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완승, 셧아웃 승리
그간 정관장과 엎치락 뒤치락 접전을 펼쳐왔기에 기대가 없지 않았지만, 이 정도 완승을 예상한 팬이 많지는 않았으리라. 2세트가 접전이기는 했지만, 3세트는 전의를 상실한 듯한 정관장 팀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넉넉한 점수차를 만들어냈다. 캐스터의 언급처럼 초반 7:0 런은 정관장 팬들에게는 거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페퍼는 높이의 강점을 잘 살리며, 블로킹으로 상대방을 넉다운 시키는 경험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기는 경험을 어린 선수들과 공유했다.
분수령이었던 2세트, 흐름을 바꾼 박은서
사실 2세트 중반까지 승리를 낙관하기 어려웠다. 여전히 지쳐보였던 이한비는 리시브와 공격에서 모두 힘겨운 모습을 보이다가 벤치로 향했고, 간간히 득점을 올려주는 테일러만 믿고 승리까지 갈 수 있을 지, 2세트 그 시점에서 승리까지는 여전치 멀어보였는데, 늘 나와서 애를 쓰지만 판도를 바꾸지는 못했던 박은서가 이 날만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차상현 해설과 캐스터는 힘으로 블로킹과 수비를 모두 뚫어버리는 박은서의 활약을 격찬했다. 그리고 '게임체인저'라는 영광스러운 별칭으로 박은서를 불렀다. 페퍼의 어린 선수가 전문가의 주목을 받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승리를 이끈 수훈선수가 격한 칭찬을 받은 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최종 기록은 10득점이었고, 블로킹이 포함된 걸 생각하면, 체감보다 공격 비중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 한 자릿수 공격득점으로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고, 그야말로 공격이 되는 날, 박은서는 자기가 가진 강점, 파워를 유감 없이 보여주며, 174cm 단신 선수도 힘으로 좌우 공격을 맹폭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그로서 페퍼는 부족한 뎁스에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자원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높이만은 괜찮아보였던 임주은
임주은에게 큰 기대를 한 팬은 많지 않았다.일단 방출자 영입이기도 했고, 전 소속 구단에서도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적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올시즌 부상으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하혜진 부상으로 염어르헝에게 기회가 주어졌듯이, 염어르헝의 부상으로 임주은도 기회를 잡게 되었다. 지난 게임에서는 발빠른 공격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던 MB 임주은은 이 날 경기에서는 정관장의 비교적 단순한 공격을 잘 따라갔고, 블로킹 흐름을 끌어오며, 총 3개로 승리에 일조했다. 블로킹을 리드해야하는 MB로서 여전히 속공 및 이동공격 등 빠른 패턴에는 물음표이지만, 적어도 높이를 바탕으로 하는 단순한 좌우 공격에는 분명한 가능성을 보여줬기에, 셧아웃 승리와 함께 페퍼는 임주은 이라는 또다른 미래자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은 고희진 감독의 행동
고희진 감독이 심기불편한 건 당연해보였다. 전력상 한 수 아래인 팀에게 완전히 밀리고, 어이없는 범실을 연발하는 내용에 화가 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해야하는 프로 세계에서 3세트에 벤치에 앉아서 뚱한 표정으로 경기를 바라보는 모습은 보기에 꽤 거북했다.
물론 선수들을 자극하기 위해 지도자는 이런저런 선택을 할 수 있고, 이러한 극적인 처방도 필요하지만, 질만한 팀이 아니라는 식의 작전타임 중의 질타도 듣기 거북했거니와, 흔한 말로 경기를 던지는 듯한 이러한 태도는 KOVO에서는 낯설고도 불쾌했다.
10승을 넘어 이제 정말 고춧가루 부대로
어쨌든 저쪽 사정은 저쪽 사정, 페퍼는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두며 아홉수에서 벗어났다. 6라운드를 치르는 시즌에서 10승을 거둔게 사실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리그에서 막내이자 언더독인 페퍼에게 큰 의미가 있는 승리였고, 이 승리로 인해 페퍼와 장감독은 부담에서 벗어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다음 경기 승리를 목표로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남은 경기 어느 하나도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번 정관장전 처럼 조금 더 집중하고 한 걸음 더 움직인다면, 정말 이제는 그냥 꼬꼬마 막내가 아니라 강팀의 행보에도 고춧가루를 뿌리며 방해할 수 있는 리그 플레이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선수들 모두 좋은 승리 경험을 자양분 삼아 남은 경기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영원한 친구 -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조공격수의 역할 - KOVO 2024-25 시즌 31차전 페퍼저축은행 0:3 패배 (5) | 2025.03.05 |
---|---|
이제는 진흙탕 싸움 - KOVO 2024-25 시즌 30차전 페퍼저축은행 2:3 승리 (2) | 2025.02.28 |
염어르헝이 없다 - KOVO 2024-25 시즌 28차전 페퍼저축은행 0:3 패배 (1) | 2025.02.17 |
두 자릿수 승수와 탱킹 사이 - KOVO 2024-25 시즌 27차전 페퍼저축은행 0:3 패배 (1) | 2025.02.12 |
실바에게 다 덤벼 - KOVO 2024-25 시즌 26차전 페퍼저축은행 3:2 승리 (2) | 2025.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