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모든 것은 현재 내 마음 상태대로 보인다.
인터뷰 기사를 보면, 감독은 영화내용이 ‘반일’로 비춰지길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시대배경 탓도 있겠지만, 최근 식민지근대화론, 위안부논쟁, 반일종족주의로 두루두루 정신이 복잡했던 내게는 일본군 군복을 본 것만으로도 피곤했다.
하긴, 사연과 사연이 중첩된 지난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이야기는 감독이 반일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관객을 편하게 해주지는 않는게 당연하다.
조선시대 내내 호랑이는 큰 재앙이었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 민족에게 호랑이는 경외시되는 대상이기 전에, 큰 재앙이었다. 호환이라는 단어를 역사기록에서도 볼 수 있고, 산길을 걷다 호랑이를 만났는데, 살아돌아왔다면 큰 행운이다라는 말을 시골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들은 기억이 난다.
제작진이 뚜렷한 역사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았다면, 영화에서 은근히 반복해서 설명하는 ‘주민들이 경외시하는 대호, 산군’은 그저 상상력일 뿐이다. 실제로 언론과 인터뷰한 이 분야 (역사)전문가도 일제의 해수구제 정책 그 당시 조선인이 나쁘게 보았다는 기록은 없다고 밝혔다.
굳이 반일을 피해가려 애쓰면서, 일본의 호랑이 사냥작전을 소재로 쓴 것... 참으로 좁고 험한 길을 택한 것 같은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만큼이나, 영화 전개도 힘겹게 느껴졌다.
브로맨스 진화는 어디까지인가?
요즘도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최근 몇 년간, 정말 브로맨스가 드라마/영화 큰 흐름이 되었구나 느꼈었는데.... 그 브로맨스의 정점이 이 영화는 아니려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려 호랑이와 사냥꾼의 브로맨스라니, 키워주고, 돌봐주고, 그리고 죽고죽여야 하는 순간에서도 피해주고... 마지막 순간을 필연적으로 함께 하는 사냥꾼 만덕과, 지리산 주인 산군은 자연스럽게 브로맨스를 떠올리게 한다.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도 자연스럽게 연기해냈던 최민식은 호랑이와의 브로맨스도 하드캐리했고, 그 고단한 인생 자체의 무게만큼이나, 둘의 브로맨스도 슬프지만 숙명적으로 잘 표현되었다.
산을 폭파하다니!!! CG인가?
대일본제국의 식량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해야하는 조선의 농사를 방해하는 호랑이를 박멸하기 위해, 정규군이 투입된다. 충분히 그랬을 거라는 개연성이 있다. 그 과정을 충실히 재현한 영화는 산의 능선 자체를 다이너마이트로 날려버리는 대단한 장면을 보여주는데...
관객들에게는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을지 모르는, 그 눈덮인 나무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장면이 신기하고도 대단해보이면서, 저걸 한국에서 어떻게 찍었을까? CG인가?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놀랍게도, 마땅히 폭파하는 씬을 찍을만한 산을 찾지 못해서, 민둥산에 죽은 나무를 심은 후 폭하했다고 한다. 한국영화 촬영도 대단한 추진력을 가졌구나 라는 감탄을 하면서, 하긴 벌써 20년 가까이 전인 2003년 작 ‘실미도’에서, 단 2분30초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9억원을 들였던 역사가 있으니, 유구한 전통을 이은 셈이다.
비교하자면 너무 소소하여....... 규모나 소요된 금액으로는 비교하기 어렵겠지만, 문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떠올랐다.
배트맨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되살린 거장 놀란 놀란 감독이 ‘다이나이트 라이즈’에서, 유명한 미식축구장 폭파 장면을 리얼하게 찍기 위해, 실제 미식축구장에 실제로 일반인을 실제 축구장(하인즈 필드)에 모아놓고 촬영했다는 에피소드(무려 들어간 돈이 300억원!!!)가 떠올랐다고 하면.... 내가 국빠기질이 있어서, 부리는 억지인걸까.
어쨌든 한 장면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감독 이하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낸다.
시대물에 걸맞는 소품과 의상은 필수인 시대 : 백김치와 플린트락 화승총
엄청난 제작비 부담이 있을텐데도, 은혜롭게도 한국영화계는 심심찮게 역사물, 시대극을 잘 만들어내고 있다. 역사에 관심 많은 평범한 팬으로서, 반갑고 고마운 일인데, 영화 배경에 맞는 소품와 의상 등이 보여질 때는 그 섬세함에 놀라며 웃게된다.
이 영화에서도 고춧가루가 귀했던 조선시대에 맞게 백김치를 먹는 장면, 플린트락 화승총을 꼬질대로 쑤시면서 전력질주하는 사냥꾼의 모습이, 역사를 읽을 때 상상력을 더해줄 것 같아 반가웠다.
라미란과 정석원
지금은 주연급이 되어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하고 있는 라미란을 잠깐 볼 수 있어 반가웠다. 물론 가난한 포수 아내로 나오기엔 얼굴이 너무 복스러워서, 위화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명배우를 보는 건 즐거운 일.
모든 배우의 명연기에서 역으로 눈에 들어온게 있다면, 정석원. 연기에 대한 의지는 분명히 있으신 것 같은데, 어떤 역할을 해도 어색하고... 녹아들지 못하는 느낌이다. 하긴 애초에 극 중 ‘류’ 자체가 일본군 안에서도 의심받고, 쭈뼛거리고, 마음대로 일을 풀지 못하는 게 역할이니, 감독이 그런 연기를 주문했다면, 어찌보면 기대에 부응한 셈이다.
그외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극 전개를 잘 끌어준 조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대단.
흥헹에는 실패했지만, 의외로 전문가 평점은 좋고, 호평도 많이 받은... 어렵고 힘든 과제에 도전한 영화. ‘대호’, 생동감 있는 호랑이를 만나고 싶다면, 한 번 선택해보시길!
'과거 모습 -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려져 있지 않는 병자호란 승전의 역사 - 김화 백전 전투 (36) | 2023.06.30 |
---|---|
위화도회군 혹은 이괄의 난? 아니면 갑신정변? - 러시아 바그너 그룹 쿠데타 실패 (18) | 2023.06.26 |
강동원이 조선제일검이었다면 -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 (22) | 2023.03.18 |
원치 않은 오랑캐와의 만남과 전쟁-치욕의 역사를 다시 가정해보자 (2) | 2022.10.23 |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수다 #1 - 황현필, 장계, 거북선 (6) | 2022.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