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DAI 07. 내가 쩐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 현대자동차의 미국 진출기 (2)
지난 글에서 제가 빈패스트에 대해 다룬 것은 그들이 최근에 보여주는 열정적인 모습에서 과거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진출했을 초기 상황들을 조금이나마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 사이 현대자동차가 의욕적으로 세계 진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정말 "진격의 현대자동차" 였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빈패스트는 현대자동차가 시도했던 진취적인 해외 진출 역사를 보고, 자신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을 수도 있겠습니다.
현대자동차는 1976년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를 선보인 지 10년 만에 미국시장을 두드리는데 성공합니다. 그 주인공은1986년 1월 울산 공장에서 생산된 소형 세단 "포니엑셀"이였지요. 물론 그당시엔 제가 미국에 있지도 않았고, 저도 매우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에 현장을 직접 경험하진 못했습니다만, 대신에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님께서 보시던 신문이었는데요, 그 한켠의 사진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자동차들이 항구 선착장에 도열하며 선적을 기다리는 그 장면을요...
제 기억이 맞는지 궁금하여... 1986년도 동아일보 기사를 네이버 뉴스라이브러에서 찾아보니 정말 있네요! 당시 1,050대의 한국산 자동차들은 “올리브에이스호”라는 선박에 실려 한 달 간의 항해 끝에 1986년 2월, 미국 플로리다주의 잭슨빌 항구에 도착하게 됩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에서 우리도 성공할 것이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서,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온 국민의 성원을 가득 안고서요...
포니엑셀은 당시 현대자동차가 회사의 명운을 걸고 개발하던 야심작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1978년부터 "X카 프로젝트"를 추진합니다. 아직 자체 기술력이 충분치 않았던 당시 한계 때문에, 이탈리아의 주지아로에게 디자인을 요청하고,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의 섀시 기술을 들여와 연 30만대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신설합니다. 현대자동차 최초로 전륜구동을 목표로 한 포니엑셀은 드디어 1984년에 초기 시제품이 완성되었고, 이를 가지고 비밀리에 캐나다에서 혹한 테스트를, 미국에서 각종 안전 테스트를 통과하게 되면서 시장에 내어놓을 만반의 준비를 마칩니다. 1985년 2월부터 양산을 시작할 때까지 현대자동차는 이 신모델에 도합 3,969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고 하는데요... 현대자동차의 1984년도 매출액이 약 6,600억원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설립된지 20년도 안된 기업으로서 실패하더라도 빠져나갈 출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진격의 도박"을 한 셈입니다.
그러면 미국시장 진출의 결과는 어떠하였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포니엑셀은 미국시장의 첫 수출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야말로 초대박을 터뜨립니다. 판매 4개월 만에 5만2,400대가 팔렸으며, 그해 1986년 말까지16만8,000대를 팔아치웠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미국시장에서 수입차 브랜드가 첫해 16만대를 판매한 한 것은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라고 하네요. 당시 미국도 현대자동차가 보여준 기세에 대단히 놀란 모양입니다. 미국의 경제지 포춘은 1986년 12월 8일자 기사에서 포니엑셀을 1986년도 미국의 10대 상품으로 선정하고, 역사상 가장 빠른 매출 신장률을 보인 수입품이라는 찬사를 해주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는 현대자동차의 주도면밀한 준비가 뒷받침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에 진출하기 전, 이미 현대자동차는 영국과 남미에 자동차를 수출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포니 모델을 가지고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를 먼저 공략해서 큰 실적을 쌓은 상태였습니다. 특히 1985년 여름에는 현대자동차가 캐나다 진출 2년만에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을 모두 누르고 수입차 1위를 기록하여 그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 상태였죠.
후진국 대상 무관세 혜택을 입어 경쟁사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할 수 있었고, 또한 비교적 정비가 쉬운 차량 구조 덕분에 캐나다 자동차 시장에서 큰 돌풍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러한 소문을 듣고 미국측 딜러들로부터 현대자동차의 차량을 공급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왔었다고 하네요. 이어서 미국 크라이슬러 자동차에서도 독점판매를 하고 싶다는 제안이 왔지만, 당시 현대자동차의 정세영 회장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립니다. 단기적인 이득보다는 현대자동차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 눈 앞의 좋은 조건들을 포기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자체적으로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저명한 시장조사 및 기업컨설팅 회사 "보스톤 컨설팅"과 함께 6개월 동안 구체적인 플랜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캐나다의 10배 수준에 이르는 미국 자동차 시장은 다른 국가의 규모와 차원이 다르기에, 현대자동차는 철저한 계획이 우선순위임을 깨닫고 미국 판매법인을 설립하면서 세부적인 준비를 해나갔던 것이지요. 보스턴컨설팅이 제시한 시장조사 결과도 긍정적이었고, 그리고 어느 정도의 성공은 예상되었던 것이... 미국 수출 개시 전에 미국 현지인 대상으로 자동차 딜러망을 구축하려고 모집 광고를 내었는데 딜러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줄을 섰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자동차 측에서는 경험 많고 수준 높은 딜러들을 선별할 수가 있었지요.
참, 여기서 미국 자동차 판매시스템에 대해 짧게 설명드리자면, 전통적으로 미국은 자동차 회사 직영 대리점보다는 지역별로 거의 중소기업 수준 규모 이상의 현지 자동차 딜러가 자동차 회사와 계약을 맺고 차량을 받아 일반인들에게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현지 자동차 딜러는 자동차 회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능력에 따라 각종 자동차 브랜드들을 다양하게 판매할 수 있습니다.
포니엑셀이 미국 진출 초기부터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철저한 준비 이외에도 매우 저렴한 가격도 한 몫을 했습니다. 최대 경쟁자로 여겨졌던 일본산 자동차들이 마침 엔고 현상과 수입 규제로 인하여 판매가 약간 주춤했던 것은 현대자동차에게 천운과도 같은 기회가 되었구요. 게다가 미국 진출 직전 달러 당 원화의 환율도 갑자기 오르기 시작하면서, 현대자동차는 큰 이득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전역에 뿌려진 현대자동차의 광고는 "경쟁 차종과 같은 가격이라면 현대의 신모델 두 대를 구매할 수 있다"라고 호소하는 전략이었습니다. 포니엑셀의 당시 첫 가격은 4,955달러였는데 이는 경쟁 차종들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이라, 그만큼 그들보다 더 나은 옵션들을 차량에 추가적으로 장착하여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이죠.
성공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1987년에는 26만3,000대를 판매해서 소형차 시장에서 포드자동차의 "에스코트" 모델을 누르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1990년에는 누계 판매대수가 100만 대에 이르면서 포니엑셀은 현대자동차를 미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소개한 일등 공신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당시 현대자동차 뿐만 아니라 1987년 기아자동차도 차례로 미국시장에 자동차를 수출하게 되는데, 이러한 일들이 미국에 거주하는 재외 동포들에게는 큰 자부심을 안겨다 주었다고 합니다. 특히 전세계의 많은 자동차 브랜드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미국시장에서 한국산 브랜드가 돌풍을 일으키니, 마음 한켠 속에 고국을 그리며 외국생활을 감내하고 있던 그들에게는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로 여겨졌겠지요. 게다가 텔레비젼에는 한국산 자동차의 광고마저 나오게 되니까...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했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당시에 방영되었던 현대자동차 텔레비젼 광고를 몇 편 소개합니다!
우선 1986년도 텔레비젼 광고입니다. 그림 같은 경치를 뒤로하고 빨간색 엑셀이 정말 간지나게 달리네요. 왠지 날좀 잡아봐~~ 하면서 다리는 것 같지 않으세요? ㅎㅎ 들판도, 코너도 우아한 모습으로 달리고 달려!! 이렇게 보니 해외 유명 자동차 브랜드들이 부럽지가 않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nUGYz2WT6Y
그 다음은 1988년도 광고입니다. 독일의 자존심 BMW를 후드러 패는 이 패기! 마치 "내가 쩐이 없어서 그러지 가오가 없냐!"의 현실판을 보는 것 같습니다. ㅎㅎ 미국 광고들은 가끔씩 이렇게 경쟁사의 제품을 브랜드까지 그대로 광고에 노출시키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지금은 BMW도 현대자동차를 무시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1980년대 후반에 BMW를 가뿐하게 무시해주는 이 자신감 정말 뭔가요? ㅎㅎ 당시 21년차 역사의 현대자동차가 72년 역사의 큰형님 BMW를 건든 것은 정말 막나가는 패기 맞는거죠?
https://www.youtube.com/watch?v=4xnw7uGi4lM
우아함도 보여주고 가오도 잡았으니 이젠 잔잔한 가족 드라마를 한편을 보여줄 때가 되었죠? 마지막 1988년도 광고는 분위기며 배우들이 마치 1980년대 한편의 미국 드라마를 보는 것 같습니다. 두 부부 사이에 정말 꿀이 뚝뚝 떨어지네요. 이 광고를 오마주해서 현대자동차가 현실버젼으로 다시 만들어봐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 최소한 현대자동차 차량 하나쯤은 아내에게 바로 안겨줄 수 있어야 진정 사랑받는 남편이 될 수 있는 것인가요? ㅎㅎ
https://www.youtube.com/watch?v=Zoh3s0owr4c
아래에는 어떻게 보면 포니엑셀과 상당히 유사하게 생겼던 포드의 1987년형 에스코트입니다...음...이 모델과 현대의 포니엑셀이 헷갈려서 미국소비자들이 포니엑셀을 선택했던 것은 아니겠지요?ㅎㅎ 진격의 엑셀 앞에 무릎을 꿇었던 비운의 모델이었습니다만 나름 미국시장에서 선전을 하였고, 그 이후 여러 세대를 거친 후에 2002년에 단종되기 전까지 미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모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게 된 탓일까요? 오히려 이러한 화려한 시작이 현대자동차에게 큰 독이 되어 돌아오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들 앞에는 무시무시한 "품질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고... 이것이 미국시장 진출 4년여 만에 곧 현대자동차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나름 상당한 준비와 공을 들여 미국시장에 진출하였으나,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의 수준은 다른 국가들과 근본적으로 차원이 달랐습니다. 경쟁사 대비하여 현대자동차가 상대적으로 품질에 문제가 있음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었고, 또한 완벽하지 못한 에프터서비스 인프라 상태에서 예상보다 너무 많은 차량들이 판매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에 현대자동차는1990년 스쿠프와 1991년 엘란트라를 미국시장에 출시하여 만회를 해보려 하지만 한번 등이 돌려진 여론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1990년대 중반까지 북미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연간 판매대수가 10만대로 내려앉았고, 1990년대 말에 이르자 8만대로 감소해버립니다. 현대자동차는 품질이 엉망에다가 싸구려라는 인식이 미국 소비자들의 의식 속에 새겨지게 되면서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급락하기 시작합니다. 결정적으로 한 미국 V 토크쇼 방송에서 이를 희화화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면서... 현대자동차의 좋지 않은 이미지는 고착화되어버리는데요, 출발할 때 뒤에서 밀어야 하고, 내리막길에서만 달리는 1인용 썰매가 바로 현대자동차라고 비웃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현대자동차의 차량은 저렴하게 물건을 판매하기로 유명한 미국 월마트의 싸구려 가전제품처럼 고장나면 굳이 고칠 필요없이 바로 버릴 수 있는 일회용 같다!라는 악평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한번 고착화된 이미지를 탈피하기란 정말 쉽지가 않았습니다. 안그래도 1990년대는 현대자동차에게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는데 엎친데 덥친 격으로 1990년대 말엔 한국에 IMF가 닥치게되지요. 이로 인한 국내시장에서의 판매량 감소, 매출 감소 등 한국발 타격은 현대자동차의 해외 영업에도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1997년 국가부도의 날... 다들 기억 나시지요? 저도 그 시절이 명확히 기억이 나는데... 매일 저녁 9시 뉴스를 볼때마다 어제까진 멀쩡했던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부도가 나고 쓰러졌다는 소식들로 도배가 되었었는데... 저는 이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마치 영화의 한장면 같았습니다. 다행히 저의 아버지께서는 공무원이셔서 저의 가정은 큰 타격은 없었으나, 주위 친구들 중에 하루 아침에 부모님이 실직하게 되어 날벼락을 맞은 경우가 매우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뚝심의 현대자동차의 진가가 발휘된 것이 오히려 바로 그 시점입니다. 이후의 연재글들에서 현대가의 역사를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마침 현대자동차는 정세영 회장에서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큰 아들 정몽구 회장으로 권력의 구도가 극적으로 바뀌게 되면서... 이것이 현대자동차에게는 하나의 기회가 되어 새로운 개혁을 시작하게 됩니다. 새롭게 사령탑에 오른 정몽구 회장은 미국시장에서 땅에 떨어진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품질경영을 천명하고 가능한 모든 전력을 풀가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역시 이후의 연재글들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IMF 직후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와의 합병은 현대자동차가 본격적인 품질 개선을 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닦은 최고의 선택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인수하려 들지 않았던 적자기업 기아자동차를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합병을 하고, 양사가 가진 특성과 차이를 상호보완하는 구조를 만들면서 품질 성장 및 매출 성장을 이루어낸 것이지요.
당시 현대자동차 회장실에서는 24시간 동안 국내외 현대자동차의 품질을 실시간으로 보고받는 종합 상황실을 만들어 품질 문제를 대처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편 품질총괄본부가 조직되어 매달 연구개발 및 생산담당 임원들을 소집하여 품질 개선 회의를 주재하게 됩니다. 일설에 의하면 정몽구 회장은 암행어사처럼 불시에 현대자동차 공장이나 연구소 등을 방문하여 직접 품질을 확인하고, 기준에 못 미치는 상황이 보이면 바로 지적하여 개선이 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 비록 정몽구 회장은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장손이라는 혈통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의 고급 책상보다는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현장 전문가였다고 합니다. 현대자동차에 합류하기 이전 매우 이른 나이부터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현장을 돌면서 일을 해왔다고 합니다. 특히 옛 그룹 계열사였던 현대자동차서비스와 현대정공을 두루 거치면서 고장난 차량들을 정비하고 부품을 수급하는 일에 정통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현대그룹 초기에는 직접 트럭을 몰고 부품을 날랐다고 하지요.
그의 경영스타일은 기대에 못미치는 직원들에게는 혹독한 질책을 가하고 그 대신 좋은 성과를 보인 직원들에게는 그만큼의 보상을 해주면서 "신상필벌"을 확실하게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기아자동차와의 합병이후 잘나가던 카니발 차량을 자신의 자택으로 가져가서 품질 하자 부분들을 깨알 같이 표시하여 개선을 지시하였다던지, 해외 수출을 앞둔 오피러스 차량들에 대해 40여일간 선적을 미루게 하고 자신이 잡아낸 미세한 소음을 반드시 고치라고 명령을 내렸던 일화가 매우 유명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점점 열매를 맺게되고, 서서히 저품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자 현대자동차는 승부수의 칼을 빼어 던집니다. 바로 미국시장에서 “10년 10만 마일 무상보증”이라는 전후무후한 전략을 동원하여 경쟁사들과 소비자들의 허를 찌르게 되는데요, 당시 경쟁사들은 이 소식을 듣고 아연실색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미국 브랜드인 GM과 포드는 3년 3만6,000마일, 토요타는 5년 6만 마일 정도 보증하는 것이 당시 업계의 관행이었거든요. 그리고 그런 허무맹랑한 전략으로 인해 곧 현대자동차는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10년 10만 마일 무상보증”은 오히려 미국 소비자들에게 현대자동차가 품질을 잘 개선하여 나가고 있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파격적인 마케팅에 솔깃한 소비자들이 현대자동차의 차량을 구매하였으나 직접 타보니 품질도 괜찮고 잘 고장나지 않아서 굳이 무상보증을 신청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지요. 품질에 대한 자신감 없이 이러한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에 이것은 그만큼 현대자동차의 품질이 객관적으로 개선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했습니다. 한 미국인 현지 딜러가 "지금 현대자동차가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위기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회사 측에 아이디어를 제시하면서부터 10년 10만 마일 무상보증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가져온 결과는 매우 컸습니다. 결국 2004년 미국의 자동차 품질 평가기관인 JD파워의 품질 조사에서 현대자동차는 최초로 일본의 토요타를 앞서는 쾌거를 이루어냅니다.
품질 개선이 궤도에 오르자 미국 내 차량 판매대수도 가파르게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시장에서 누적 판매량이 1999년 200만대였던 것이 4년만인 2002년 300만대를 돌파하고, 다시 2년 만인 2005년 400만대를 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앨라바마 공장이 준공된 2005년 이후부터는 연 평균 6%대의 고속성장을 계속하여 2007년 500만대의 판매를 달성하였고, 8년만인 2013년 그 두 배인 800만대가 되더니, 2015년에는 꿈의 1,000만대를 돌파해버립니다. 그리고 2022년 말 기준으로는 약 1,500만대로 누적 판매 대수가 집계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37년이라는 한 세대의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고비들을 넘기고서야 이제 미국시장에서 조금씩 현대자동차의 브랜드가 대접을 받고 있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37년 동안 숨가쁘게 달려온 현대자동차의 미국시장 진출기를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으로 읽어보셨나요? 그 세월 안에는 현대자동차의 특유의 뚝심과 과감함, 그리고 배짱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그들의 도전을 무모하게 바라보았지만, 도리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었던 그 이면에는 국내와 해외에서 근면하게 자기 역할을 다했던 내부 직원들의 피와 땀, 그리고 노력들이 그 큰 저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역으로" 현대자동차의 설립 초기로 돌아가보고자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현대자동차의 초기 설립 역사를 하나씩 되짚어보면서 본격적으로 그들의 DNA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동차강국의 대표 브랜드 WADITO' 카테고리의 다른 글
HYUNDAI 09. 안되도 해보는 거야! 갑을이 바뀔 때까지! - 현대자동차의 초기 역사 (2) (24) | 2023.06.04 |
---|---|
HYUNDAI 08. 해보기나 했어? 도전의 아이콘! - 현대자동차의 초기 역사 (1) (31) | 2023.06.01 |
HYUNDAI 06. 바람과 같은 빈패스트의 패기! - 현대자동차의 미국 진출기 (1) (13) | 2023.05.23 |
HYUNDAI 05. 뭐? 현대차에서 K-POP이 보인다구? - 미국에서 보는 현대의 모습 (4) (12) | 2023.05.14 |
HYUNDAI 04. 솨라~있네! 디자인도 팔딱 뛰는 활어처럼! - 미국에서 보는 현대의 모습 (3) (32) | 2023.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