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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릿수 승수와 탱킹 사이 - KOVO 2024-25 시즌 27차전 페퍼저축은행 0:3 패배

마셜 2025. 2. 12.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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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페퍼저축은행 배구단 인스타그램)

 
 

생각이 많은 장소연 감독

 
 지난 GS칼텍스전 승리로 기나긴 5연패를 끊고 시즌 9승째를 올린 페퍼저축은행(이하 '페퍼'). 장소연 감독은 지난 9일 경기 전 사전 인터뷰를 통해  시즌 목표였던 10승을 꼭 달성하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 경기, 한 경기 끝까지 최선을 다해 1승이라도 더 따내겠다는 각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창단 후 그간의 페퍼 모습은 이런 프로다운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생각해 보니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내외에 잡음 없이 시즌을 막바지까지 끌고 온 것만 해도 꽤나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첫 해다. 올해는 감독 경질(혹은 런)도 없었고, 외국인 선수 교체가 있었지만, 대마 같은 황당한 일은 없었으며, 선수단 내홍 같은 자폭도 없었다. 
 어쨌든 프로팀 다운 모습으로 시즌을 완주하기까지 이제 남은 경기는 한 자릿수, 1승만 더하면 시즌 전 목표였던 10승을 달성하게 되니 편안할 것도 같지만, 장 감독은 생각이 많아보였다. 여전히 팀의 한계는 뚜렷해 보이고, 뎁스도 당연한 최하위권에... 다른 팀에 비해 성장 속도가 가파른 신인급 선수도 딱히 띄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열 경기도 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이 약체 팀을 이끄는 장감독은 어떤 마인드로 시즌을 마무리해야 할까?
 

탱킹을 고민해봐야 할 시점, 결과는 완패

 
 신인도, 외국인도, 아시아쿼터도 강력한 방식으로 성적 역순 드래프트를 운용하는 KOVO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 현재 하위권 팀인 페퍼는 탱킹을 생각하는 게 정석이다. 신인 드래프트야 판도를 바꿀만한 대어가 나오기 쉽지 않다지만.. 외국인 드래프트는 S급을 뽑느냐 아니냐가 곧 그 해 성적과 직결되는 걸 올해 페퍼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아시아쿼터도 마찬가지... 메가를 앞세워 2위에 도전하는 정관장까지 갈 것도 없이, 페퍼도 장위가 없었다면, MB 포지션은 정말 선발 엔트리 구성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10위 GS칼텍스와의 승점 차이는 5점, 작은 점수는 아니지만 목표 달성 후에도 계속 승수 추가를 위해 달리겠다는 감독 인터뷰는 탱킹보다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프로다운 팀 이미지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결과는 0:3 완패였다. 3세트 접전이 있었지만, 1~2세트 흥국생명은 그야말로 어른이 아이를 상대하듯이 쉽게 점수를 빼앗아갔고, 뭘 해도 안되던 1~2세트는 아직은 갈 길이 먼 팀 전력을 그대로 보여줬다. 내년 성적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선수들이 1승이라도 더 경험하게 하여 전체적인 팀 전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 패배, 남은 경기에서 몇 승이나 추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승리 과정에서 뭐라도 더 배우길 간절히 바라는 장 감독의 바램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경기였다. 그리고 굳이 따져보자면... 외국인 드래프트가 아무리 흉작이라도 매해 준수한 외국인 선수는 최소 2~3명은 나온다. 올해도 빅토리아, 부키리치는 S급 활약을 하고 있고, 투트코도 쏠쏠한 활약으로 흥국생명 순항에 기여하고 있다. 실바와 모마는 그 저 부러울 뿐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어쨌든 현질적으로 5위 혹은 6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높은 순위에서 외국인을 뽑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남은 시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분명 팀 미래에 도움이 되는 방향 설정이다.  
 

박사랑은 이제 스스로를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물론 1~2세트 경기력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세트당 15점을 못 딴 게 당연하다 느껴질 정도였는데, 공격, 수비 가릴 것 없이 모든 게 다 엉망이었던 상황.. 또다시 박수빈을 투입하니 경기 흐름은 미세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3세트는 리시브부터 모든 면에서 기세가 바뀌긴 했지만, 어쨌든 박수빈이 세터로서 좋은 장면을 훨씬 더 많이 만들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시즌 종반... 뎁스가 형편없는 지라 많은 주전들이 체력이 바닥나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박사랑의 부진 원인이 체력 고갈이라면 좀 의아하다. 박사랑은 어쨌든 시즌 중반까지 이원정과 출장시간을 분담했고... 시즌 초반까지 외국인 선수를 대신해 공격을 주로 맡았던 박정아, 이한비, 그리고 지금도 백업 없이 전 경기를 소화하고 있는 리베로 한다혜라면 모를까... 이 정도로 체력 때문에 이렇게까지 토스가 널뛰기를 한다면... 또다시 장감독은 트레이드에 뛰어들 수도 있다. 
 박수빈이 연달아 출전하면서, 이제 박사랑이 박수빈보다 나은 건 블로킹 정도밖에 없지 않나... 이런 생각까지 든다. 박사랑은 178cm, 그리고 박수빈은 174.6cm 이제 정말 둘의 격차는 그렇게 3.4cm로 좁혀진 걸까. 여전히 속공 토소는 두 장신 MB 장위와 염어르헝의 높이에 전혀 안 맞고, 퀵오픈도 빠르게 날리지 못하지만, 그래도 좌우로 주는 하이볼 토스라도 안정감 있게 분배하고, 테일러에게 주는 이동공격이라도 제대로 쏴주는 걸 보면... 분명 박수빈은 내년이 더 기대되는 세터이다. 아쉬운 점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건지, 안 쪽으로 짧게 잘라 들어오는 공격에 블로커로서 전혀 대응을 못하는데... 어쨌든 나아지는 면이 있깅, 이제 장감독이 박사랑보다 박수빈을 바라봐도 이상할 게 없다. 
 이고은이 팀을 떠나고 이원정이 부상당하면서 힘들게 기회를 잡은 박사랑이 이대로 물러나길 바라는 팬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토스가 이렇게 들쭉날쭉하다면, 남은 시즌은 박수빈이 주전으로 출장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후배에게 자리를 내주고 웜업존으로 밀려난 게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페퍼는 전 포지션이 기회의 땅, 조금만 더 안정감을 보여준다면, 두 세터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팀이 발전할 수 있다. 다만, 그전에 박사랑은 왜 자기가 박수빈에게 밀리고 있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제는 어엿한 에이스 테일러

 
 의외성을 가진 유일한 선수. 대체로 들어와서 큰 기대도 끌지 못하고, 많은 비판에 직면해야 했던... 친화력 원툴이라고 조롱당하기도 했던 테일러 선수가 어느새 페퍼의 에이스가 되었다. 이제 팀 내 최고 득점을 기록하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팀 공격수 중 가장 활발하게, 어려운 공격도 어떻게든 때려보고, 무엇보다도 유일하게 이동공격을 자유자재로 소화하면서 좌우 오픈 말고 그나마 확실한 제3의 득점루트로서 활로를 뚫고 있다. 
 테일러의 강점은 여럿이지만, 요즘 가장 돋보이는 건 의외성이다. 하이볼 상황에서도 예상치 못한 각도로 공을 때려 넣어보고, 페이크 연타도 길이와 각도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최소한 이상의 공격효율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올 때마다 강타 일변도로 범실을 만들거나 블로킹당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보여주는 박은서가 배워야 할 선수는 어찌 보면 가장 의외의 공격을 자주 보여주는 테일러 일지도 모르겠다. 
 

라인 쪽으로 몰리는 공격, 결국은 체력방전

 
 일차적 패배 원인은 상대적 우위에 있는 흥국의 높이였지만, 더 질식할 것처럼 느껴진 건 김연경 중심의 단단한 후위 수비였다. 강타, 연타 가릴 것 없이 모두 걷어내는 디그는 가뜩이나 강타를 때리는 선수가 부족한 페퍼 공격진을 맥 빠지게 만들었다. 
 그저 흥국의 수비가 뛰어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이제 많이 지친 공격수들의 높이가 떨어지면서 더 멀리 예리하게 때리려고 무리수를 두고 있는 건 아닐까. 게다가 세터도 흔히 말하는, 힘 있게 세워주는 느낌의 토스를 하지 못 하니, 공격수로서는 멀리 라인 쪽으로 아슬아슬하게 붙이는 공격을 고집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패턴을 상대편은 읽으니 라인 쪽 수비를 더 촘촘하게 서고 있다.
 이제 5라운드를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신박한 대책을 나오긴 어렵다. 어쨌든 세터의 토스가 좀 더 힘있게 가야 하고, 한두 번이라도 더 중앙에서 득점이 나와서 상대 블로커 시선을 분산시켜야 페퍼의 필승공식인 '날개 공격수 3명의 10점 이상 득점'이 나올 수 있다. 
 
 
 
이제 시즌은 막바지. 일요일 경기 후 4일을 쉬고, 금요일 현대건설과의 대결이다. 디펜딩챔피언 현대건설을 상대로 우세를 점치기 쉽지 않지만, 이제 어느 팀이나 부상자를 안고 경기하는 상황이다. 오히려 쫓기는 건 2위 수성이 급한 현대건설. 적어도 높이만은 어떤 팀에게도 밀리지 않는 장점을 잘 살려서, 지난 흥국생명 전보다는 치열한 경기를 보여줬으면 한다. 한 경기 한 경기 상대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시즌 목표인 10승도,  장 감독의 더 높은 목표도 멀리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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