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모습 - 한국사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수다 #1 - 황현필, 장계, 거북선

마셜 2022. 9. 2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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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네이버 두산백과)

 

 친구와 '이순신의 바다(황현필 저)'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비록 카톡이었지만, 시간을 정해놓고 충무공 이순신에 대해 주제를 한정하니, 기억해두고 싶은 것들이 쏟아졌다. 그 중 몇 가지만 적어본다. 

 

1. '이순신의 바다'는 좋은 책이다. 

 대중서로서 목적에 충실하게, 주요해전 전과, 충무공과 함께했던 부하들 등을 빠짐없이 표로 정리했다. 수험서 스타일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대중이 읽기 쉽게 쓴 저자의 노고는 박수쳐야할 부분. 

 또한, 한산도/명량/노량 해전 이외의 잘 알려지지 않은 해전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승전에 포함시키고 의미를 짚은 것도 유의미하다. 물론 학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될 수 있고, 왜곡 문제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임진왜란과 충무공 관련 역사는 아무리 외연을 확장해도 부족하지 않다. 

 물론 근거가 다소 부족해보이는 어찌보면 교육자의 개인 의견 같은 주장을 확정적으로 적은 것은 위험해 보인다. 특히, 승전 기록을 정리한 표를 보면, 왜군 전사자 수를 굉장히 도식적으로 '침몰대수xA명' 같이 계산한 것 같은데.. 이런 식의 정리는 좀 위험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충무공은 생전 백의종군을 두 번 당했다. 

 두 번이나 무한강등을 당했으면서도, 파직당하지 않은 걸 보면, 그 능력을 윗분들도 알긴 알았던 듯

 

3. 충무공은 생각보다 금수저다. 

 본인이 군단장이었는데, 앙숙 군단장(원균)도, 나중에 국무총리(류성룡)도 모두 동네 아는 형이었다. 특히 국무총리와는 매우 친했다.  

 다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흙수저는 아니었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모범인것만은 분명하다. 

 

4. 류성룡의 편법

 류성룡은 이순신을 파격승진 시키려다가, 주변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먼저 한 번 승진시키고, 그 다음 바로 다시 승진시키는 편법을 쓰는데, 현재 기준으로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잊지말자. 근세 조선시대였다는 걸..

 또한, 류성룡의 이러한 편법 발령도 나름 조선이 애쓴 전쟁대비 중 하나였다. 어찌보면 류성룡은 그만큼 상황이 급하다고 본 것 아니었을까.

 

5. 조선시대 촘촘한 관직 체계, 그 안의 조선 수군

 근세 조선은 근대화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는 농업국가 현실에서 강적 '왜'의 침공을 맞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전쟁기록을 통해서, 당시 관료제가 얼마나 촘촘하게 말단 관리까지 임명해서 나라를 다스렸는지를 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임명된 수령이나 무관 들 중 전쟁이 발발하자, 시스템 후진성을 증명하듯 제 몫을 못한 경우가 많았지만 말이다. 

 

6. 충무공이 경상도 관할 수사였다면?

 언젠가 인터넷에서, 충무공이 경상도 관할 수사였다면,  전쟁 없이 초반 왜군 선단을 격침시키고 침공을 막아냈으리라 하는 추측을 봤는데, 일면 동의가 되었다. 저자 황현필도 유사한 주장을 하는데, 충무공이 관할 수사였다면, 왜변 정도로 소요가 끝났으리라고 한다. 과감하고 신선한 주장이긴 한데, 역사에 가정은 의미없기에.. 역사서에 기술될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경상도 수사의 무능한 작태를 보며, 왜 충무공은 경상도로 발령받을 수 없었나를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경상도는 왜인 출입이 잦은 최전방 지역... 그런 최전방 사령관으로 충무공이 가기에는 너무 윗분들에게 뻣뻣한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이나 그때나 최전방 출신이 승진이 더 빠를테니 말이다. 

 어쨌든 경상도를 충무공이 담당하고 있었다면, 절대 그렇게 쉽게 상륙을 허용하지는 않았을테고, 2~30여척 판옥선만 있었다 할지라도, 왜군이 큰 피해를 감수해야했을 거다. 다만, 전라도 중심으로 수군의 해안 장악이 없었으면 전쟁에서 아예 패배했을지도 모르겠다. 

 

7. 화포기술의 차이, 패배를 막다. 

 조선의 화포기술이 월등히 앞섰던 것은 잘 알려져있는데, 이는 절대 우연이 아니다. 현재 기준으로 표현하면, 정말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엄청난 연구비를 쏟아부어서 장기연구를 한 결과이다. 실제로 고려말 왜구 득세로 거의 나라가 망할 뻔 했고, 고려는 국가 사활을 걸고, 화포기술을 개발하고, 함선에 장착하는데, 이 화포기술이 임진왜란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노략질에 적합한 빠른 배, 안택선이 왜 주력함선이었던 것도... 느리지만 화포 발사 반동을 견딜 수 있었던 평저선 판옥선이 조선 주력이었던 것도 어찌보면 목적에 충실한 기술 발전의 결과이다. 

 

8. 일본은 그 당시에도 이미 생산력이 뛰어났다. 

 수백선 함선을 생산하여 침공할 수 있었고, 이미 상업국가로 발전 가능성을 보이며, 10만이 넘는 군대를 바다 건너 보낼 수 있었으니, 제국 수립을 꿈꿀만도 하였다. 

 

9. 경상도로 출정할지에 대한 선조의 답. 

 '난 네가 경상도로 가서 적을 무찌르기를 바라나, 결정은 네가 하라.'

 정말 무능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팀장의 말 같다. 난 이랬으면 좋겠지만, 니가 알아서 하고 책임은 니가 져라. 

 

10. 거북선은 많이 제작되지 않았다. 

 거북선은 돌격선이었을 뿐, 함대 주력은 아니었고, 당시 조선수군 무기체계에서 함선표준은 판옥선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11. '칼의 노래'가 어떤 역사책보다도 훨씬 더 역사를 생각하게 한다. 

 

12. 충무공의 디테일한 전술 - 적선 한 척을 남겨둔 후, 적군이 탑승하여 도망칠때 격침한다. 

 왜군에게 진정 악마 같지 않았을까. 

 

13. 두 개의 장계는 충무공의 꾀였을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만, 단지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자칫 왕을 능멸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데... 충신인 충무공이 그랬을 것 같지는 않지만, 다소 주관적인 해석이 황현필 장점이지만, 이는 좀 너무 나간듯.,..

 

14. 선조는 조금이라도 군벌이 될 가능성이 있는 무장을 끊임없이 견제했다. 

 김덕령 : 뚜렷한 죄도 없이 죽었다.

 정문부 : 황현필이 지적했듯이 함경도 이외 작전에 참여하지 못했다. 

 곽재우 : 전쟁 후, 그냥 그렇게 숙청당함. 

 

15. 충무공의 문장력 

 '이제 수군을 폐하시면, 전하의 적들은 서해를 따라 충청 해안을 거쳐서 한양으로 들어가 전하에게로 갈 것이므로, 신은 멀리서 이 것을 염려하는 바입니다. 수군이 비록 외롭다한들 이제 신에게 오히려 전선 열두척이 있사온즉,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이 버전이 가장 좋다. 

 현대 회사생활 버전으로 바꿔 보면...

 회사원 A가 무능한 팀장C 밑에서 개고생하면서 프로젝트 혼자 일으켰더니, 팀장이 계속 견제하다가 A 빼고, 무능하면서도 날 시샘하던 동기B를 집어넣었다가 프로젝트를 시원하게 말아먹음. 거래처를 잃을 지경이 되고, 무능한 동기B는 퇴사. 결국 팀장은 날 다시 불러서 어떻게 하냐.. 미안하다.. 이러면서.. 힘들면 이 거래처 포기하고, 다른 프로젝트 집중하자.. 그랬더니, A가 말함. 

 ' 지금 이 거래처를 포기하면, 모든 책임은 팀장 당신이 지게 될 것이다.난 팀원으로서 이게 걱정이다. 지금 거래처와 관계가 안 좋지만, 내가 열심히 하면 거래처가 그래도 우리 회사를 좋게 봐줄 것이다.'

결론 : 팀장C 진짜 싫다. 

 

16. 왜성과 조선 산성의 차이

 청야전술을 기본으로 산성에서 방어전 중심으로 발전한 조선 산성은 왜성과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전국시대를 거치며 축성술이 고도로 발전한 왜성, 경상도 지역에 건축된 왜성을 7년 전쟁 동안 단 한 번도 조선이 힘으로 빼앗지 못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 

 

17. 명량해전에서의  거제현령 안위, 그리고 중군장 김응함

 거제현령 안위는 참전 무장 중에서도 품계가 낮았으나, 어쨌든 초요기를 세우자 달려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 김응함은 중군장으로서 대장선을 호위하는 것이 주임무였음에도 초요기를 세우기 전까지 겁먹고 대장선 혼자 싸우도록 멀리 있었으니, 더 혼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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