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상 28] 벽화는 사실을 담고 있었어... - 디트로이트 이야기 (5)
디트로이트의 리즈 시절. 그 당시의 시대상을 유추해볼 수 있는 대형 예술작품이 디트로이트 미술 박물관에 남아있습니다. 바로 아래의 대형 벽화인데요, 이것은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디에로 리베라의 작품입니다. 그는 유명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의 남편으로도 매우 유명한 인물입니다.
미술관 안의 넓은 로비를 이 광대한 벽화가 둘러싸고 있는데, 그 무게감과 크기가 압권입니다. 그 존재를 전혀 모르고 로비에 들어서다가 떠-억 하니 마주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많이들 놀라더라구요. ㅎㅎ 디에로 리베라는 당시 디트로이트 발전의 원동력이자 강력한 공업 생산력을 장장 9개월에 걸쳐 역동성 있게 벽화에 담아내었습니다.
제가 볼때는 이것이 90년 전, 디트로이트의 리즈 시절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작품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인간 노동자들과 기계 간의 긴밀한 협력, 그리고 이를 지켜보고 있는 대자연과 그것이 허락하는 핵심 자원 및 원소들사이의 관계를 조화롭게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뭔가 심오한 느낌 때문에 한참 넋을 잃고 쳐다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관찰력이 좋으신 분들은 특히 이 벽화의 주인공들인 노동자들에게 눈길이 많이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오래도록 미국에서 살아온 백인 흑인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거의 100년 전에 해당하는 시기에 이렇게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나... 고개를 갸우뚱 하셨을 것 같아요. 실제 그림을 보면 백인과 흑인 외에도 여기에는 아시안과 아랍인들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이 벽화가 그려진 것이 1930년대인데... 교통도 사회적 여건도 충분히 발전하기 이전, 이미 디트로이트는 글로벌 도시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나 궁금해집니다. 멕시코의 거장 디에로 리베라는 후세의 사람들에게 어떤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 과연 아랍인들과 아시안들 역시 디트로이트의 리즈 시절을 함께 이루어나갔던 주축이었을까? 이외에도 그의 벽화에는 수수께기같은 구성과 내용들이 복잡하게 담겨 있어서 아직도 해석을 두고 여러가지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주는 예술작품이라고 합니다.
지도를 한번 볼까요? 디트로이트 지역은 뉴욕 혹은 필라델피아 등 동부의 대도시들보다 상당히 내륙에 위치해 있습니다만... 내륙에 위치한 도시치고는 현재에도 인종 구성면에서도 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bestneighborhood.org 라는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원하는 지역을 골라 지도를 확대하면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요 인종들을 확인해 볼 수가 있습니다.
저도 재미삼아 디트로이트 지역을 확인해보았더니 제가 예상했던 대로의 결과가 나오네요. 디트로이트 시내를 중심으로 8마일 이남 지역에는 단연코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고 (녹색), 교외 지역으로 갈수록 백인들의 비중이 높아집니다. (파란색) 그리고 디트로이트 시내 바로 왼쪽에 디어본(Dearborn)이라는 지역은 연한 갈색의 분포를 보이는데, 이곳은 아랍인- 이슬람교인들의 비중이 특히 높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도에서 간간히 빨간색 지역들이 눈에 들어오시죠? 빨간색 지역들은 전체를 다 합해도 크기가 크진 않지만...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빨간지역들은 아주 좋은 환경과 학군 지역인 곳들과 제대로 겹치거든요. 바로 이곳들은 한중일 그리고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안들의 집중 거주 지역들 입니다. ㅎㅎ
특히 빨간 색 중 제일 하단에 위치한 곳은 세계 20위 권 안에 드는 명문 미시간 대학교 근처 지역이고요. 한중일이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교육을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하는 것은 아주 동일한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맹모삼천지교라는 사자성어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겠지요. ㅎㅎ 또한 위장전입을 해서라도 자녀들을 위해 기어이 좋은 학군으로 이사가고야 마는 한국인들의 근성이 어디 가겠습니까. ㅎㅎ 한미 혼혈로 유명했던 농구선수 전태풍도 디트로이트 출신인데 한국인 엄마의 교육열 덕분에 명문 조지아공대에 입학합니다.
아시안들이 많이 거주하는 트로이 지역. 약 8만명정도의 소도시인 이곳은 사실 미시간 주에서 가장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힙니다. 울창한 숲과 넓직한 전원주택들이 매우 많은 곳이죠. 디트로이트 시내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역설적으로 미국에서 5번째로 안전한 도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시가 안전하니 학군도 매우 좋고 아시안 그리고 특히 한인들에게 매우 인기가 좋은 지역입니다.
자, 이번에는 디트로이트 시내로 들어가봅니다. 시내 중심가 지역에는 1987년도에 건설된 모노레일 (Detroit People Mover)이 있는데요, 지하철을 건설하기에는 디트로이트 시내 자체가 크진 않아서 차선책으로 고가도로 위를 달리는 모노레일을 설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내에서 인근 지역을 금방 이동하기에 안성맞춤인 운송수단이죠.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내 골목들도 재미있구요. 그럼 이 모노레일을 타고 그릭타운(Greek Town) 이라는 곳으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현재 디트로이트 시내의 그릭타운은 카지노와 호텔, 다양한 식당, 상점가들이 밀집해 있는 종합 유흥 공간입니다. 지명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는 것처럼 이곳은 20세기 초에 그리스계 이민자들이 모여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그리스 정교회의 대성당을 건설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레스토랑과 가게, 카페 등을 운영하며 입지를 다져갔다고 합니다. 19세기 중후반에 그리스 본국은 매우 혼란한 시기였죠. 일찌기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전쟁을 시작했으나 유럽 열강의 파워게임때문에 그리스 땅에서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강대국들의 신탁통치 때문에 근대에 그리스를 다스리는 왕들은 같은 민족이 아니라 언어도 통하지 않는 독일계, 덴마크계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얼마전에 서거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 필립공이 사실은 그리스 왕가 출신이라고 하죠. 정말 그의 외모를 보면 남부 유럽의 그리스계처럼 보이진 않고 북유럽 계통같아 보입니다.
아직도 이곳에는 그리스계 사람들이 운영하는 그리스 식당들이 남아있고, 그리스풍을 간직한 건물도 많이 있기에 국가 사적지로 등록되어 관리된다고 합니다. 한때 디트로이트의 파산으로 인하여 이 지역 자체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였지만 최근의 도시 재건 사업을 통해 그릭타운에 활력이 많이 생겼고, 이 지역이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그리스계 미국인들은 매년 이곳에서 그리스 독립기념일 퍼레이드를 열며 그들만의 정체성을 지켜나간다고 합니다.
한편 미시간 전체적으로 약 25만명에 육박하는 아랍 계열 미국인들도 디트로이트를 형성하는 주역 중 하나입니다. 앞서 언급한 디어본이라는 지역은 전체 인구가 약 10만명인데 그중에 30%가 아랍 계열이라고 하네요. 그들 역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이곳에 자동차 산업의 노동력으로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레바논계가 많았고, 이후 예멘, 파키스탄 계열들이 들어오면서 지역 곳곳에 그들만의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이슬람 인구가 증가하자 1960년대 초반 디어본에 대형 모스크가 건축되었다고 해요. 이후 이곳은 지역 무슬림들을 위한 문화 및 종교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사진을 보면 매우 규모가 장대하네요.
최근에는 북아프리카 및 소말리아 지역의 난민 무슬림들도 많이 유입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디어본 거리에는 차도르 등 이슬람식 복장을 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또한 맛있는 이슬람 식당도 많습니다. 현재 시장도 무슬림 계열이구요.
이처럼 이슬람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요즘엔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을 옹호하기 위한 대규모 시위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고 합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도 벌써 2년째로 접어들고 있죠. 무장 정파 하마스를 상대로 지상전에 나선 이슬라엘의 보복은 무고한 팔레스타인 주민의 희생이란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어서 아랍계 미국인들이 바이든의 민주당에 분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통계상 미국 내 전체 아랍 계열 미국인은 약 350만명 정도로 미국 전체 인구의 1% 남짓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밀집해서 거주하고 있는 곳이 바로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애리조나, 오하이오 등 공화/민주 양당 후보의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경합주입니다. 그래서 공화당, 민주당 양당은 이들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그만큼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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