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야구영화는 재미있다 - 그들만의 리그, A League of Their Own(1992)

마셜 2023. 4. 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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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WBC 대참사와 장정석 뒷돈 사태로 인하여 분위기는 엉망진창이지만, 어쨌든 야구는 재미있다. 그래서 야구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렇다면, 야구 영화는 어떨까? 그것도 여자들이 야구하는 영화라면?
 
 실제로 여자들이 야구하는 영화가 있다. 그것도 대단한 명감독의 명작이니, 바로 영화 <그들만의 리그(1992)>이다. 
 2018년 작고한 게리 마샬 감독은 따뜻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여성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 <빅>을 보면 이 감독의 작품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다. 영화 <그들만의 리그>는 <빅>과 <사랑의 기적>으로 연달아  성공을 거둔 후 작품이라, 그녀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작품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성으로서 영화계에서 배우로서, 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 다양한 길을 걸으면서, 오빠인 게리 마셜과 늘 함께 언급되는 그녀의 일생이 어찌보면 이 영화와 참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출처 : 다음 영화>

  영화는 늘 언니와 비교되며, 눌려사는 동생의 이야기와, 남자들이 모두 없어진 후에야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호출되는 여성 야구 선수들 얘기를 절묘하게 한 스토리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마샬 감독이 늘 그랬듯이 스토리는 따뜻하게 마무리된다. 동생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낸 후, 진심으로 언니에게 마음을 열고, 여성 선수들은 자신들이 주인공이었던 리그를 자신들의 능력으로 지켜낸다. 
 여기에 2차대전 당시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은 그저 덤일 뿐... 영화 자체는 천천히.... 하지만 빠짐없이 하고 싶었던 얘기를 풀어낸다. 
 

<유쾌한 감독과 마돈나> <출처 : 다음 영화>

 
 92년 아직은 어렸을 때 봤던 영화를 다시 보니, 이제 나이에 따라 많은 것이 달리 보인다. 
 
 특히, 엄청난 야구재능을 가졌지만, 외모 때문에 늘 주눅 들어있던 외동딸을 프로세계로 떠나보내는 아버지가 '넓은 세계로 가거라' 하는 작별인사는 꽤 와닿았다. 그리고 문득 꼰대 야구팬으로서 한 마디 하고 싶어졌다. 지금 KBO는 야구소년들에게 아버지가 가라고 할만한 넓은 세계인가? 그 시절 진정으로 도전했던 야구선배들을 보며... 지금 한국야구인들이 반성할 부분이 참 많을 것 같다. 
 
 2차대전 당시의 시대상이 많이 보인다. 
 
 당시 미국이 국운을 걸고 참전했던 2차 대전, 전쟁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발행했던 전쟁채권(War Bond)을 팔기 위해 애썼던 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여자야구 경기장에도 이 채권 판매를 위한 광고판이 보이는데, 나름 고증에 충실한 영화다운 디테일이다. 
 여자야구 감독을 맡으라는 구단주 제안에 화가 난 감독 지미 듀간(톰 행크스)이 경기장에서 홀로 피칭 머신에서 나오는 공을 받아치면서 고함을 질러대는 장면도 꽤 웃겼는데... 지금 다시 보니, 1940년대에 이미 피칭 머신이 있었다니!!! 참 놀랍다. 
 선수선발 명단을 읽지 못하고, 울상이 되어 서있는 문맹 선수 에피소드도 어찌 보면 그 당시 시대상이다. 그 유명한 하버드대학에서도 1977년이 되어야 여성입학을 허용한 건 잘 알려진 사실... 자기 이름도 읽지 못하는 여성들도 많았을 것이다.

<전사통지서><출처 : imdb.com>

 전사통지서를 들고 온 공무원이 당사자를 찾지 못하고 버벅대자, 듀건 감독은 통지서를 빼앗아 전달해 준다. 순간 초상집으로 바뀌는 라커룸 분위기와 남편을 잃고 통곡하는 모습이 당시 참혹한 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그 불행이 누구에게 찾아올지는 때로는 그저 운에 따라 결정되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행복한 순간이 계속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면, 더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라. 
 
 1990년대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이런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난다긴다 하는 여성 선수들이 모였다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야구로서 주목받은 사람들.. 아마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들의 리그가 남성 리그와 경쟁하여 이기기가 쉽지 않다는 걸... 실제로 종전이 눈앞에 오자 구단주들은 바로 여자리그를 없애고, 남성 리그에 집중할 생각을 한다.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선수들을 보며, 그리고 그저 야구를 하며 행복했을 선수들을 떠올려보면, 그런 하루하루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마 더 한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마지막은 상당 시간을 이제는 할머니가 된 선수들이 명예의 전당을 둘러보고 기념 시합을 가지는데 할애하는데... 그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할머니들을 보며, 진정 최선을 다했기에... 긴 시간 후 재회한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지 않았을까. 
 언젠가 인생 후반부에서 과거를 돌아봤을때 진심으로 행복하려면, 오늘 하루를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평범하지만 묵직한 메시지였다. 
 
 
 KBO에 꼭 필요한 한 사람 - 아이라 로웬스타인

<출처 : imdb.com>

 당시 실제로 아이라 로웬스타인(데이비드 스트라단) 같은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현재 KBO에 필요한 인물은 선동렬, 이종범, 박찬호, 이승엽 같은 슈퍼스타보다는 '아이라 로웬스타인' 같은 커미셔너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그는 여자 프로야구리그를 출범시키고 존속시키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한다. 리그 해체 예정이라는 구단주의 결정을 전하며, 욕받이 역할을 하는 것도 그였고, 라이프지 기자를 초대하여, 좋은 그림을 선수들에게 부탁하는 낯 뜨거운 역할을 하는 것도 그였다. 그리고 종국에는 리그를 해체하려는 구단주에 맞서 본인이 직접 인수해서 운영하겠다는 강수를 띄우며, 리그를 지켜낸 장본인이다. 그렇기에 명예의 전당 오픈에서 선수들이 그에게 테이프 컷팅의 영광까지도 양보했던 사람이다. 
 지금 개막전 매진이라는 단기실적이 가려져 '심각한 위기'라는 현실이 잘 보이지 않는 한국야구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말 뿐인 비판을 가하는게 아니라, 뭐라도 개선해 보려 애쓰는, 리그 발전을 생각하는 전문가이다. 허구연 총재가 야구전문가임에는 이견이 없겠으나.. 선수들에게도 '이윤이 없으면 구단이 운영될 수 없다'를 역설하는 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선수 및 관계자의 추문은 끊이지 않고, 국제경쟁력은 형편없이 추락했으며, 재정자립의 길은 요원해 보이는 2023년 KBO현실에서 더 유능한 비즈니스(not 야구)  전문가 커미셔너를 바라는 것은 진정 꿈일까..
 
 명작 O.S.T
 

 

A League Of Their Own (그들만의 리그) O.S.T - YES24

A League Of Their Own (그들만의 리그) O.S.T

www.yes24.com

 우울한 KBO 비판은 여기까지 하고,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애지중지하며 열심히 들었던 OST CD는 그야말로 명작이었다. 사실 영화 엔딩과 함께 흘러나오는 마돈나의 <This used to be my playground> 의 잔잔한 선율이 좋아서, 학생 용돈으로 부담스러운 CD를 산 것이었는데.... 목록에 이 노래가 없는 것을 보고 약간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친절하게 '마돈나의 이 노래는 이 OST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라고 설명까지 덧붙여 있던 것에 더욱 절망했던 기억이... 당시는 한 곡 듣고 싶다고 유튜브를 켜서 아무렇지도 않게 play를 누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실망은 컸다. 
 하지만, 음반에 포함된 한 곡 한 곡이 모두 명곡이었던 것은 반전... 영화 시작과 함께 흘러나오는 명랑한 'Now and forever - Carole King'을 비롯해서, 당시 시대상과 행복했던 야구팀을 잘 보여주는 노래들이 정말 잘 구성되어 있고, 영화음악 또한 그 유명한 Hans Zimmer 이다. 
 물론 지금도 즐겨들을 정도로 마돈나의 곡을 좋아하지만, 혹시나 영화를 재밌게 본 분이 있다면, 한 번 OST에 도전하셔도 절대 시간낭비는 아닐 것이다. 

 
 
또다른 미국의 위대함 - 성공하지 못한/중단된 역사도 소중히 기억한다. 
 
 위대한 미국의 배경에는 '다양성'이 있다지만, 그 다양성은 단지 현재 구성원을 존중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는 그 다양성의 한 부분은 바로, 지나온 역사를 모두 기억한다는 것이다. 비록 성공하지 못한 스토리에 대해서도, 중단되어 버린 리그에 대해서도 말이다. 
 유의미한 실험, 혹은 효율적인 대체수단, 직설적으로는 실패로 끝난 여자 프로야구리그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그렇다. 할리우드에 영원히 남을 여성 감독인 페니 마샬이 영화화하고, 프라임비디오에서 다시 영화화했다는 그 관심부터도 그러하지만, 명예의 전당 한 자리에 헌액하여 야구사의 한 부분으로 분명히 기록하는 미국의 모습이야말로, 작은 것에도 세심하기에 진정으로 쉽게 쓰러지지 않는 거인 같은 면모는 아닐까. 
 
 
 추억의 부스러기
 1. 주인공 도티힌슨의 남편으로 잠깐 나오는 배우 빌 풀먼은 추후 완성형 블록버스터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전투기 조종까지 해내는 미국 대통령이 된다.
 2. <나홀로 집에>에서 공항에서 표가 없다는 말을 하며, 케빈 엄마에게 갈굼을 당하던 공항직원은 이 영화 <그들만의 리그> 에서 바에서 말라 후치 선수(메간 카바나)에게 한눈에 반하는 훈남(?) 넬슨이 된다. 
 3. <그들만의 리그>에서 단역에 가까운 상대팀 선수로 나왔던 테아 레오니는, 미모 면접에서 한 번에 합격 후 좋아하던 모습이 그야말로 소녀 같다, 그 후 <딥임팩트>에서는 아버지와 종말을 함께 하는 기자가 되고, 그 후에 <패밀리맨>에서는 니콜라스 케이지와 참 잘 어울리는 공익변호사가 된다. 

<사진이 없었다면, 출연 여부를 확신하기 어려웠던 테아 레오니><출처 : imdb>

ps. 'A League of Their Own'을 '그들만의 리그'로 번역하는 것은 일면 절묘해보이지만, 영화 팬으로서는 약간 불만이다. 특히, 최근 뭔가 '자기들끼리 잘 논다'는 투의 부정적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이 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리그 정착을 위해 애썼던 야구인 여자선수들을 생각하면 뭔가 '충분히 그들의 것일만한 리그' 정도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 영화 흥행을 위해 제목 글자 수까지 신경 써야 하는 영화사 홍보 스태프들의 고생을 생각하면... 현장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의미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한 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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