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원작을 넘어서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 두근두근 내 인생(2014, 이재용 감독)

마셜 2024. 6. 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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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영화)

 

이제는 오래된 영화 - 두근두근 내 인생

 

 벌써 개봉한 지 10년이 지났다. 주연이었던 조성목은 대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었고, 또 다른 주연 강동원/송혜교는 이제 부모 역할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물론 둘 다 여전히 멜로가 잘 어울리는 뛰어난 외모를 유지하고 있지만..) 흥행에 실패했고, 영화가 원체 잔잔하기에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지 못하지만, 긴 시간이 지났어도 내게 큰 의미가 있으니, 바로 원작이 김애란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최애 소설가 - 김애란

 

 엄청나게 다독을 하는 편은 아니고, 소설을 손에 달고 살지도 않지만, 그래도 몇몇 소설가 작품은 출간되길 기다리며 섭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중 가장 팬이라 할 수 있는 소설가를 꼽으라면 단연 김애란이다. 20대 초반 우연히 읽었던 단편소설에서 그야말로 놀라운 글솜씨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던 김애란은 그 후 여러 작품에서도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고, 독자들이 많이 기다렸던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은 오랜 기대를 넘어서는 대단한 작품이었다.  

 36쇄까지 찍어낸 소설, 굳이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영화화를 위한 가능성 정도는 있다고 충분히 있다고 봐야 한다. 소재 자체도 특이한 '조로증'이고, 그 병으로 삶을 마감하는 아이와 부모의 삶을 유쾌하지만 때로는 진중하게 그려냈기에 아직도 정말 재미있는, 그리고 좋은 소설로 기억하고 있다. 

 늘 김애란 책은 사서 읽곤 했는데, 다시 책장을 훑어보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책장을 넘겨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원작에 많이 기대고 있는 잔잔한 영화를 보니, 왜 김애란이 대단한 작가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제법 가족 같은 세 사람, 출처:네이버 영화)

 

송혜교, 그리고 강동원

 

 조로증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놀린 불량배들 때문에 격분한 최미라 역의 송혜교, 그리고 그 뒤에 아들을 업은 한대수 역의 강동원, 그리고 아름이 역의 조성목. 제법 가족 같이 잘 어울리는 이 세 사람은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며, 혹은 눈물짓게 만들면서 영화를 잘 이끌어간다. 철없는 나이 17살에 애를 만들었어도, 부모 노릇으로부터 끝까지 도망치지 않은 두 사람은 그 캐릭터 자체로도 무게감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캐릭터 매력 덕분에 당대 인기스타인 강동원, 송혜교가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송혜교가 다소 어색한 사투리 연기로 아쉬움을 주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삶에 지친, 두 어린 아빠 엄마 역할을 잘 표현했고, 매사 진지한 아들 아름이와도 묘하게 잘 어울린다. 

 그저 도복이 좋았고 막연하게 국가대표를 꿈꿨던 고딩 태권도 선수 한대수는 그야말로 표정부터 행동까지 철없지만 넘치는 혈기로 가족을 챙기는 순딩이 아빠 캐릭터로 배우 강동원에 의해서 훌륭하게 묘사된다. 깜짝 등장했던 소녀시대 뒤에서 흘깃흘깃 쳐다보며 미소를 짓고, 아들이 금식인지도 모르고 치킨을 사 와서, 아쉬운 마음에 그 아들 앞에서 닭다리를 뜯어대는 아빠는 비록 철딱서니가 없어도.. 정말 아빠구나 라는 마음이 절로 들게 만든다. 

 이에 비해 아무리 애를 썼어도 17살에 애 낳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애엄마 역할을 하기에는 조금은 어색했던 송혜교이지만, 적어도 이 장면에서만큼은 극 중 캐릭터 'X발공주'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씩 웃으며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과 그런 아내를 말려야한다며 어쩔 줄 모르는 남편 모습에 진짜 어디엔가 저런 가족이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외모에 가려져 있지만 출중한 연기력을 가진 두 주연배우의 실력을 엿볼 수 있는 한 장면이다. 

 

(아마도 송혜교에게 큰 도전이었을 최미라 역할, 출처: 네이버 영화)

 

(아름의 유일한 친구, 짱가 할아버지, 출처: 네이버 영화)

 

 

유일한 친구, 짱가 할아버지, 그리고 배우 백일섭

 학교에 갈 수 없는 중환자 아름이에게 친구는 같은 동네 사는 짱가 할아버지 뿐이다. 철없어 보이면서도 늘 아름이를 들여다보고, 아름이를 위해 (물론 사심도 섞였지만) 방송 인터뷰도 하고, 병문안도 오고, 어려운 부탁도 들어주는 그는 유일한 친구이다. 아직은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개봉 당시에도 백일섭은 나이가 많았는데, 영화에서도 치매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노인 역할을 정말 실생활처럼 리얼하게 보여줬다. 철없는 아이 같은 말을 내뱉다가도 아버지 밥시간을 챙기러 귀가하고, 자기가 온전치 못하게 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를 걱정하는 모습은 분명 '어른'이기에, 아직은 부모 노릇을 힘겨워하는 아빠 엄마보다는 아름이가 속을 터놓기에는 더 좋았으리라. 

 매번 회장님, 시아버지, 친정아버지 역할만 하면서 감초 역할로만 자주 보이던 노년 배우를 이런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날 수 있는 건 행운이다. 어찌보면 이 연배 배우가 가장 잘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를 잘 입체화해내고, 백일섭이라는 좋은 배우를 캐스팅한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낸다. 

 

(한 푼이 아쉬운 대수에게 알바 자리를 제공하는 착한 후배.. 어디서 봤더라? 출처: 네이버 영화)

 

(유명한 고려돌 한 장면, 출처: 배우 한승현 인스타그램)

 

 

반가운 얼굴, 배우 한승현

 

 한 푼이 아쉬워 험한 알바도 마다하지 않는 대수에게 경호 일자리를 소개하며 고마워하는 후배, 깍듯이 형님이라 부르며 감사를 표시하고, 소녀시대에게도 형님이라 소개하는 이 푸근한 인상의 경호업계 사장님... 어디서 많이 봤더라 계속 머리에서 맴돌았는데, 아!! 고려거란전쟁에서 꼭 무장 같은 풍채로 최측근 문관으로 끝까지 현종과 뜻을 같이 한 채충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역할이지만, 뭔가 관록과 여유가 느껴지는 가운데, 발음도 참 정확하네..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작은 조연으로 자기 몫을 다 했다. 무엇보다 가장 영화에서 웃음 포인트인 경호업무 중 소녀시대를 흘깃흘깃 쳐다보는 대수 표정을 만들어내는 장본인이기에, 무겁게만 치달을 수 있는 영화를 그나마 웃으며 보게 해 준 나름 중요한 캐릭터다. 알고 보니 많이 닮았지만, 양희경 아들이라는 걸 전혀 몰랐었고, 밝게 웃는 고려돌 댄스 동영상을 보니, 어머니의 연기력과 이모의 음악적 감각까지 물려받은 듯해서, 앞으로 다른 작품에서 더 만났으면 하는 그런 배우였다. 

 

 결국 원작을 넘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게 오래 기억될 영화

 

 어질어질한 숫자의 제작비가 쏟아지는 요즘 한국영화에 비하면 아담해보이는 손익분기점조차도 넘지 못하고,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주연 배우 송혜교의 탈세 의혹이 불거지며 악재에 마주쳤고, 이야기의 힘으로 승부하는 이 잔잔한 영화는 흥행작으로 남기에는 너무 조용했고, 담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김애란이라는 이야기꾼의 소설이 영화화되었기에, 그리고 그 가능성을 알아보고 대스타인 강동원, 송혜교가 주연을 맡았기에 내게는 의미 있는 영화다. 노년 백일섭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폭넓게 보여준 것도 기억에 남는다. 조금은 지루하다는 평에 외면한 분들이 계시다면, 뭘 해도 예쁜 송혜교와 철없는 역할도 너무나 잘 소화하는 강동원, 그리고 그냥 일상 모습 같은 백일섭을 보는 재미로 한 번 OTT에서 클릭해 보시길 바란다. 

 아 그리고 소설 원작에 꼭 도전해보시길... 영화도 나쁘지 않지만, 소설가 김애란이 왜 주목받는지, 왜 이 소설이 36쇄까지 나왔는지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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