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정상이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
모든 스포츠의 세계가 그러하지만, 특히 프로라면 상대가 누구든 간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난 12월 6일 금요일 페퍼저축은행(이하 '페퍼')이 상대했던 GS칼텍스(이하 'GS')는 확실히 온전한 전력이 아니었다. 팀 전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 실바가 부상으로 이탈했고, 점점 자리를 잡아가던 아쿼 와일러 선수도 부상으로 시즌아웃된 상황... 연달아 발생한 초악재에 권민지 선수 부상은 기억도 안 날 정도이다. 어쨌든 공격 옵션 셋을 모두 잃었어도 경기에 임해야 하는 게 프로.. 여러모로 애를 써봤지만, 하위권 팀 페퍼도 GS 상대로는 1세트 밖에 허락하지 않았다.
가진 전력을 잘 펼쳐내며 역전승을 거뒀지만, 페퍼 선수들은 1세트 경기력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성해야 한다. 외국인이 빠진 팀 상대로 한 세트를 빼앗겼다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걸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세트를 헌납하는 모습 자체가 프로 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젊은 선수들 위주로 강하게 부딪혀왔던 GS의 공격을 읽기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이원정보다는 박사랑의 토스가 좀 나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2세트부터는 두 외국인 선수를 정상가동하는 팀다운 공격력을 보여줬고, 높이의 차이까지 보여주며 세 세트를 연달아 가져왔다.
망연자실한 이영택 감독의 패장 인터뷰가 지금 GS 상황이 얼마나 예상 밖인지 알려주지만, 사실 원래 그런 거다... 이런 일이 없길 바라면서 최선을 다해 선수를 영입하고, 스쿼드를 구성하고, 부상 방지를 위해 노력을 하는 거다. 그걸 넘어선 부상은 천재지변일 뿐이지만... 그 천재지변 또한 승부를 가르는 요소이고, 그렇게 승부가 갈리는 건 비단 스포츠만의 일은 아니다. 괜히 스포츠가 세상 일 축소판이라 하겠는가..
이제는 주전 자리에서 밀리는 느낌 이원정 선수
지난 경기로 인해, 이제 주전 세터 자리에 박사랑이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뭔가 정신을 못 차리는 이원정을 보면... 나쁘지 않은 신체조건과 경력에... 괜찮은 운동능력을 가졌는데.. 주전으로 발돋움하려면 침착함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생각이 든다. 이원정 경기 모습을 보면.. 뭔가 경기가 꼬이기 시작하면, 감독 지시도 잘 안 들리고, 코트 상황이 눈에 잘 안 들어오는지, 이상하게 고집스러울 정도로 뻔한 패턴을 반복하는데.. 그 뻔한 패턴조차 당황함이 묻어나며 흔들리기 일쑤다.
오늘도 뒤이어 들어온 박사랑이 훨씬 괜찮은 토스를 선보이면서 승리를 이끌었는데, 무엇보다도 테일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잘 안되더라도 뭔가 감독 지시대로 해보려고 하는 적극적 모습이 눈에 띈다. 그에 비하면 이원정은 정말 잘 안 풀리면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보이는데.. 전에 흥국생명에서 많이 지적당했던 모습이 그대로 나오는 듯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역시 배구도 멘털 스포츠.. 침착함을 유지하는 게 그리도 어려운 모양이다.
어쨌든 앞으로 박사랑 출전은 점점 늘어날 듯하다. 어쨌든 조금이나 시즌을 거듭할수록 나은 토스를 보여주고 있고, 이도저도 안된다면 조금이라도 젊고 높이도 나은 박사랑을 기용하는 게 나아보이기도 한다. 상대적 고액연봉을 받고 있는 이원정이 빡빡한 샐캡 상황에서 골칫덩이로 전락하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조금 더 자신감을 찾은 모습의 테일러
테일러는 또다시 21 득점으로 팀 내 최고 득점을 기록하며 한결 자신감을 찾은 모습을 보여줬다. 공격 성공률이 36.4%로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범실이 4개에 불과해서, 경기 흐름을 끊는 수준은 아니었고, 블로킹 5개로 높이 우위를 과시했다. 이동공격과 후위공격도 쓰면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여전히 헐렁한 마크를 잘 활용했는데, 뭐가 어찌 되었든 아포짓 자리를 책임져 줘야 할 테일러가 자신감을 찾는 건 중요하다.
물론 당장 다음 게임은 흥국 전에서 높이 우위가 사라져 버리고 서브가 훨씬 강하게 들어오면, 받는 토스 수준은 더 떨어질 것이고, 블로킹 잡기도 쉽지 않아질 것이다. 그래도 좀 더 공을 많이 때리면서 점점 리듬을 찾고 공격력을 찾아가는 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그 과정을 통해 상대 블로킹을 분산시켜야 결국 박정아나 이한비가 살아날 수 있다. 아직도 상대팀은 하이볼 상황에서 테일러보다는 박정아나 이한비를 먼저 보는 느낌인데... 하이볼 상황에서도 테일러가 공격할 수 있다는 느낌까지 줄 수 있어야, 결국 페퍼 입장에서 테일러도 살리고, 다양한 공격을 한꺼번에 살릴 수 있다.
앞으로 처절해질 하위권 순위싸움, 유력한 상대 GS칼텍스
상대팀이지만, 마지막 세트 선발로 모습을 보인 안혜진 세터는 반가웠다. 도쿄 올림픽 4강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이제는 옛날 같지 않다고 해도 올 시즌 하위권 GS칼텍스에 국대 주전 세터가 돌아온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마지막 세트 안혜진 선발과 함께 서채원을 아포짓으로 기용하는 강수를 두며, 반전을 꾀했지만, 결국 이 모든 게 소용없었다. 아포짓 공격이 없을 거라는 걸 예상한 페퍼는 OH 쪽에 더 높은 블로킹을 세웠고, 이는 그대로 세트 향방으로 이어졌다. 서채원 아포짓 기용이 성공이라 볼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지금 팀이 참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이제 돌아온 안혜진을 보면서, 곧 조금은 나아질 GS 모습이 눈에 보였다. 어쨌든 실바는 돌아올 것이고, 아시아쿼터도 누가 오든 지금 팀 상황에서는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타나차 선수가 도로공사로 복귀했는데, 이영택 감독 입장에서는 놓친 게 다소 아쉬울 듯싶다. 아마 오래전부터 도로공사가 영입협상 중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 같은데, 오늘 MB 상황을 보니, 하다못해 MJ 필립스를 영입하더라도 팀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렇게 팀이 정비된다면, 뭔가 다시 페퍼와 난장판 하위권 다툼을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특히, 컵대회와 1라운드에서 페퍼만 만나면 밝은 표정으로 펄펄 날아다녔던 권민지까지 복귀하면 사실 페퍼가 우위에 있는 포지션 자체가 MB 장위 밖에 없다.
어차피 한 시즌 치르다 보면 처절한 순위 다툼은 당연한 거고, 지금까지 이런 걱정조차 부러워해야 했던 압도적 꼴찌 팀 페퍼 상황이 한심했던 거지.. 아 이 팀 앞으로 골치 아프겠는데... 생각이 든 것 자체가 팀 상황이 조금은 나아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페퍼도 조금이라도 더 테일러 공격력도 끌어들이고, 무회전 서브 리시브도 대비를 잘해서 앞으로 만날 회복될 GS 상대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길 바래본다.
패배 후 더 많은 승리를 위해서는? - 이제는 서브 집중력을 높여야
지난 경기 리뷰에서 제발 무회전 서브 리시브 좀 어떻게 해보라고 적었는데, 오늘은 GS도 서브가 워낙 평이했던 탓에 페퍼의 리시브 불안이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대신 한 가지만 지적을 해보자면, 이제 대등한 상대를 만났을 때는 서브 집중력을 더 높여야 한다. 오늘도 승부가 완전히 기운 건 4세트 이주아가 집중된 서브에 대응을 못하면서 연달아 실점한 순간이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이주아가 계속해서 실수를 한 것이지만, 사실 여자배구, 특히 팀마다 리시브가 시원찮은 OH 한 명씩은 데리고 있는 KOVO에서 이 필승공식은 필수다. 정말 이제 강팀을 상대로도 세트를 빼앗아내며, 괴롭히는 끈질긴 배구를 보여주려면, 현대건설 전에서는 정지윤을, 흥국생명 전에서는 정윤주를, 기업은행전에서는 육서영에게 연달아 까다로운 서브가 연달아 떨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오늘 4세트 서브 집중타는 인상적이었는데, 덕분에 승리의 달콤함을 맛본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서브에 좀 더 신경을 많이 써서 자주 좋은 모습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여유로웠던 승리는 어색해도 늘 반갑다. 이제 다음 시합은 올 시즌 절대 1강 흥국생명, 아직은 김연경 체력도 여유로워 보이고, 팀이 바뀐 이고은도... 저렇게 다부진 표정이었나 싶을 정도로 결기 어린 모습으로 팀을 이끌고 싶다. 심지어는 별로다 싶었던 외국인 투트코도 높이를 바탕으로 파이프 공격과 블로킹에서 제 몫을 해주고 있다. 김연경이 이끌만한 괜찮은 팀을 오랜만에 만들어가고 있는 느낌.... 어쨌든 페퍼에게는 버거운 상대이나, 이제는 페퍼도 어엿한 외국인 아포짓이 있는 팀... 그리고 높이도 갖춘 팀, 가진 무기를 잘 활용해서 받아치는 배구로 멋진 시합 만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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