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해오늘! - 미국과 한국의 일상

[미국 일상 06] 백년이 넘은 거리에서 장어소바를 영접했습니다!

꿈꾸는 차고 2023. 5. 20.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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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상 06] 백년이 넘은 거리에서 장어소바를 영접했습니다!

 

오늘은 백만년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날!! 정말 오랜만의 약속이기에 저는 며칠 전부터 무척 설레었네요. 이곳 엘에이에서 지금까지 이방인으로 살아오면서... 이 세 명의 친구들은 저에게 무척 의지가 많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펜데믹이 위세를 떨치던 시절에도 이따금씩 이 친구들과 "줌 회식"을 하기도 했었어요.ㅎㅎ 뉴스가 무서운 이야기들로 도배되던 그 때에 서로 격려하며 잘 이겨냈었지요.  하지만 각자마다 삶들이 있고 또한 일상들이 무척 바쁘다보니 저 포함해서 이 4명이 완전체로 만나기는 정말 쉽지가 않네요. 그래서 이번에는 거의 3주 전부터 서로가 편한 시간으로 식사 약속을 잡았습니다.  

 

오늘의 만남 장소는 엘에이 남부 해안 도시 토랜스(Torrance)의 구시가지인 "올드 토랜스"입니다. 엘에이가 소속된 엘에이 카운티에는 무려 88개나 되는 도시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토랜스는 그중에서도 36번째로 역사가 깊은 도시로서 올해로 102주년의 생일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어쩌다가 이 "올드 토랜스"에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여기는 마치 영화 "빽투더퓨처1" 에 나오는 배경처럼 딱 20세기 초중반으로 시간이 멈춰선 느낌입니다. 그래서 오래된 건물들이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관리를 잘 해서 그런지 분위기가 을씨년스럽지 않고 뭔가 고풍스럽고 깔끔한 느낌입니다.  한국 같은 경우는 건물 연령이 20-30년만 넘어도 재건축을 고민한다던데....이곳은 30년 된 건물은 어디 명함도 못내민다고 하네요. 백년 넘는 건물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화 빽투더 퓨처의 한 장면 (출처 : digitaltrends.com)

 

 

제가 10여년전 엘에이에 온지 얼마 안되서 한 미국 가족의 초대를 받아 가본 집이 바로 100여년이 넘는 목재 주택이었는데요...주인이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수리를 해와서 그런지 건물 외관과 내부는 너무 이쁘고 멋있었으나, 건물이 기본적인 나이를 속일 수는 없더라구요. 실내를 거닐때마다 완전 삐걱거리는 마루 소리에 그리고 오래된 나무 냄새가 진동을 해서 마치 살아있는 박물관 느낌이 났었더랬습니다 ㅎㅎㅎ 

 

여러분, 재미 삼아 아래의 사진을 한번 보세요. 이곳은 올드 토랜스의 중심 거리인데 전면에 보이는 하얀색 각진 건물이 지금으로부터 110년전에는 호텔이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마차처럼 생긴 구형 자동차들과 자전거가 지나던 길...중절모를 쓰고 어딘가를 향하는  사람들이 정말 오래된 사진으로 보이시죠? 제가 그 길을 일부러 구글맵으로 찾아보았습니다.  그아래 사진이 2023년 업데이트된 구글맵인데 아니! 무려 110년의 시간차가 무색하게 무언가 느낌이 거의 비슷하게 남아있지요? 하얀건물이 ㄷㄷㄷ 거의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건너 앞의 건물도 거의 그대로고요.

 

하얀색 각진 이 건물은 지금은 호텔은 아니지만, 일층엔 전당포 그리고 윗층엔 아파트라고 합니다. 오래된 건물이라 창문이 좀 커서 안에 사는 주민들이 뭐하고 있는지 그냥 보여요 ㅎㅎ 암튼 백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이 거리에서 벌어졌을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들을 상상해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고, 일을 하고, 데이트를 하고 삶을 위해 오고갔을지.... 생각만 해도 정말 아득~~해집니다. 

 

 

1913년도 올드 토랜스 중심 거리의 동일 장소 (출처 : torranceca.gov)
2023년도 올드 토랜스 중심 거리의 동일 장소 (출처 : 구글맵)

 

 

아무튼 이 오래된 구시가지 한 귀퉁이에 아주 별나고 맛난 일본 소바집이 있다고 해서 가보았습니다. 오늘은 5월의 엘에이 답지 않게 날씨도 흐리고 약간 서늘했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제법 인파들이 보입니다.  식당에 도착해보니 이 건물도 제 생각엔 최소한 80년은 가뿐히 넘길만한 포스입니다. 아래 건물의 창문처럼 밑으로 갈수록 각이 좁아지는 건물 형식은 각종 미국 영화들을 간접 경험한 제 뇌피셜로는 아마도 1940-1950년대 유행했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식당의 이름은 "Ichimiann" 이라고 해요. 혹시 일본어 잘하시는 분들은 해석 좀 해주세요 ㅎㅎ  간판이 너무 낡아 글자를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가게의 역사를 자랑하기 위해 일부러 간판을 교체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건물은 무척 낡았지만 오로지 맛으로만 승부하겠다는 자신감 덕분인지?  구글 평점도 4.5에 리뷰글도 235개나 달렸습니다!  제가 찍은 이래 사진과 구글맵을 비교해보면 외모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네요. 그런데 어느새 초록색으로 페인트칠을 해서 이전보다 약간은 젊어보이는 것 같습니다. 

 

 

Ichimiann 식당 앞 거리 (출처 : 구글맵)

 

 

먼저 온 친구 한명과 반갑게 만나서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바로 오늘의 식당을 소개한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이곳에 가끔 온다고 하는데 맛이 정말 끝내준다고 합니다. 식당 내부는 일본 식당 특유의 일본풍 느낌은 거의 나지 않는... 그저 오래된 일반 미국 가게 같습니다. 손 흔들어주는 고양이 인형 하나 없이 일본식당이라고?? ㅎㅎ 친구와 저는 그동안 못나눈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특히 항상 유머와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라 그의 일상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말 시간이 가는 줄을 모릅니다. 대화의 중간에 잠시 창문 밖을 응시하면서 한껏 오랜만의 여유를 즐겨봅니다...저 청동 재질의 가로등은 얼마나 오래됐을까??  최소한 60여년 넘게 저기 서서 이 거리가 가장 핫했을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겠지?

 

 

 

 

곧 나머지 친구들 두명도 모두 도착하자 분위가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우리 완전체 4명이 모이니 저희 앉은 테이블이 금방 소란해집니다. 저희 네명은 각자 하는 일이 달라서, 최근 일터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돌아가며 듣는 것 만으로도 정말 재미가 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는 시간이 되자 일사천리로 메뉴가 "통일"이 됩니다. 오늘 이 식당을 소개한 친구가 "장어소바"를 시키겠다고 하자 나머지 세명은 1초도 고민없이 이구동성으로 같은 주문을 하게된 것이죠. 저를 포함해서 다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이 아저씨들 정말 어쩔꺼야?...ㅎㅎㅎ

 

친구의 이야기로는 이 장어소바는 원래 이 식당의 메뉴판에는 없는 "히든 메뉴"라고 합니다...그런데 그것을 알고 어떻게 찾았는지 제 친구 정말 대단합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만 시킬 수 있는 이 식당의 "킬러 메뉴"이기도 하다는데.... 곧 실제로 음식이 나오자마자 다들 움찔합니다 ㅎㅎ 먹음직한 비주얼에 탄성 한번!! 그리고 생각보다 조그만 사이즈에 탄식 한번!! ㅎㅎ 

 

 

 

 

그런데 그릇 안에 이 하얀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친구의 이야기로는 얌 (yam)을 갈아넣은 것이라고 합니다. 떠서 맛을 보니 별 맛이 느껴지지 않지만 친구의 이야기로는 이것을 장어와 소바와 같이 비벼서 먹을때 대박 풍미가 좋다진다고 합니다. 

 

 

 

 

얌이라는 존재가 궁금해서 바로 인터넷을 찾아보니...얌은 열대지역이 원산지인 뿌리식물로서 고구마와 외모가 상당히 흡사한데 고구마보다 전분이 100배 이상이나 많고 그리고 콩보다 단백질을 더욱 많이 함유해서 비교할 수 없이 영양가가 높다고 합니다. 그런 얌과 장어의 특별한 조합이라?? ㄷㄷㄷ  

 

 

얌과 고구마의 차이 (출처 : msstate.edu)

 

 

그 친구가 알려준대로 나머지 셋은 거의 동시에 얌과 장어와 면을 버무려 입에 넣어 보았습니다. 오호라~ 이거 정말 맛나더군요! 이때까지 제가 먹어온 일반적인 소바와는 정말 다른... 신세계였습니다. 이 식당에 구글 댓글이 200여개가 남겨질만하더라구요. 다만! 전체적으로 양이 좀 적어서 아쉬울뿐, 장어와 면과 국물의 조화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던지 국물까지 싹싹 비우더군요. 한국 식당처럼 공기밥이라도 팔면 비벼먹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ㅎㅎ

 

 

 

 

계산하는 동안 식당 내부를 한번 찍어봅니다. 일본 식당 답지 않게 약간 엉성하면서도 식당같지 않은 분위기가 묘한 느낌을 줍니다. 

 

 

 

식당에서 못다한 이야기때문에 아쉬워서 근처 야외 카페로 향했습니다. 한 친구가 통 크게 커피를 쐈습니다. 제가 유머를 날린다고 그럴거면 차라리 밥을 사지! 라고 했더니 다들 한바탕 웃음이 터집니다. 저는 요즘 자주 먹는 오트밀 라떼를 한 잔 시켜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카페 대화의 주요 주제는 요즘 장안의 화제인  Chat GPT였습니다. 오늘 모인 친구중 한 명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데 일상 업무에 그것을 이미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최소한 인공지능이 내 직업을 대체하진 못하겠지? 그럼! 대체하지 못할꺼야라며 다들 웃고 떠들다보니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다가옵니다. 

 

100년이 넘는 거리에서 4명의 완전체가 모여 장어소바와 커피를 먹은 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들이기에 저는 오래도록 이 순간이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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