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DAI 10. 영국에서 바라본 미쯔비시의 영광 - 현대자동차의 초기 역사 (3)
제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유학때문에 영국에 거주하던 당시... 1990년 초반 저희 가족은 조그만 피아트 자동차로 영국 전역을 일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없었던 때라, 아버지가 운전하실 때 조수석에 앉은 저희 형은 지도를 봐드리는 조수 역할을 했었죠. 지도 보는 것을 한번 실수라도 하게되면 엄청 돌아가야했기 때문에... 바짝 긴장한 형과는 달리, 저는 뒷자리에 앉아 창문 밖의 모습들을 편하게 구경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국적인 바깥의 모습을 쳐다보는 것은 정말 꿀잼이었죠.
런던을 비롯해서 대학도시 옥스포드, 캠브리지, 그리고 주요 산업 도시들인 리버풀, 버밍엄, 맨체스터... 또한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에딘버러 등... 저는 어렸을 때 "먼나라 이웃나라" 중 영국편이 제일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여행 중에 그 책에 등장하는 영국의 지명이 발견될 때마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한편 스코틀랜드를 여행할 때는 "네스호 (Ness Lake) 의 괴물"이 진짜 있는지 가보자! 하여 기대하는 마음을 품고 차로 달려 갔었죠. 정말 그 호수는 분위기 만큼은 대박! 으스스하더라구요. 그런데 하염없이 기다려도... 괴물이 어디 마실을 나갔는지 아니면 잠을 자고 있는지 고개를 안 내밀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ㅎㅎ
눈이 빠지도록 온맘을 다해 기다리다보니... 환각도 아니고 멀리서 뭔가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살짝 들긴 하더라고요 ㅎㅎ 갑자기 형과 누나가 뭔가 발견한듯이 저기 저기!! 하니까 저도 가만 있을 수 없어서 그냥 보이는 것처럼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이처럼 영국 곳곳을 다녀보니, 참 그럴듯한 드라마틱한 장소들이 여기저기 많더라구요. 이러한 배경들 속에서 옛날부터 온갖 설화와 구전 이야기 그리고 최근의 J. K. Rowling의 헤리포터 (Harry Porter) 시리즈처럼 재밌는 스토리들이 탄생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겠다 싶습니다.
우리의 가족 여행은 계속 되었습니다. 한 도시에서 다음 도시로 넘어가는 사이, 산이 없는 영국 지형의 특성 상 끊임없이 펼쳐진 밀밭 사이를 하염없이 달려나가면서... 그 사이에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경치와 마을들 그리고 오래된 성들도 좋았지만... 성인이 된 아직까지 저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 기억들 중 하나는! 오히려 전혀 영국적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영국 전역에 영국문화와 아주 이질적인 것 "하나"가 영국인들의 삶 속에서, 그리고 일상의 현장에서 공존하고 있더라구요.
그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카리스마 넘치는 "일본 자동차"들이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해서 그런지 여행 중에도 제 눈엔 유독 자동차들이 눈에 많이 띄더군요. 한국산 자동차들은 한 대도 안보이는데 반면에 무수한 일본 자동차들은 고속도로에서 국도에서 여기저기 신나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약간 밋밋한 클래식한 느낌의 유럽 자동차들에 비해서 일본산 브랜드 자동차들은 색상도 모양도 얼마나 깜찍하고 특별해보였던지요... 특히 고속도로에 헤드램프의 눈꺼풀이 열리고 닫히는 빨간색 일본 스포츠카들이 지나갈때면 큰 환호성을 지르곤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어떤 엄숙한 존경심이 들정도로... 그 압도적인 모습은 정말 최고였죠. 지금도 가끔씩 이때 만들어진 빨간 일본 스포츠카들이 엘에이의 거리를 달리는 것을 발견하는데요, 그 특유의 간지가 철철 흘러내립니다.
이처럼 1990년대 영국에는 일본 자동차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들은 전세계적으로 일본의 경제적, 문화적 파워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고, 그 영향력이 미치는 공간은 유럽도 예외가 아니었죠. 수퍼마리오를 비롯해서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로 상징되는 당시의 일본 대중문화는 곧 일본의 자신감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다니던 영국의 학교에도 일본에서 온 학생들은 참 당당하고 그랬었어요. 남자들 무리에 섞여서 축구를 곧잘 하던 일본 여학생 한명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아무튼 각국의 젊은 세대들이 일본의 만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일본산 게임도 하고 그리고 전자제품은 당연히 일본 브랜드가 최고라고 인정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강력한 붐을 타고 일본산 자동차들도 전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겠지요. 일본이 만들면 다르다!라는 생각이 고정관념을 넘어서 마치 국제적인 규범처럼 느껴지던 시기였습니다. 현대자동차가 1990년 스쿠프를 출시하였지만, 이것은 스포츠 쿠페로서 아직 제대로된 스포츠카도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말이죠. 당시에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은 스포츠카 뿐만 아니라, 세단, 픽업트럭, SUV 등 모든 차종에 스스로 개발한 엔진을 얹고 자체 기술로 무장하여 인기 만점의 자동차들을 가지고 전세계 시장을 공략했었습니다.
무엇보다 1990년대 초반 저희 가족이 여행 중이던 당시 특히 일본산 거대한 픽업트럭이 눈 앞으로 지나갈 때... 그때가 너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한국에서 픽업트럭을 본 적이 없던 저는 어린 마음에 그 픽업트럭의 존재감이라던가 엄청난 볼륨감에 크게 압도되었거든요. 그들이 쏜살같이 속도를 높여 저희 조그만 피아트 차량 앞으로 방향을 전환하면, 제 눈에 확 띄는 것은 픽업트럭 짐칸의 후방도어에 붙은 TOYOTA, NISSAN, MITSUBUSHI, ISUZU 등 그들의 대문짝만한 브랜드명이었어요.
요즘과는 달리 1990년대 당시에는 브랜드를 크게 붙이고 다니는게 유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브랜드 마케팅을 위한 방편이기도 하였겠지만, 아마도 당시 전세계에서 큰 영향력을 떨치던 일본산 자동차 브랜드들의 "자신감의 표현"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마치 고객들에게 차는 팔아도 차량 뒷부분의 소유권은 여전히 일본 자동차 회사에 남아있는 것처럼 "고객님들, 우리가! 이렇게 광고하겠다는데 너희가 어쩔??" 마치 이런 느낌의 대단한 포스와 자신감이었죠.
이런 방식을 만약 당시의 현대자동차나 혹은 미약한 브랜드들이 어줍잖게 따라했다면, 아마 소비자들로부터 엄청 욕을 먹었을 것 같습니다. 전세계를 점령한 일본 브랜드들이었으니 이러한 방식도 먹혀들어갔던 것 같아요. 미쯔비시의 L200 또는 마이티맥스라고 불리웠던 픽업트럭 모델도 뒷꽁무니 "하얀색 글자의 포스"가 장난아니었죠. 짙은 회색 아스팔트 위에서 그 대비되는 빨간 차체과 천둥이 치는 듯한 배기음...도 대단했고 그리고 다이아몬드 세개의 날렵해보이는 미쯔비시 브랜드로고는 화룡점정과 같았습니다. 어린 시절엔 비록 자동차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그저 그 차량 자체가 주는 거대한 느낌과... 한편으로 참 잘 생겼다고 해야되나? 어느 곳하나 부족함없이 꽉 쨔여진 듯한 빈틈없는 미쯔비시 특유의 당시 스타일링이 저에겐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글을 쓰다가 너무 궁금해서 미쯔비시의 옛날 텔레비젼 광고들을 좀 찾아봤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제가 영국 고속도로에서 받았던 충격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 한번 링크해보았습니다. 험난한 비포장 도로를 비롯해서, 금새 물속에 뛰어들었다가 솟아나오는가 하면, 기차와 순간 가속력을 내기하기도 하고 또한 목장에서 말들과 함께 달리는 우아함까지!! 이러한 장면들은 당시에 미쯔비시와 기술 종속 관계에 있었던 현대자동차가 도전해보기에는 쉽지 않은 부분이었죠. 현대자동차 최초의 픽업트럭은 불과 3년전인 2021년에 내놓은 싼타크루즈입니다. 오히려 쌍용자동차의 최초 픽업트럭인 무쏘스포츠보다 20년이 늦었습니다. 미쯔비시가 자랑하던 이런 퍼포먼스는 겨우 해외에 이름을 알리는 데 정도에 만족해야했던 당시 현대자동차로서는 꿈꾸기 힘들었던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nVQmLsgnmI
아래의 광고를 보면 미쯔비시가 토요타를 도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결국 멍멍이의 최종 선택은 미쯔비시라는 내용인데, 지금 기준으로 볼 때 미쯔비시가 과연 토요타를 도발할 정도의 "깜"이 되는지 갸우뚱하실 수도 있겠지만, 1990년대 당시에는 미쯔비시의 위세가 상당히 위협적이었습니다. 현재 일본 자동차 브랜드 2강을 토요타와 혼다로 치지만, 30여년 전엔 미쯔비시가 일본 내에서 두번째 유명한 브랜드로 받아들여졌던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미쯔비시는 국제적인 모터스포츠 부문에서 연전연승을 하며 정말 잘 나갔었기 때문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C7WA9qB_2WU
그러면 그들의 화려한 모터스포츠 경력들을 잠시 확인해볼까요? 미쯔비시는 지옥의 극한 레이스라고 불리우는 총연장 1만킬로미터의 "다카르랠리"에 1983년부터 참여하여 무려 12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이러한 모터스포츠에서 얻어진 최고의 기술력들을 자사의 실제 양산 차량들에 적용해서 파제로와 랜서 등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모델들을 내놓았었습니다.
특히 파제로는 1985년 다카르랠리 우승을 시작으로 1992년, 1993년 그리고 1997년, 1998년에도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후에 제3세대 파제로가 다카르랠리에 투입되어 2001에서 2007년까지 7년간 연속 우승을 휩쓰는 저력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당시 어떤 자동차 브랜드도 달성하지 못한 전후무후한 기록이었죠. 당시는 다카르랠리의 험난한 코스때문에 완주 자체만로도 크게 자랑스러워할 만한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의 쌍용자동차가 다카르랠리에서 완주했다고 한국에 금의환향해서 기자회견도 하고 그랬던 때였으니까요.
그 유명했던 파제로가 바로 현대자동차 계열 현대정공에서 생산하여 1990년대 한국에서 인기리에 판매되었던 "갤로퍼"입니다. 연령이 좀 있으신 분들은 이 차에 얽힌 추억들이 아마 많으실 걸로 생각이 드는데요, 낚시와 캠핑을 갈 때 이만한 차가 당시에 코란도 외에는 없었으니까요. 갤로퍼가 그때 출시되고 나서, 쌍용자동차의 코란도와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한국도 이제 이렇게 SUV를 잘 만드네? 하고 착각을 했지만, 사실 모든 기술적인 부분들은 미쯔비시의 파제로에서 그대로 온 것이었죠.
이처럼 미쯔비시 모터스포츠의 성공에는 그룹내 고성능 모터스포츠 사업부인 "랠리아트" (Ralliart)의 공로가 컸습니다. 아예 그들은 전문적인 사업부를 두고 모터스포츠를 육성할 정도로 자금력이 있었던 것이죠. 사실 모터스포츠에서의 성공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천문학적인 자금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1984년부터 미쯔비시 자동차가 전세계 각종 모터스포츠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는데 랠리아트는 든든한 지원을 했고, 각종 모터스포츠 관련 악세사리들도 동시에 판매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미쯔비시의 차량들이 사막을 가르고, 세계적인 경주대회의 주인공으로 매스컴을 장식할 때 현대자동차 및 국내의 기아, 대우, 쌍용 자동차들은 마냥 부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이게 레벨의 차이구나... 담당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죠.
한편 1980년대에서 1990년대 그시절, 홍콩영화가 한국에서는 정말 큰 인기였습니다. 동네 문방구에서 다들 쌍절곤 하나씩은 사서 연습하지 않았던가요? ㅎㅎ 저희 형 친구들은 코트를 걸치고, 선글라스를 끼고 주윤발, 유덕화를 흉내내곤 했는데요. 당시에 중학교 학급 문집에는 홍콩영화 감상후기가 주를 이룰 정도였습니다. ㅎㅎ 홍콩영화는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서 골고루 인기가 많았는데, 미쯔비시는 이처럼 인기만점의 홍콩영화를 타겟으로 하여 마케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중화권의 스타 성룡의 영화들을 지원하면서 브랜드 PPL을 꽤 적극적으로 했었어요. 1995년 개봉한 홍콩영화 "썬더볼트"를 보면 다양한 미쯔비시의 자동차들이 등장하는데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홍콩영화산업과 미쯔비시가 모두 윈윈할 수가 있었습니다. 특수효과 CG가 걸음마 단계였던 그 시절, 성룡과 악당들이 결전을 벌이면서... 미쯔비시의 자동차들이 실제로 터지고 엎어지고 많이 부서졌지만, 그들에겐 그게 전혀~ 아깝지가 않았죠. 동아시아 시장에서 미쯔비시의 인지도를 많이 높여준 성룡이 고마웠던지 그후로도 그들은 성룡과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계속 이어갑니다. 심지어는 성룡 한 명만을 위한 리미티드 자동차 에디션을 내놓으며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이것도 마케팅의 일환이었겠지만요.
그러던 미쯔비시가... 지금의 위상은 어떠할까요? 제가 이번 글에서 미쯔비시의 절정기에 대해 주로 다룬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1990년대를 설명하면서 미쯔비시를 빼놓을 수가 없고, 그 상당했던 미쯔비시의 위세가 2000년대 들어와서는 상상할 수도 없이 낮아졌거든요. 그것도 전세계 미쯔비시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정도로 지금은 그 옛날의 영화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답니다. 모터스포츠를 담당했던 랠리아트 사업부도 적자로 사업을 접게 되었고, 순차적으로 해외에 있던 자동차 생산 공장들도 모두 폐쇄하고 전부 다른 회사들에게 팔았습니다. 과거 현대자동차의 기술 과외 선생으로서 현대자동차 연간 순익의 절반을 로열티로 가져가던 미쯔비시였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미쯔비시의 세계적인 인기를 마냥 부러워했던 1990년대의 현대자동차는 그저 "부러워만" 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지요. 현대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의 인기 추락, IMF 직격탄 등 비록 그들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었지만 절치부심, 묵묵하게 자체 엔진기술을 개발하며 차근차근 미래의 기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을 한번 보세요. 이것은 미쯔비시의 마이티 맥스를 계승한 요즘의 픽업트럭 버젼인 트리톤인데...음....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반짝이는 메탈 재질도 너무 사용을 많이 했고 무언가 다양한 디자인적인 요소들이 한꺼번에 보이다보니 넘치듯 과해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일본 애니매이션의 건담 느낌이라고 하면 적당할까요? 픽업트럭인데도 오프로드 느낌도 별로 나지 않고요.
사실 자동차 회사에서 디자인은 절대 혼자 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경쟁하여 몇가지 안으로 추려지면 다음에는 경력있는 디자이너들의 조언하에 또 다른 몇 단계의 경쟁을 거치고 그 사이에 회사의 중역들의 조언들을 역시 단계적으로 거치면서 자칫 어색하거나 불합리적인 부분들을 개선하고 잡아나갑니다. 확인과 확인을 거듭하여 시장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을만한 디자인을 신중하게 고르는 것이죠.
그런데 이처럼 무언가 세계적인 트렌드를 벗어나서 마치 자기 세계에 빠진 느낌의 디자인이 최종안으로 결정되고 회사의 주력모델 중 하나로 적용이 되었다는 것은... 제가 볼 때 회사내 경영 관리 부분에 좀 어떤 문제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이 드네요. 그 잘나가던 미쯔비시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다음 글에서는 미쯔비시가 옛 영광을 뒤로, 추락하게 된 세부적인 원인과 한때 스승이던 미쯔비시를 넘어서서 이제 스승을 가르치게 된 제자, 현대자동차의 지속적인 도전에 대해 이어서 연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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