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22 - H마트에서 울다(2021, 미셸 자우너)

마셜 2023. 10. 2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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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보문고

 

 
 엄마를 잃은 25살 딸의 심정은 어떨까? 그것도 무심한 미국인 아빠 몫까지 애정어린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던 한국인 엄마가 세상을 떠난다면..
 이 가혹한 질문에 많은 한국인 독자들은 각각의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으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질문은 뻔하지만, 누구에게나 각별한 존재를 깨닫게 해주는 그런 이야기의 시작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여러 장르의 글 중, 유독 에세이는 잘 몰입되지 않는다. 아마도 여러 장르 중 가장 시공간이 제약되어 있기 때문일텐데, 물론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듯한 자유로운 에세이도 있고, 이해하기 쉽지 않을 정도 지식이 가미된 에세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에세이들은 시공간의 제약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시공간의 제약이 분명함에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인기를 끄는 에세이는 그 글의 재미가 대단하다 할 수 있을텐데, 바로 이 한인 2세의 이야기가 그랬다. 
 마치 뭔가를 더 잊기 전에, 하나라도 더, 더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 쓴 듯한, 극도로 자전적인 이야기, 더구나 기본적으로 슬픈 이야기. 어찌보면 그저 자기가 겪었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것 뿐인데, 이 이야기는 너무나 재미있고, 독자를 빠져들게 한다. 왜 그럴까? 아마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리운 대상 엄마에 대한 감정을 공감하기가 쉽고, 더하여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외국, 미국과 지금 우리가 그저 지나치는 서울의 모습을 외국인의 시각에서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자전적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슬픔’이다. 아직은 어렸던 미셸이 서서히 엄마를 잃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그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죽을 병에 걸려서도 괜찮다며 딸을 위로하는 엄마를 보며 미셸의 슬픔은 극에 달하는데, 정작 엄마가 죽고 나서도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 걸 보면, 때로는 인간의 감정보다도 현실이 더 잔혹하다. 
 사실 H마트가 미국에서 유명한 한인마트 상호인지도 몰랐다. 그저 한인마트를 뭉뚱그려서 H마트라고 표현한 것은 아닐까 생각만 했었다. 실제로 들어보니, 가장 인기있고 잘 알려진 한인마트라고 한다. 저자 미셸처럼 부모를 떠올리는 한인2세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추억이 사무친다면, 어느 장소에 가도 이런저런 기억이 떠오르기 마련. 어찌보면 H마트도 미셸이 떠올리는 엄마에 대한 수많은 추억 중 많은 부분이 중첩되는 장소일 뿐, 그 추억 자체는 아닐 것이다. 
 옮긴이가 감사를 표하며, 조심스럽게 저자 미셸을 표현한 것처럼, 미셸 자우너는 ‘겹겹의 소수자’로서 살아왔다. 그 와중에 딸에게 미국 중산층의 삶을 안겨줬지만, 세심함 혹은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미국인 아버지와 달리 진정한 한국식으로 딸에게 모든 것을 주고자, 혹은 나쁜 것은 미리 쳐내버리고자 애썼던 한국인 어머니는 역설적으로 딸에게 소수가 아닌 듯 하지만 소수로서 살아가야만 하는 딸의 정체성 혼란을 온 몸으로 막아낸다.
 그리고 딸, 미셸은 25살, 어머니를 길다면 긴 투병 끝에 떠나보내고 나서야, 엄마에 대한 모든 기억을 한풀이하듯 기록한다. 그리고 긴 시간 염원했던 음악에서의 성공과 베스트셀러 출판이 모두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에 이루어지자, 정말 한국인다운 깜찍한 해석을 내놓는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엄마가 신의 목이라도 졸라서 내게 좋은 일들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요구했을 게 틀림없다’
 세상 모든 엄마가 그러하겠지만, 자녀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한국인이라면 특히 더 공감되는 미셸의 본인 성공 원인 분석이, 속썩였던 딸이 엄마의 투병을 뒷바라지 하며 힘들어하던 눈물겨운 모습 뒤에 등장하여, 웃음짓게 한다. 
 음식만큼 민족을 특질화하는 문화도 없다고 했던가. 에너지가 넘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할만한 뮤지션이자 작가인 미셸 또한 끝없는 음식 이야기로 본인이 결국 한국인 엄마의 딸로서, 한국문화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난무하는 과학적이면서도, 넘치는 표현력으로 서술된 음식 묘사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조미료와 기름 범벅으로 만들어져 언제 먹어도 입에 착착 달라붙는 짜장면, 진한 육수에 만두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간 만둣국, 접시 가득 놓인 회색과 흰색의 절단된 다리들(산낙지)... 그저 하루하루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아니 먹는 여러 음식들이 넘치는 표현력으로 무장한 미국인 뮤지션에게는 이렇게 비춰질 수 있다니.. 그 모든 것이 그저 재미로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지는 않은 듯 해서, 미셸의 슬픔이 다시금 느껴졌다. 
 아마도 젊은 나이에 딸을 잃은 미셸은 필사적으로 엄마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해내는 과정에서 늘 자신과 함께 맛있게 뭔가를 먹는, 그리고 자신에게 뭔가 만들어서 먹이는 엄마를 발견했으리라. 
 먹고 싶은 걸 뭐냐고 물으며, 자식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줄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하는 엄마.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경험이고,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힘들만큼 일상적인 순간이지만, 그 순간순간이 모여, 엄마와 함께 한국인의 정체성도 잃을 위기에 처한 이 젊은이에게 이런저런 기억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동아줄이 된다. 
 엄마가 떠난 뒤, 야심차게 준비한 아빠와 친해지기 프로젝트도 어중간한 실패로 끝난다, 결국 미셸은 하나 남은 이모를 통해 계속해서 엄마를 중심으로 한 가족을 찾아나간다. 그리고 나미 이모는 조카를 통해 동생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미셸의 할머니, 이모들이 행복하리라 상상하며, 그 모두가 정말 한 가족이었음을 웃으며 미셸이 느끼게 해준다. 엄마가 남긴 기억은 여전히 행복하게 딸의 행복을 지켜주고자 노력하고 있으니, ‘영원’이라는 개념이 현실화된다면, 엄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것일 것이다. 
 사실 미셸은 슬픔을 이겨내는 비법이나, 특별한 경험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괴로웠다고, 엄마에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서둘러 결혼했지만, 남편이 너무 사랑스러워 다행이라고, 너무나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이야기 마지막에 결국 남는 것은 엄마가 자기 방식으로 한 말이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거창하게 해석하지 않아도 쉽게 읽히는 한 문장. 한 사람으로서 딸 안에 자리 잡은 한국의 정서, 문화가 결국 매사 배어나올 것이라는 한 마디. 딸은 엄마 잃은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한 달에 한 번 김치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엄마를 기억해내고, 자신의 역량과 수고를 매일매일 상기해낸다. 
 이 건전한 노력과 평범한 깨달음 앞에, 어느덧 슬픔은 조금 가시고, 엄마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첫 문장 만이 오롯이 남는다. 쉽지많은 않았던 어린 시절을 거쳐, 엄마 잃은 슬픔을 처절하게 이겨내고, 결국 기억해낸 엄마의 가르침,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라는 말이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내 삶을 스스로 인정한다면, 당당하게 살 수 있다라는 진리로 다가온다. 
 이국의 소수자로 살지 않았어도, 어찌보면 나만의 식성을 만들어준 우리 엄마가 있기에 나는 나로 살아갈 수 있는 법. 베스트셀러 작가처럼 거창하게 엄마에게 글을 헌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글의 마지막은 엄마에게 바치고 싶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가 키워준 내가 내 삶을 살고 있네요. 내 삶을 스스로 인정하며, 늘 고마운 마음으로 살께요. 늘 건강하세요. 

출처 : 교보문고

 

ps. 미셸 자우너의 <비 오는 날과 월요일> in 베트남, page 363
 "홀로 중얼거려. 늙어버린 것 같다고..... 때론 그냥 다 집어 치우고 싶어져.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이크에 에코가 최대치로 들어가 있어 훨씬 잘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이런 마이크로 노래를 못 부를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눈을 감고 마이크에 편히 기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런 카페너에게, 그 조막만한 몸집의 비극적인 인물에게 접속하면서. 노란 드레스를 입고 식음을 전폐했던 그 여인, 카메라 앞에서 행복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천천히 망가지던, 라이브 방송에서 완벽한 사람으로 비치려고 분투하다가 천천히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가던 사람에게.

 

Carpenters, <Rainy Days And Mondays>

"Talkin' to myself and feelin' old
Sometimes I'd like to quit
Nothin' ever seems to fit
Hangin' around
Nothin' to do but frown
Rainy days and Mondays always get me down

What I've got they used to call the blues
Nothin' is really wrong
Feelin' like I don't belong
Walkin' around
Some kind of lonely clown
Rainy days and Mondays always get me down
Funny, but it seems I always wind up here with you
Nice to know somebody loves me
Funny, but it seems that it's the only thing to do
Run and find the one who loves me (the one who loves me)
What I feel has come and gone before
No need to talk it out (talk it out)
We know what it's all about
Hangin' around (hangin' around)
Nothin' to do but frown
Rainy days and Mondays always get me down
Funny, but it seems that it's the only thing to do (only thing to do)
Run and find the one who loves me (ooh)
What I feel has come and gone before
No need to talk it out (to talk it out)
We know what it's all about
Hangin' around (hangin' around)
Nothin' to do but frown
Rainy days and Mondays always get me down
Hangin' around (hangin' around)
Nothin' to do but frown
Rainy days and Mondays always get
Me down"

 

Rainy Days And Mon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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