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광, 조선의 영원한 이방인'은 학술서인 동시에 가장 대중서에 가까운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은 역사 '학술서'와 '대중서' 경계에 있다.... 혹은 하이브리드 역사 학술서이다... 라고 소개하지만, 사실 학술서의 명확한 정의를 아직 정립하지 못했다는 건 먼저 고백해야할 것 같다. 그래도 뭔가 배우는 것에는 도전정신도 필수....이 책에서 볼 수 있는 학술서의 면모를 몇 가지만 살펴보자.
1. 각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역사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베스트셀러 대중서 중 '각주, 참고문헌, 찾아보기'가 잘 정리된 책은 흔치 않다. 이 책은 그야말로 치밀하게 한 쪽 한 쪽 각주를 통해 인용출처와 부차적인 정보, 그리고 저자 의견 등을 부기함으로서, 역사 지식의 확장을 원하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깊이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책 155쪽 하단 각주에는 성종대의 이른바 '현석규 사건' 관련 왕과 대신들 간의 토론이 대화체로 수록되어 있는데, 각주를 통해 이에 대한 저자 의견을 부기했다
'계승범 부기: 여기에 나오는 임사홍과 전후 현석규의 발언은 김맹성이 임사홍의 진술을 받아 와서 보고하자 어전에서 변명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록 원문은 임사홍의 진실에 대한 현석규의 반박을 대조하기 위해 시간차를 무시한 채 기술한 것 같다'
전체적인 토론 흐름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학자 기준으로 수정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을 그냥 넘기지 않고 부기한 꼼꼼함이 잘 드러나는 부분. 아울러 책 내용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기에 본문에 넣지 않고 각주로 뺀 부분도 적절해 보인다.
그 외에 책 전반에 걸쳐 실록 출처가 모두 기록되어 있고, 챕터(시기)별로 유자광의 주요 행보를 따로 정리해둔 점, 무엇보다도 책 말미의 방대한 참고문헌과 '찾아보기'가 그야말로 학술서로서의 기품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이 다소 특이한 '공동집필'이기에, 전체 학술서에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책 242쪽 각주를 보면, 공동저자인 계승범 교수가 故 정두희 교수의 원고를 이어서 33장부터 집필하기 시작했음을 다시 한 번 밝히고 있다. 이러한 꼼꼼함이 어찌 보면 학술서 아니 모든 저술의 기본일 것이다.
2. 엄격하게 구별되어 기술된 저자의 의견
학술서의 또다른 면모로는 엄격한 논증 끝에 과감하게 제시되는 저자 의견이다. 많은 인기를 끄는 역사 대중서들도 허술한 논증 혹은, 소수설 위치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하는 주장을 근거 제시도 없이 마치 통설처럼 제시하곤 하는데, 이는 대중을 호도할 수 있는 위험한 것이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논증 후 과감한 의견 제시'는 매우 많은데, 그 중 간결한 의견제시를 한 번 옮겨본다. 책 275쪽을 보면, 유자광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이 지나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사화를 일으킨 주범으로 유자광만을 부각한 점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같은 <연산군일기>에 들어 있는 사관의 다른 평과도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김일손의 사초를 문제 삼았던 이극돈의 졸기 마지막은 "당시 사람들이 이르기를 무오년의 화는 이극돈이 수악首惡이라 하였다"라는 문장이다. 그런데 앞서 살핀 사론(유자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자광만 물고 늘어져서, 독자로 하여금 사화의 원흉이라고 믿도록 기술하였다. 모순이다.
모순이라는 짧은 지적으로 마무리하는 이 문단은 선굵은 액션영화의 씬 마무리를 보는 느낌인데, 그 앞에 자료에 근거한 논증을 제시함으로서 독자가 저자 의견을 잘 구분해 내고, 역사에 대한 공부를 확장할 경우, 길을 찾기 쉽도록 하고 있다. 이런 부분은 인기 대중서에 특히 부족한 부분이라,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3. 학술서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핵심 메시지가 있어야 하며, 이 메시지가 분명해야 한다.
물론 학술서에도 개설서 혹은 여타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기에, 논문처럼 중요한 한 문장으로 메시지를 잡아낼 수 있다고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저자 본인이 연구한 결과는 반드시 짧게 정리될 수 있어야 하며, 그 정리한 문장은 분명해야지만 독자를 이해시킬 수 있다.
이 책은 이 부분에서도 모범적이어서, 유자광이 흔히 알려진 것처럼 단순한 서얼 출신 간신배가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눈여겨봐야할 역사적 인물이며, 그의 통해 조선시대 특징을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서얼 출신임에도 무려 다섯 임금을 섬기며 총애받았고, (물론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보기 드물 정도로 대간을 상대로 상소를 통해 정면대결을 했던 인물이었다. 결국 유자광이 유교이념에 반해 저지른 과오에 비해 과하게 비난받고 복권되지 못한 이유는 당시 지배층이 밥그릇을 지키는데 있어서 가장 방해가 되는 서얼 출신이었기 때문임을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다.
결국 죄는 모호하나, 서얼 출신으로서 적자.양반.문신으로 구성된 유자광은 늘 공적이었고, 왕의 총애를 통해서만 정치적 입지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좁은 길을 유자광은 성공적으로 걸었기에 더욱 많은 공격을 받았고... 유자광의 노년에는 적자.양반.문신들의 공세 앞에 왕조차 그를 복권시키거나 중용하지 못했다. 그만큼 조선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면서 최소한의 지배층 내부의 유연성 혹은 개방성 마저 사라졌고, 서얼 차별로 대표되는 권력독점은 왕조차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지배층의 밥그릇을 건드리는 문제로 공고화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는 모두 책의 에필로그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내용으로, 독자 입장에서 편하게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학술서의 특징인 '두괄식이자 미괄식'에 가까운 면모 또한 보여주고 있다.
책을 통해 새로이 알게된 부분 또한 많은데, 몇 가지만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생각보다 연산군의 일부 지적은 논리적이었다.
피바람을 일으키며, 폭군 행보를 보이다 반정으로 물러나게 된 연산군이지만, 이 책을 통해 대간과 맞서 논쟁하는 연산군은 생각보다 논리적이었다.
선왕께서 유생을 죄 주지 않았으므로, 이처럼 위를 능멸하는 풍습이 일어났다. 일마다 수의收議한 뒤에야 처리한다면, 임금의 권한은 어디에 있는가? - 250쪽
왕안석은 신하 중에서도 소인인데 나에게 비하니 매우 유감이다. ~~~~ 이것이 어찌 우연히 생각하고 한 말이겠는가? 우연히 생각하였다는 것은 간곡奸曲한 말이다. 대간의 지책은 부월을 피하지 않는 법이다. (한나라의) 주운朱雲 같은 이는 난간을 부러뜨리면서까지 조정에서 다투었으니, 모두 말할 데에서 말한 것이다. 지금은 다만 입묘의 가불가 (의견만) 말할 뿐인데, (왕을) 지목해 배척함은 불가하다. 또 (왕의) 잘못을 바로잡아 구원하되 악을 숨기고 선을 드러내는 것이 신하의 직책이다. 더구나 신진 선비가 학문만 알고 사체는 모르면서, 스스로 내가 대간이 되었으니 말이 지나치더라도 손상이 없을 것이라 하여 금수를 임금에 비하기까지 하였다. 이것은 권세가 대간에게 있는 것이니, 국가가 오래갈 수 있겠는가? 이것은 나라를 그르치는 일이다. (다들) 물어보아라 -355쪽
흔히 사극 등에서 형성된 광인에 가까운 연산군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물론 연산군은 조선 왕 중 유일하게 대신을 어전에서 물리력으로 체포해서 끌어낸 왕이었고, 분명 폭군이라 불릴 만큼 가혹한 처벌을 일삼았지만, 적어도 그와 대간의 설전을 보면, 적자.양반.문신 중심으로 공고화되어가는 지배층과 왕 사이의 치열한 힘겨루기의 한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이랬던 연산군이 반정으로 밀려났으니, 그 후 왕들이 왕권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했던 것도 일면 당연해 보인다.
2. 유자광의 국방강화 상소는 거의 놀라운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조선 명재상 김육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실무'에 강점을 가진 관료로 끊임없이 민생 관련 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물론 유자광을 김육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놀랍게도 유자광 또한 정말 '실질적인 국방 강화'를 부르짖은 적이 있다. 대신의 지위에 올랐지만, 어쨌든 갑사(군인) 출신이었던 유자광은 조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군사적 요충지인 의주에 대한 방어 강화를 역설했다. 무관 경험이 영향을 주었는지, 아니면 북경 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4부, 29 의주 방어책을 올리다'(211쪽~)에서 다뤄진 유자광의 상소는 그 내용의 세밀함도 대단하지만, 왕에게 같은 내용을 두 번이나 상소하고, 지도까지 바친 점을 통해 강한 추진력이 엿보이고, 무엇보다도.. 그 후 조선 후기에 있었던 두 차례의 비극적 전쟁에서 의주가 어떤 위치였는지를 생각하면,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이 실로 대단하다 하겠다.
무협지나 대하역사소설 주인공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유자광을 살펴본 이 책은 풍부한 내용과 깊이를 자랑하기에 이야기할 것은 더 많지만, 특별히 비판할 부분을 찾지 못했기에... 여기서 줄이고자 한다. 어떤 글이든 완벽할 수 없고, 비판이 없다면 의견이 부족한 것인데.. 확실히 아직 내가 역사공부가 부족하기는 한 모양이다. 어쨌든 대중서만큼이나 재미있지만, 어느 학술서 못지 않게 깊이있는 하이브리드 학술서, 조선시대 다섯 임금을 섬기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유자광의 절규와 지능적 처신이 궁금하다면 한 번 도전해보시길, 무엇보다도.... 정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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