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별로 기대되지 않던 제작비 200억원 대작 - 비공식작전(2023, 김성훈 감독)

마셜 2024. 6. 10.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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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수의 모든 것, 택시, 출처: 네이버 영화)

 

기대가 작으면 만족도는 높은 법

 

 그런 날이 있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지만 하기 싫은 날, OTT를 켰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클릭하지 않았던 영화들만 계속 추천되는 그런 날. 아마도 정말 쌓여있는 일이 싫었던 모양이다. 평소에는 손이 가지 않았던 OTT 추천영화까지 클릭한 걸 보면 말이다. 이런 연유로 늦은 밤에 클릭한 비공식작전은 정말 기대가 작았고,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영화는 버릴 것 없이, 잔잔하게 재미있었다. 두 주연의 연기력도 좋았고, 소재도 나쁘지 않았고, 이제는 정말 옛날이 되어버린, 전 국민이 올림픽 유치에 국운이 걸려있다 믿었던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던 것도 좋았다. 아는 게 없기에 리얼하다 평가할 수 없지만, 그 시절 외교관 일상의 위험과 책임감을 보여준 것도 일상지식이 +1 된 느낌이었다.  

 

(영화를 먹여살린 두 배우의 열연, 출처: 네이버 영화)

제법 괜찮은 캐스팅 하정우 & 주지훈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무기는 두 주연 하정우와 주지훈이다. 둘 다 출중한 연기력으로 너무나 시작부터 끝까지 뻔한 이 영화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많은 흥행작을 만들어낸 하정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semi-사기꾼으로 분한 주지훈은 그야말로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주는데, 잘생긴 마스크와 천상 날라리 같은 헤어스타일이 정말 누가 봐도 유능한(?) 사기꾼 같아 보일 정도로 캐릭터에 녹아든 모습이었다.

 엄청난 자동차 추격전(도주극) 끝에 겨우겨우 살아남아서, 자신은 한국으로 갈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은 후, 지친 표정으로 애써 실망한 기색을 지우며, 박살 난 자신의 택시에서 이런저런 서류와 물품을 수습해보려 하는 처연한 모습이정말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는 밀입국한 약소국 국민 같아 보였다. 그리고 사기꾼이지만 그래도 정이 남아 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너무나 잘 그려냈기에, 주지훈의 연기력을 그야말로 다시 보게 되었다. 더하여 이어진 장면도 대단했다. 그 처연한 뒷모습에 곧 이민준(하정우 분)은 곧 들통날 거짓말을 하자, 생각해 보면 뻔히 거짓말일 그 반가운 소식에 기뻐서 방방 뛰는 모습은 그야말로 포기했던 고국행이 열린 고단한 밀입국자 같았다.

 

(영화 내내 설쳐대는 그 시절 안기부장, 출처: 네이버영화)

그 시절 한국, 그리고 그 시절 한국보다 더 엉망진창인 레바논

 

 영화 모가디슈와 비슷한 정서가 깔려있는데, 외국 배경으로 그 시절 한국을 추억하려면, 한국인이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만한 환경이 제격이다. 그래서 한국보다 더 혼란하고, 한국보다 더 잘 살지도 않는 레바논이 무대로 적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식 오리엔탈리즘인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려다가… 그냥 접어둔다. 애초에 가벼운 팝콘무비인데, 그럴듯하면 됐지.. 심각하게 사회과학적 비판의식을 들이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애초에 부정적인 반향을 걱정할 정도의 흥행과도 거리가 멀었으니 더욱 그렇다. 그저 한국보다 더 엉망진창인 나라에서 제대로 한국정부 조력을 받지 못하며 고생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정도로 생각하려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의 이민준 사무관은 정부 조력을 제대로 받은 걸까아닐까해피엔딩인 점과 당시 시대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형편없다고 보기도 어렵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편하게 접어두더라도 우리보다 딱히 잘 살지 않고, 훨씬 더 혼란한 레바논이 무대이기에 그래서 열등감도 자괴감도 없이 집중할 수 있는 것도 분명 사실은 사실이다.

 

뻔하지만, 한국영화에 빠질 수 없는 ‘가족’

 

 한국영화에서는 가족이라는 요소가 빠지면 안 된다. 이 영화에서 오재석 서기관 가족은 그다지 강조되지 않지만, 대신 정말 대가족인 것처럼 끈끈함을 과시하는 외교부 공무원들이 있다. 우유부단 일을 제대로 안 하는 비서실장과 이리저리 활개 치며 일을 방해하는 안기부장과 달리 외교부 장관은 부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길바닥에서 안기부장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비서실장에게 대드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해결이 안 되자 외교관들이 3개월치 급여 포기각서를 내밀며 위기에 처한 두 동료를 구해달라고 청원한다. 그야말로 가족 같은 동료애를 보여주며 뻔하지만, 관객들에게 왜 둘을 그렇게 힘들게 구해야 하는지 이유를 잘 설명한다. 

 레바논 현지에서 난리통을 겪으며,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두 외교관과 사기꾼은 어느새 가족처럼 형제처럼 서로를 걱정한다. 외교관으로서 자국민 보호를 할 수 있었서 다행이라는 이민준 사무관의 갑작스러운 한 마디는 '형 이건 아니지' 하며 분통을 터트리는 김판수의 외침과 조응하여, 뭔가 가족애가 풍겨 나는 듯한 버디무비를 완성한다. 

 뻔하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등장시키는 것보다는 조금은 나은 이 결말이 난 꽤 마음에 들었고, 억지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한국영화보다는 그래도 관객을 잡아끄는 매력이 느껴졌다. 어차피 음식에서 단 맛을 아예 뺄 수 없다면, 설탕보다는 꿀이나 올리고당이 낫지 않겠는가. 타지에서 목숨 걸고 고생한 둘의 우정 혹은 전우애가 가족애보다는 좀 더 신선했다. 

 

 흥행에서는 완전히 망했고, OTT에서도 그다지 화제에 오르지 못한, 제작비 200억의 망작으로 기억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1980년대 후반 한국 외교관이 겪었던 실화를 들여다볼 수도 있고, 주지훈의 느물 느물한 사기꾼 연기도 볼 수 있으며, 멋진 레바논 풍경까지 감상할 수 있으니, 내게는 꽤 괜찮은 영화였다. 혹시 OTT에서 볼 계획이 있으시다면, 조금만 더 기대를 내려놓으시길.. 그럼 더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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