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출처 : KOVO 홈페이지
명작 영화나 드라마는 사람들의 인식을 크게 바꾸기도 한다.
깐느와 아카데미, 에미상까지 석권하며, 영상콘텐츠로 세계인에게 행복을 주고 있는 한국의 지금을 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오늘은 위대한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으로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네. 고쳐야죠. 소 한번 잃었는데 왜 안 고칩니까. 그거 안 고치는 놈은 다시는 소 못 키웁니다.
이창권 씨.
이창권 선수는 야구하는 동생이 있으시잖아요. 동생한테도 물려줄 겁니까? 어떻게 하면 제구력이 더 좋아질까 어떻게 하면 타구가 멀리 더 뻗어 나갈까 그런 고민이 아니라 그런 인간을 또 만나게 되면 돈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런 고민 계속하게 하실 거예요?
높은 순위에 프로에 지명받고자 뇌물을 건넸지만, 뒤통수를 맞고, 결국 다른 팀에 지명되어 절치부심 끝에 신인왕을 차지한 이창권... 그를 찾아간 타 팀 단장, 아니 뇌물을 받아먹은 팀장이 있는 드림즈 단장 백승수는 모든 것을 밝히라 말한다.
망설이는 이창권에게 이미 소는 잃었지만, 다시 시작하기 위해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고 담담하게. 하지만 강경하게 말한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의 의미를 '이미 부질없는 짓을 한다'에서 '미래를 대비하여 늦었지만 해야 한다'로 재해석한 위대한 한 장면.
자 이제 배구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역사에 길이 남을 여자배구 VNL 전패, 그리고 남자배구 AVC 결승 진출 실패...
이 충격이 꽤 컸을까. 국대팀을 관리하지도 않는 KOVO가 7대 신규추진과제를 발표했고, 이제 와서 이런 대책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자조론도 많지만, 난 라이트팬이라 그런지... 소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지.. 이제라도 외양간은 고치기 시작했으니, 언제 다시 괜찮은 소를 키울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 정도는 든다.
내용을 살펴보자. 총 일곱 가지이다.
1. 컵대회 해외팀 초청 및 국제대회 유치 추진
2. 구단 유소년 배구 클럽팀 활성화
3. 프로배구 출범 20주년 기념사업
4. 유망 선수‧지도자 육성 해외연수 프로젝트
5. AI 기반 비디오판독 시스템 운영 기술 개발
6. 사용구 교체
7. 통합 플랫폼 시스템 구축 및 운영
국가대표팀 관리주체도 아닌 KOVO입장에서는 나름 모든 대책을 총망라한 것으로 보인다.
정말 오랜만에 대책이 나왔으니, 하나씩 뜯어보자.
1. 컵대회 해외팀 초청 및 국제대회 유치 추진
전부 좋다. 실제로 최근 개최된 컵대회에 각각 일본, 태국팀이 참가해서 한국팀과 실력을 겨뤘다.
2. 구단 유소년 배구 클럽팀 활성화
이는 뭐 '건강하려면 운동하라'처럼, 너무나 당연한 명제이다. 특히 저변이 넓지 못한 한국배구에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제1명제.
다만, 그래서 유소년 선수가 육성되어 대단한 선수가 나오면, 그 선수를 육성한 팀은 어떤 우선(보유)권을 갖게 되는지, 육성 보상금이라도 받게 되는지 전혀 언급이 없다. 그저 다 같이 열심히 해보겠다는 뉘앙스인데.. 이 정도라면, 그저 구단에 사회환원을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 밖에 안된다. 좋은 선수를 육성하면 구단에게도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는 육성시스템, 멀리 갈 것 없이 K리그에서도 비슷한 시스템이 있는데... 배구에게는 그저 꿈같은 이야기일까?
3. 프로배구 출범 20주년 기념사업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 이런 생각이 들 뿐이다. 국가경쟁력 강화와 20년 역사가 무슨 상관인가? 배구 역사를 기억 못 해서 국가대표팀 성적에서 죽을 쑤고 있는가?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프로역사에 대한 정훈교육이라도 시킬 셈인가?
느낌상... 7대 과제를 위해 큰 예산이 편성되는데... 반대할지도 모르는 협회의 꼰대 이사들을 위해 떡고물 하나 챙겨 넣은 느낌인데... 온 예산을 짜내어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판인데, 외양간을 시찰할 마름이나 지주가 커피를 좋아하니, 캡슐 커피머신을 놓자.. 이런 발상 같이 들린다. 커피머신이 필요하면 별도사업으로 추진하면 될 것. 더 심한 비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7대 과제 추진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으니, 이쯤에서 줄인다.
4. 유망 선수‧지도자 육성 해외연수 프로젝트
꼭 필요한 프로젝트이고, 효과도 기대되지만, 솔직히 지도자 육성 프로젝트는 별도 기대감이 없다.
지금의 국가대표팀 몰락이 지도자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라이트팬이 보기에도 프로감독 자질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도 가끔 있지만, 그래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미 남자부에 2명, 여자부에 1명. 외국인 프로 감독이 있다. 코치진까지 따지면 한국배구는 전혀 외국인에게 폐쇄적이지 않은 것.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들에게 해외경험이 큰 발전을 이뤄줄 한 조각 같지는 않다. 선수들이 필요하다면, 뛰어난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하고, 국내지도자들과 경쟁시키는 것이 오히려 순리에 맞고, 발전적이다.
선수들의 해외연수 프로젝트는 훌륭한 아이디어이고 반드시 필요하지만, 쉽게 실현될 것 같지는 않다. 구단 입장에서는 유망주나 에이스를 일정기간 임대시키거나 이적시켜야 하는데... 이는 우승지상주의 KOVO에서 엄청난 타격이다. 그렇다라면, 송준호 선수처럼 국내에서 기회를 받지 못하는 선수여야 구단에서 동의를 해줄 텐데... 물론 송준호 선수 해외진출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러한 프로젝트가 연맹 차원에서 추진된다고 해서, 국대 경쟁력이 강화될 것 같지는 않다.
5. AI 기반 비디오판독 시스템 운영 기술 개발
좋은 아이디어다. 열심히 하시라.
6. 사용구 교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스타 공인구가 드디어 KOVO 대회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세계대회에서 공인구로 쓰이는 미카사구로 사용구를 전면 교체하는 것.
한국기업 신신상사에서 생산하는 고품질 배구공 '스타'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국가대표팀에서 선수들이 불편함을 호소한다면,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 연 매출 300억 원에 빛나는 신신상사 입장에서는 너무나 아쉬운 일이겠지만, 더욱 고품질의 공을 만들거나, 매출을 다변화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암튼 이제 국대선수들에게 핑계는 안 통한다. 미카사 적응훈련도 필요 없다. 하나의 핑곗거리가 줄었으니, 하나 더 보여주길 기대한다.
7. 통합 플랫폼 시스템 구축 및 운영
좋은 아이디어다. 열심히 하시라.
마찬가지로 언젠가 해야 하는데, 돈 들어가고 손 많이 가니 쉽게 추진 못했던 사업을 슬쩍 끼워 넣어... 꼰대 이사회를 쉽게 통과해 보려는 듯한데... 이 정도 사업은 당연히 필연적이니... 국대경쟁력과 연관성 따질 이유가 없다. 열심히 하시라..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프로젝트들... 하지만, 역시나 꼭 해야 하지만 프로구단과 원로 배구인들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사업은 빠져있다.
첫 번째로 2군 운영... 진정 선수 저변을 넓히고 싶다면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연맹 돈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회원사 구단 심기를 건드려야 하니... 거기에 돈도 더 써야 하니.. 쉽지 않겠지. 2군으로 뽑을 선수도 없다는 이야기도 귀담아들을 건 아니고.. 하지만, 그래서 언제까지 안 할 건가? 일부 감독들이 자발적으로 체이서매치까지 하는 현실을 보면서도... 실업배구에서 온 선수가 당장 주전으로 뛰는 현실을 보면서도...
두 번째로 귀화선수 영입... 대부분 배구인들은 반대할 것이다. 당장 우리 유소년 선수 뛸 자리를 죽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남자농구 라건아 선수는 이미 여러 센터들 자리를 빼앗았다. 국대센터 라건아 선수가 없었다면??? 최근 몇 년간 한국 남농은 아시아에서 5~6권도 위험했을 것이다...
KOVO컵도 성황리에 끝났고, 곧 새 시즌이 시작된다.
다가오는 새 시즌, 여제의 라스트 댄스가 될지, 또 다른 언더독의 업셋이 있을지, 기대되는 건 다른 시즌과 다르지 않다.
곧 시즌이 시작되어, 국대 연이은 대참사가 배구팬 관심사에서 멀어지더라도, 위 7대 추진과제가 공염불이 되지 않길 빈다. 그리고 더하여 제발, 2군 운영과 귀화선수 영입이 긍정적으로 검토되길 바란다. 지금은 회원사에게 돈 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핑계될 때도 아니고, 한국선수들 자리보전을 걱정할 때도 아니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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