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21 - 인간실격(1948, 다자이 오사무)

마셜 2023. 9. 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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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보문고

 

 딱히 책 선택에 룰을 정한 것은 아닌데, 독서모임 멤버끼리 돌아가며 책을 추천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일본 소설을 많이 읽게 되었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는 한 멤버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셋이 모두 한 권 이상 일본 작품을 추천했으니, 일본 소설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 하겠다. 

 이 번에 읽은 작품은 '인간 실격'

 역시나 일본문학계에서 큰 역사적 인물로 남아있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기괴하다. 

 

 인터넷 용어가 허락된다면, 괴랄하다는 표현이 적당할까. 물론 이제 학창시절을 지나 보수화되는 나이. 방탕하고도 엉망진창인 하루하루로 점철된 삶을  산 주인공 '요조', 호색과 마약, 정신적 불안적, 음주, 이상한 인간관계 등 도대체 정상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없는 주인공의 모습은 현실로 바라보면 인간적 매력이라곤 없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그저 특이한 심리를 가진 어린이였던 요조가 동반자살까지 감행하는 지경에 이르는 과정이 창작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경지에 이른 것은 사실이니, 그 문학적 가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요조의 삶이 주는 불쾌감을 억지로라도 잠시 떨쳐버리고,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봤다. 습관적으로 살펴보는 작품(작가)의 역사적 배경, 1948년 태평양전쟁 패전 후, 평화가 찾아왔지만, 모든 것을 잃고, 패배감만을 곱씹어야 하는 일본 현실을 잘 묘사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또한, 실제로 엄청난 부자집 아들이었다고 하는 다사이 오사무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니, 부르주아로 태어나 사회주의 운동에도 제대로 투신하지 못하고, 마약과 술에 찌들어 살다가 탐미적 소설만을 남기고 떠난 젊은 미남 소설가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으리라. 

 

출처 : 위키디피아

 

 실제로 여러 사진을 보면 상당한 미남이고, 여성들에게 보호본능을 일으킬만한 여리여리한 외모가 기억에 남는다. 거기에 범상치 않은 배경과 역사에 남을 글재주까지 가졌으니..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진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런 사람들의 관심, 특히 여성들의 관심과 사랑에도 자신은 진정한 친구 한 명 없었다고 말하는 자전적 소설을 보면, 그 원인이 단편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인생에서 그의 정신이라는 것은 이미 언제부터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일찍이 많이 망가져있었던 모양이다. 

 

 한 멤버가 지적한 것처럼, 그나마 자주 등장하며 요조를 들여다보는 호리키 또한, 일반적으로 보면 아주 비열하고도 나쁜 인간에 불과하다. 그런 그를 내치지도 못하고, 찾아올때마다 본심과 다르게 어울리는 요조를 보며, 당시 일본사람들은 전후 패전국으로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며 미국의 감시/통제를 받아야 하는 일본의 현실을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냉정하게 툭 던지듯이 책 서두에서 보여주는 액자식 구성도 기억에 남는다. 멤버 중 한 명은 왜 굳이 액자식 구성을 택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진정한 글쟁이인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얘기를 하면서도, 이런 이상하고도 기괴한 내 인생이 사장당할 뻔 했다, 문득 발견된 사진과 일기 등에서 건져낸 이야기니, 유실되었다면 어쩔뻔했느냐라고 대중의 관심을 끌어낼 장치를 슬쩍 심은 건 아닐까. 

 실제로 서문에서 3장의 사진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주인공의 비참한 말로가 오히려 독자의 궁금증을 더 자극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군국주의의 극단으로 치닫다가 패배한 후, 모든 사회적 모순이 뒤섞여 후유증을 폭발시켰던 전후 1948년,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부유하게 살지 못했고, 유력한 정계인사의 아들이었지만 사회적 계급을 향유하지도 못했으며, 지식인이었지만 밑바닥 인생처럼 살았고, 사회주의를 공부했지만 아버지 반대로 운동에 뛰어들지도 못한 주인공은 결국 스스로에게 인간실격 판정을 내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얘기하는 주인공 주위에 인간답게 사는 친구 하나 없었던 것을 보면, 당시 오사무의 방황이 모두 그의 잘못이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담담하게 실격판정을 내리는 모습이 일본 정서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묘한 울림이 있었을 것도 같다. 

 

 시간이 흘러 이제 21세기 한국독자들에게는 기괴하다는 첫 인상을 주는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일본의 시대상과 액자식 구성의 효용,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반추되는 삶의 궤적을 남겼다면....  '다자이 오사무'는 대 소설가임에 분명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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