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치하면 어떠냐 권상우가 이렇게 열심인데
개봉 후 기사로도 주연배우 권상우가 홍보에 진심이라는 사실이 보도되었지만, 기사가 없었어도... 영화만 보면 알 수 있다. 권상우는 이 영화 작업이 꽤나 즐거웠던 것 같다. 영화 내내 정말 실제 자기 모습 같은 연기를 선보인 48세 유부남 배우에게서 자기가 정립한 이 캐릭터에 대한 열정과 만족감이 느껴졌다.
'천국의 계단'으로 그야말로 최고의 드라마 스타 반열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권상우는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대표되는 (로맨틱) 코미디의 기수였다. 이제는 50을 바라보는 나이.. 더 이상은 로맨스물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기에는 무리, 시리즈물로 안착한 히트맨의 '준'역할에 열과 성을 다해 임한 건 현명한 판단이라 할 것이고, 연기에서 흥을 느꼈다면, 어느 정도 핸디캡 매치인 속편 제작에서도 큰 역할을 했을 거라 짐작된다.
그래서일까. 유치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피식 헛웃음으로, 때로는 오글거림에 몸서리치면서 영화 장면 장면에 웃을 수 있었다. 권상우의 열연이 그야말로 하드캐리한 히트맨2, 앞으로 권상우가 어떤 필모그래피를 이어갈지 더 궁금하게 만든 영화였다.

B급이란 무엇일까. 뻔하고 어이없어도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B급 문화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고 한다. 주류를 고집하지 않는 하위문화임은 분명해 보이는데, 한국영화가 위기에 처했다고 모두가 말하는 요즘, 손익분기점이 230만에 달하는 이 영화가 B급 문화에 해당하는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뭔가 주류에서 벗어난 유치찬란한 재미를 추구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대한 혹평은 참 많다. 뻔하다. 유치하다. 어이없다. 앞뒤가 안 맞는다 등등등. 사실 주연배우 권상우도 영화 혹평에 대해 따로 정색하고 반박하지 않았듯이,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엄청나거나 스토리에 반전이 있거나 화려한 액션이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야말로 웃음에 모든 걸 건 영화인데, 오랜만에 찾은 상영관에서 일행과 함께, 아니 다른 관객들과 함께 웃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다소 빈틈이 많아도 그냥 소리 내 웃겨주는 것에 집중한 것이 조금은 고마웠고, 불필요한 진지함을 모두 내다 버려서 좋았다. 막판 억지 신파는 조금 아쉬웠지만, 사실 관객이라면 누구나 영화 결말이 그렇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았을 테니, 다른 억지 신파로 물의를 일으켰던 최근 한국영화 개봉작들보다는 낫다고 할까.
뜻밖의 발견 황우슬혜
누가 누굴 속인 걸까? 권상우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로맨스는 무리인 황우슬혜도 확실히 이 시리즈의 지분을 확보했다. 그것도 남편 권상우를 제대로 속이면서 말이다.
술병을 휘두르는 모습은 여전히 어색해 보이지만, 좀 놀았던 황우슬혜의 젊은 시절은 그냥 아는 사람 과거를 보는 듯 친숙하면서도 빵 터지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고,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남편을 쥐 잡듯 잡는 아내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다음 편이 제작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시리즈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영역을 확장한 캐릭터는 '준'이 아니라 '미나'이고, 앞으로 뭔가 더 써나갈 여백도 많아 보인다.

극에 녹아들지 못한 아쉬운 캐릭터, 가영
아무리 우당탕탕 코미디여도, 최소한의 감정이입이 될 수 있다면 더 재미있는 법. 딸아이의 연애 현장을 목격하고, 미행 후 분풀이를 하는 '준'의 모습은 영화 전체 줄거리와 크게 이어지지 않으면서도 가장 재미있는 파트였다.
커다란 눈으로 무표정하게 아빠를 쳐다보며, 그야말로 딸 가진 아버지의 서러움을 처절하게 느끼게 해주는 '준'의 딸 가영은 영화의 재미에 일조했는데, 사실 관객들이 어느 정도 뻔하게 예상할 수 있었던 웹툰작가 준의 고행길과 전혀 다른 일상개그라서 나름 신선했다. 뛰어난 연기력을 보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쎄.. 솔직히 그렇게 입체적인 연기력이 필요하거나 외모나 아우라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는 아니었기에 가영 역을 맡았던 배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서인지 뭔가 좀 더 극에 녹아들지 못한 캐릭터로 남은 듯 해 아쉽지만, 뭔가 뻘하게 웃기려 하지 않고, 아버지와 딸의 일상개그를 극에 새겨 넣은 것만은 분명한 공헌이라 하겠다.
어쨌든 손익분기점이 코 앞, 이제 200만 돌파
오늘 기사를 보니 여러 가지 평이 엇갈리는 상황에서도 영화는 200만 관객을 돌파한 모양이다. 일일 관객은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듯한데, 이제는 200만까지 달려온 거리보다 손익분기점까지 남은 30만의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지는 시점이다. 1편도 240만 손익분기점을 겨우 채운 걸 보면, 이 시리즈물의 흥행 행보가 '준'의 인생만큼이나 고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늘 우여곡절 끝에 웃음을 찾는 '준'처럼 흥행도 결국 성공으로 끝날 지 미지수지만, 어쨌든 권상우와 황우슬혜라는 두 배우의 나아가야 할 바를 정해준 것으로도 분명한 몫을 한,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시리즈물이 아닐까 한다.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한 번 상영관을 찾아보시길, 시원하게 웃기에도, 시원하게 욕하기에도, 아니면 웃으면서 욕하기에도 꽤 괜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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