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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I 11. 스승의 흑역사는 제자의 교훈! - 현대자동차의 초기 역사 (4)

꿈꾸는 차고 2023. 6. 1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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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I 11. 스승의 흑역사는 제자의 교훈! -  현대자동차의 초기 역사 (4)
 
여러분들은 그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혹시 어떤 흑역사가 있으신가요? 다들 남에게 밝히기 쉽지않은 그리고 안타깝거나 부끄러운 일들이 있기 마련일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정말 "웃픈" 기억이 하나 있네요. 제가 미국에 유학을 왔었던 2000년도 중후반, 처음 미국에서 차를 샀을 때의 이야기랍니다. 우선 학교 학생들은 뭘 타고 다니나 쭉 관찰해보니, 좀 "사는" 학생들의 차들은 십중팔구 독일의 유명 브랜드더라구요. 아니면 미국 자동차 3사가 모여 있는 지역적 특성상 포드 무스탕 또는 시보레 카마로 등 미국산 머슬카들도 학교 주차장에 간간이 보였습니다.
 
저도 그들처럼 좋은 차를 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사실 저는 돈을 많이 아껴야 했어요. 한국에서 5년간 개미처럼 일했던 연봉을 고스란히 들고 왔어도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졸업 전까지 정말 예산을 아껴써야 하겠더라구요. 일반 직장인에서 하루 아침에 고단한 유학생의 신분이 된 저에겐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가성비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협상에 천재적이라고 알려진 학교 선배를 긴급 섭외하여 허름한 동네 중고차 가게에 함께 갔습니다. 낡은 중고차들 가운데서 제 시선을 빼앗은 차가 하나 있었으니... 딱히 좋은 브랜드나 모델은 아니었으나 엔진룸을 열어보자 제 얼굴에 만족스런 웃음이 흘러나왔습니다. 
 
 
 

전형적인 미국의 동네 중고차 매장 모습 (출처 : familyautobrokers.com)

 


나름 전주인이 터보엔진으로 튜닝을 해놔서 이걸 사면 그럭저럭 운전하는 재미는 있을 것 같았습니다. 터보엔진이란 일반 엔진과 달리, 배기가스가 내뿜어지는 고열 고압의 힘으로 엔진에 추가 장착된 터빈휠이라는 것을 돌립니다. 이 터빈휠이 고속으로 돌면서 컴프레셔휠을 돌리고 이로 인해 일반엔진보다 훨씬 많은 공기를 엔진에 흡입시킬 수 있어서 일반엔진에 비해 고효율과 고출력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동차 실내도 나름 카본으로 이쁘게 장식해놨고 의자 위에도 스포츠카에 많이 쓰는 알칸타라 세무 가죽을 씌워놔서 원모델에 비해 상당히 그럴듯해보이더라구요.  

 

 

 

터보엔진의 원리 (출처 : kixxman.com)

 

 


그런데 문제는 저의 예산보다 좀 비싼거에요... 주머니 사정과 간절한 바램 사이에서 제가 고민을 하고 서 있자 선배는 다른 사람이 이 차를 채가기 전에 가게 주인 앞에서 확실히 표시를 해야된다고 저를 재촉했습니다.  네고를 하다가 막히면 가게 주인 눈 앞에서 "돈다발"을 막 흔들고,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책상 위에 돈다발을 화투장 내리치듯 탁 던져야한다는 겁니다.ㅎㅎ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배가 어디서 B급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습니다만...
 
하루종일 차를 보러 다니느라 지친데다가 미국 생활에 전혀 정보가 없던 저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그대로 따라했죠!! 지금도 눈 감고 그때를 생각하면 땀이 삐질삐질 나게되는 좀 안타까운 흑역사입니다... 흔들으라고 흔들었던 저도 참 웃기죠? 저는 흔들고~ 선배는 손짓발짓 콩글리쉬로 흥정하고~ ㅎㅎ 다행히 돈다발을 책상위에 던지기 전에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되었고 저는 너무 신나서 그날 선배에게 한턱을 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살아온 지금까지 그 어디에도 상대방에게 돈다발을 흔들으라는 문화나 관습은 없더군요. 그 학교 선배와 함께 차를 사러 간 후배들이 저 말고도 몇 명 더 있는 걸로 아는데... 그들도 모두 저와 같은 흑역사를 공유하고 있는건지 참 궁금해지네요ㅎㅎ
 
 
 

돈다발 흔들기 (출처 : unsplash.com)

 
 
 
아무튼 "돈다발을 마구 흔들어" 얻게 된 그 자동차는 유학 생활 동안 저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성능은 별로여도 우렁찬 소리만큼은 어디가서 뒤지는 법이 없었죠. 그 차로 다른 주에도 여행을 많이 다녔고,  국경 넘어 수백마일을 달려 캐나다도 재미나게 다녀왔으니 본전은 제대로 뺀 셈입니다. 비록 그 차와의 첫 만남은 흑역사로 시작했지만, 함께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기며, 잘 타고 그리고 잘 떠나보냈습니다. 저의 친한 후배중에 극강의 차 매니아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는 아끼던 차를 팔기 직전에 마치 연인마냥 2박3일 차와 함께 단둘이 이별여행도 다녀왔다더군요! ㅎㅎ 저도 그럴 걸 그랬어요! 정이 아주 많이 들었었거든요. 
 
이렇게 저처럼 흑역사가 결국은 좋게 풀린 경우도 있겠지만, 반대로 흑역사의 나쁜 영향이 지속되거나... 쓰라린 추억을 여전히 곱씹어야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것을 겪어야 하는 당사자의 심정은 참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동차 회사 중에서는 바로 미쯔비시가 그러한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들이 겪은 흑역사의 파워가 너무 큰 나머지 아직도 그 흑역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자동차의 과외 선생이자 세계적 모터스포츠의 아이콘 미쯔비시는 참으로 어이없게도 초대형 사고를 무려 세 번이나 일으켜서,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운 깊은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렇다면 역대급의 흑역사들이 세 번이나 연이어 터진 미쯔비시에게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요?
 
 

 

흑역사의 의미 (출처 : wordrow.kr)

 



그 잘나가던 브랜드를 고난의 수렁으로 내몰은 첫번째 흑역사는 1996년에 터진 사건입니다. 미쯔비시는 당시 미국 일리노이주에 자동차 생산 거점이 있었는데 그곳 소속 미국인 여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그러자 성희롱을 당한 무려 300명의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집단고소를 합니다. 이로 인해 회사는 380억원의 보상금을 물었구요. 저는 자료 조사를 하다가 너무 깜작 놀랐습니다. 3명, 30명도 아니고 300명이라? 300명이 고소했다는 것은... 사실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들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는 뜻도 되겠지요. 성관련 범죄를 특히 엄중하게 다스리는 미국에서 아무리 27년전의 옛날이라고 하지만 이런 대형 성추문사건이 터졌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당시의 재판 기록에 따르면 현지 근로자들에게 수치심을 유발하는 폭언은 물론이고, 신체적 접촉을 포함한 성희롱이 만연하였으며 육체관계 거절시에는 보복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미쯔비시가 도덕적 해이와 나태함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쯔비시 성희롱 사건을 보도한 당시 뉴스 (출처 : MBC 뉴스)


 

 

6년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두 번째 흑역사가 일본에서 터집니다.  2002년 미쯔비시의 상용차와 트레일러들에서 바퀴 관련 문제점들이 대량 발생하였으나, 이를 숨기고 조직적인 은폐를 하다가 걸리게 된 것입니다. 사실 회사내 기술진들은 미쯔비시 생산 차량에 심각한 결함이 있어서 이것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인명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보고를 이미 회사에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회사 경영진들은 이를 묵살해버렸다고 하는데요, 바로 리콜에 따른 비용 부담과 향후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에 있어서 회사가 불리해지지 않기 위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품질도 최고이지만 신용과 책임을 미덕으로 해온 "주식회사 일본"의 평판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생산한 차량에서 바퀴가 떨어져 나가 결국 사망사고가 발생하게되자 처음에 회사는 이것을  정비불량때문이라고 발뺌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를 계기로 그동안 미쯔비시가 은폐해왔던 사건들이 봇물처럼 터져 언론에 도배가 되고, 이는 결국 일본 내에서 전국적인 미쯔비시 불매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이 사건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사건 일년 전보다 미쯔비시 자동차 판매대수가 56%나 줄어들게 되었으며, 이 사건에 관련된 사장단들이 경찰에 체포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미쯔비시 트레일러의 바퀴 결함 설명 (출처 : jcp.or.jp)

 



세번째 대형 흑역사는 아예 회사의 근간을 뒤흔든 핵폭탄급이었습니다. 2016년에 폭로된 바에 따르면 미쯔비시가 1991년 이후 자사의 차량 62만5천대에서 타이어의 저항과 공기의 저항 수치를 의도적으로 변경하여 연비조작을 해왔으나 이를 쉬쉬하면서 은폐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번 폭로되자 관련된 부정들이 일파만파로 퍼지게 됩니다. 회장단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머리 숙여 사과해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일본 자동차 업계로서도 이 사건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다고 하는데요, 왜냐하면 2015년 독일 폭스바겐의 연비조작 사건 (폭스바겐의 관련 사건을 보시려면 이 글을 확인하세요! VOLKSWAGEN 11. 믿던 도끼에 발등 찍혔네? –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이후 일본 자동차 브랜드로서는 처음으로 밝혀진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대한 실망은 바로 미쯔비시의 경영 악화로 이어졌습니다.  회사의 사장단이 기자회견에 나와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자마자 미쯔비시 자동차의 시가총액이 당시 기준으로 하루 아침에 1조3천5백원 가량 증발해버렸다고 합니다. 문제는 미쯔비시가 그동안 닛산에 공급한 차량 모델들에도 동일하게 연비를 조작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용기로 그랬을까요?  처음 이 사건이 알려진 경위도 어이가 없습니다. 미쯔비시로부터 납품받은 차량들이 원래 데이터와 불일치되는 모습을 자꾸 보이자 닛산 측에서 미쯔비시 측에 자료 확인을 요구하게 되면서 이 사건의 전모가 들통나게 되었습니다. 
 
 

 

연비조작 사건으로 공개 사과하는 미쯔비시 회장단 (출처 : 소비자 경제)

 



한편 우리 돈으로 약 1조원이 넘는 벌금을 물게 되자 미쯔비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폭스바겐도 1년 전인 2015년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으나 그들은 당시 세계 자동차 업계 1등의 경영 실적을 자랑하는 회사였기에 엄청난 벌금을 물어도 줄곧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워낙 세계 최고의 브랜드들을 대거 보유한데다가 탁월한 마케팅 실력 역시 아주 능수능란했죠. 금새 친환경 미래 에너지를 추구하는 자동차 회사 이미지로 변경하여 범죄 기업이라는 낙인과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쯔비시는 상황이 전혀 달랐죠. 안그래도 경영실적이 좋지 않았었기에 일단 전세계 생산거점들을 모두 팔아 벌금을 마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미쯔비시 자동차는 계속되는 경영 악화를 버티지 못하고 2016년에 닛산에 인수되어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의 일원으로서 미쯔비시의 브랜드 명맥을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로서 전세계 자동차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점점 더 미미해져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곳에서 최근까지 일해본 지인에 따르면 자신의 회사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부분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더군요. 직원들 개개인들의 역량은 매우 우수하고 자체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높지만 회사의 비젼과 분위기는 예전만 못한 모양입니다. 제가 파악해볼때 세번이나 터진 흑역사들의 후폭풍이 미쯔비시의 경영 혁신을 지연시켜서 다른 경쟁업체들을 선도할 만한 디자인과 차량 제조가 어렵게 되고, 이 때문에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점차 잃어가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때 미쯔비시의 제자이자 굴종관계에 있던 현대자동차가 현재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몸집을 자랑하고 있으니 정말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저는 개인적으로 미쯔비시의 대표적 모델 중 하나였던 렌서에볼루션을 생각할 때마다 미쯔비시가 그동안 겪은 영광과 풍파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길거리에서 미쯔비시의 랜서에볼루션을 모는 운전자들을 보게 되면 왠지 쿨해보이고 참 멋져보였습니다. 뭔가 독일 유명 브랜드에만 편향된 일반 운전자들보다 차에 대해 좀 잘 아는 사람? 혹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운전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미쯔비시 랜서에볼루션 10 (출처 : nfs.fandom.com)

 
 
 
사실 그 차가 최고급 상위 레벨의 스포츠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생들의 수준에서... 보급형 스포츠세단이랄까? 굳이 유명브랜드 고급차를 선택하지 않아도 꽤 괜찮은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는 차였었거든요. 미쯔비시는 이 모델을 무려 10세대까지 키워오다가, 마지막 모델인 랜서에볼루션 10에 최고의 디자인과 퍼포먼스를 다 쏟아붇고서는...  그만 단종시켜버렸어요. 그때는 제가 미쯔비시라는 회사의 경영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에 그들이 이 모델을 단종시켰던 것이 이 마지막 모델을 레전드로 남기려는 회사차원의 고도의 마케팅이 아닐까도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그런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전혀 없었고, 다만 자본이 부족해서 그랬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제가 이 대목을 핸드폰으로 쓰고 있었는데요, 쓰다 말고 운전해서 가는데 정말 눈앞에 미쯔비시 랜서에볼루션을 보게되었어요! 방금 전 글로 쓰다가 길에서 이 차를 보게되다니! 너무 반갑고 이 우연이 대박이라고 느껴져서 운전을 하다말고, 아래처럼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또 들게 된 생각은... 이처럼 이 차를 길에서 보는게 이제는 우연이라고 느끼게 될 만큼... 미쯔비시의 고성능 차량을 타는 사람들도 차차 줄어가고 있구나... 그러한 반증도 되겠다 싶어서 매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쯔비시에게 그런 멋진 차들이 있었다는게 지금은 가물가물할 정도로... 회사가 큰 부침을 겪고 있는 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길에서 발견한 미쯔비시 랜서에볼루션 10 (출처 : 본인)

 
 
 
제가 최근에 여러 편에 걸쳐서 미쯔비시의 하락과 현대자동차의 상승을 대조하여 기술한 것은 이분법적으로 어느 브랜드가 더 낫고 나쁘다를 논하려는게 아니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몸집을 불리고 고급기술이 절실했던 초기의 역사에 있어서 미쯔비시 자동차의 역할을 빼놓고서는 현대자동차에 대해 서술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협력이 긴밀하고 장기간 이어져 온 탓입니다. 1970년대 중반의 포니부터 시작하여 2008년도의 에쿠스까지... 약 35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현대자동차의 자체 모델들에는 미쯔비시의 기술이 직간접적으로 들어갔습니다. 좀더 다양한 모델 확장이 시급히 필요했던 초기의 현대자동차와 세계시장 진출에 안정적인 돈줄이 필요했던 미쯔비시는 그야말로 서로에게 중요한 동반자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쯔비시와 현대자동차는 상승과 하락이 같은 시기 서로 정반대의 처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미쯔비시가 세계적으로 인기 절정이었던 시기는 1990년대였고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들은 그시절 각종 세계 모터스포츠 대회를 석권하면서 그 실력을 입증했었습니다. 반대로 1990년대 현대자동차는 미국시장에서 품질문제로 실적이 급격히 하락하고 국내시장에서는 다른 경쟁업체들로부터 지속적인 도전을 받는 등, 전반적으로 경영이 고전을 면치 못하던 시기였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이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현대자동차의 경영방향까지 간섭하던 잘나가던 미쯔비시는 앞서 설명한 흑역사들이 터지면서 회사 내외부에 심상치 않은 균열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현대자동차는 아마도 자신의 과외선생이었던 미쯔비시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이때를 스스로 재점검하는 시기로 삼지 않았을까 합니다. 미쯔비시가 자체엔진과 기술로 전세계 모터스포츠에 한 획을 긋는 모습을 보면서 제자인 현대자동차는 큰 자극을 받게되었겠지요. 현대자동차는 1990년 초에 독자엔진 개발에 성공하고 무슨 한이라도 풀어대듯 1990년대부터 무려 30가지 이상의 각종 버젼으로 자체엔진을 개선해나가면서 결국 벤츠와 크라이슬러에 수출까지 할 수 있는 실력이 됩니다. 그리고 미쯔비시가 도덕적 해이와 품질 하락으로 풍파를 겪게 되자, 이를 눈여겨본 현대자동차는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기 품질만이 살 길이다라는 모토 아래 강력한 품질경영을 시작하게 되니까요. 이렇게 해서 미쯔비시의 몰락이 더욱 가속화되던 2000년대 초반부터는 현대자동차가 점차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하지요. 

자... 그럼 현대자동차와 미쯔비시의 대표적 협력 모델들에 대해 좀더 알아본 후 이번 글을 마칠까 합니다. 그들의 협력도 시기별로 조금씩 그 성격이 달라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의 초기 협력 시기에는 포니, 엑셀, 소나타에 모두 미쯔비시의 엔진과 변속기를 달아 그대로 판매하였으니 이것을 진정한 협력이라고 부르기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의 중기 협력 시기는 주로 미쯔비시가 기술을, 현대자동차가 디자인을 담당하는 형식으로 협력을 이끌어갑니다. 그리고 1990년 후반의 후기 협력 시기에 이르러서야 그들의 협력은 좀 더 대등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1986년에 현대자동차가 내놓은 고급 모델 "그랜저"를 한번 볼까요? 그랜저는 두 회사가 미쯔비시의 고급차 데보네어를 공동 업데이트 하기로 의견을 모은 뒤 탄생하게 됩니다. 아직  고급차다운 차가 없어서 고민이었던 현대자동차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하여 좀더 도약을 하고 싶었고, 미쯔비시는 22년간 바뀌지 않은 고급차 모델을 드디어 변경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기술적인 부분들은 모두 미쯔비시가 담당하고 현대자동차는 디자인을 담당함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각 그랜저"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모델이 완성됩니다. 

 

 

미쯔비시 오리지날 데보네어 (출처 : 한겨레 신문)

 

 

마땅히 고급차가 없었던 한국에서는 이 각 그랜저가 정말 대박났습니다. 소위 돈을 번다는 부자들의 각 그랜저 사랑이 대단했었던 것이죠. 무려 6년동안 9만대가 넘게 팔려 나갔으니까요. 그에 반하여 일본의 상황은 어떠했을까요?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일본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실 여기서도 미쯔비시의 안일함이 드러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미쯔비시 대보네어는 원래 1964년에 처음 데뷔한 모델입니다. 그러나 미쯔비시는 무려 22년간 이 모델을 전혀 변경하지 않고 판매해온 탓에 고급차 분야에서의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대보네어에는  "달리는 실러캔스"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아실지 모르겠지만 실러캔스는 약 3억년 전부터 현재까지 거의 진화하지 않고 고생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살아있는 화석 어류라고 불리우는 생물입니다. 그리고 심해에서 무려 100년 넘게 살 수 있다고 하지요. 

 

 

살아있는 화석 실러캔스 (출처 : techrecipe.co.kr)

 

 

 

이처럼 22년간 유지되어 한물갔다고 평가되는 모델명을 그대로 쓴 이유 때문인지 일본의 소비자들은 새로운 대보네어를 쉽게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일본 고급차 시장은 토요타를 비롯 이미 쟁쟁한 일본 내 경쟁자들을 상대하기도 매우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이 각그랜저는 이후 3세대에 이르기까지 현대자동차와 미쯔비시의 긴밀한 협력에 의하여 계속 진화하게 되지만, 연속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 판매상황은 계속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합니다.   

 


 

현대자동차 "각" 그랜저 (출처 : 서울경제신문)
미쯔비시 데보네어 V (출처 : 한겨레 신문)

 



또한 현대자동차의 부품을 담당하던 현대정공은 1991년 "갤로퍼"와 1995년 "싼타모"를 출시하여 큰 인기를 끌었죠. 이는 미쓰비시의 "파제로"와 "샤리오"를 기본으로 한 모델들입니다. 그러다가 현대자동차는 1999년 최고급 리무진 세단 에쿠스를 내놓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현대자동차가 이전의 종속적인 관계를 벗어나서 보다 대증한 입장에서 미쯔비시와 협력하게 됩니다.

 

에쿠스는 여러가지 버젼으로 업데이트 되면서 현대자동차가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2015년에 런칭하기 전까지 국내 최고의 차량으로 군림했었지요. 저도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때 모시던 임원의 차량이 에쿠스였어서 임원분이 늦게 귀가하실땐 대신 운전해드려야 할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야밤에 강변북로를 달릴때 이 차의 묵직하고 길바닥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상당히 좋더군요. 에쿠스는 거의 동일한 차량이 일본에서 프라우디아(세단 급) 디그니티(리무진 급)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으나 역시 흥행에 참패합니다. 차량 자체의 디자인과 성능은 나쁘지 않았으나 아마도 미쯔비시의 경영과 마케팅 실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길고 길었던 두 회사의 협력은 이 에쿠스를 끝으로 사실상 2008년 마무리가 됩니다. 포니에서 에쿠스까지... 거의 35년에 이르는 장기간의 협력관계였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애증의 협력관계 시기에 한치도 물러섬없는 대결을 펼친 현대자동차와 미쯔비시 출신 두 "영웅"들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현대자동차 에쿠스 초기 버젼 (출처 : 다음)

 

미쯔비시 프라우디아 (출처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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