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하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넘치는 시대, 1906년에 일본 작가가 쓴 자전적 이야기는 왜 이토록 사랑받을까?
아니, 그보다 나쓰메 소세키는 어떤 면에서 그토록 대단한 작가일까?
독서모임에서 접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지만, 모임이 시작하자마자 추천한 멤버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왜 나쓰메 소세키는 대단한 작가인가요?"
사실 어느 정도 알면서도, 열성팬 의견을 한 번 듣고 싶었던 것.
하지만, 역시나 열성팬은 달랐다.
따로 작가연보와 작품해설을 인용하지 않고도, 이 대단한 작가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줄줄이 논평해 낸 것.
열성팬의 나쓰메 소세키 소개를 대략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문학에서 현대문학의 시작을 알린 작가.
평탄하지 않았던, 유년 시절을 거쳐 대학 공부를 하고, 문부성 장학금을 받아 영국에서 영문학 공부를 한 사람.
하지만, 그 유학 과정에서 사실상 수강을 포기하고 영문학을 독학하며 자기만의 공부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
유학 초기 압도적 서양 문명 속에서, 극소수 일본인으로서 정체성 혼란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마저도 문호로서 작품세계를 녹여내고,
식민지 조선과 만주를 여행하며, 정신적 어려움을 이겨냈고, 후기의 선명하고 강렬한 작품세계를 완성해냈던 사람.
일본인으로서 식민지 조선을 여행하며 자존감을 회복했고,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이광수나 중국의 루쉰에게도 영향을 준 문호이니... 여러모로 한국인 입장에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가이다.
이야기는 단순하고도, 순한 맛이다.
전에 읽었던 '마음'에 비하면 이렇다할 사건도 반전도 없이, 주인공은 비교적 평탄하게 학교를 떠나 기요에게 돌아간다.
기승전결 중 마치 결이 빠진 듯한 이 구조는 작가의 의도라고 한다.
정교하게 영문학을 공부한 작가는 작품활동 초기, 공부했던 영문학의 주요 작품들에 대한 반감 아닌 반감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에 다른 이야기 구조를 보여줬다는 것.
선명하고 일관되게 자신의 의도한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 마치 작품 주인공 같다.
다른 나쓰메 소세키 작품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어느 정도 중산층에 고학력 지식인에 해당한다. 복잡하게 설정한 캐릭터보다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 또한, 순수하게 글재주로 승부하는 대문호답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 봤던 TV드라마 '전원일기'나 '베스트극장' 같은 느낌이었다.
그 시절 이런 단막극 들은 제한된 환경 혹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정말 이야기만으로 재미를 주곤 했다. 기발한 반전도, 충격적인 사건도 없고, 늘 결말은 예상범위 안에 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한 완성도를 보인 에피소들도 많았는데...
별다른, 특별한 사건도 없이 재미있게 풀어낸 이야기를 보면, 그 옛날 별 기대없이 금요일 밤 TV를 켰다가 몰입해서 봤던 베스트극장을 보는 듯하다.
대문호다운 어휘력으로 명명한 동료교사들의 별명, 너구리, 붉은 셔츠 등 다양하지만, 한 멤버는 '끝물호박'이 도통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농사라는 것을 그나마 좀 아는 나로서는, 웃음을 지으며 설명에 나서야 했다. 원래 호박은 못생겼다는 이미지, 그 상징이지만 끝물에 다다르면, 건강한 느낌마저도 사라져서 정말 쓸데도 없고 못난 이미지가 된다. 장황하게 설명을 하면서도... 얼마나 못 생겼고, 못나보였으면 호박 중에서도 끝물호박이라 했을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문호의 엄청난 어휘력을 바탕으로 한 절묘한 어휘 선택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그 외 작품에 대한 평가는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그저 재미있게 그 시절을 느끼게 해주는 순한 맛 이야기라는 소개면 충분하지 않을까.
ps.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소설 추천과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눈에 띈다. 바로 강상중 교수. 담백한 추천사 한 줄이 기억에 남아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리뷰를 마친다.
'그 우울한 청춘의 시대, 옆에서 늘 속삭이듯 말을 걸어준 것은 나쓰메 소세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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