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37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99, 밀란 쿤데라)

마셜 2024. 6. 5. 23:56
728x90
반응형

(출처: 교보문고)

 

 오랜만에 모였던 독서모임의 책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모임이 시작되자마자, 책을 추천한 멤버는 정식으로 사과했다. 책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죄송하다는 사과에 다른 멤버들은 웃음 지으며 각자 인사로 오랜만에 책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번째 질문, 이 책은 소설인가? 철학인가?

 

 멤버 중 둘은 소설이라고 답했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줄거리를 구성하고 있으며, 결말의 반전까지도 보여주는 이 책은 소설이 아니냐고 답했고, 나 또한 그랬다. 

 한 명은 철학이라고 답했다. 존재의 가벼움, 키치, 영원회귀 이런 개념을 풀어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주인공들의 삶을 보여준 것이 아니냐는 의견에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한 명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 기묘하다면 기묘한 프랑스인이자 체코인이 쓴 이야기는 장르불명이라고 해도 곰곰이 생각해 볼 여지는 있어 보였다. 그만큼 여러 면에서 달리 볼만하고 내용도 풍부하고 쉽지만은 않은 그런 이야기이다. 

 

 

 두 번째 질문, 주인공은 누구인가?

 

 한 멤버는 가끔 등장해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나'라는 존재가 주인공이 아니냐라는 주장을 했다.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나는 등장인물 넷(토마시, 테레사, 프란츠, 사비나)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멤버는 비극적 삶을 마친 나머지 셋과 달리 탈유럽하여 미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꾸린 사비나가 최후의 승자이자 주인공이 아니냐라고 답해서 멤버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집중해야 하는 초반부

 

 책의 챕터 1~2, 그리고 3을 대단히 집중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책 구성이 마치 두괄식 같아서, 세 챕터에 걸쳐서 이야기에 깔린 정서를 이루는 철학적 개념을 풀어내는데, 그 후에 이어지는 주인공들의 삶이 마치 이 토대 위에서 설명되는 예시 같은 느낌이다. 다소 시간에 쫓긴 독서를 한 탓에 그 함의를 다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풀어내지는 못하겠지만, 작가의 배려인지 자신감인지 모를 이 장치는 다시 읽는 다면 1~3만 반복해서 읽어봐도 내용이 훨씬 더 이해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대단히 사실적인 '프라하의 봄' 묘사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겪어본 증언이 가치가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모든 증언이 재미있고 대중들이 다가가기 쉬운 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시대가 바뀌어도 인문학이 여전히 필요한 것인데, '프라하의 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을 작가는 당시 갑작스럽게 나타난 공산주의 소련의 현실적 압박과 그로 인한 집요함과 공포감을 너무나 잘 묘사했다. 

 터미네이터처럼 토마시를 쫓는 경찰과 1:1대화를 통해 집요하게 몰아가는 최조 스킬, 전향 압박, 그리고 아들과의 원치 않았던 갈등이... 이제 먼 과거를 독자들 앞에 현실감 있게 되살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왜 이 작품이 뛰어난 소설인지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고, 체코인들에게 아니 유럽인들에게 '프라하의 봄'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범죄적 정치 체제는 범죄자가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발견했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이 만든 것이다. 

 

 책 291p에 나온 한 구절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공산주의를 비꼬거나, 이상주의자들을 비판할 때 많은 비슷한 뉘앙스의 표현을 접했었는데, 아마도 그 원전은 이 작품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원인은 광신자들이라는 단순한 정리 또한 위험한 것이고, 우리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타인화하며 외면하는 비겁함도 보이지만, 그래도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짧게 표현한 명언으로는 부족함이 없다. 

 

 

 이 책을 두 번 읽고, '농담'까지 읽었다는 멤버도 다른 밀란 쿤데라의 책을 적극적으로 권하지는 않았다. 두껍고 철학적인 이야기가 많은 책이지만, 그래도 어떤 통속 드라마보다도 좌충우돌 연애사가 이어지기에 심심한 책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주 짧은 문장으로 그리고 컴팩트한 챕터 구성으로, 빠르게 읽어도 재미있는 그런 좋은 소설이었다. 위대한 명작을 두고 '좋은 소설이었다'라는 표현 정도는 냉소가 아니냐 볼 수도 있겠지만, 시대를 뛰어넘어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그리는 동시에 철학 개념을 차용해서 녹여냈지만, 그럼에도 재미있는 그런 소설이기에 '좋은' 소설이라고 평한 것이라면, 충분한 변명이지 않을까. 사실 재미있는 소설을 추천할 때는 구차하고도 현학적인 추천사가 필요 없는 법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