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늘 읽을 책을 쌓아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혹은 도전정신으로, 혹은 필요한 지식을 얻어볼까 하는 요량으로... 다소 어려운 책을 끼고 낑낑대고 있다 보면, 사이다처럼 속을 뻥 뚫어주는, 재미있고도 술술 읽히는 그런 책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런 작품으로 믿고 찾을 수 있는 작가 중 '오쿠다 히데오'만한 사람이 없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친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화제에 오를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가, 오쿠다 히데오. 이제는 긴 시간 세상의 변화를 절묘하게 그려내는 관록을 풍겨내는 베테랑 작가가 되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시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 것인지, 다섯 편의 소설은 모두 마법 같고, 모두 해피엔딩이다. 모두 귀신(유령) 혹은 초자연적인 힘이 주인공을 도와주는 스토리로 전개되는데, 읽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든든한 느낌을 주는 것이 공통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같았던 코로나 시대에 소설로 독자들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했던 작가의 의도가 너무나 뻔해보일지라도, 우린 너무나 힘들었고, 이런 위로조차도 간절히 필요했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쿠다 히데오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모든 등장인물이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리얼하다는 것이다. 이 리얼한 인물들이 얽히고설켜 스피디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엄청난 재미를 선사하는데, 반대로 이 작품은 모든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고속도로를 달리듯 일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마치 코로나 시대 독자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이 정도는 괜찮잖아?'하고 씩 웃으며, 평소의 자기검열 기준을 살짝 바꾼 것도 같은데, 그래서 더욱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모든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지만, 조기퇴직 권고를 거절하고 한직으로 내몰린 중년 아재들의 이야기 '파이트클럽'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힘겨운 사회생활, 어찌 보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위기... 가장이기에 굴욕을 견디던 아재들은 다 같이 복싱으로 뭉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너무나 동화 같으면서도, 답답하고도 무료한 현실에서 정말 있었으면 하는, 그래서 더 몰입되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책에서 두번째 이야기였기에, 첫 번째에서 귀여운 유령 이야기가 나왔지만, 두 번째에서 또다시 유령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하고, 요다 같은 촉탁직원 복싱 스승과 마지막에 모든 아재들이 함께 기쁨을 함께 나누지 않을까 기대했던 걸 보면... (물론 내가 순진한 것이겠지만) 예상치 못한 결말에 더욱 여운이 남았다. 반대로 세 번째 이야기부터는 유령이 도와주겠구나 예상이 되면서, 이런 여운은 줄어든 것도 사실....
책을 다 읽고 나니, 한 편 한 편이 오쿠다 히데오의 글솜씨로 장편으로 나왔어도 훌륭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주인공이 시원시원하게 전개해 가는 이야기를 장편으로 만들어내는 건 그의 스타일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잔잔하고 따뜻한 이야기도 장편으로 한 번 풀어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혹시라도 지금도 읽어볼까 망설여지는 분이 계시다면... 웹툰보다도 재미있고,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고, 옆집 이야기보다 리얼한 단편소설이다. 놓치지 말고, 한 번 꼭 도전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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