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힘든 일상에서도 책을 읽게 해주는 즐겁고도 효율적인 장치이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 간은 이리저리 치이는 하루하루에 사과를 연발하며 겨우겨우 버티는 수준이었고, 힘들게 일정에 쫓겨 읽은 책들에 대해서도 몇 글자 적어놓는 것이 참 힘들었다.
이 책도 그랬다. 영조와 정조라는 듣기만 해도 귀를 쫑긋하게 되는 두 명군에 대한 이야기였고, 책도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한 시간에 넘게 모임 멤버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 낼 에너지가 없었다. 이제 조금은 여유를 찾고 나서, 다시 책을 꺼내 들어 목차부터 찬찬히 살펴보니, 재미있었던 책 내용만큼이나 힘들었던 몇 달 전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영조의 근엄한 초상이 겉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책은 분명 사학 박사가 쓴 것이고, 많은 온라인 서점에서도 역사 분야로 구분되어 있다. 교보문고에 올라온 리뷰를 보니, 찬반양론이 엇갈리는데, 재미있었다는 평부터, 리더십 책인 듯한데, 왜 역사 분야에 올라와 있는지 모르겠다는 시니컬한 한 줄까지 다양하다. 그만큼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보일 수 있는 내용이고, 저자가 직설적으로 그리고 쉽게 두 왕에 행적을 설명했기에 독자들도 직설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전체 내용은 총 다섯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과감한 구성은 반갑기 그지없다. 물론 내 반가움은 학자로서 대중에 다가가기 위한 과감한 구성에 대한 것이지, 이 다섯 장이 나타내는 구분이 적절한 키워드라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영조와 정조 시절이 '르네상스'라는 표현은 흔히 쓰이는 것이기는 하나, 한반도 역사에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조와 정조 시절 전후로 시대 구분 혹은 그에 준할 만한 변혁이 없었다는 점은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는 부분인데, 왜 저자는 굳이 르네상스라는 표현을 썼을까. 그런 차원에서 르네상스 군주라는 표현과 뒷 장에서의 '제도적 실험들', '진심 그리고 한계', '묘수 혹은 악수'라는 부제 또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뒷 장에서의 부제들은 저자 또한 많은 개혁이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음을 알고 있음을 암시하는데, 그러한 한계가 진정한 변혁을 이끌어내지 못했음에도 르네상스라 평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억지춘향이요. 심하게 얘기하면 자화자찬일지도 모르겠다.
제1장 조선 르네상스 군주의 초상: 영조와 정조
제2장 개혁을 향한 의지: 저항, 극복 그리고 미완
제3장 제도적 실험들: 시대에 대한 이해 혹은 오해
제4장 공감과 참여의 리더십: 진심 그리고 한계
제5장 변혁의 시대 리더의 권위: 묘수 혹은 악수
그래도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건, 총 50개의 에피소드가 매우 생동감 있고, 재미있는 것들로 짜였기 때문이다. 정조의 비선 이야기나, 복지차원에서 정조가 제공했다는 척서단 이야기도 흥미롭고, 실무를 잘 알았던 영조의 답답함이 느껴지는 외국어 교육정책에 대한 역설이나, 비교적 최근 연구성과에 해당하는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등도 다루고 있어서, 정말 폭넓은 사례로 영정조 시대를 배우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뻔한 이야기 잘 알려진 것들도 많지만, 연구자로서 노고가 담긴, 발굴했다고 평가할만한 사례들도 꽤 있어서, 교양으로서 영정조 시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좋은 책이라고도 할 만하다.
기억에 남는 챕터 '청의 조문단을 오해하다: 외부에 대한 수용성의 한계'
다른 챕터도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았지만, 병자호란의 앙금이 완벽하게 가시지는 않은 시기, 청에서 온 조문단에 대한 조선의 대응이 어땠는가를 다룬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청은 조선과 관계개선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좀 더 예를 갖추고자 숙종의 릉에 참배하고자 했는데,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던 조선정부는 왜 굳이 릉에 가자고 하는 것인지 몇 날 며칠을 고심한다. 저자는 이를 외부에 대한 수용성의 한계라고 지적하면서, 외부 세계를 있는 그대로 혹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부분을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너는 왕안석이야"라는 지적이 당시 사용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이 지적이 문제의식은 좋지만 위험해서 쓸 수 없다는 뜻이었다고 풀이했다.
에피소드 자체는 너무나 흥미로웠고, 소국으로서 대국을 적대시했던 앙금이 아직 가지지 않았던, 그리고도 자존심만 한껏 높았던 조선정부의 호떡집에 불난듯한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해서, 쓴웃음이 나면서도 어떤 기록보다도 당시 조선정부의 분위기와 한계가 잘 이해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가 외부에 대한 수용성 한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굳이 연결해 보자면, 조선이 상대해야 하는 최고 강대국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부족해서 외교에서 상대방 의도를 전혀 해석할 수가 없었고, 이로 인해 불필요하게 역량을 낭비하고, 청과 진심으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이는 외부 사정에 대해 조선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도로 바꿔 쓸 수 있겠는데, 그렇다 치더라도 서양문물이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관대함과 (잠재적) 강대국이자 적국에 대한 정보수집의 필요성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고, 이 둘을 하나로 본 것은 약간의 비약이라고 본다. 고려시대 적국의 의중과 실력을 간파한 협상으로 훌륭한 외교관으로 꼽히는 서희, 외부세계 동향을 꿰뚫어 보았지만, 이는 외부 세계에 대한 수용성이 높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와 별개로 국운을 걸고 외교에 임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그런 정보수집은 상시적이어야 한다는 교훈만 있을 뿐이다. 청의 외교적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건 한심하다 할 수 있지만, 그러한 정보부족이 조선정부의 고질적인 소중화사상에서 기인한 폐쇄적 태도 때문인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왕안석에 대한 설명도 동의하기 어려운데, 이정철 박사는 대동법 연구에서 왕안석처럼 변법을 한다는 비판은 개혁에 있어서 심각한 도덕적 비난이며, 이러한 비난이 나오는 건 개혁의 근본적 동력이 공격당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왕안석이 시행했던 개혁법안이 워낙 급진적이고, 서민친화적이었기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정조가 박제가에게 왕안석이라고 말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좀 더 자세한 맥락과 함께 설명되지 않으면 큰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실제로 정조는 왕안석을 그리 나쁘게 보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조가 박제가에게 그런 발언을 했다면, 너 계속 그렇게 행동하면 이념적으로 크게 공격당할 수 있다..라는 엄중한 공개경고는 아니었을까.
시계태엽의 가치를 몰라보는 서유문의 기록이 아쉽다는 부분도 역설적으로, 서유문은 누구인가 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검색해 보니, 조선후기 전형적인 문신인데, 이런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 과학기술의 가치를 알아봤다면, 100년을 앞서갔거나 아니면 시대의 이단아에 가깝지는 않았을까.. 물론 애민정신의 연장선상에서 청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고 동전 유통 등을 추진했던 김육 같은 명재상도 있지만, 서유문 같은 일반적인 관료가 훨씬 더 많았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하리라.
멤버 이야기를 들어보니, 임용한 박사님과 유튜브 등에서 같은 방향 활동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고 한다. 뭔가 실용적이고도 대중적인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해박한 지식을 풀어놓으시는 것이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다. 소속대학에서 다양한 교양강의를 하고 계시는 듯하고, 특히 요즘은 순수 사학자들도 학생들 니즈에 맞춰 경영학, 영화, 문화, 여성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를 융합한 강의를 하고 계시니, 이 책도 그런 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노작이겠다 싶기도 했다.
유튜브 인문채널휴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흥미로운 특강을 하고 계시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도전해 보셔도 좋을 듯.. 다만 이 책처럼 깊이 있는 조선시대사보다는 기업사 등 다양한 분야 주제가 많으니, 그 박사님이 맞는지 헷갈리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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