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50 - 로마인 이야기(2007, 시오노 나나미)

마셜 2025. 1. 1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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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라딘)

 

 

“그 것이 그애들한테 어울리는 무덤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일지라도, 전체15권에 이루는 양을 보면, 정확한 뜻도 모르는 대서사시라는 단어가 떠오르기까지 한다. 그 15권을 너무나 흥미롭게 때로는 탄식해가며 다 읽어내린 내게, 이상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유명한 카이사르의 연설도, 타키투스의 냉소도,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도 아닌 한 여성, 아니 한 어머니의 담담한 한 마디였다. 그라쿠스 형제의 어머니 코르넬리아의 한 마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접어들기 전, 혼란기로 가는 과정에서 드러난 로마의 문제점을 바로잡고자 연이어 모든 것을 던진 형제, 그들이 받은 것은 결국은 비참한 죽음이었지만, 민중은 무덤조차 허락되지 않은 그들의 빗돌 앞을 찾았고, 그의 어머니는 지금 내 심금을 울리는 한 마디로 답했다. 어찌보면 빛나는 천재도, 웅장한 문화도, 영웅도 없는 장면이지만, 어쩌면 나는 이를 통해 세계 최고의 문명국으로 성장하는 그들의 원동력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과 그 런 희생을 조용히 자상하게 바라보는 어머니.. 어찌보면 서른을 넘어 바라보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기에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 것은 아닐까...

 

 비록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감상적이기 이를 데 없을지 몰라도, 이 책을 다시 집어들게 된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었다. 30대에 접어들어 가장이 되고, 생각해왔던 가치관들이 무너지는 것을 현실이라는 이유로 용납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또한 책을 손에 잡는 것이 어색해지기 시작할 때, 어찌보면 마지막으로 한 번 독서라는 습관에 다시 가까이 가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책이 바로 ‘로마인이야기’였다. 물론 명작으로 정평이 나 있고, 누구나 흥미로워할 만한 대제국의 역사를 다루었지만, 내내 감동을 느끼면서 한국사회를 되돌아보게 된 것은 결국 중학교 때 최초로 ‘로마인이야기’를 읽을 때는 몰랐던 사회의 이면과 흥망성쇠를 바라보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결국 15권을 찬찬히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다시 재미있는 책이라면 푹 빠져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진심으로 공동체를 걱정하고 내가 배운 것, 그리고 받은 것에 대해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은 어찌보면 단순히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끊임 없이 주위를 살피고 고민하고 실천해나가는 것이라는 평범한, 하지만 잊고 있었던 마음가짐을 되살릴 수 있었다.

 

(출처: yes24)

 

 강대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최초로 위기징후를 보이던, 로마를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두 형제를 길러낸 어머니 코르넬리아, 그리고 고민과 실천의 중요성이라는 이어질 듯 선명하게 이어지지 않는 두 가지를 이어준 것은 무엇일까?

 그 것은 바로 시오노 나나미가 애써 강조하지 않을 정도로 ‘로마인이야기’ 전반에 깔려있는 ‘노블리스오블리제’정신 때문이었다.

 한국사회는 로마와 많이 닮아있다. 아니 행복한 국가를 꿈꾸는 세상의 모든 나라는 아마도 부지불식간에 로마를 닮아가게 될 것이다. 이 것은 단순한 서구중심주의 시각이 아니라, 어쨌든 로마는 인류역사를 대표할만한 대제국이었고, 황제로 대표되는 제정국가였음에도 효율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국가운영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가도, 다리, 수도로 대표되는 하드인프라와 의료와 교육으로 대표되는 소프트인프라를 대단한 수준으로 발전시킨 특출남은 논외로 하더라도 당시 황제의 지상과제였던 식량확보와 외적방어는 현재 모든 선진국들이 중시하고 있는 경제안정과 국가안보의 다른 말이 아닐까?

 이렇듯 많이 닮아있는 국가운영에 있어서, 가장 이질적이고도 그렇기에 아픈 부분이 바로 지배층의 ‘정신’, 구체적으로 ‘노블리스오블리제’가 아닐까 한다.

한국사회에 대한 자조적인 비난이 봇물치는 현실에서, 사실 찬찬히 그러한 비난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관조하는 분석 혹은 발언은 찾기 어렵다. 날로 빨라지는 커뮤니케이션 속도 속에, 자극적인 소식만이 강하게 어필되기 때문에 아닐까 하는데, 이렇듯 문제점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결국 그 원인에 대한 갈증만이 축적되어, 특정인에 대한 신드롬 형태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안철수, 박원순, 조국 이러한 진보인사들이 젊은이들로부터 갑작스러운 지지를 받는 이유는 바로, 남들이 시원스럽게 말해주지 못했던, 한국사회가 암울한 이유를 당당하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 것이 각자의 분야에 따라 다를지라도, 그 신선함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고대사에서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로마사가 재미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기 때문이지만, 기본적으로 ‘로마인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범적인 지배층이다. 전쟁이 나면 늘 선봉에 나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귀족들, 아예 급여 자체가 없는 속주의 관리, 사재를 털어 사회기반시설인 가도를 놓는 것이 일상적인이었던 당시 지배층의 풍토,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지금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낯설고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 반평생을 달려온 한국사회의 지배층에 대한 인식은 왜 이런 모양이 되었을까? 현대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라는 지적은 그 설득력이 약하다. 시오노나나미의 지적처럼 로마인의 사회는 설사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사회전반에 대해 실현되지는 못했더라도, 무엇이든 합리적인 것에 대한 우선순위가 늘 높았고, 특히 사유재산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것이 황제의 책무 중 하나였다.

 결국 한국사회에 팽배한 지배층에 대한 불신이 머리 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 바로 어머니 코르넬리아로 대표되는 로마인의 정신이었다.

 한 민족의 정신을 칭찬하고 미화하는 것은 자칫 큰 오류와 다른 민족에 대한 공격적 성향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혹자들은 민족의식은 있을지 몰라도 민족성은 존재하지 않는 주장을 한다. 이러한 주장에 내가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이유는 로마인이야말로 그들의 정신은 지키려고 노력했을지언정, 그들 스스로의 민족색채를 지키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신교와 누구든 포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깔고 응하지 않는 자와는 일전을 불사하고, 끝내 이민족이었던 속주출신 황제까지 배출한 대제국을 민족성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오히려 제국의 역사 전체를 관통한 정신으로 분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로마의 정신을 가장 극적으로 표출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그들이 바로 그라쿠스 형제이며, 그들과 어머니인 코르넬리아로 구성되었을 가정이 한국에서는 정말 보기 어려운, 하지만 정말 있었으면 하는 그런 곳이 아닌가 한다.

그들은 하나 아쉬울 것 없는, 비록 아버지를 어린 나이에 여의기는 했지만, 상류층 귀족이었다. 특히 코르넬리아는 전 로마에 이름을 떨쳤던 위대한 아프리카누스의 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식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랄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맡아보는 밥상머리에서도 자란다’고 말할 정도로 세심한 애정을 갖고 두 아들을 보살폈고, 그 아들은 로마 전체를 통틀어 이상적인 귀족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선택한 것은 상류층 자제로서는 한국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멀고도 힘든 길이었다. 민중을 대표하는 호민관이 되어, 형인 티베리우스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농지법 또한 한국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농지개혁법안이 시오노 나나미의 서술처럼 당시 로마사회의 문제점을 꿰뚫어본 것이든, 아니면 당시 그 법안을 극력으로 반대해 형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로원의 입장처럼, 악법이든 간에 이 젊은이는 이미 강대국이던 로마의 쇠락의 단초를 발견하고, 고민하고 성찰한 결과 자신이 추진해야할 과제로서 사회개혁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건강한 공동체,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농지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민중의 편에 서서 법안을 제출해야 한다. 이 젊은이의 생각을 이렇게 요약했을 때, 한국사회에서의 젊은이들에게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근원적인 과제였다고 얘기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미국의 유명한, 하지만 이제 현실사회에서 그만큼 영향력은 없는, 진보매체의 창간인인 유명한 비주류경제학자 폴 스위지가 이 부분에서 문득 떠올랐다. 하버드 출신의 경제학자, 경제학계를 쩌렁 울린 슘페터의 제자, 하지만 결국 자신의 신념에 따라 현대사회의 근원적 문제를 풀기 위해 비주류경제학을 통해, 한 평생을 경제학과 씨름했던 사람.. 스위지 또한 노년에 쓸쓸히 자신의 이론적 오류를 인정했다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신념대로, 세상을 위해 세상과 맞섰던 그런 사람이다. 쉽게 갈 수 있었던 길과 가질 수 있었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세상을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지식인, 상류층....

 왜 이런 이들이 점점 한국사회에서 보기 힘들어지는가를 코르넬리아와 강남엄마로 대표되는 교육열풍으로 비교해보면 실로 명약관화할 뿐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중고등학생에 대한 진로상담에서도, ‘점수에 맞추어 대학에 진학하되, 취업이 잘되는 경영학이나 의약대는 어떠냐’라는 하는 대답이 범용으로 통용되고 있기에, 목숨을 바쳐 사회를 위해 싸웠고,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아 비참한 죽음을 맞은 두 자식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에 미소지으며, 그 것이 어울리는 무덤이라고 말하는 어머니.... 결국 후세에게 모범이 될 수 없는 현세는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아프도록 되새겨 준다.

 평생에 걸쳐, 로마와 대결하였던 현실주의적 전제군주 필리포스왕은 로마에 대해 끊임없이 인재가 나타나는 무한발전을 거듭하는 그런 조직으로 평가하였다. 전제군주였던 그가 ‘노블리스오블리제’로 대표되는 로마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젊은이들이 국가를 위해 뛰어들고, 또다른 인재들이 당파와 계급을 떠나 각자의 위치에서 공동체를 최선을 다하는 로마의 모습을 최대로 이해한 것이 바로 ‘무한발전’이 아닐까..

 

 로마도 결국 흥망성쇠의 법칙에 따라 멸망했지만, 그 지도층이 남긴 유산은 매우 크다.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몰라도 그 것은 카이사르가 정복한 갈리아 영토도 아니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도 아니며, 판테온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문명을 있게 하고 수많은 위기에도 긴 시간 안정적으로 그 당시 인류문명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인재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희생하고 모범을 보였던 지도층과 이를 제도를 통해 안정화시키려고 했던 합리성이다.

 언젠가 한국사회에서도 이 책에 매료된 사람들의 수 만큼,합리성과 제도에 대한 신뢰가 정착되고, 그 위에서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인재들이 공동체를 위해 고민할 수 있는 풍토가 정착되기를 기대해본다.

 

 

 이 글은 <프레시안>과  <한길사>가 공동 주최한 '『로마인 이야기』 901쇄 돌파기념 독후감 대회' 에서 입선했던 독후감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 대회 수상자 발표

<프레시안>과 한길사가 공동 주최한 『로마인 이야기』독후감 공모전의 수상자가 결정됐다. 영예의 대상은 최은지 씨의 「로마, 당신의 드라마」가 차지했고, 최우수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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