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해오늘! - 미국과 한국의 일상

[미국 일상 25] 나의 리즈 시절, 너의 헤이데이 - 디트로이트 이야기 (4)

꿈꾸는 차고 2024. 4. 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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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상 25] 나의 리즈 시절, 너의 헤이데이 - 디트로이트 이야기 (4)
 

여러분 혹시 "리즈 시절"이라는 표현을 아시나요? 저도 이 신조어를 가끔 따라쓰는 때가 있는데 아마도 그 시작은 10여년 전부터가 아닌가 싶네요. 이 말은 사람이나 어떤 사물이 정말 대단했던 왕년의 호시절을 의미한다는데... 그런데 그 유래를 찾아보니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ㅎㅎ 혹시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선수였던 앨런 스미스를 기억하시는지요?

 

모델처럼 수려한 외모로 유명했던 그가 맨유에 입단하고 나서는 오히려 명성이 옛날만 못했고, 차라리 이전 축구팀이었던 리즈에서의 시절이 더 나았다는 이유가 그 어원이라고 하니... 그 유래가 참 재미있습니다. 영국의 리즈시와 멘체스터시 둘다 실제로 가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ㅎㅎ 저는 누구보다도 이 표현이 실감 나네요. 요즘 그의 훅~간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 인생은 무상이요, 꽃미남도 한순간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꽃미남 앨런 스미스의 리즈 시절, 맨유 시절, 그리고 현재 ㄷㄷㄷ (출처 : IMDb, football365, the SUN)


 

 


한국에 리즈 시절이라는 표현이 있다면 이와 상응하는 비슷한 영어 단어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도 Heyday 또는 Golden age 정도가 적절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뜻 역시 과거에 좋았던 최고의 전성기 시절을 뜻한다고 하니까요.
 
 
 

 

디트로이트의 과거 전성기 이미지 (출처 : lithub.com)

 
 
 


엄청나게 큰 영토 안에 수 만개의 도시들이 산재해 있는 미국... 그 많은 도시들 중에 유일하게도 두 번 파산의 경험을 가진 디트로이트는 쇠락해가는 도시, 암울한 현실 세계의 대명사처럼 불리웠지요.  하지만 그 악명 높은 디트로이트도 한때는 그만의 heyday이자 리즈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사실 1900년대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는 시기까지 디트로이트는 전세계 자동차 시장을 호령하던 중심도시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장면 (출처 : unsplash.com)

 
 
 
 
[미국 일상 21] 별이 빛나는 새벽 운전 - 디트로이트 이야기 (3) 에서 글이 이어집니다. 
 
햄버거 가게에서 낭패를 본뒤... 속상한 마음을 달래고자 무작정 어느 낡은 교회 문 앞에 선 저였지요...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왠걸 저는 매우 깜작 놀랐습니다. 위험한 주위 환경 그리고 낡디 낡은 교회 외관과는 대조적으로 내부의 분위기가 정반대였기 때문이었죠. 안에는 교회 신도들이 모여서 예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요, 실내는 너무나 밝고 환하게 느껴졌습니다. 
 
 

흑인교회 성가대 이미지 (출처 : 어도비 스톡)

 
 
 
 
안에 계신 100% 흑인계열 신도분들이 서로 즐겁게 스몰토크를 나누시다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저에게로 시선이 쏠렸어요! 저도 놀라고 그분들도 놀랐죠. 그들이 반겨주기 무섭게 저는 서둘러 예배당 맨 뒷편에 앉았고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이러한 밝은 느낌의 근원이 무엇때문일까라고 관찰해보니... 특히 여성 신도분들의 화려한 복장이 분위기에 큰 일조를 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어요. 마치 큰 동네 잔칫날,  벼르고 별렀던 듯이 저마다 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챙겨 입고 오신듯했죠!
 
 
 

미국 흑인 교회 이미지 (출처 : theneighborhoods.org)

 
 
 
여기서 무엇보다도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여성분들의 모자였어요. 앉아계신 분들이 모두 화려한 모자들을 쓰고 있더라구요.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모자를 잘 쓰지 않으니, 지금 눈 앞의 각양각색 모자들의 향연이 저에게는 무척 이색적으로 느껴졌는데요, 동일한 디자인은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특색있는 모자들이 여성분들의 머리 위에서 형형색색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미국 영화나 미드에서만 보던 바로 흑인교회 딱 그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에 소울 가득한 찬송가, 흥겨운 리듬, 그리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못하는 흥겨운 움직임들... 
 
당시가 지금으로부터 십여년전, 디트로이트의 파산 직전이었으니... 도시 전체 분위기가 말도 못했죠. 하지만 회색 빛의 바깥 세상과는 딴판으로 적어도 이 실내만큼은 디트로이트의 화려했던 옛시절을 그대로 떠올리게 해주는 것 같아 무척 반가웠습니다. 비록 디트로이트에 큰 부침이 있어왔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으로요. 예배당에 앉아계신 나이 지긋한 여성분들은 자신들이 어렸을 때 디트로이트의 리즈시절을 온몸으로 경험했던 분들이었겠지요... 그들은 이전의 찬란했던 그 시절을 회상하기라도 하듯 각양 각색의 모자들을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착용해왔던 것이지요. 도시는 격하게 허물어져 가고, 도시 전체에 암울함이 드리워졌지만, 그러한 기운도 감히 침범하지 못한 최후의 영역이 남아있는 듯 했습니다. 
 
 
 

미국 흑인 여성들의 다양하고 화려한 모자들 이모저모 (출처 : Etsy)

 
 


 
흑인교회에서의 강렬했던 기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저도 궁금해서 나중에 찾아보니... 오호~ 미국에서 여성의 모자는 예로부터 패션의 표현과 지위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어떤 이들은 미국으로 이주한 아프리카 여성들의 복장 문화가 서구 복장 문화와 융합되면서 그 결정체가 된 것이 바로 이 모자 패션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어느정도 정형화된 의상 분야와는 달리 모자 디자인의 한계란 거의 없으니까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은 밝은 색의 드레스 위에 특히 신선한 꽃, 리본, 깃털로 된 다양한 장식을 많이 사용했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처럼 실제 과일을 모자에 얹어 장식하고 다니던 사람도 있었군요...! 그런데 이들의 신분이 해방되고, 이 중에서도 점차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 재료가 보석과 구슬 등으로 더욱 다양하게 그리고 정교해져갔다고 합니다.

 

 

 

여성들의 이스터 선데이 모자 (출처 : essence.com)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이전보다 더욱 자유로워지면서 그동안 내면의 억눌림을 벗어던지고 이제 마음껏 발산하게 된 것이죠. 이 모자 패션은 그들이 고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얻어낸 지위를 상징하는 문화적 도구로 발전되어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여성의 모자들은 남들의 눈길을 끌고자 더욱 화려하게 장식되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정말 아래와 같은 모자를 쓰고 누군가 나타나면... 바로 기선이 제압 당하게 될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 ㅎㅎ

 

 

 

화려한 흑인 여성 모자 (출처 : churchsuitsforless.com)


 

 

상상가능한 온갖 스타일로 모자 장식이 발전되가자 무언가 제동이 걸리기도 했답니다. Hattitude 또는 Hattiquette이라고 부르는 모자만의 에티켓까지 생겨났다고 해요. 그 내용을 보면 꽤 진지합니다.

  • 어깨보다 넓거나 신발 색깔보다 어두운 것을 착용하지 않을 것.
  • 다른 사람의 모자를 빌리거나 만지지 않을 것.
  • 몸에 착용한 보석 또는 액세서리와 어울리게 모자를 꾸밀 것. 

 

조선시대... 너무 챙이 넓은 갓으로 서로 경쟁하고 온갖 폐해가 일어나자, 조그만 갓만 쓰도록 법으로 막아섰다는 일화가 기억나네요 ㅎㅎ 그리고 날이 갈 수록 여성들의 기싸움도 늘어나서 교회나 행사에서 같은 모자를 쓰는 것에 대한 자존심이 절대 용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ㅎㅎ 이 또한 더욱 다양한 모자의 형태와 디자인이 발전할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했겠지요. 종류와 가격대도 정말 다양해서 하나에 1000불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고요. 

 

 
 

옛 디트로이트 시내 스타틀러 호텔 앞 (출처 : 핀테레스트)


 


제가 교회 여성들의 모자를 보고서 디트로이트의 전성기를 상상해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시기에 사실 모자들보다 더욱 화려하고 다채로웠던  "할렘 르네상스"가 꽃피운 지역이 바로 디트로이트였으니까요. 할렘 + 르네상스... 가난과 부유함을 대표하는 양 극단의 단어들로 조합이 되니, 그 용어 자체에 뭔가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나요? 얼마나 전성기였길래 감히 르네상스라는 단어를 붙여 표현하게 된 것일까요? 다음 시간에는 디트로이트의 리즈 시절을 르네상스의 시각으로 되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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