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상 05] 스윙라이드는 못 참지~!! - 윌밍톤 브랜치 도서관 [엘에이 지역 도서관 탐방기 02]
여러분들에게는 "도서관"이라 하면 어떤 의미로 다가오시는지요? 해야 할 일도 정말 많고 그리고 즐길 것도 많은 우리의 바쁜 일상 속에서 동네의 도서관을 찾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저마다 도서관에 얽힌 과거의 추억이나 재미난 기억들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의 어린 시절을 한번 떠올려 봅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는 주변에 이렇다할 도서관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동도서관이라고 이름 붙은 조그만 버스가 저희 아파트 단지 안으로 2주에 한번씩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한 가족당 정확히 5권씩만 빌릴 수 있게 해주었죠. 새하얀 종이 카드에 담당자가 일일이 책의 제목을 볼펜으로 적고 빨간 도장까지 찍어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어떻게 된 일인지 10권씩 빌려다 주셨어요. 어떻게 10권까지 가능했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입니다만, 일단 10권을 빌려오는 날이면, 저는 형과 누나와 모여앉아 과자나 고구마를 먹으면서 책을 읽곤 했지요...
고등학교 시절엔 야자 대신 공부한답시고 시립도서관에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호기롭게 공부하러 왔다가 결국 도서 열람실에서 날이 어두울때까지 신문과 잡지만 읽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엔?? 정말 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한가지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제 절친 덕분에 주변 여대 학생들과 도서관 세미나실에서 함께 영어공부를 했었어요. 다같이 미드 "프렌즈"를 시청한 뒤, 배역을 나눠서 대사를 외우고 연기도 해보는 방식을 택했는데...공부보단 끝나고서 뒷풀이에 더욱 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ㅎㅎ 제가 맡은 배역은 "조이"였는데 말이죠 ㅎㅎ
학창 시절 이후엔 도서관에 방문할 일이 거의 없었네요. 오히려 미국에 오게 되면서부터 도서관에 갈 기회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이곳 초등학교 숙제가 어떤 문제풀이보다는 하루 동안 읽은 책 제목과 짧은 감상을 적어가는 것이 주된 것이라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도서관에 주기적으로 가서 책들을 한무더기 빌려오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또는 아이들과 잠시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 때... 스타벅스나 차 안에서 핸드폰이나 쳐다보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는, 가까운 주변 도서관에서 기다리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조금이라도 애들한테 책을 더 읽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차원적인 소망으로 말이죠.
특히 지난번에 "세리토스 도서관"에 방문하고 나서는 좀 더 새로운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 일상 03] 사람보다 책이 더 대접받는 도서관, 세리토스 라이브러리 이곳에 널린 것이 동네 도서관들이니... 앞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늘 가던 곳만 가지 말고 기왕에 다른 동네에 있는 도서관들도 많이 방문해보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것을 글과 사진으로 블로그에 남겨보면 어떨까하는 욕심도 좀 생겼습니다.
엘에이 인근에만 공립 도서관들이 약 120여개가 된다고해요. 물론 제가 다 가볼 수도 없고, 또한 충분하다고 생각 될 때까지 2년이 걸릴지 3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힘이 닿는데까지 다양하게 가보려고 합니다. 제목이 아직은 두서가 없지만, 일단 [엘에이 지역 도서관 탐방기]라는 시리즈로 이 곳 일상글에 남겨볼까 해요. 그렇게라도 하면 더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도 들어서 입니다. ㅎㅎ
엊그제도 와이프와 막내만 따로 일정이 있어 큰아이와 제가 밖에서 한시간 정도 기다려야되는 상황이 생겼어요. 그래서 가장 가까운 동네도서관을 구글맵으로 찾아 운전대를 돌렸습니다. 그곳은 윌밍톤(Wilmington)이라는 지역이었는데요, 엘에이 인근 수많은 위성도시들 중에서도 정말 평범하디 평범한 일반적인 동네입니다. 위치적으로는 엘에이 롱비치항에 인접하고 있어서 트레일러 트럭들이 컨테이너박스들을 옮기는 장면들을 쉽게 볼 수 있고, 특징을 하나 더 짚자면 "유전"이 대단히 많은 지역이랍니다.
엥? 엘에이에 유전이라니?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으실 텐데요..석유가 나오는 그 유전 맞습니다. 엘에이에 오셔서 눈여겨 보시면 도시의 길거리 곳곳에 힘차게 유전 펌프가 많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쇼핑몰 주차장 한가운데에 유전 펌프가 있기도 해요.물론 이곳이라해서 빨대만 꽂으면 검은 석유가 팡팡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실 엘에이 전체적으로 수많은 유전들이 산재해 있어요...관심있으신 분들은 다음에 엘에이 오실 때 한번 더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윌밍턴 이 지역에 유전들이 밀집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곳은 수천만년전에 공룡들의 놀이터 쯤 되었던 지역이 아닌가 합니다.
운전하며 가는 길에 전에는 못보던 왠 대관람차가 눈에 들어옵니다...아니 여기가 원래 놀이동산이 있던 곳이 아닌데? 자세히 쳐다보니 어찌된 일인지 길을 막아놓고 임시로 놀이동산을 꾸며 놓았네요.
도서관에 도착해보니 마치 교회를 연상시키는 건물이 보입니다. 건물의 외관이 무척 오래되보였지만 머릿돌을 보니 1988년에 건축되었네요. 이 동네서는 88년도 지어진 건물이면 정말 젊은 축에 속하는데 그것보다 너무 겉늙어보이는 외관이 매우 의문입니다.
반면에 내부는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닥 타일도 얼마나 맨질맨질하게 닦아놓았던지요. 오래된 분위기와 건물을 나름 고풍스럽게 승화시키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모든 것들은 이곳 직원들의 열심 덕분이겠지요. 비단 여기 도서관 뿐아니라, 제 경험상 어느 공립도서관에 가든지... 직원분들과 사서분들은 관리에 참 열심이십니다.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이신 그 분들에게 박수를 크게 보냅니다! 짝짝짝!!
도서관 안의 메인 홀로 들어가기 전에 통로 잠시 서서 게시판을 바라봅니다. 게시판 안에는 도서관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들과 정보를 빼곡히 담고 있어서 이곳이 겉보기보다는 은근히 활발한 활동이 많은 도서관임을 알수 있었습니다.
도서관 내부에 들어서자 정말 유서깊은 교회나 성당 분위기가 나더군요. 그러한 장소 특유의 약간 서늘한 느낌도 들었구요. 높은 천장과 벽돌로 층층히 쌓아올린 벽 그리고 아치형 통로 덕분에 여기에 스테인드 글라스만 덧붙인다면 영락없는 교회 건물입니다. 특히 천장 위로부터 내려온 고풍스러운 수많은 전등들이 더욱 그런 기분을 들게 하더군요. 1988년도이면 그래도 현대적인 시대인데, 이게 88년도 감성 맞아? ㅎㅎ
건물 자체는 매우 낡았지만, 안에 들어찬 각종 기기들은 이것저것 신식으로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낮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열심히 책을 읽는 장면이 눈에 들어오네요. 엄청난 학구열입니다.
이지역이 아무래도 히스패닉이 많은 동네여서 그런지 스페인어로 된 책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아래처럼 서가가 펼쳐진 뷰는 제가 도서관에 오면 제일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읽지 않아도 읽은 것처럼 배부른 느낌! 아이고 책들 이뻐라 ㅎㅎ언젠가는 저도 집에 큰 책꽂이들을 놓고 서재를 만들 기회가 생기겠지요?
큰 아이는 요즘 흠뻑 빠져있는 2차세계대전 역사 관련 책을 찾겠다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네요. 한 귀퉁이에 서서 빼곡히 들어차 있는 책들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아집니다. 책 꽂이 안에 넘어진 책 하나 없이 꼿꼿하게 서있는 모습이 이 곳 직원분들의 관리 노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아이들 대상 서가 쪽으로 가보니 스타워즈와 디즈니 그림들이 붙어 있네요. 그런데 보통 동네 도서관에 오면 언제 오든 아이들이 몇 명 있기 마련인데...오늘 따라 왜 아이들이 한명도 없지? 궁금한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창 밖의 놀이동산 장면을 보고 곧 이해가 됩니다.
도서관 밖은 바로 길을 통제하고 임시 놀이동산이 들어서서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동네 아이들은 죄다 그곳으로 몰린 듯 합니다. 도서관 밖으로 나와, 길 한가운데 설치된 스윙라이드를 쳐다보는데 곧이어 굉음을 일으키며 스윙라이드가 돌기 시작하고 또 아이들의 함성이 길거리를 가득 채우네요.
저는 놀이기구를 잘 타는 편이 아니라, 그냥 보는 것 만으로도 만족입니다. ㅎㅎ 스윙라이드에 더 다가가서 쳐다보니 제법 매우 빠른 속도로 도는 것이 좀 아찔해보이지만 무서워 우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네요. 너무나도 침착하게 잘 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엘에이의 한적한 동네에 펼쳐진.... 임시 놀이동산의 스윙라이드를 한번 즐겨보세요. 밑의 동영상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ㅎ
아래에는 스윙라이드와 도서관 건물이 함께 나오도록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길 표지판에 아발론(Avalon)이라는 이름이 참 멋집니다. 아발론은 고대 영국 아더왕의 엑스칼리버 칼이 제조된 신비한 섬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아발론 길은 정말 엑스칼리버처럼 남부 해안가에서 엘에이 시내 USC 대학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습니다. 길 한쪽 귀퉁이 놀이동산과 고풍스런 느낌의 도서관 그리고 푸른 하늘의 조합이 참 이색적이면서도 재미있네요. 임시 놀이동산이 마무리 될 때까지 아마도도서관에 어린이들의 발길은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
와이프와 막내의 일정이 다 끝났다고 연락이 와서 아쉽지만 발길을 옮깁니다. 뜻하지 않게 방문하게된 윌밍톤과 그곳의 동네 도서관....다음엔 또 어떤 동네 도서관을 방문하게 될지 알 수 없기에 무언가 더욱 기대가 되네요. 이 지역 주민이 아닌 터라 돌아가는 길에 잠시 길을 잃고서 다시 야자나무 길로 우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열하듯 꼿꼿이 서 있는 저 야자나무들이 오늘은 더욱 정겨워 보이네요. 나무들아 다음에 또 보자 안녕~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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