 주인공에게 행운을 더해 유쾌한 이야기를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꼭 주인공이 현실에 고통받지 않아도, 희생당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시대현실에 공감할 수 있음을 저자는 증명했다. 앞으로도 다양한 유쾌한 한국 근현대 이야기가 MZ세대에게는 관심을 끌어내고, X세대에게는 신선한 발상의 전환을 느끼게 해주고, Y세대에게는 사고의 확장을 도와주길 기대한다.

 

 언젠가 하와이에 가게 되면, 마음속으로라도 한 마디 하고 싶다.

 

 ‘고생하셨어요. 시스터즈’

 

(출처: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 글은 '2022 김해시 올해의 책' 독후감 전국 공모전에서 입상했던 독후감입니다. 

 

「2022 김해시 올해의 책」 독후감 전국 공모전 심사 결과 알림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