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한국식 피카레스크의 정수 - 더테러라이브(2013, 김병우 감독)

마셜 2024. 4. 2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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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 영화 이미지)

 
더 테러 라이브
2013 SUMMER, 한강 폭탄테러의 생생한 충격이 독점 생중계 된다! “지금… 한강 다리를 폭파하겠습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밀려난 국민 앵커 ‘윤영화’는 생방송 진행 중, 신원미상 청취자로부터 협박전화를 받는다. “내가 터뜨린다고 했죠…?” 장난전화로 치부하며 전화를 끊은 순간, 마포대교가 폭발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눈 앞에서 벌어진 끔찍한 재난이 ‘테러사건’이라는 단서를 쥐게 된 윤영화! “신고하지마.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야!” 마감뉴스 복귀 조건으로 보도국장과 물밑 거래를 시도한 그는 테러범과의 전화통화를 독점 생중계하기에 이른다.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언론사 건드려 봤자 좋을 거 없어!” 21억이라는 거액의 보상금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테러범. 한편 윤영화는 자신의 귀에 꽂힌 인이어에 폭탄이 설치된 사실을 알게 되는데… 테러범의 정체는 무엇이며, 왜 하필 앵커 ‘윤영화’를 지목했을까?
평점
8.3 (2013.07.31 개봉)
감독
김병우
출연
하정우, 이경영, 전혜진, 이다윗, 김소진, 김홍파, 김해인, 한수현, 최덕문, 최진호, 강진아, 강신철, 임현성, 백성철, 이청희, 김대명, 손성찬, 김재철, 신정섭

 

 상징과도 같은 영화 포스터, 중앙의 심각한 아나운서의 표정이 영화의 모든 걸 말해주는 듯하다. 자리 욕심에 불타오르는 아나운서의 순간적인 잘못된 판단이 테러를 생중계하는 상황을 만들어버린 후,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전처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아나운서의 분투가 영화의 핵심을 이루고, 영화는 실제 시간과 똑같은 진행속도로 2시간 러닝타임 만에 모든 것이 끝나는 속도감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별 것 없는 '말로 때우는' 실황중계식 영화가 어떻게 500만 관객을 모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영화의 매력이다. 

 

 이제 개봉한 지 10년이 넘게 지나, 영화를 OTT를 통해 접하고 나니, 2시간이 아깝지 않았다는 생각과 함께, 요즘 말하는 피카레스크 장르 영화는 이렇게 한국화되는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었다. 여기서 언급하는 피카레스크는 문학 구성방식으로서 독립된 이야기들이 한 작품을 이루는 방식을 뜻하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도덕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류의 이야기를 말한다. 

 

 이 영화의 핵심인물들은 모두 악한이고 때로는 답답한 사람들이다. 주인공 윤영화 아나운서는 중간에 폭로되듯이 뇌물상남을 주기적으로 받았으며, 기자인 아내의 기사를 가로채 아나운서의 정점에 올랐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테러범의 연락을 비도덕적으로 독점하여, TV보도로 재기하고자 애쓴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인물이다. 

 

 이경영이 연기한 차대은 보도국장은 그야말로 악의 화신이다. 테러범과 독점 통화를 이어가기 위해, 요구하는 21억이나 되는 거액의 돈을 그냥 송금해버리는 것은 약과요. 그 후에도 테러범이 더 많은 사람을 죽여야 진압 명분도 서고, 그림이 완성된다며, 목숨이 걸려있는 아나운서 속도 모른 채, 강경하고도 자극적인 대응을 계속해서 주문한다. 

(출처: 다음 영화 이미지)

 

 이러한 강경 대응을 망설이는 아나운서의 약점을 경쟁 방송국에 남겨 궁지에 몰고, 더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나중에 보자며 쿨하게 빠져나가는 건 거의 악의 화신 수준... 평소에도 너무나 많은 악역 연기를 해왔기에, 이경영의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것에 더해서, 이미지 자체가 비열하고 포기를 모르는 악한에 맞춰져 있기에, 그야말로 이경영을 위한, 이경영에 의한, 이경영의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경영의 악당 연기는 그만 좀 보고 싶다...)

 

(출처: 언론중재위원회, '입장으로 본 더테러라이브 중)

 

  영화에서 유일한 선한 인물로 죽음에 안타까움을 주는 인물 이지수 기자이다. 윤영화 아나운서의 전처로, 위험현장을 마다하지 않는 기자정신으로 끊겨버린 마포대교 상판에 고립되고, 그 와중에도 취재와 방송을 이어가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다. 정의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윤영화 아나운서도 전처의 사고에 적잖이 충격을 받고, 테러범에게 이제 만족하냐고 추궁하는데,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던 테러범이 '죄송합니다'라고 궁색한 한 마디를 내놓을 때 관객들의 분노는 더욱 상승하고, 안타까움에 윤 아나운서와 잠시 한 편이 된다. 초반에는 뭔가 스타 아나운서와 있을 법한 이혼을 한 출세욕이 강한 기자 정도로 이미지가 설정되지만, 후반부 남편의 출세를 위해 기사거리를 빼앗겨왔던 억울한 진짜 기자임이 드러나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안타까운 죽음으로... 테러범이 너무 선한 인물로 치우치지 않도록 긴장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출처: 다음 영화 이미지)

 

 11년 전 개봉했던 영화의 팜플랫 이미지를 다음 검색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이제는 무슨 유물처럼 느껴지는 한 페이지인데, 사실 거의 한 장소에서 주인공 위주 몇 인물만 등장하는 알뜰한 영화임에도 대규모 재난 영화인 것처럼 묘사한 것이 재미있다. 스케일이 커야 일단 이목을 끌 수 있는 영화흥행 시장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고, 홍보가 꽤나 공격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듯 각종 시사회 정보가 하단을 빼곡히 채우고, 그 아래에는 네이버의 검색창과 영화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이제는 MZ은 거의 떠난 트위터 정보가 기재되어 있다. 최선을 다한 정보수록식 팜플랫은 여전히 이채롭고, 그간 홍보방식이나 검색 트렌드에서 많은 것이 변했구나 싶어 시간 참 빠르다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테러범은 안타까운 최후를 맞고, 관객들의 일말의 기대감도 무시하듯, 영화 결말에서는 죽음이 이어진다. 국가권력과 언론권력이 결탁하여 본인을 희생양으로 삼고자 함을 눈치챈 윤 아나운서는 결국 스스로 폭탄을 터트리며, 본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항거를 보여준다. 그 또한 도덕적으로 심각하게 많은 결함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주도적으로 자기가 극을 마무리함으로써 다른 캐릭터와 차별성을 만들어내는데, 이런 면이 있기에 이 작품이 끝까지 재미있고, 결말도 좋게 평가받고 있는 듯하다. 

 

 실제 한국사회가 이 정도로 도덕성이 결핍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가진자와 권력 위주로 돌아가는 듯하면서도, 그래도 순리대로, 상식대로, 더 많은 착한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게 한국사회라는 생각도 든다. 일반 관객들이 보기에, 전 국민의 신뢰를 얻었던 윤영화 아나운서와 그를 조종하는 보도국장도 언론권력이요. 국민의 안전보다는 정치적 타격 없는 해결만을 우선시하고 고집하는 경찰청장, 경찰청 팀장, 청와대 비서관 모두 국가권력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높으신 권력 핵심 분들을 응징하는 테러범이 어찌 보면 선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이야기를 마무리했기에, 영화는 정말 재미있고, 속도감이 느껴졌으며, 결말의 임팩트도 더 크게 느껴졌다. 

 

  같은 감독의 다음 작품을 아직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기대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의 수작이며, 10년이 넘어서 보아도 특별히 어색한 부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현실감이 있고, 언론권력과 국가권력의 본질을 잘 비꼬았다. 

 OTT에서 한 번 틀어볼까 하고 고민하게 계시다면, 한 번 클릭해보시길... 재난 영화가 아니기에 작은 화면도 상관없고, 의외로 잔인한 장면도 별로 없다. 무엇보다도 영화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악인들이 또 다른 깨끗하지 못한 인물에게 응징당하는 피카레스크 장르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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