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9 -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2011, 알랭 드 보통)

마셜 2023. 4. 1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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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함께 책을 읽는 멤버들에게 공통적으로 가장 큰 좌절을 안겨준 책이다. 

 사실 '종교'라는 주제 자체도 현대인에게 무겁게 느껴지지만, 뭔가 적대적인 개념인 무신론자와 종교를 함께 설명해 보겠다는 시도는 거대하면서도, 친절하게 설명하기엔 어렵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스마트한 베스트셀러 작가는 이 엄청난 과업에 열정적으로 도전했고, 독자들에게 두고두고 화제가 될만한 저작을 남겼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다종교 국가인 한국,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종교에 대해 한 두 마디 할 수 있을 테지만, 책을 펴기 전에 종교의 정의는 뭐라고 해야 하나 궁금해졌다. 그래서 과감하게 찾아본 백과사전, 책을 읽으며 어려운 설명에 시달릴 가능성이 농후했기에... 가능한 쉬운 설명을 찾아봤다. 바로 네이버 어린이백과사전....

 

 "신, 절대적인 힘을 통하여 고민을 해결하고 삶의 근본 목적을 찾는 사회 제도. 여러 가지 종교가 있으며, 종교는 그 사회의 생활 습관과 제도에 영향을 미친다."

 

 

종교

신, 절대적인 힘을 통하여 고민을 해결하고 삶의 근본 목적을 찾는 사회 제도. 여러 가지 종교가 있으며, 종교는 그 사회의 생활 습관과 제도에 영향을 미친다. [종교의 시작] 종교는 자연과 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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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쾌하다. 하지만, 이미 이 단순화된 개념 조차도 한국에 있는 여러 종교의 특성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럼 과연,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무신론자에게도 통용될만한 종교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 어떤 이야기가 될지 궁금증은 컸다. 최고 명감독이 도저히 손댈 수 없는 꼴찌팀을 맡아 어떻게 일으켜 세울지를 기대하는 심정이랄까. 

 

 그렇게 야심차게 책장을 넘긴 결과는..."실패'였다. 

 분명히 힘들게 완주했다. 멤버들과 함께 기한을 정해서 읽은 결과이기도 하고, 그나마 포기하고 싶을 때쯤, 추억 속의 이름 '오귀스트 콩트'가 등장하기도 하고... 어쨌든 완주했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책의 메시지는 정말 단순하기 때문은 아닐까..

 친절한 작가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다시 한번, 제발 이것만이라도 머리에 넣어가라는 듯이 하고 싶은 말을 다시 한번 명료하게 적어주고 있다

 "종교는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이고, 지적이기 때문에 신앙인들의 전유물로 남겨두기에는 너무 귀중한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이런 저런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이 메시지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마치 '법을 지켜라', '착하게 살아라'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단순명료한 메시지를 너무나 자세하게, 역사-예술-사회-문화를 넘나드며 설명한다. 웬만한 독자들의 배경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숨이 가쁘고... 방대한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지나온 길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멤버 중에 한 번도 완주를 포기한 적이 없는 분조차도, 유일하게 이 책은 끝까지 읽지 못했다고 밝힐 정도로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완주까지의 여정은 험난한... 그런 머나먼 길이나 마찬가지이다. 

 

 책 정보를 처음에 찾아볼때, '신학생들에게 강추!' 라는 추천이 있었는데, 아직도 이 추천에 대한 판단이 갈팡질팡한다. 적극적으로 신의 가르침을 전해야하는 신학도들이 무신론자를 위하여 종교 효용을 열심히 설파해야 할까? 경쟁자를 위한 논리를 꿰고 잃는 것은 중요하지만, 똑똑하고 강한 의지를 가진 무신론자에게는 그래도 믿음을 가지라고 단순히 호소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한 덕목은 아닐까. 난 아직은 차근차근 설명한다고 어떤 종교에 대한 호감을 심어줄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천재작가가 정성을 들여 설명한 종교의 덕목은 다음과 같다. 

 

I. 교리가 없는 지혜
II. 공동체
III. 친절
IV. 교육
V. 자애
VI. 비관주의
VII. 관점
VIII. 미술
IX. 건축
X. 제도

 

 이 모든 챕터를 통해 작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무신론자에게도 종교라는 것이 꽤 유용하고 필요한 것임을 설명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구절을 굳이 고르자면, '비관주의'에 대한 이야기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이었다.

 "이 세계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그리고 가장 큰 결점-는 바로 낙관주의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이 순간에 종교가 없는 사람은 종교가 있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낙관주의적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이 공평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고 설교하는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떠오르기도 하고, 교회는 희망을 머나먼 영역으로 옮겨놓았기에 현실에 대해 냉정하고도 명료한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는 작가의 설명에 깊게 공감되기도 했다. 

 결국 현실이 힘들고 괴로워도 머나먼 곳에 희망과 행복이 있기에, 이겨낼 수 있다... 라는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데 이는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힘들고, 심지어 무신론자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리이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 종교 안에 희망과 행복이 잔뜩 쌓여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지만, 아직 젊었을 때, 종교라는 것에 대단한 평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이 책을 만났다면 아마도 독서의 고통이 컸을지라도 신선하다는 충격 또한 크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면 모든 기억이 휘발되어 버리기 전에, 간단한 소회라도 남겨놓자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감히 방문하는 분들에게 가볍게 읽어보라고 권유하기 어려운 책은 처음이다. 그만큼 난이도도 높고, 요구하는 배경지식의 양도 방대하다. 

 다만, 신을 믿기에 현실을 의심하고 있다면, 혹은 종교라는 것이 얼마나 인류에게 많은 선물을 해줬는지 궁금하다면, 그래서 우리 조상인 인류가 얼마나 종교와 부대끼면서 살아왔는지가 궁금하다면, 한 번 도전해보시길 권유해드리고 싶다. 계속 이 베스트셀러 작가의 긴 이야기와 부대끼다 보면, 종교라는 것이 인류를 많이 도왔구나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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