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모습 - 한국사

벌써 8년 - 대동법과의 인연 #1 역사저널 그날 그리고 조선 최고의 개혁 대동법

마셜 2024. 4. 1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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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
 

 
 벌써 8년 전 글이다. 왜 썼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16년 8월 3일에 써두었던 글을 우연히 보니, 꽤나 정성을 들여썼구나 싶어서 한 번 놀라고, 시간이 참 빠르구나 실감하며 두 번 놀란다. 그 때 생각을 그대로 옮겨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여,  오탈자와 어색한 문장만 고쳐서 그대로 옮겨본다.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에, 조선사를 배우지 않은 이는 없을테고, 따라서 조선사에 중 한 획을 그은 대동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도 그래서, 고교 국사시간에 그리고 대학 교양수업을 통해서 들었던 지식 중 대동법에 대한, 지식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몇몇 기억들이 살아 있었다. 하지만, 관심이 근현대사에 집중되었던 대학시절의 영향도 있고.... 졸업/취업 등으로 이어지는 삶의 변화 속에서 대동법에 대한 독서나 다른 학습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이고... 누구에게 한 얘기인지, 구체적으로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종부세와 대동법을 비교하면서 종부세 제도가 긍정적이라는 점을 역설한 적이 있다. 이제는 나 혼자만 기억나는 일이 되었고, 애초에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았을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즉석에서 대동법을 떠올린 게 신기하기는 하다. 지금 기억에는 "종부세가 한국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제도가 될 것이고 그 역사적 의미는 대동법 만큼 클 것이다"라는 당당한 주장이었는데, 누군지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내 엄청난 주장의 근거의 빈약함이나 논리의 비약 등을 지적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다시 거의 10년이 지나고, 이제 약간은 꼰대가 되어, 뒹굴거리면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내 독서에 한 획을 그을 프로그램을 만나게 된다. 바로 KBS에서 방영하는 "역사저널 그날".. 지금도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이지만, 가장 임팩트가 강했던 한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난 주저없이 '김육'편을 꼽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대동법에 대해 가장 큰 영감을 준 그 에피소드의 주제는 '대동법'이 아니라 '김육'이었다. 이는 김육의 인생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하고, 대동법 성립에 대한 기여가 절대적인 데다... 영웅담만큼 후세에서 재미있게 듣기 좋은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겠으나... 몇 권의 독서를 마치고 돌아보니, 이정철 박사가 담담하게 적었듯이, '대동법'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한 회, 한 시간짜리 가벼운 토크쇼 같은 프로그램의 임팩트는 강렬해서, 대동법과 김육의 존재를 잊을 수 없게 되었고, 무엇보다 당시 전문가패널로 출연했던 이정철 박사를 기억해두게 되었다. 희미하게 이름을 기억했던 '김육'의 진면모를 알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고, 아마추어 패널과 사학자들과의 다소 거친 표현과 유머 섞인 발언을 통해서 '대동법'이 당시 민중에게 주었던 의미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 대동법을 통해 당시 세금이 거의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대동법 성립 후인 현종시대의 농민들이 이를 두고, 대동법이 없었으면 우리 모두 굶어죽었을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참고로 이 '10분의 1'이라는 수가 내겐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을 반복해서 읽으면서도 이 수를 다시 찾기 위해 애썼다. 결국 찾아내긴 했지만 의외로 결론이나 주요분석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아마도 '10분의1'로 세금이 경감되었다는 놀라운 연구결과를 강하게 주장하기에는 아직은 근거나 사료가 부족하거나, 지역별 경감의 편차가 워낙 심해서 일률적으로 표현하기에는 부담이 되었기 때문인것 같다.)
- 김육은 광해군의 폭정에 벼슬할 뜻을 꺾고 양평에 은거하였는데, 양반 신분임에도 너무나 가난하여 직접 숯을 구워다 한양에 팔았다고 한다.
 
 이렇듯, 절망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 소시민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어느새 이정철 박사의 책를 언젠가 꼭 읽어봐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 한창 슬럼프에 빠졌을 때 이정철 박사의 이름을 기억해내고 관련 저서를 책 한 권을 사들였는데, 책 제목부터가 연구에 평생을 건 사학자 답게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 이었다. 제법 두툼한 책은 지금 가장 아끼는 책이지만, 읽는 과정은 전혀 녹록치 않았다.
 당시에 워낙 정신적으로 힘들어서였는지.. 아니면 진지하게 독서를 한 습관 자체를 잊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열정이 넘치는 상황에서 구매했음에도 쉽게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이정철 박사가 박사학위논문으로 쓴 것을 재편집한 이유로 화법이 일반적 교양서와 다르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기본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대동법의 성립과정 자체가 복잡하고 지난했기 때문이었다.
 힘들게 힘들게 끝까지 읽어낸 후 뿌듯함이나 성취감과 상관 없이 남은 지식은 별로 없지만, 이정철 박사가 대동법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메시지, 그리고 거의 망할 뻔한 왕조인 조선을 리빌딩해준 그 제도를 현재에서 어떻게 읽어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름의 기준이 정립된 것 같다.
 
 지금 한국의 위기도 그렇지만, 당시 조선의 혼란과 위기는 일시적이거나 우연의 결과로 나타난 게 아니다. 전란을 겪으며 더욱 엉망이 되기는 했지만, 공물이라는 조세제도는 근원적인 결함이 내재되어 있었고, 전쟁과 부패 등으로 통치체제가 전반적으로 문란해지자, 그 폐해가 도를 넘어섰다고 봐야할 것이다. 여기서 인정해야할 엄연한 사실은 연구개발 혹은 교역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 사실상 막혀있었던 조선사회는 가지고 있는 자원(부존자원 및 인적자원 전부 포함) 대비 생산능력이 거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두 번의 전란을 겪으면서 전쟁물자 및 전후 부담금을 만들기 위한 추가 부담이 줄줄이 이어졌고, 이러한 과중한 부담이 민중을 아사 직전으로 몰았을 뿐 아니라, 국가에 대한 신뢰 자체를 무너트리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이러한 분석에 깊이 공감하는 내 모습이 현재 한국사회 또한 비슷한 문제점을 갖고있음을 드러내는 것 같아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가지 않는 잠재성장력, 강대국 사이에서 근본적으로 돌파하기 어려운 역학관계, 저출산과 급격한 인구노령화.... 자원 대비 생산능력의 명확한 한계에 있어서, 조선시대와 현재 한국이 기본적으로 같다고 하면 과장이거나 논리적 비약일까.... 이러한 한계에 봉착하게 되면 결국 지배층은 분화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자와 뭔가를 바꿔보려고 하는 자로... 뭔가를 바꿔보려하는 자들이 잘 특정되지도 않는 다수 반대파들과 힘겹게 싸워나간... 그와 동시에 매뉴얼을 쓰고 실제로 법을 실시한 200년에 가까운 기록이 바로 대동법의 성립과정이 아닌가 싶다.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에서도 잘 드러나듯 의외로 대동법 성립과정에서의 김육의 역할은 절대적이지 않다. 물론, 이정철 박사의 의견에 내가 동의한 것일뿐 학계 통설에 반하는 것일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대동법의 법조문을 만든 것도 김육이 아니고, 그 시행과정을 직접 관리감독한 것도 그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전반적인 법시행에 관여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역할을 했다. 즉, 법 시행을 위해 똑똑하면서도 의지가 있는 관료를 책임있는 자리에 앉히고자 애썼고, 누군가 그 관료를 공격하면 모든 것을 걸고 그 공격에 맞섰다. 이 당시 정책에 대한 공방은 상소와 공개토론으로 이루어지기에 상호간에 엄청난 부담이었다. 실제로 이러한 방어와 반격과정에서 많은 친한 이들과 대립하기도 하고, 스스로 사임하거나 다른 사람을 사임시키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는 것은 개인적 능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한데, 김육이 죽는 순간까지 대동법의 온전한 시행을 걱정하고 떠난 후, 이시방이 보여줬던 책임감 등이 김육의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함을 보여주고, 그와 대립하다가  결국은 관직에서 물러난 김집이 김육에 대해 '의견을 달리했지만 우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회한 것 등은 나라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명재상의 풍모를 엿보게 한다.

(2편으로 계속)

 

 

 <원문 링크>

 

대동법과의 인연

한국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에, 조선시대의 역사를 배우지 않은 사람이 없을테고, 따라서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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