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미미 레더 식 낭만과 SF의 만남 - 딥 임팩트(1998, 미미 레더 감독)

마셜 2024. 4. 1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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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임팩트

 

1. 1998년 세기말, 그 불안감의 투영 - 혜성 충돌을 다룬 두 영화

 세기말이었다. 한국은 IMF 금융위기로 그 불안감이 더 심했다지만, 딱히 경제위기를 겪지 않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세기말 불안감이 없지 않았던 모양이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SF영화가 그 해 나란히 개봉했고, 두 작품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은 각각 미미 레더와 마이클 베이라는 명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에 위축될 대로 위축된 한국 영화팬들에게도 화제가 되었다.
 '딥 임팩트'의 제작 사실이 새어나가서, 소식을 들은 경쟁사에서 부랴부랴 만든 작품이  '아마겟돈'이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지만, 두 영화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감독의 작품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기에 흥미로운데, '딥 임팩트'는 SF의 외피를 쓴 가족드라마(혹은 휴먼드라마)라면, '아마겟돈'은 그야말로 SF 블록버스터였기에, 두 영화를 비교하며 본 영화팬들은 더 즐거울 수 있었다. 
 흥행에 있어서는 '아마겟돈'이 완승을 거두었고, 작품성에 있어서도 '딥 임팩트'가 딱히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25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딥 임팩트'가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를 만든 사람은 미미 레더 감독이니, 어느 영화가 승자였는지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너무 별로인 포스터)(출처: 다음 영화)

 

2. 다가오는 종말에 대비하는 사람들 - 대통령과 기자

  지구를 파멸시킬 혜성을 우연찮게 발견하는 고등학생부터 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2시간 동안 나름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당연히 지구 종말을 막기 위한 SF영화다 보니, 우주선 조종사 들도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는데, 이러한 병렬적 구성은 서로 유기적이지 못하다 보니, 혹평을 받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영화가 끝나고 되짚어 보니 서로 다른 여러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그만큼 미미 레더가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고도 할 수 있고, 인기와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던 TV드라마 'E.R' 스타일이 아직은 짙게 묻어났다고도 하겠다. 
 아무래도 가장 와닿는 인물은 대통령 탐 벡과 기자 제니 러너이다. 너무 미국식 영웅주의라 진부한 설정이기는 하지만, 사싱 지구적 위기가 처했을 때, 미 대통령이 나서서 브리핑하는 건 이제 익숙하다. 또한, 이 영화 정도면, 그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도 비교적 잘 드러난다. 지구 종말 위기 직전 입수한 제보를 잘 활용하여, 일약 최고 스타 앵커가 되는 제니 러너도 처음에는 햇병아리 티가 나는 기자였다가... 나중에는 제법 노련한 진행 솜씨를 보이며, (물론 그 사이 마티니 한 잔을 빌려 진상질도 부리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초반 둘의 티키타카와 개별 약진이 영화 흐름을 진행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그 사이 기억에 남는 장면도 만들어 낸다. 
 

3. Presidential favor - 멋있다. 대통령의 위엄

 한국이나 미국이나 같은 대통령제, 대통령은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고, 엄중한 경호를 받는다. 이 영화에서도 대통령 톰 벡은 지구 멸망 급 대재앙을 앞두고 엄청난 대형 대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이 비밀에 대해 냄새를 맡은 기자를 직접 만나서 채찍과 당근을 사용하며 뉴스 엠바고를 이끌어낸다. 

(협박과 협상의 중간 어디엔가)(출처: 다음 영화)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꽤나 인상적이었는데,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라 더 그런 것 같다. 뉴스 보도를 통해 국민들을 카오스에 빠트릴 수 있는 기자를 따로 데려온, (거의 납치) 대통령은 14일 엠바고를 요청했다가, 기자가 패기 있게 물러서지 않자, 2일로 절충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도 기자가 삐딱한 태도를 보이자, 'Presidential favor'라며, 반 협박으로 이를 관철시킨다. 물론, 이러한 채찍 외에도 기자회견 때 맨 앞줄에 앉혀주겠다며 당근도 제시한다. 수없이 다시 본 영화이지만, 이 장면은 볼 때마다 꽤나 인상적이다. 모건 프리먼의 진지한 눈빛과 목소리도 씬의 무게감을 더하고, 아직은 이 재앙의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전, 엉뚱한 제보로 오해하고 있는 기자와 대통령의 기싸움은 뭔가 블랙코미디 같으면서도, 단 번에 기자 제니 러너도 주인공으로서 강한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주게 된다.
 

(약속을 지킨 대통령)(출처: 다음 영화)

 
  그리고 대통령은 약속을 충실히 지켜서, 낯선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정신 못 차리는 제니 러너를 앞줄 지정석에 앉혀주고, 첫번째, 두 번째 질문자로 연달아 제니를 지명한다. 예상치 못한 대재앙 발표에 넋이 나간 제니가 변죽을 올리는 질문만 하다가, 비로소 정신을 차려, 매달리듯 세 번째 질문을 얻어내고, 질문다운 질문을 하는 모습도 다시 보니 눈에 들어오는 제니의 성장..  어쨌든 이 티키타카를 통해 영화는 SF 재난 영화로 장르가 바뀌고, 제니는 주인공으로서 입지를 관객들 앞에서 탄탄히 한다. 
 

 4. 결국 지구를 구해낸 6명의 영웅, 그들도 돌아보면 평범한 사람

 미미 레더는 극적인 평가 악화 때문에 한 동안 작품을 하지 못했고, 그래서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전성기라 평가받는 초반, 'E.R'과, '딥 임팩트', '피스메이커'에서 모두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꽤나 신경을 썼다. 
 이 영화에서도 지구를 구하기 위해 떠나는 6명의 우주선 조종사들은 모두 평범한 아버지이자, 어머니, 그리고 남편으로 묘사된다. 그 와중에 러시아인 조종사는 아무런 배경 스토리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피스메이커의 빌런을 다시 만난 건 반가우나, 아까운 스팟 한 자리를 활용 못한 듯해서 아쉽다.  

(6명의 영웅)(출처: 다음 영화)

 
 좀 그런 것이, 경쟁작 '아마겟돈'에서도 러시아와 협력하여 우주선을 보내는 방식으로 혜성에 대응하는데, 이 불필요해보이는 장치가 공통적으로 나타난 걸 보면, 과학기술 차원에서 정말 러시아 기술이 필요했던 건지... 소련이 해체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당시 시대 배경 탓인지.. 아무튼 관객 입장에서는 약간의 캐릭터 낭비 같아 보였다.  
 실질적으로 위기를 타개해야하는 것은 이 6명,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이들의 행보에 더욱 관심이 집중된다. 빠듯한 연료를 쏟아부어 자폭을 통해 큰 혜성을 처리하자는 노장의 아이디어에  일행은 순간 할 말을 잃는다. 하지만, 이내 그게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고, 방향을 돌려 혜성을 향한다. 
 그 와중에 조종사 한 명 한 명의 가족이 기지로 달려와 우주선의 아빠, 엄마, 남편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그야말로 눈물을 부르는데, 아들이 모두 군 장교라 끝내 만나지 못한 노장 조종사가 사별한 아내에게 진심을 담아 인사를 건네는 장면 또한, 로버트 듀발의 명연기가 더해져 가슴이 찡해진다. 

(마지막 명대사)(출처: 다음 영화)

 
 자폭 직전, 주 조종사와 부 조종사가 나누는 대화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대장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나야 말로 제군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네.

 
 
 죽음을 앞두고, 이 멋진 짧은 대화를 나눈 후, 메시아 호는 임무를 성공시키고, 인류는 파멸을 피한다. 그 후 나오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이나 그 외 여운 등은 영화 마무리를 위한 쿨다운이었을 뿐, 그렇게 인상적인 부분은 없었다. '아마겟돈'처럼 인류의 승리라며 오글거림을 폭발시키지는 않고, 커다란 사진을 등장시켜 희화화시키지도 않지만, 어쨌든 명대사의 여운이 지나감과 동시에 영화는 끝난다. 
 이제는 거의 26년 전 영화라, 여러 면에서 촌스럽기도 하고, 캐릭터별 스토리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과학적 고증만큼은 철저한 편이고, 과학에 무지한 나 같은 관객들도 쉽게 이해할 만큼 혜성 충돌의 위험성도 잘 설명해 준다. 유튜브 쇼츠에 익숙한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겠지만, 과학적 지식에 바탕을 둔 혜성 충돌과 미미 레더의 장기인 '사람 이야기'를 한 영화에서 보고 싶으시다면 2시간을 투자해 보셔도 좋다. 한창 풋풋한 '프로도'와 단역에도 충실한 '존 파브르'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재미있는 볼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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