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출처 : 현대건설 배구단 유튜브>
역시 공은 둥글다.
시즌 초만 해도 도저히 빈틈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현대건설 배구단이 결국 도로공사에 2연패로 결승전 진출 티켓을 내주면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최종 순위 3위도 우수한 성적이지만, 시즌 초 무적함대와도 같았던 위용을 뽐냈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명백한 실패.
특히,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의 졸전을 지켜보며, 문득 1588년 영국과 한 번의 해전으로 이름과 달리 허망하게 무너진 스페인 '무적함대'가 떠올랐다.
시즌 개막과 동시에 15연승. 36경기를 치르는 시즌에서 41%가 넘는 경기를 이기고 시작한 것이다. 이 정도면 프로스포츠에서 거의 우승을 예약한 것 아니냐는 말도 할 수 있고, 실제로 지난 2월 말까지 전승 우승도 가능하겠는데....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무적함대의 허망한 패배처럼 무적 배구단의 전력에 균열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15연승 후 21경기에서 9승 12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면서, 결국 정규리그 1위도 흥국생명에 내주게 되었고, 불안했던 전력상 문제점들은 플레이오프에서 일방적인 패배로 다시 선명하게 드러났다. 현대건설이 초반의 위용을 이어가지 못하고 드라마틱하게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1. 무엇보다도 야스민 선수의 부상 이탈
주포인 외국인 선수가 이탈했을 때, 별 탈 없이 넘어갈 배구단은 없다. 그나마 현대건설은 초기 노장 황연주 선수의 눈부신 활약으로 15연승까지 가능했던 거고...부상인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몬타뇨 선수가 영입될 때까지, 선수들의 오버페이스를 감수하면서까지 야스민 선수를 기다렸던 것은 결과적으로 너무나 악수가 되었다.
일단, 주전선수들은 모조리 체력이 방전되어 연이은 줄부상의 간접적 원인이 되었고... 결국은 계약 해지된 야스민 선수의 보유권까지 상실했으며, 어떻게든 써보려는 노력차원에서 기용할때마다 몬타뇨 선수는 불협화음을 내며 팀 분위기를 떨어트렸다.
2. 연이은 부상...
주전 리베로 김연견 선수, 아웃사이드 히터 고예림, 황민경 선수가 연이어 부상으로 이탈했던 것도 치명적이었다. 세 선수가 수비의 주축이었던 것이 더 뼈아팠고.... 상대팀은 아낌없이 리시브가 약한 정지윤 선수에게 목적타 서브를 퍼부으며 쉽게 쉽게 한 세트 한 세트를 가져갔다.
3. 주전 체력 방전...
연승으로 인한 오버페이스와 아웃사이드히터 자원의 부상이탈은 결국 기존 주전이 혹사당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플레이오프에서 짧지 않은 휴식일 후에 출전했음에도 선수들 대부분은 발이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4. 강성형 감독의 평범(?)한 선택
시즌이 끝나면 우승에서 밀려난 감독들은 제각각 성적을 결과론적으로 평가받는다. 어쨌든 정규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강성형 감독이 실패했다 할 수는 없으나, 그 평범하고도 무난한 전략이 위기의 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끝까지 야스민 선수를 기다리고, 연승기간 동안에 주전 기용을 더 많이 한 상식적인 선택은 결과론적으로는 팀에 큰 마이너스가 되었고, 빨리 야스민 선수를 교체했다면... 백업을 더 많이 기용하여 체력안배를 잘했다면....이라는 수많은 if 만을 남겼다.
5. 치명타는 국대 클러치 히터 박정아
외국인 선수 문제로 결국 주포를 정하지 못하고 플레이오프에 임한 현대건설은 켓벨과 박정아 도로공사 쌍포에게 그야말로 십자포화를 맞았다. 시즌 내내 국대 클러치 히터와는 조.. 금은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였던 박정아 선수는 2차전에서 21득점(1차전 17점)을 기록하며 현대건설 아웃사이드히터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는데.... 특히 2차전에서의 모습은 어려운 볼도 올려주면 어떻게든 해결하는 도쿄올림픽에서의 '클러치 박'이었다.
물론,
스페인 무적함대가 칼레해전에 패한 후, 폭풍우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다시는 영국을 침공할 계획을 세우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제해권을 모두 상실한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현대건설도 이번시즌은 용두사미로 끝나버렸지만, 여전히 내년에도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이다.
1. 일단 미들블로커는 국내 최고
말이 필요없다. 양효진-이다현이다.
2. 세터, 리베로 모두 S급
세터 김다인 선수를 맘에 안 들어하는 팬도 많지만, 생각해 보자.. 어쨌든 이만한 세터도 없다.
3. 공수겸장 아웃사이드 히터 황민경, 고예림
둘 다 건강하지 않지만, 잘 관리만 된다면, 내년에도 상대팀은 현대건설 수비를 보며 리베로가 셋인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정말 우승을 노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1. 외국인 선수 선발 성공
사실 이건 모든 팀 마찬가지이다.
2. 정지윤 리시브 능력 장착
가능할까?........ 어쨌든 지금보다는 늘지 않을까...
3. 샐러리캡 해결
작년에 했던 페이컷, 또 할 수 있을까? 작년에 비해서 의혹의 눈초리는 훨씬 매서울 텐데 말이다.
브래드 피트가 엄청난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영화 '머니볼'을 보면, 상위권 성적을 거뒀으니, 다년 계약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는 감독에게 냉정한 대답을 한다.
"좋은 성적도 시즌 마지막 경기를 이기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멀리 해외를 볼 것도 없이, 당장 KBO에서 정규리그 준우승팀 LG트윈스는 플레이오프 업셋 패배를 이유로 유지현 감독을 경질했다. 강성형 감독이 유지현 감독의 전철을 밟게 될지.. 아니면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 우승감독으로 올라설지 예측이 쉽지 않다.
더구나 FA를 앞둔 황민경, 김연견 선수를 생각하면, 당장 내년 두 주축 선수가 이적하고, 강성형 감독은 팀을 떠나고 황연주 선수가 노쇠화로 코트를 밟기 어려워지면, 이 무적함대는 공식적으로 해체될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런 해체가 일어난다면, 이 또한 왕조를 열 수 있었던 강팀의 시대가 끝남을 의미하는 것....
올해 우승컵을 눈앞에서 놓친 현대건설이 더욱 공격적으로 왕조를 열고자 할지, 이제 여기까지가 끝임을 선언하고 리빌딩에 돌입할지 그 선택이 주목된다.
어떤 선택이든 배구팬으로서 흥미롭겠지만, 제발 이번만은 페이컷 같은 이상한 일은 없기를 바란다.
아직은 정상적으로만 운영해도 한국 배구는 갈길이 멀다.
고생하셨습니다. 현대건설 배구단 선수 여러분. 무적함대 같았던 15연승 잊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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