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2차 대전과 흑인 여성의 설 자리 - 6888 중앙우편대대(2024, 타일러 페리 감독)

마셜 2025. 1. 5.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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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영화)

 

  차별받던 흑인, 차별받던 여성, 차별받던 흑인 여성 군인

 

 아주 가끔은 넷플릭스의 영화 추천 알고리즘도 쓸 만하다. 물론 이 영화는 그저 최신작이었기에 추천한 것 같기도 하다...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쟁영화라 볼 수도 없고, 별다른 전투장면도 없는데, 내 취향에 맞춰 추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런 2차 대전을 다룬 영화다운 이런저런 요소를 모두 날려버리고, 영화는 정말 미국의 '역사'를 다룬다. 남북전쟁 중 노예해방선언이 있고, 흑인차별 철폐가 법제화된 지는 이미 한참 지났지만, 2차 대전 시기 얼마나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각했는지, 그리고 그중에서 흑인여성에 대한 대우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좋은 역사공부로 이 영화를 추천하는 건 분명 타당하다.

 

 킬링타임 이상으로 평가받기는 어려운 영화 자체의 재미

 

 꽤나 좋은 소재, 그것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임에도 영화적 재미가 대단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감독의 역량인지, 아니면 실화의 주인공들이 남긴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그대로 재현한 것에 충실하다보니, 스토리 자체가 좀 듬성듬성해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영화는 뻔하면서도, 완성도도 떨어지고, 궁금증을 자극하는 캐릭터 스토리도 없고... 상업영화로 성공하기에는 여러 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실화에서도 지휘관이었지만 영화도 그야말로 하드캐리하는 채리티 아담스 대위, 출처: 넷플릭스 예고편)

 

 6개월 안에 엉망진창 1,700만통 우편물 처리하기, 그래서 어떻게 했다는 건데?

 

 채리티 아담스 대위가 이끄는 6888 대대는 흑인여성으로만 구성되었기에, 전쟁 중에도 제대로 된 임무가 부여되지 않고, 이런저런 부조리에만 노출되고 있었던 현실은 극 중에서도 잘 묘사된다. 그러던 중 우여곡절 끝에 부여된 업무는 바로, 난리통에 격납고에 끝도 없이 쌓여만 있던 최전방으로 전달되어야 할 (혹은 최전방에서 온) 우편물 1,7000만 통을 6개월 안에 처리하기. 주소가 없다시피 한 건 기본이요. 부대 소속이 제대로 쓰여 있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기에 민간회사들도 포기한 건을 협조는커녕 눈총만 받던 6888 대대는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해냈을까?

 뭔가 기발한 아이디어나, 혁신적인 업무개선 방식, 혹은 효율적 처리 절차가 등장할 듯 하여, 이 노하우를 꽤나 기대하며 기다렸지만, 결국 영화에서는 이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주지 않는다. 물론 6888 대대 부대원 모두가 정말 헌신적으로 일했고, 초반부 시행착오를 견디며, 최전방 부대위치도 추론해 내고, 우편물의 향수 냄새도 맡아보고, 때로는 내용을 읽어서 끼워 맞춰 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사고로 부대원이 희생되기도 하고... 그럼 엄청난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는 건 잘 묘사되지만, 뭔가 유레카 할 만한 혁신 아이디어는 없고, 오 기발하다.. 싶을 아이디어조차도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고 되돌아보니, 정말 절박한 상황에 있었던 부대원들이 밤낮없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는... 어찌 보면 평범한 포인트가 이 거대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아니었을까? 육군 구성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을 만한 허드렛일 그중에서도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이나마, 처음으로 임무로 부여받아 목숨을 걸고 완수해내야만 했던 절박함이 6888 대대의 가장 큰 무기였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실감나게 재현된 우편물 작업현장, 출처: 넷플릭스 예고편)

 

 이제는 고령이 된 당시 부대원들이 인터뷰에서 회고한 조각조각들을 맞추는 과정에서 프로젝트 성공요인의 핵심요인은 잘 정돈되지 않고, 당시의 절박함만 부분부분 배어 나왔기에, 그 회고에 바탕을 둔 영화에서도 그 성공 과정을 감정적으로 풀 수밖에 없었다면, 상업적 재미도 살리지 못하고, 뭔가 한 방도 넣지 못한 감독에 대한 지나친 변명일까. 

 

 

 분명 기억되어야할 의미 있는 역사, '6888 중앙우편대대'

 

 넷플릭스의 영화가 망작이어도, 이 흑인 여성 부대의 실화는 분명 기억되어야 할 의미 있는 역사이다. 국가에 기여할 기회를 찾아, 혹은 차별을 피해 자원입대한 흑인들을 한 부대로 분리해서 모아놓은 것만으로도 차별인데, 그들이 여성이었기에 고위간부들을 위한 파티에서 공연하고, 서빙하는 역할까지 해야 했고, 백인 남성 군인들에게 하극상까지 당했던 현실은 가장 차별이 없어야 할 조직인 군대에서조차도, 그것도 전시임에도, 만연되어있었던 인종차별, 여성차별을 극렬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런 차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에는 굳이 2시간짜리 넷플릭스 영화가 필요 없고, 유튜브의 5분짜리 다큐멘터리 영상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 

 

 

 

 물론 '캐리온'에서 TSA 검문대장에 이어 또 승진해서 육군 장성이 된 딘 노리스도 만나볼 수 있고, 이제는 호호할머니가 된 수잔 서랜든의 영부인 연기도 볼 수 있기에.. 영화 자체를 보는 소소한 재미 자체는 나쁘지 않다. 2차 대전 당시를 재현하는 것에도 많이 애를 쓴 느낌이고, 특히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를 행군하는 6888 대대의 모습은 나름 인상적.. (실제 당시 영상이 영화중에도 등장한다) 모든 것이 엉망인 현실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자기 몫을 해야만 했던 당시 흑인 여성 병사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해서, 생각을 잠기게 하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최강대국 미국이 자신들의 역사를 찾아내고, 기억하는 방식을 어렴풋하게라도 느껴보고 생각해보고 싶다면, 한 번 시간을 투자해보시길.. 남북전쟁 중 흑인 부대의 고군분투를 다뤘던 '영광의 깃발'과는 결이 다른,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의 강점을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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