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설립자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tius de Loyola) - 역사 속의 예수회 (2)

마셜 2024. 5. 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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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이미지 출처: 예수회 한국관구)

 

(출처: 예수회 한국관구)

 

 예수회 건립에는 흔히 종교개혁(혹은 종교분열)이라 불리우는 시대적 배경과 이냐시오 데 로욜라 개인의 카리스마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전쟁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참전하였지만 심한 부상을 입게 되었고, 그 후 부상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1522년 31살 나이로 영적 체험을 하게 된 결과 회심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더 잘 봉사하기 위한 학문적 지식의 필요성을 느꼈고, 영신수련과 인문학 학습을 병행한 결과, 다른 사람에게도 영적 도움을 주었다.

 

 1534년 파리에서 동료들과 함께 가난과 정결의 첫 서원을 하고, 153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 해 동료들과 교황에게 봉사하기 위해 로마로 가던 중 자신이 이끄는 작은 그룹의 이름을 예수회로 명명했고, 1540년 수도회 설립 인가를 받았다.

(위 이미지는 교황으로부터 수도회 설립 인가를 받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예수회 한국관구 홈페이지에서 이러한 로욜라의 발자취를 시대순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예수회 건립 때부터 교황의 지시에 따르기 위해 기동성과 유용성을 가진 준비된 마음으로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것을 약속하였다. 예수회 사제의 활동은 ① 다양한 복음적 임무 ② 성사집행 ③ 자선사업 ④ 교육사업, 총 네 분야로 체계화되었고, 특히 사제로서 교사로서 구분 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설교를 할 수 있도록 교황청으로부터 특별 허락을 받았고, 1556년에 이냐시오가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1,000명의 회원이 활동하며 4대륙으로 선교사를 파견할 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이는 불과 16년만에 이루어진 발전으로, 활동 체계화라는 질적 발전과 회원 수 증가라는 양적 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측면에서 더욱 높이 평가해야 하겠다. 

 

*참고문헌 

- 김혜경,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역사와 의미』, 2012, 서강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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