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풀이 좁게 느껴졌던, 또는 그 감독이 그 감독 같았던 여자배구계에 외국인 감독이 등장했다.
페퍼저축은행과 흥국생명이 각각 아헨 킴,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을 영입한 것!
국내 코칭스태프들에겐 위기감이 느껴질 법하지만, 대부분 팬은 이 흐름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듯하다. 개막 후 처참한 경기력으로 걱정을 자아냈던 페퍼저축은행도 충분히 새로운 시도를 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2위를 달리고 있는 팀의 감독을 별 이유도 없이 경질해 버리면서 혼란을 자초했던 흥국생명에게는 그간의 비난을 만회할 수 있는 훌륭한 인선이라 하겠다.
특히, 흥국생명의 아본단자 감독은 한국에서 볼 수 있으리라 상상하기 어려웠던 명감독이다. 30년 가까운 지도자 경력에, 유럽에서 여러 프로구단을 이끌었으며, 불가리아·그리스 대표팀 감독 경력도 있다. 무엇보다도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력까지 있으니, 처음 SNS에 썰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설마 하는 느낌을 가진 것도 당연하다.
아헨 킴 감독은 이에 비하면 아직은 '젊은이'이다. 프로팀을 이끈 경력도 없다지만, 사실 2군도 없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들과 경력이 일천한 선수들 중심으로 팀을 이끌어야 하는 페퍼 현실을 생각하면, 이러한 건실한 아마추어 경력이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두 인선 모두 결과가 옳은 선택인지를 말해주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꽤나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진짜 재미있는 포인트는 지금부터다.
발표시기를 살펴보자.
2월 17일 페퍼저축은행, 아헨 킴 감독 영입 발표
2월 19일 흥국생명,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 영입 발표
여기에 최근 배구팬들을 시름에 잠기게 했던 김연경 선수 은퇴 가능성 보도를 끼워맞춰보자.
2월 16일 김연경 선수 은퇴 가능성 인정 보도
2월 17일 페퍼저축은행, 아헨 킴 감독 영입 발표
2월 19일 흥국생명,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 영입 발표
김연경 선수 은퇴 가능성 보도는 애초에 다양한 추측성 보도가 나왔기에 최초보도가 언제인지는 확실히 않으나, 어찌 되었든 그 보도와 거의 동시에 두 팀이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 것이다.
배알못 팬에 불과한 내 눈에는, 두 팀이 은퇴 가능성을 시사한 여제를 붙잡고자, 그녀가 마음 편히 배구할 수 있는 외국인 감독까지 영입한 것 같다.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하고 싶은 여제가 괜찮은 감독이 왔다고 해서 현역생활을 연장할지는 의문이나, 여제와 링크설이 나돌았던 신생팀과 현 소속팀은 일단 감독 인선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특히, 몸값이 과히 높아 보이지 않는 아헨 킴 감독을 영입한 페퍼는 뭐랄까.. 깜찍하달까.. 돈이 없으니 정성으로 승부하는 가난한 남자친구 같은 느낌이다.
경쟁은 스포츠의 본질이고, 이러한 경쟁은 늘 반갑다.
덕분에 배구팬들은 한국에서 미국배구와 유럽배구를 경험한 두 감독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두 팀은 나란히 올 시즌이 끝난 후 여제의 은퇴를 만류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경쟁 속에 연대까지 볼 수 있으니, 여제의 은퇴 언급이 팬으로서 너무나도 아쉽지만, 답답할 정도로 정체되어 있는 여자배구단 복수 구단의 합종연횡 가능성까지 만들어냈으니... 역시 진정한 여제다운 영향력이다.
온갖 잡음을 다 일으키고... 특히, 나름 팬이었던 권순찬 감독을 대차게 내친 흥국보다는 페퍼가 더 끌리는 건 사실. 하지만, 여제가 은퇴만 재고해준다면, 어느 팀이라도 충분히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연경 선수. 꼭 은퇴예고 후 한 시즌만 더 뛰어서, 은퇴투어에 전국 배구팬이 운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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