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듀스, 33점 세트, 그리고 풀세트 접전
프로스포츠, 흔히 축구에서 우승 다툼 만큼이나 치열한 경쟁이 바로 강등(혹은 승격) 싸움이다. KOVO는 당연히 승강제를 운영하고 있지 않기에, 리그 꼴찌는 망신스러운 점을 빼면 외국인(아시아쿼터 포함) 및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 '망신'이 주는 임팩트는 생각보다 커서 모기업으로부터 해마다 몇 십억씩 지원금을 타서 우승에 도전하는 구단 입장에서는 적어도 꼴찌는 면하고자 하는 처절한 싸움이 KOVO에서도 자주 벌어지곤 한다.
지난 2월 5일(수)에 있었던 26차전도 리그 최하위 GS칼텍스(이하 'GS')와 현재 팀분위기로는 꼴찌나 다름 없는 페퍼저축은행(이하 '페퍼')의 대결이었지만, 그 처절함은 강등을 결정하는 시즌 마지막 게임 못지 않았다. 3번의 듀스, 그리고 1세트 33점까지 가는 대접전, 그리고 풀세트에 이르는 올시즌 최장시간 경기는 결국 페퍼가 GS를 꺾으며 끝이 났지만, 양 팀 모두에게, 그리고 경기를 지켜본 팬들에게도 꽤나 큰 피로감을 안긴, 정말 백병전 같은 혈전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어쨌든 이긴 쪽은 페퍼, 테일러와 장위의 분전
시합은 시종일관 페퍼의 모든 공격수를 실바 혼자 상대하듯 점수 경쟁을 벌이는 느낌으로 진행되었다. 최종 실바의 기록은 55득점. 서브나 블로킹, 후위공격 등 세부적인 스탯을 살펴보는게 무의미할 정도로도 공격은 실바에게 집중되었고, 그 전략은 분명히 어느 정도 통했다. 유서연이 어느 정도는 이름값을 했지만, 권민지가 심히 부진했기에 관중들도 해설진도, 선수들도 실바가 공격하리라는 걸 알았지만, 당연한 집중마크를 비웃듯 실바는 토스 질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페퍼 코트에 강타를 퍼부었고, 결국 풀세트까지 이어진 접전에서 50점이 넘는 공격성공을 기록한 후에야 드디어 실바는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시점 느리지만 높은 장위 블로킹이 따라붙었고, 연달아 실바의 공격이 가로막히자, 그대로, 그걸로 게임은 끝났다.
실바가 모든 걸정하려는 걸 간신히 장위가 가로막은 느낌이지만, 사실 테일러의 분전이 없었다면 페퍼는 시합을 5세트까지 끌고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33득점에 41.8% 공격성공률, 그리고 범실은 4개. 상대편 실바의 기록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이 정도면 OP로서 자기 몫은 충분히 한 것이고, 특히 높이에서 상대편 권민지 등 OH의 기를 꺾는 블로킹을 계속 기록하며 공격루트를 실바로 집중시킨 것도 테일러의 공이 크다. 원래 GS는 실바로 공격을 풀어가지 않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GS의 필승공식은 어떻게든 리시브를 버티면서 세트 초반부 권민지, 유서연 등 다른 루트로 득점을 쌓은 후, 20점에 근접하는 승부처 혹은 리시브가 무너졌을 때만 실바에게 공을 올리며 체력을 아껴주는 것이었다. 이런 필승공식으로 경기를 끌고가지 못하고, 실바의 체력을 모두 소진한 후에도 승리를 가져가지 못한 건 GS에게 여러모로 뼈아픈 패배. 결국 이렇게 상대에게 패배를 안긴 장본인은 득점 랠리를 이어가며 GS 공격 흐름을 방해한 분명 테일러이다.
김주향의 "제가요?" 어찌되었든 KOVO 현주소
3세트 종반부 24:21 상황에서 작전타임에서 이영택 감독이 서브리시브에 참여할 것을 지시하자, 김주향이 '제가요'라고 반문하며, 고개를 가로저은 장면이 여론과 팬들로부터 엄청난 질타를 받고 있다.
감독의 리시브 지시에 "제가요?"라며 반문하는 7.2억 아웃사이드 히터…GS칼텍스의 페퍼저축은행
한눈에 보는 오늘 : 농구/배구 - 뉴스 : GS칼텍스와 페퍼저축은행의 2024~2025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맞대결이 펼쳐진 5일 서울 장충체육관. 양 팀이 세트 스코어 1-1로 맞선 3세트, GS칼텍스가 23-17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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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수비에 강점이 없는 백업 OH를 승부처 접전에 투입하고, 원포인트 공격(혹은 블로킹)에 집중하는 일반적 전략에서 벗어나 리시브에 참여시킨 것은 분명 이영택 감독 실책이다. 그리고 이 감독도 이 부분을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인정한 바 있다.
다만, 7.2억 아웃사이드 히터라는 표현은 다소 악의적이라고 느껴진다. 7.2억은 3년간 총액이며, 수당이 포함된 액수이기에 이를 단순히 이런 식으로 붙여쓴 건 분명 몸값이 과하다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이러한 표현까지 써가며 선수 몸값을 거론하면서 아웃사이드 히터의 실력 부족을 질타한 것이 적절한 것이냐 혹은 지나친 지는 논외로 하자. 물론 기사 내용은 그저 GS로서 아쉬운 패배인 점을 강조하고 있을 뿐 리그에서 어쨌든 FA 이적이 가능한 아웃사이드히터의 리시브 실력이 왜 이런 지를 전혀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OH의 수비 불가 현상은 분명 리그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분명하다. 이는 서서히 악화되어 온 KOVO 수준의 단면이고, 여러 원인이 중첩된 현상이지만, 왜 페퍼 박정아를 비롯해 모든 팀에 한 두명 리시브가 안되는 OH가 있는 지 분명 리그 차원에서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엄청난 장신이고 경험이 없었음에도 올해부터 팀 사정에 따라 OH 역할을 맡은 정관장 부키리치는 어떻게 리시브를 잘하게 된 건지... 아본단자 감독은 리시브 기본기를 쌓아올리기 위해 선수들에게 어떤 훈련을 시키고 있는지... 당장의 우승 레이스에는 도움이 안될 지라도, KOVO 팀들은 분명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염어르헝은 변덕규인가? 강백호인가?
엔트리에 뛸 수 있는 MB가 둘 뿐이기에, 경험이 일천한 염어르헝이 한 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건 분명 큰 의미가 있고, 그래서 사실상 첫 시즌인 이 구력이 짧은 선수에게 더 큰 기대를 하면 안된다는 지적도 많다.
엄청난 신체조건, 짧은 구력, 그리고 주위의 엄청난 기대, 부족한 기본기... 여러모로 슬램덩크의 변덕규 같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염어르헝인데... 이 날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뭔가 강백호 같은 초보적 실수를 하는 변덕규였다. 역시 좋은 신체조건(능력)을 가졌지만 초보기에서 좌충우돌 실수를 저질렀던 건 같지만... 그래도 초보 강백호의 시그니처 실수는 단연 엄청난 숫자의 의미 없는 반칙이었다. 이는 경기 경험이 쌓이며 서서히 해결되어 가는데, 그 전까지 주장 채치수도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어찌보면 성장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 염어르헝이 오버넷, 넷터치 등 다소 황당한 범실을 남발하는 모습도 어찌보면 꼭 필요한 경험이라 할 것이다.
슬램덩크에서 능남의 주장이자 수비와 리바운드에서만큼은 어느 팀과도 대등하게 싸웠던 변덕규, 그리고 그야말로 북산의 X-팩터로서 폭발력을 보여줬던 강백호처럼, 내년 시즌에는 염어르헝이 팀 자체를 베이스업 해줄 수 있는 든든한 MB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그래도 회복된 모습이 반가웠던 이한비, 성장해 가는 박수빈
테일러가 팀 전체 공격을 리드하기는 했지만, 조금 더 쉬고 심기일전해서 출전한 이한비의 모습은 한결 나아보였기에 정말 반가웠다. 물론 이예림도 백업 OH로서 준수하지만, 어찌되었든 페퍼가 승리하는 공식은 이한비가 공수에서 버텨주면서, 테일러-박정아-이한비로 공격루트를 분산시켜줘야 한다.
이제는 장 감독도 박사랑 선발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이제 3년차 신인... 좋은 신체조건에 국대선발로 가능성을 입증한 선수이고, 블로킹 등에서 분명 강점이 있지만, 현재 냉정하게 박사랑이 박수빈에 비해 나은 건 블로킹 뿐이다. 박사랑의 원인 모를 난조(아마도 체력저하가 원인 인듯)가 아쉽고 애가 타는 만큼, 박수빈의 토스 발전도 분명 팀에 반가운 일이다. 이미 A팀 세터였던 이원정이 이탈했고, B팀 세터라도 키우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어차피 봄배구를 바라볼 수 없는 현실에서 성장세를 보이는 어린 선수에게 냉정하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팀 체질을 키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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