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해오늘! - 미국과 한국의 일상

[미국 일상 08] 90년전으로의 시간여행! - 레돈도비치 도서관 [엘에이 지역 도서관 탐방기 03-2]

꿈꾸는 차고 2023. 5. 2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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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상 08] 90년전으로의 시간여행! - 레돈도비치 도서관 [엘에이 지역 도서관 탐방기 03-2]
 

 
*1편에서 내용이 이어집니다. 
 
대중매체의 역사 속에서 "라이프"(LIFE) 시사잡지는 글보다 사진을 더 비중있게 다루는 "포토저널리즘"의 선구자 역할을 개척해왔다고 합니다. 때로는 중요한 사진 한 장이 전달할 수 있는 가치가, 수십쪽의 기사보다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어떤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죠.
 
이 잡지가 처음으로 발간되었다는 "1936년"의 시기로 한번 되돌아가 봅니다...1930년대 중후반의 세계는 과연 어떠했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그 당시가 오늘날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던...전세계적으로 매우 격동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날마다 각종 드라마틱한 사건들과 분쟁들이 끊이지 않은 탓에, 보도 사진으로 사용할 만한 주제들이 아주 넘쳐났었을 것 같아요.   
 
미국발 대공황이 1920년대 말부터 전세계적으로 퍼져서 이 시기 각국의 경제를 파탄시켰고, 이에 이성을 잃어버린 유럽 열강들은 전체주의의 소용돌이로 휘말려들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스페인에서는 1936년부터 3년간 극심한 내전이 벌어져서 국토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감정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주변국들의 이해에 따라 이념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는 바람에 내전 기간 중 무려 50여만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2차세계대전의 예고편"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지요.
 
한편 1936년 초반에 독일의 히틀러는 라인란트 비무장지대에 독일군들을 주둔시켜 다시금 세계대전의 전운을 감돌게 하였고 같은 해 8월에는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하여 독일의 재건을 만방에 알립니다. 일본 역시 만주국을 근거지 삼아 본격적인 중일전쟁을 일으킬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가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미국은 강력한 뉴딜정책을 시행하면서 경제적인 불황을 극복하고 조금씩 경기가 살아나고 있었던 시기라, 다른 나라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객관적인 관찰자 입장에서 그들 나름의 저널리즘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상황 속에서 라이프지는 당시의 주요 매체인 신문과 라디오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즉 부족했던 부분들을 현장감 있게 채워주었던 것같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흑백 텔레비젼 방송은 1939년에 시작되었지만 상당 기간동안 걸음마 단계였던 탓에 대중적인 보급은 늦었다고 하죠. 그래서 세계대전이 모두 끝이 나고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텔레비젼 방송이 발전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라이프지가 전세계의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전달하는 매체로서 충실한 기능을 해주었을 것 같습니다. 
 
 
 

라이프지의 대표적 표지 모음 (출처 : puzzlewarehouse.com)

 
 
도서관 책꽂이에 있는 1936년도 라이프지 모음집을 꺼내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라이프지를 보니, 라이프지가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1936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1939년, 2차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직전의 미국은 세계적인 대공황로 인해 여전히 큰 고통을 받고 있었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그래도 착실하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었고, 1920년대 전반의 대호황기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조금씩 경기가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의 라이프지 내용 중에 무엇보다 제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 시대의 다채로운 상품 광고들이었습니다. 일상적인 도구나 생활 필수품을 제조하는 회사들도 그리고 브랜드도 정말 무수히 많았고, 한편으로 사치품에 해당하는 것들도 많이 눈에 띄더군요.
 
그리고 당시의 광고 문구나 디자인들도 정말 그럴싸해서... 약간의 시대적 차이를 감안한다고 치더라도 전체적인 구성면에서는 오늘날의 방식과 정말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좀 냉정해보이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요즘의 광고들보다 과거의 광고들이 약간 더 인간적인 맛이랄까 따듯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 같아 저는 좋았습니다.
 
아래 왼쪽의 만년필 광고를 보니 이전에 1980-90년대 한국의 졸업 선물로 인기가 많았던 파커 볼펜이 기억나는군요. 볼펜똥이 없어서 중요한 필기할 때만 아껴서 썼던 추억이 있습니다. ㅎㅎ 그 옆의 치약 광고도 인상적이었어요. 냅다 치약 성분과 효능을 홍보하며 우리 치약을 써달라고 떼쓰지 않고, 무언가 논리적인 감성으로 호소하네요. 광고의 서두에는 "바쁜" 치과 의사들을 도와줄 수 있는 5가지 꿀팁을 소개하는데, 열심히 일하는 바쁜 의사들이 곤경에 처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여러분들은 미리 미리 치아와 잇몸 건강을 잘 챙겨라~ 그렇게 조언을 해주고 나서 본격적으로 치약의 효능에 대해 광고하는 나름의 전략을 보여주네요. 
 
 

 
 
몇 권의 라이프지 모음집을 훑어보며 믾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오래된 잡지 한번 보았다고 해서 과거의 전부를 파악할 순 없겠지만 20세기 초반의 사람들의 갖가지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접하다 보니, 당시의 사람들이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습니다. 그들에게는 단지 오늘날과 같은 최첨단 기술이 없었다뿐이지 그 당시 기준의 능력과 영역 안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제품을 만들어 내고, 소비하면서, 그리고 주어진 삶을 즐기려 노력했더군요. 과거의 사람들은 없으면 없는대로 한계에 순응하고 당연히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았을까... 하는 저의 예상을 완벽하게 빗나가게 해주었습니다. 
 
라이프지를 뒤적여 볼수록 당시 사람들의 삶들이 투영된 사진들과 기사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좀처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래를 보면 갖가지 상품 광고들이 정말 다채롭고 표현도 다양합니다. 특히 손목시계 광고는 사진이며 활자들이 오늘날의 광고라고 해도 믿을만큼 세련되었네요. 그 와중에 아래 왼쪽 페이지 중간에는 누군가가 1900년도 남아프리카 보어전쟁에서 젊은 시절의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수상을 만났을 때를 회상하는 글이 들어있습니다. 군복 차림의 젊은 처칠이 인상적이네요. 
 
 

 
 
한편 1940년대 광고들은 본격적으로 전쟁의 영향을 받고 있음이 눈에 많이 띄더군요. 아래 왼쪽의 토마토쥬스 캔 광고를 보면 깨알같이 우선 토마토쥬스의 효능과 특별한 제조 방식을 홍보하면서도... 전쟁의 시대적인 상황을 홍보에 엮고 있습니다. "Uncle Sam이 우리 제품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우리 제품을 군수품으로 국가에 납품해야하기 때문에) 평상시 수준으로 고객들께 우리 제품을 풍부하게 제공하기 어려우니, 어디라도 당신의 눈에 우리 제품이 발견되면 얼른 채가세요~" 라는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오른쪽 페이지 광고는 전시 상황에서 군인들을 치료하느라 동네마다 의료진과 간호사들이 부족한 당시의 상황을 언급하면서 이럴수록 자기 브랜드의 좋은 신발을 신고서 건강을 잘 챙기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전시 상황에서  정부의 방침은 군납이 우선이어서 민간인에게는 신발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 우선 지금 신발을 잘 닦고 보관해서 건강하게 오래 신으라고 조언하는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아예 군인을 모델로 등장시키는 광고도 있었습니다. 두피 건조증 방지약 광고에는 낙하산 병사가 등장하는데 자신들의 약을 쓰면 좋지 않은 전장의 환경때문에 얻어진 두피 건조증을 방지하고 추가적으로 좋은 스타일의 헤어스타일도 유지할 수 있다고 광고합니다. 그리고 이쯤부터 대부분의 광고들에 "미국 전쟁 채권"을 구입하여 국가에 힘을 보태자는 대국민 캠페인이 첨가되기 시작합니다. 
 
 

 
 
2010년 폐지되어 지금은 없어진 비운의 미국 자동차 브랜드 폰티악(Pontiac)의 위세도 1940년대에는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시 상황에 맞추어 차동차 생산 라인을 무기 제작용으로 변경하고 열심히 전투기, 어뢰, 대포, 탱크, 군용트럭들을 생산한 모양입니다. 정부로부터 무기 생산 요청을 받았을 때 자신들은 그것을 기쁘게 수용했다는 내용을 광고에 담았네요. 그리고 우측 하단에 민간인들도 전쟁 채권과 우표를 사서 정부를 돕자는 슬로건이 보입니다.   
 
 

 
 
코카콜라는 1944년 당시에도 광고가 정말 세련되고 멋지네요! 역시 글로벌 음료 회사답습니다. 광고 내용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과도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금방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인데 그 말이 정말 틀리지 않습니다. 이미 코카콜라는 당시에 전세계 35여 나라에 진출해서 현지 생산을 했다고 하니까요, 오래 전부터 세계 각국의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온 셈입니다. 코카콜라 역시 미군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고 전시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코카콜라를 많이 애용할 수록 전장의 많은 군인들에게도 좋은 혜택이 돌아가고, 그리고 그들이 코카콜라를 마시며 고향을 기억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본 것 중에 제일 인상적이었던 광고는 아래 왼쪽이었던 것 같아요. 그냥 보면 무슨 코트나 가방 광고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니 뭔가 감동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숙박이 가능한 기차표를 예약할 수 있는 회사의 광고인 데 그들은 호소하기를, 고객 여러분들 중 만약에 기차표를 샀다가 이용을 못하게 되었다면 절대 "노쇼" (no show)하지 말고 즉각 회사에 연락해서 티켓을 정식으로 취소해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래야 아래의 그림에서 나오는 바쁜 기술자들이 제때에 미국 전역에 있는 무기 관련 공장에 출장을 갈 수 있고, 또한 군대 수송도 원활하게 잘 할 수 있어서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한마음으로 전쟁을 지지하고 국민적으로 단합할 수 있도록 광고 내용을 만들었네요. 
 
그런데 전시 동원 체제에서 멍멍이들은 예외였나봐요.ㅎㅎ 반대편 페이지에는 다양한 품종들의 반려견들과 주인들이 함께하는 사진들을 보여주는데 당시 도시인들의 자연스러운 생활상을 볼 수 있어서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오히려 시골의 개들보다 도시에 사는 개들이 수명도 길고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는 당시의 조사도 덧붙였네요. 예나 지금이나 미국인들에게 반려동물은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전쟁에 관련된 광고들과 일반적인 광고들이 혼재되어 있는 당시의 라이프지들을 뒤적여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미국은 하와이 이외의 본토가 공격을 받진 않았지만 가족이나 친척의 일부를 전장에 내보낸 뒤 남겨진 가족들의 삶의 무게가 무척 고단하고... 컸을 것 같아요. 2차세계대전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50만명의 수준이던 미군 병력은 1945년 종전 직전에는 1200만명의 거대 병력으로 급격히 성장했다고 하니... 1945년 경의 미국인구가 1억 4천만명이라고 한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거의 미국 가정 중에 두 집 중 한 집은 가족을 군대에 보낸 상황이었겠지요. 잡지의 곳곳에서 비춰진 일반인들의 사진 속에서...  비록 당시가 전쟁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떻게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안간힘이 느껴졌고...  하루 속히 평화가 찾아와서 더욱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평범한 시민들의 소망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밑의 광고들은 무언가 강하게 대비되는 느낌이 너무 강렬했습니다. 왼쪽에는 반려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오른쪽에는 같은 시간에 전선의 최전방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했던 군인의 모습이 대비되서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우측 그림은 B-24 전투 비행기의 밑에 달린 "볼포탑" (ball turret)의 모습이라고 해요.
 
볼포탑은 겨우 군인 한명이 들어갈 수 있는 매우 좁은 원통이었다고 합니다. 그 속에 기관총 사수가 들어앉아 있는데 자리가 너무 작은 나머지 다리를 머리 높이까지 들어올리는 경주용 차량 탑승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불편한 자세로 전투를 하려니 얼마나 더 힘이 들었을까요? 레이더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이 조그만 공간 안에서 기관총 사수는  전투 비행기 밑으로 공격해오는 적기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싸워야만 했다고 합니다. 먼저 발견하지 못하면 그대로 적기에게 노출되는 것이지요.
 
외형상 비행기 밑으로 돌출되어 있어서, 어찌보면 공중전 중에 가장 위험한 역할을 수행하는 군인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밑의 광고글들을 읽어보니 그 절절함이 하나의 안타까운 절규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에서는 보직을 자신이 선택하는데 한계가 있지요. 많고 많은 보직중에 이 볼포탑 기관총 사수로 낙점된 군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강심장이 아니라면 제대로 눈을 뜨고 있기도 어려운 높은 고도에서 불편한 자세로 장시간 적군들과 맞서 싸워야 했던 군인들의 심정을... 제대로 표현한 글인 것 같습니다. 적기에게 총격을 당해도 바로 구조받기에도 어려운 위치입니다. 이런 상황을 직접 당해보지 않고서는 그들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광고에서는 이러한 극한 상황을 끝끝내 이겨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전직 용사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내용도 잊지 않았습니다. 글의 끄트머리에 살짝 자신의 회사는 이러한 용사들과 늘 함께 한다는 몇 마디를 덧붙였구요. 
 
 

볼 포탑의 구조 (출처 : reddit)

 
*3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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