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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상 17] 글쓰기 튜터링 과제 - '남한산성' 영화평 첨삭

마셜 2024. 2. 2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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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 튜터링을 두 차례 열심히 받았지만, 여전히 과제는 어려웠다. 블로그에 올렸던 영화평을 한 번 고쳐봤는데, 생각보다 글은 많이 좋아지지 않았고, 뭔가 처음 썼을 때 느낌이 잘 살지 않아 아쉬웠다. 그래도 어쨌든 다음 튜터링 시간에 평가받을 과제이기에 여기에 남겨본다.

 

 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영화평 원문은 아래 링크로....

 

역사와 원작의 무게 - 남한산성(2017, 황동혁 감독)

1. 신기하다. 전쟁과 역사를 다룬 영화인데, '눈'과 '풍경'이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다. 친구가 보내줬던 사진 한 장, 극심한 의견대립을 보이는 재상 두 명은 엄습해오는 절망감 속에서, 대화를

george-marshall.tistory.com

 

 

역사와 원작의 무게 - 남한산성(2017, 황동혁 감독)

1. ‘눈’과 ‘풍경’이 기억에 남는 영화
2. 영화의 매력 – 인물의 재창조, 영화의 역동성을 살려낸 무사 ‘수어사 이시백’
3. 영화의 또다른 매력 – 인물의 재현, 두 충신 ‘김상헌’과 ‘최명길’
4. 매력 있는 영화일지라도 ‘재미’는 별개 – 최종관객 수 384만명
5. 병자호란의 의미 - 조선이 스스로 '개전'하여, 스스로 '패배'한 전쟁
6. 병자호란의 원인 - 중화사상과의 단절은 단순한 조공체제가 아닌 종교의 변화, 곧 개종
7. 병자호란의 결과 - 삼궤구고두례, 그리고 삼전도비
8. 역사적 사실 팩트 체크 - 실제로 패전은 피할 수 없었는가?
  가. 진짜 근왕병은 비겁했는가? - 그렇지는 않았다.
  나. 강화도 함락이 없었다면, 남한산성은 더 버텼을까? -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겼던 인조
  다. 그렇다면 전쟁양상을 바꿀 가능성은 전혀 없었나? - 치명적이었던 '예비대'의 부재
9. 총평 : 어느 것도 외면하지 않은, 비겁하지 않은 영화 ‘남한산성’

 

1. ‘풍경이 기억에 남는 영화

 신기하다. 전쟁과 역사를 다룬 영화인데, '''풍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친구가 보내줬던 사진 한 장. 어전에서 서로 목을 베라며 대립했던 재상 두 명은 엄습해오는 절망감 속에서, 대화를 나눈다. 참혹한 전쟁과 한심한 작태를 묘사하는 명연기에도 나는 이 장면과 영화에서 계속 나오는 눈 쌓인 풍경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모든 것이 조용한 엄동설한, 처음부터 이길 수 없었던, 오로지 파국을 향해 나아가는 한 달 이상의 고통의 시간이 쓸쓸한 겨울이었던 것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겨울 동안 끝없이 대립했던 두 사람도 결국 서로가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음을 인정했고, 새로운 시작이 온다는 것도 담담하게 서로 이야기한다. 눈 내리는 조선의 겨울, 손꼽히는 역사적 패배, 남한산성에서의 병자호란은 그렇게 쓸쓸한 겨울로 기록된다.

 

2. 영화의 매력 인물의 재창조, 영화의 역동성을 살려낸 무사 수어사 이시백

 배우 박휘순이 열연을 펼친 수어사 이시백은 영화 내내, 누구보다도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하고, 누구에게도 질 것 같지 않은 무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소하지만 승전을 이끌고, 묵묵히 성의 방비를 신경쓰는 이 캐릭터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기에 자칫 정적일 수 있는 영화에서 그나마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건 실제 수어사 이시백은 영의정까지 지냈던 청빈한 문신으로 칼을 든 무사 혹은 군인과는 거리가 먼 역사적 인물이었다는 점. 위 영정과 사진 크기만큼이나 차이 나는 수어사 이시백의 모습. 담백하게 한 문신의 일생을 요약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조선시대 명재상이다 할 수 있겠는데, 역시 영화는 작가적 상상력이 필수.... 영화 내내 절대 질 것 같지 않은 진정한 무사는 사실 철저한 문신이었다. 물론 지금으로 따지면, 국방부장관인 병조판서도 역임했지만 말이다.

 물론 영화 속 이시백에 대한 묘사는 몇몇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 이시백은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데 군공을 세워, 군사적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고,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수어사'를 맡았으며, 남한산성 전투에서 일정한 성과를 냈고, 패배도 경험했다.

 어찌되었든 일곱 번이나 판서를 역임하고, 인조로부터 '내가 이 사람을 팔다리처럼 한다'라는 평까지 들었던 시호 충익(忠翼)에 빛나는 진정한 명재상은 4차 산업혁명시대 한국영화에서 청나라 병사 수십도 혼자 상대할 수 있는 무신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지 남한산성에서 물러서지 않고 싸웠던 재상에게는 그 또한 명예로운 변신이리라.

 

3. 영화의 또다른 매력 인물의 재현, 두 충신 김상헌최명길

 많은 무능한 신하들이 병자호란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에 일조했으나, 적어도 영화에서의 인조는 복 받은 왕이다. 영화를 전반적으로 이끌어가는 두 충신 김상헌최명길이 각각 자기의 방식으로 죽음으로라도 활로를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김상헌과 최명길은 영화 전반을 지탱한다. 이는 단순한 명배우의 혼이 담긴 연기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 남한산성 안에서의 공허한 담론 속에서 끝까지 활로를 찾고자 했던, 두 재상의 목숨을 건 호소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러고 보면 그 어떤 정통성, 정당성도 없이 어느 날 왕이 되어, 전쟁으로 수많은 백성을 죽음으로 내몬 무능한 왕 '인조'는 성안에 갇힌 47일간 그 무능함의 극치를 영화는 보여준다. 남한산성에 갇혀 떨어지는 식량을 하루하루 헤아리면서, 탁상공론을 일삼았던 무능한 조정의 왕으로서, 가장 아쉬운 건 이 두 충신의 목숨을 건 호소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고 끝까지 모든 것을 미룬다. 결국 항복을 결심한 것도 강화도 함락을 접한 후.... 두 재상의 목숨을 건 호소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진정어린 건의와 호소도 리더가 결정을 위해 듣지 않는다면 그저 시간낭비일 뿐이다.

배우 김윤석과 이병헌도 영화 전반을 지탱하며, 역사적 인물의 고뇌에 리얼함을 불어넣는다. 이는 영화의 힘이 단순히 위대한 원작 혹은 비극적 역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얼핏 지루할 수 있는 반복되는 언쟁을 선굵은 연기로 살려낸 명배우 둘에게 일정 정도 기대고 있음을 의미한다.

 복 받은 감독 황동혁, 베스트셀러 역사소설의 감독을 맡은 것 자체는 부담도 컸겠지만,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이는 명배우를 둘이나 거느리고 작품을 만든 그는 분명 복 받은 감독이다. 물론 자신이 행운에만 기대는 감독이 아님을 차기작 오징어게임의 대흥행을 통해 스스로 글로벌하게 증명했다. 조선시대와 현대 한국사회로 시대적 배경은 다를지라도, 일반 소시민들의 삶을 철저하게 짓밟는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감독의 통찰력은 선명하게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4. 매력 있는 영화일지라도 재미는 별개 최종관객 수 384만명

 흥행은 대실패했다. 하지만 예상을 벗어난 건 아니다. 최종관객 수 384만명이 그렇게 적어보지도 않는다.

 역사상 손꼽히는 굴욕적 패배를 사실적으로 영화화했는데...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500만 관객을 넘겨야 한다는 건 무리다. , 애초에 흥행 실패가 아니라, '과다 지출로 인한 손익분기점 달성 실패'가 맞는 표현은 아닐까? 해외에서 반응도 좋았다고 하는데... 만약 황감독의 차기작 오징어게임이 발표된 후 개봉했다면, 더 성과가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5. 병자호란의 의미 - 조선이 스스로 '개전'하여, 스스로 '패배'한 전쟁

 정묘호란 후 불과 9, 그 결과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버텼던 조선은 또다른 전쟁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직은 명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하고, 만주 지역의 패권을 바탕으로 중국본토를 공략해가는 수준이었지만, 결코 조선이 이길 수 없었던, 그래서 절대 전쟁을 하면 안되었던 상대 ''

그 청나라를 상대로 조선은 스스로 개전했다.

 물론 그 전쟁에 이유는 있다. 재조지은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조공관계를 통한 중화 중심 유교적 세계관. 그리고 여진족에 대한 뿌리 깊은 오랑캐 천대의식, 고조되었던 군사적 긴장과 외교적 충돌. 그리고 중간에서 이 모든 사태를 악화시킨 명나라 군벌의 부스러기 모문룡

 하지만 어쨌든 조선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 청을 상대로 스스로 개전했고, 스스로 패배했다.

 세상 모든 전쟁이 이길 것을 기대하고 일으키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러 외침이 기습적으로 혹은 예상치 못한 국면에서 있었던 것을 보면, 병자호란 자체는 한반도 역사에서 스스로 선택한 몇 안되는 전쟁인 셈이다. 그 패배 상처가 컸던 만큼이나 파국으로 치닫는 조선의 일련의 움직임도 한숨을 자아내는데, 영화가 포커스를 맞춘 47일간의 수성전은 예정된 패배의 후반부에서 당시 조정 혹은 지배층이 얼마나 잘못된 현실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6. 병자호란의 원인 - 중화사상과의 단절은 단순한 조공체제가 아닌 종교의 변화, 곧 개종

 이길 수 없는 전쟁까지 감수하면서 조선이 지키려했던, 당시 국제관계이자 사회체제인 '조공체제'는 정묘호란-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그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현실적인 이유로 항복할 수 밖에 없음을 설득하는 최명길에게 쏟아지는 비판은 모두 '오랑캐' 인식과 '재조지은' 등 시대착오적인 현실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당장 온 국토가 쑥대밭이 되는 것도 모자라, 한 달 후를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식량이 부족함에도 죽을 때까지 싸우자고 분연히 말하는 척화신을 보면 한숨이 나오다 못해 이해가 안될 지경인데... 이제 어른이 되어 다시 병자호란을 되돌아보니, 당시 청에 대한 항복은 조선 지배층에게는 '개종'에 가까운 충격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평생을 바쳐 익히고 발전시켜온 세계관이자 종교의식인 중화사상을 포기하고, 조공체제에 없었던 오랑캐를 섬겨야 하는 '항복'

 이는 단순한 정치/군사적 결단 정도가 아니라, 유교적 세계관과 조공체제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했던 조선 지배층에게는 세계가 무너지는 충격과 같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덧붙인다 해도, 그 고집이 한심한 것에는 변함이 없고, 병자호란으로부터 200여 년이 지나, 다시 척화비가 세워지고 세계변화에 저항하는 거센 움직임이 한반도에서 그대로 재현된 것을 보면, 다시 한 번 한숨이 나올 뿐이다.

 이러한 거센 움직임의 기반이 진정한 '개종'에 버금가는 문화충격에 대한 저항인지, 아니면 인조가 말했던 것처럼 단순히 살고자하는 지배층의 아집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이런 시대착오적 고집이 가져온 후폭풍을 생각하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7. 병자호란의 결과 - 삼궤구고두례, 그리고 삼전도비

 동북아에서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면서, 처음으로 타국의 을 힘으로 복속시킨 '', 항복의식을 두고도 고민이 많았다고 하는데, 결국 고전에서 찾아낸 사례에 의거, 조선 임금을 세 번 무릎 꿇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게 해서, 진정으로 모든 것을 잃게 한다.

 당시 조선왕실이 패전을 자초했던 어쨌던 간에 한반도 역사에 유래가 없는 굴욕적 역사인 것만은 사실.

그리고, 그 후 영·정조 시절까지도 열심히 멸망한 명나라에 몰래 제사를 지내는 조선민족의 특이한 고집을 예견했는지, 항복사실을 새긴 비석을 세워 영원히 남기고자 했는데, 그 유명한 '삼전도비'가 바로 그 기록이다. 송파구에서 추천하는 유적지이기도 하고, 실제로 석촌호수공원에 붙어있어서 잠깐 들려보기도 괜찮다.

 호란 직후로 돌아가 보면, 위치 자체가 청나라 입장에서는 절묘한 것이, 언제든 사신을 보내 둘러보기에 멀지 않고, 특히나 조선 최고 군사요새 남한산성에서 가까워서, 실제로 삼전도비를 방문한 청 사신들은 남한산성을 들먹이면서 조선 대신들을 애먹이곤 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잠실 여러 아파트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지만, 멀리 남한산성이 보일 것도 같은 거리, ‘흑역사의 의미에 부합하는 조선의 처참한 패배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잠시 석촌호수 근처를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영화에서도 등장한 신기한 만주어를 비석 형태로 볼 수도 있다.

 

8. 역사적 사실 팩트 체크 - 실제로 패전은 피할 수 없었는가?

 가. 진짜 근왕병은 비겁했는가? - 그렇지는 않았다.

 집 떠나 개고생하는 대장장이 서날쇠... 어느 대신보다도 현실을 꿰뚫고 있었던, 그래서 끝까지 벼슬아치를 믿지 않고, 그 덕분에 기어이 살아남는 그는 힘겹게 근처까지 온 근왕병 부대에 도착하지만, 근왕병 지휘관들은 서날쇠를.. 그리고 남한산성의 임금의 기대를 저버린다. 복명하지 않은 책임을 피하고자 전령을 죽이고자 하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는 근왕병 지휘관들의 모습은 꽤 그럴듯한데, 이는 역사적 사실일까?

 이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실제로 관객들의 안타까움을 배가시키는 것에 큰 역할을 했지만, 실제로 역사적 사실과 가장 다른 부분이다. 오히려 제대로 된 전령을 받지 못한 채, 모여든 지방군들이 산발적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물론 그 산발적 승전이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고, 그 모든 승전을 상쇄하고도 남을 큰 패배도 있었으니.. 그 승전 효과를 논할 것은 못된다. 어느 정도 과장된 기록이라지만, 쌍령전투 패배에 대한 기록을 보면 부분부분 믿겨지지 않을 정도 수준인데.. 그래서인지 기사화된 기고조차 드물다. 어쨌든 나름 용감하게 진격해왔던 근왕병에게 할 수 있는 최고 칭찬은 이것 뿐이다.

 

'그들은 비겁하지 않았다

 

 나. 강화도 함락이 없었다면, 남한산성은 더 버텼을까? -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겼던 인조

 본인을 폐위시키거나, 심양으로 압송하지 않을까 겁에 질려있었던 인조가 강화도가 온존되었다고 해도, 남한산성이 무너져 목숨이 위태로울 때까지 저항했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그는 남한산성에서의 지난한 하루하루를, 그저 결정을 미루며, 본인 왕위를 우선하며 살아낸 것 뿐이다. 오히려 강화도 함락이 그러한 고통의 시간을 짧게 해주었다는게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분석일 것이다.

 

. 그렇다면 전쟁양상을 바꿀 가능성은 전혀 없었나? - 치명적이었던 '예비대'의 부재

 아직도 '이괄의 난'으로부터 이어지는 평안도 방위체제의 붕괴는 병자호란과 함께 내 머릿속을 맴돈다. 동북아 판도를 바꾼 큰 전쟁의 원인을 단편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어렵고도 위험한 것이지만, ‘이괄의 난후로 호란을 겪기까지 전혀 재건하지 못한 기동 예비부대.. 예비대 육성은 커녕 최전방 방어기지조차도 반정으로 정권을 잡자마자 반란을 겪은 인조의 예민한 감시와 열악한 지원에 제대로 된 훈련 한 번 못해본게 당시 현실이었다. 실제 이괄이 난을 일으켰을 때, 동원했던 반란군이 12천명이 넘었고, 이 병력이 평안도에서 청군이 진격해올 경우를 대비해서 배치되었던 정예병이었음을 생각하면, 이 모든 정예병이 반란으로 인해 없어지지 않고, 청국과의 긴장고조 정국에서 견제역할을 했다면, -청 관계는 설사 전쟁이 있었더라도 다르게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다.

 평안도의 예비대를 전혀 재건하지 못했던, 허술한 방어태세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뻔히 예상되는 청군의 진격로, 그것도 한 번 뚫렸던 길에 변변한 예비대를 배치하지 못했던 것이 조선 군사력 현실이었고, 긴장관계가 고조되자 조선 조정이 집중한 것은 그저 왕실 중심의 도피 계획이었다.

 여차하면 왕실이 도망갈 수 있는 강화도와 남한산성에만 전력을 집중시킨 것이 너무나 수세적인 전략이었는지..... 근처에서 거둔 세금으로 그나마 병력을 유지하고 군량을 비축할 수 있던 두 곳과는 달리 평안도 지역은 몇 천 이상의 병력을 배치하기엔 너무나 척박했던 것인지... 아니면 '이괄의 난'을 겪은 왕실의 알레르기적 기찰 탓인지... 또는 세 가지 모두 해당되는지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여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어찌되었던 결론은 같다. 병자호란 패배를 피할 수 있었던 길은 단 하나, 평안도를 통한 청군 진격로에 기동 예비대가 있어 진격을 늦추고... 그 사이 강화도와 남한산성에 군량을 비축하고 방어를 튼튼히 하는 길 뿐이었다. 이조차도 패하지 않는 방법이지. 애초에 승리는 요원했다고 봐야한다.

 

9. 총평 : 어느 것도 외면하지 않은, 비겁하지 않은 영화 남한산성

 비극적 역사에 대해 도전한 것, 그리고 그 영상화에 있어서, 다양한 사람들의 아픔을 자기 시각으로 보여주려 했기에 이 영화는 비겁하지 않다. 비록 최소한의 이야기 역동성을 위해 문신은 일당백 무사가 되고, 귀여운 꼬마 아이는 적막한 김상헌의 삶에 미소를 불어넣지만, 역사의 기록과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 틈에 이 정도를 채워넣는 것은 작가적 상상력의 범위 안이라 할 것이다.

 역사를 다룬 한국영화를 늘 기다리는 영화팬으로서, 비극적 역사의 여백에 상상력으로 활기를 불어넣고, 당시 지배층의 비겁함도 외면하지 않은 남한산성은 참 고마운 영화이다. 비록 흥행에 실패했고, 캐스팅의 성공일 뿐이라는 혹평도 있으나, 눈 내리는 한겨울의 남한산성으로 시작해 삼궤구고두례로 끝나는 남한산성은 여전히 여러 가지로 내게 기억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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