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DAI 20. 금융을 담당한 형제들 – 현대자동차에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7)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 어떻게 재미나게 보셨나요? 특히 축구, 탁구, 베드민턴 등의 종목에서 땀을 쥐는 명승부들이 좀 있었죠. 명승부도 좋았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종목들에서 "고령"의 국가대표들이 활약을 펼쳐 또한 화제였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 종목에서는 40대가 넘는 "아재" 김관우씨가 당당히 금메달을 따내서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겼었죠.
그런데 그분보다 스무살 많은 국가대표도 있었다는 사실을 혹시 아시는지요?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브리지"라는 카드게임 종목 선수단에 무려 63세의 여성 선수가 포함되어 눈길을 끌었는데요, 그런데 어딘가 단아하고 고상해보이는 이미지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잘 되신 분이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알고보니 이 분은 바로 정주영 회장의 며느리이자 일곱째 아들 정몽윤 회장의 부인 김혜영씨였던 것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정몽우 사장과 정몽준 회장에 대해서 그리고 따듯한 형제간의 우애에 대해서 다루어 보았는데요, 오늘은 그 밑에 금융 계열사들을 담당했던 두 형제들인 정몽윤 회장과 정몽일 회장에 대해 서술해보려 합니다.
일곱째 아들 / 정몽윤 회장
정몽윤 회장의 부인 김혜영씨는 2010년 경에 브리지에 입문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십여년 동안 다양한 국내외 대회에 입상하였고, 현재에는 한국브리지협회 부회장에 재직 중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매년 자선 브리지대회를 개최하는 등 열심히 활동한다고 합니다. 종류를 떠나서 무언가 인생에서 자기계발을 끊임없이 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나이 50이 다되서 시작한 분야인데 국가대표가 되었다는 것도 엄청난 성과이구요.
아래는 이번 아시안게임의 실제 브리지 경기 장면인데요, 보안을 위해 선수 사이에 칸막이를 놓고 진행하는 모습이 좀 특이하죠? 육체를 사용하는 다른 스포츠보다는 두뇌와 순발력이 더 중요한 게임이기에 선수들의 나이대가 다양한 편이라고 합니다. 특별한 장비를 사용하지 않기에 단순해보여도 이게 정말 고도의 두뇌싸움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개인전이 아니라 팀 대결이기에 선수들간의 협력과 긴밀한 소통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고요. 일반인들에겐 좀 생소하지만 전세계 무려 4천만명 이상이 이 게임을 즐긴다고 하는데요, 빌게이츠와 투자의 귀재 워랜버핏도 이 게임의 열성팬이라고 하니 여러분들도 한번 입문해보시는게 어떨까요? ㅎㅎ
특별한 장비를 사용하지 않아도 오직 두뇌를 사용하여 불꽃튀는 접전을 벌이는 브리지 게임과, 공장이나 중장비가 없어도 자본이 자본을 낳도록 끊임없이 머리를 써야하는 금융업, 뭔가 통하는 점이 있어보이지 않으신가요? ㅎㅎ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보여준 김혜영씨, 그녀는 남편이자 정주영 회장의 일곱째 아들 정몽윤 회장을 어떻게 만났을까요? 정몽윤 회장은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1982년 방학을 이용하여 한국에 왔을 당시에 김혜영씨를 만났다고 합니다. 당시 그녀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다섯살 연하였는데도 그들은 결혼에 금방 골인하였습니다. 김혜영씨가 고도의 두뇌싸움인 브리지 종목의 국가대표를 지낼 정도로 범상치 않은 실력을 자랑하는 것을 보면 그녀의 집안 역시 궁금해지는데요, 그녀는 한때 한국의 건설과 자재 사업 분야에서 준수한 성과를 내었던 부국기업의 집안 출신이라고 합니다.
정몽윤 회장은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 경영학과 학부와 석사 유학을 마친 뒤에 현대종합상사에서 경력을 시작합니다. 그 이후 현대그룹에서는 1985년 동방해상보험사를 인수하여 현대해상화재보험을 설립하였는데 정몽윤 회장이 이를 물려받아 지금껏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안전한 그룹의 보호막에서 떨어져나갔다는 우려도 잠시... 그의 기업은 금융업계에서 지금까지 꾸준한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현대해상화재보험은 현재에 해상, 화재, 자동차, 특종, 장기, 연금 및 퇴직보험(연금) 등 손해보험 전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금융 공룡 기업입니다. 그리고 자산 5조원 이상이어야 포함될 수 있는 준대기업집단에 드는데도 성공했습니다.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단일손해보험로서는 처음으로 대기업집단의 명단에 오른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해상화재보험은 현대그룹의 수많은 계열사 중에서 제일 먼저 1999년에 계열 분리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IMF 직후에 한국의 산업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면서 현대그룹이 일반경영과 금융경영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한 그룹 안에서 사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되게 되면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기가 어렵게 되겠죠?
계열분리 당시에는 계열사 1개에 자산총액 2조6천억원에 불과했었으나 2021년에는 계열사가 21곳 자산총액 5조3천억원으로 상승했습니다. 또한 현대해상화재보험은 해외 진출에도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중국과 미국에서도 활발한 금융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몽윤 회장은 2022년 약 30억원의 연봉으로 한국 금융업계 최고 연봉킹에 올랐습니다.
정몽윤 회장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히 경영 활동에 몰두한 탓에 그가 직접적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일은 매우 드물었으나 최근에 그의 장남이 대신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그의 장남 정경선씨는 지난 2012년 비영리단체 루트임팩트를 설립하고 250억원의 펀드를 조성하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을 돕고, 벤처의 생태계를 지원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보통 재벌가의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 아버지의 기업에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는 전통과 대조적으로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고 이끌어나가는 그의 행보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에 여러 신문 방송에서 앞다투어 정경선씨와 인터뷰를 진행한 바도 있고 사회적 저명인사들이 강연하는 "세바시"에 출연한 적도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니 외모적으로 어머니 김혜영씨를 많이 닮은 것 같네요.
아버지 정몽윤 회장은 정경선씨의 사회적 기업에 사재 79억원을 출연하였고 현대해상화재보험 역시 50억여원을 출연하여 도왔다고 합니다. 정경선씨의 사회적기업은 국내 곳곳에 헤이그라운드라는 공간을 세우고 소셜벤처와 사회적기업들이 입주하여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HGI라는 기업을 설립하여 최대주주로서 사회 환경적인 투자를 지향하는 중견 벤처캐피탈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들의 독특한 행보는 현대해상화재보험의 이미지 개선에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편 정몽윤 회장은 소문난 야구광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중학교 때 실제 야구선수로 활약했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사내 아마추어 야구팀에서 선발 투수로도 뛰었습니다. 지금도 종종 야구장에서 야구를 관람하는 그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1997년에 대한야구협회 회장을 역임했는데요, 이때 정말 큰 건을 하나 이루었습니다. 그의 야구협회장 재직 당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메이저리거인 박찬호 선수를 대표팀으로 이끌어서 드림팀을 구축하는데 일조했었죠. 결국 그 드림팀은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뤄냅니다. 그때 정말 열기가 대단했었죠. 지금은 박찬호 씨가 한번 말을 시작하면 끝이 없는 "투머치토커"의 우스운 아재 이미지가 강하지만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그의 인기와 카리스마는 엄청났습니다. 한국인도 열심히 노력하면 외국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선구적으로 몸소 보여준 분 초창기 한류 멤버가 아닐까 합니다. 당시에 가게에서 티비로 메이저리그 야구 중계를 틀어놓으면 길 가다가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어퍼컷 치면서 박찬호 선수를 응원하고 그랬으니까요. ㅎㅎ
정몽윤 회장은 2007년 말이 되자 직접 야구선수단을 운영하고 싶어서 그간 새주인을 찾지 못하고 방치된 현대유니콘스를 인수하고자 하였으나, 아쉽게도 주주들의 반대로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금융기업의 특성상 주주들의 관여가 심한 상황에서 다수의 의견에 반하는 것을 독자적으로 이루기는 어려웠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난 그는 현대 유니콘스가 표류하던 시절 사재를 털어 선수들을 도우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게임기업 엔시소프트도 야구팀을 운영하고, 신세계 정용진 회장도 야구팀의 꿈을 이루었는데, 원조 야구광 정몽윤 회장으로서는 많이 아쉬울 법합니다.
여덟째 아들 / 정몽일 회장
막내 정몽일 회장은 어떻게 보면 형제들 중에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덜 알려진 인물일 것입니다. 그는 1959년 생으로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현대건설에서 경력을 시작합니다. 그 이후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1990년에 현대종합상사의 재정담당 이사대우가 됩니다. 이후 1994년 국제종합금융(현 현대종합금융) 대표이사 회장 자리에 오르며 아버지로부터 현대종합금융을 믈려받았습니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으니 금융업계에 자리잡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겠지요.
그의 회사는 나름 운영이 잘 되어갔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뭔가 운영 상에 문제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타이밍 문제인지 본인의 경영 능력 부족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운영했던 현대울산종합금융은 결국 IMF시절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동양종합금융에 합병됩니다. 하루 아침에 자신의 회사를 잃게된 정몽일 회장... 그러나 역시 우애깊은 다섯째 형님 정몽준 회장이 구원투수로 나섭니다. 이쯤되면 확실히 정몽준 회장은 동생들과 일가를 잘 챙기는 의리파인듯 싶습니다. 정몽준 회장은 본인 소유인 현대중공업 그룹 내에 금융계열사인 현대기업금융, 현대기술투자, 현대선물 등 3사의 경영을 총괄하는 회장직을 정몽일 회장에게 주어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서 돕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들이 본래 정몽일 회장 본인의 소유가 아니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현대중공업그룹 내에서 정몽일 회장의 입지가 좁아지는 일이 생겨나게 됩니다. 2010년대는 현대중공업의 주력사업인 조선업의 위기가 심화된 시기입니다. 그래서 결국 2015년 6월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기업금융, 현대기술투자, 현대선물 등 금융 계열 3사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개인 보유 지분을 정리하고 경영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를 가만히 두고 볼 현대가가 아니죠. 다른 현대가의 가족들이 그를 물심양면으로 그를 돕기 시작합니다. 곧이어 정몽일 회장은 2015년 7월 범현대가의 지원 하에 현대미래로를 설립하였고 다시 현대미래로는 현대기업금융을 인수하면서 2016년 8월 현대기업금융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지주회사법상 경영권행사에 필요한 최소 지분 31%를 현대미래로가 인수하고, 나머지 31.2%를 범현대가에서 나눠 인수하면서 정몽일 회장의 신생기업 현대미래로를 최대주주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또한 사촌동생 정몽혁씨가 회장으로 있는 현대종합상사는 약 66억원을 투자해서 현대미래로 주식 131만6000주(20%)를 매입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범현대가의 가족들은 정몽일 회장의 독자 경영 기반을 도와주면서 정몽일 회장은 현대미래로-현대기업금융-현대기술투자의 지배구조를 다시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현대미래로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엠파트너스의 주주현황을 보면 대부분 범현대가의 계열사들임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세차례에 걸쳐 정주영 회장의 여섯 형제들에 대해 다루어보았습니다. 다음 편의 글에서는 현대그룹의 승계를 위해 형제간에 미묘한 신경전을 벌일 수 밖에 없었던 당사자인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에 대해서 서술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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