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스틸러 혹은 명품조연은 한 작품을 오롯이 책임질 수 있는가?
여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신스틸러들이 한 작품에 모두 모였다. 백윤식, 성동일, 천호진, 배종옥, 조달환 모두 한국영화팬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편안한, 혹은 어떤 역할도 기대 이상으로 소화해 내는 명품조연인데, 이들이 직접 주연으로 나서서 한 작품을 이끌어간다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 그것도 정말 이제 원로 대접을 받은 분들이 실제 느낄만한 '노년의 설움'과 '노익장'에 관련된 영화라면?
이 두 가지 의문에 직설적으로 답하고 있기에, 영화 '반드시 잡는다'는 장점이 매우 뚜렷한 영화다. 명품조연이 모두 주연급으로 한 작품에서 열연했으며, 이들이 이미 장년층을 지나고 있을 나이, 노년의 설움을 잘 표현했으니, 이 두 가지 만으로도 나처럼 오랜 시간 한국영화를 즐긴 올드팬 입장에서는 기억에 남을만한 작품이다.
흥행은 대실패, 그럴만하다.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면서, 음... 이 정도면 흥행은 대실패 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결과는 처참했던 모양이다. 나름 탄탄한 스토리를 갖춘 웹툰을 원작으로 했고, 보기 드문 대배우 라인업을 갖췄으며, 특별히 흠잡을 데 없는 영화 전개를 보여준 것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냉정하게 봤을 때 흥행에 성공하기에는 재미요소가 너무 부족했다.
연쇄살인을 다룬 스릴러 장르인데, 범인은 처음부터 알려주고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고, 여러 스토리 전개도 배우들의 명연기를 빼면 별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없다. 물론 반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반전 후에도 줄거리는 다소 루즈하게 전개되니... 관객 입장에서는 또 뭐가 있나.... 이렇게 끝나나... 하다가 허망하고도 뻔한 결말을 보게 되는 셈... 마지막 일상파트조차도 너무 뻔하고 짧으니, 상영 당시 입소문이 그렇게 좋게 났을 리 없다.
스릴러 혹은 고어물
무엇보다 영화 흥행을 방해한 의외 요소는 생각보다 잔인한 장면이 많다는 점이다. 초반부터 사체를 토막 내는 장면이 등장해서 관객들에게 경고를 주더니... 오래된 시체의 모습까지 리얼하게 묘사하는 등 다소 불필요해 보이는 고어함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면 모를까... 줄거리 전개에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는 장면에서 과한 잔인함이 계속 등장하고, 그런 장면의 여운을 또 명품 배우들이 연기력으로 뒷받침하다 보니, 영화 내내, 유쾌한 장면, 답답한 장면, 불편한 장면에서 모두 고어함의 여운이 떠돌다 보니, 관객들이 명품 조연들의 코믹한 연기를 감상하기에 다소 불편하다.
그렇다고 스릴러 측면에서 줄거리가 엄청나게 정교하거나, 엄청난 반전이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이래저래 영화가 잡아야 하는 관객층이 매우 애매하게 설정될 수밖에 없고, 이러한 한계는 흥행 대실패로 바로 이어졌다.
백윤식 77세, 천호진 64세, 성동일 60세, 배종옥 60세
이제 영화를 빛낸 네 명배우 모두 환갑이 넘은 나이가 되었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던 주연 배우들 외에, 특별출연에 가까운 얼굴도 모두 함께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는데, 왜 천호진은 빠졌는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정말 사람들을 걱정하는 순경 역할 조달환까지 등장한 사진은 꽤 눈에 들어온다.
장년층이 되어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네 배우는 모두 한국영화계의 소중한 자산이고, 나이를 먹어서도 노력하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급격히 늙어가는 한국사회에 큰 귀감이 될 만한 어른(?)들이다.
비록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원작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혹평과 함께 그저 그런 영화로 남을지도 모르겠지만, 점점 관심을 받기 어려운 나이 많은 배우들의 노익장을 넘어서는 훌륭한 연기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2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물론 상영관에서 봤다면 매우 아쉬웠을지도.
백윤식과 성동일의 코믹 투톱 연기를 다시 보기는 어렵겠지만, 앞으로도 다양한 연기, 그중에서도 코믹연기로 관객들과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5년 새해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작품으로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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