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23 -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2018, 젊은역사학자모임) - 쇼비니즘과 논쟁을 넘어 다시 역사로

마셜 2023. 10. 26. 08:49
728x90
반응형

대표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출처 : 교보문고

 

 역사에 대해서 파편적인 관심만 많았던 젊은 시절.. 이런저런 것들을 주워 들었지만, 사실 어느 분야도 완성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한국 고대사 관련 책을 찾다가, 이 책의 목차를 보았을 때도... 하나하나 주제에 대해 단편적으로 아는 것들을 부분 부분 말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현재 연구동향과 성과라 할 수 있는 결론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런 면에서 독서모임에서 멤버들과 이 책을 읽은 것은 결론적으로 행운이었고, 단편적으로 관심과 주워들은 상식만 남아있었던 소주제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채워준 고마운 책이 되었다. 

 

 모든 소주제 내용이 충실하고 만족스러웠지만, 단 하나 환단고기에 대한 내용은 별로였다. 내가 아는게 없어서이겠지만, 일단 환단고기에 대해서 개략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이것이 왜 위서인지를 짚어준 후, 이 위서가 왜 심각한 문제가 되었는지를 알려줬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역사가 좋아서 책이 펼친 사람들에게는 다소 고루한 박 대통령 시절의 반공 이야기로 끝난 것 같아서 아쉬웠다. 

 

 결국 역사는 사료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늘 부족한 사료를 가지고 연구하고 논쟁해야 하는 고대사 분야에서, 1차 사료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가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쟁 양상을 설명하며, 사례를 설명해 준 이 책을 통해 꽤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다른 멤버의 말처럼, 전에는 역사책을 읽으면, 아 이런 사실이 있구나.. 생각하며 그 사실에만 집중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반복해서 강조되지만, 같은 역사적 사실이라 해도 달리 볼 수 있고, 특히 관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일면 피곤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행복한 일이다. 

 

 모든 이념은 그리로 매몰된다면 결국은 독이 된다. 민족주의라는 넓고도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여서, 역사 연구에 있어서 민족주의에 치우친 역사가들이 무리한 주장을 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는 일이 종종 있어왔다. 기경량 교수를 시작으로 10명의 젊은 역사학자들은 이런 민족주의를 시원하게 논파하는데, 어찌 보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여기에 있다. 

 

 한 멤버가 물었다. 이 책의 저자들이 비주류들은 아닌가?  딱히, 그렇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직은 조교수 혹은 박사과정생 들까지도 저자로 참여하다보니 그런 의문이 생기는 독자가 있겠지만, 다양한 출신학교, 현재 다양한 연구환경 등을 감안하면 10명이나 되는 연구자들이 모두 비주류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기경량 같은 학자는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고, 아직은 학생인 저자가 있는 점 등을 보면, 과연 학계 주류 연구동향을 반영했는지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경우 결국 스스로 내용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법. 주제별로 충실한 내용을 담았으니, 비주류 의견이라 볼 것은 없어 보인다.  검증되지 않은 개인 의견을 첨언하자면, 아마도... 현직 나이 지긋한 교수님들이 섭외가 잘 안되어서.. 젊은 연구자들.. 그중에서도 수료생, 학생들까지 등장한 것은 아닐까 싶다.

 

 

 한 멤버는 역사에서 당위성을 설정해놓는 사람들이 아쉽다고 지적했는데, 당위성이라는 것은 결국 역사적 사실의 힘으로 무력화되는 것... 단군신화부터 임나일본부설, 칠지도, 발해사에 이르는 예민한 주제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 한참 다음에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책은 잘 보여준다. 

 

 한두 조각 파편으로만 남아있던 지식에 더해, 현재 연구성과를 알게된 주제가 꽤 많았다. 

 

 일단 이문열 '대륙의 한'으로 인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던 '백제 요서경략설'

 중국 사서에 분명 관련 기록이 등장(그것도 복수의 사서)하는 것은 사실이나, 백제가 요서에서 일부지역이라도 지배세력을 형성했다는 어떠한 고고학적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백제로 유입된 한인 유이민이 집단 거주하는 지역에 요서지역 지명을 그대로 사용했을 가능성, 부여 유민 부여씨 여암의 요서지역에서의 반란(군사활동)이 잘못 기록되었을 가능성 등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제는 교과서에서 더 이상 거론되기 어려울 정도로 힘을 잃은 가설이 되었다. 

 

 이제 일단락된 '임나일본부설'

 학생 때, 임나일본부설에 한 획을 그은 김현구 교수의 제자인 서보경 교수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참 전이기에, 아직은 임나일본부설 관련 논쟁이 진행 중이었고, 서 교수는 조심스럽게 임나일본부라는 게 있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의 주장처럼 한반도에 영토를 지배한 형태의 통치체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었다. 사실 그 수업이 일본고대사가 아니었기에 짧게 설명했던 것 같은데, 아직은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고교 역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제 젊은 연구자가 담담한 어조로 2010년 임나일본부설은 한일 공동 연구를 통해 폐기되었다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달까.. 뭔가 역사연구가 진전되는 시작과 끝을 본 듯하여,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신라 김씨 왕실 흉노 후예설'과 문무왕릉비

 소주제에 대한 연구성과를 떠나서 이제 비편 두 조각만 남아있는 문무왕릉비가 기억에 남는다. 책 195~196p에 나오는 부분인데, 행방을 알 수 없던 문무왕릉비가 2009년 가정집에서 발견된 것. 다만, 언론 보도 등을 보면, 빨래판으로 사용된 적이 없으며, 이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였다고 하는데, 최경선 박사(수료생)의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고대사에 있어서 귀중한 사료인 금석문을 제공해 주는 왕릉비가 이렇게 방치되다가 발견되다니.. 허허 웃음이 나면서도, 얼마나 많은 중요한 문화재가 이렇게 사라졌을지 아쉬움이 가시질 않는다. 

 

 

문무왕릉비 사실상 다 찾은 셈

“문무왕릉비의 실물을 ‘사실상’ 다 찾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오영찬 국립경주박물관 ...

m.khan.co.kr

 

 '발해사'는 한국의 것인가? 중국의 것인가?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다만, 인상적인 것은 252~259p를 통해 저자가 간략히 하지만 핵심을 잘 설명한 발해의 흥망성쇠에 대한 요약이다. 역시 배운 분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된 글인데, 나중에 언젠가 역사를 공부하다가 발해를 다시 돌아봐야 하면, 이 몇 페이지를 다시 정독해야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조선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_ 기경량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었다?_ 기경량
광개토왕비 발견과 한·중·일 역사전쟁_ 안정준
백제는 정말 요서로 진출했나_ 백길남
칠지도가 들려주는 백제와 왜 이야기_ 임동민
생존을 위한 전쟁, 신라의 삼국통일_ 이성호
신라 김씨 왕실은 흉노의 후예였나_ 최경선
임나일본부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_ 위가야
발해사는 누구의 역사인가_ 권순홍
고대국가의 전성기, 언제로 봐야 할까?_ 강진원
《환단고기》에 숨은 군부독재의 유산_ 김대현

 - 책의 목차 

 

 즐거웠던 독서는 끝이 났고, 젊은 역사가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냉정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사료에 근거한 연구를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세사, 근대사로 올 수록 사료의 양은 비약적으로 늘고, 사이비 역사의 입지는 좁아지는 법이지만, 이렇게 젊은 역사학자들이 또 다른 프로젝트로 중세사 근대사에 대해 소주제들을 리뷰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넓고 늘 뛰어난 사람은 많은 법. 다른 분야에서도 젊은 역사학자들의 활약을 꼭 찾아봐야겠다. 

 끝.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