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해오늘! - 미국과 한국의 일상

[미국 일상 21] 별이 빛나는 새벽 운전 - 디트로이트 이야기 (3)

꿈꾸는 차고 2024. 1. 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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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상 21] 별이 빛나는 새벽 운전 - 디트로이트 이야기 (3)
 
드디어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 가득한 2024년이 되길 바랄게요! 2023년 마셜님과 함께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남기며 한해를 보람되게 보낼 수 있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글을 남겨보겠습니다~ ㅎㅎ 저는 올해의 첫 글을 지난 회에 이어 디트로이트 이야기로 이어가보려 합니다. 
 
 

연말의 엘에이 초저녁 (출처 : 본인)

 
 
 
지난 주말 엘에이에서는, 서쪽 지역에서 한차례 소동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연말을 즐기고 있을 저녁 무렵, 델아모 패션 쇼핑센터라는 꽤 큰 규모의 대형 쇼핑몰에 수십명의 젊은이들이 무리지어 들어와 상점가를 약탈한 것입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시간을 약속하고 갑자기 나타나 이런 일을 벌였다고 하는데요, 결국 경찰들이 쇼핑몰을 전면 폐쇄하고 범인들을 검거 중이라고 하네요.  

 
 

델아모 쇼핑센타 지난 토요일 모습 (출처 : KTLA)

 
 

그 지역은 평소에는 매우 안전하고, 항상 쇼핑객들로 북적이는 곳입니다. 대형 푸드코트도 있어서 저도 이전에 식사하러 이따금씩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일반 생필품부터 럭셔리 고급 브랜드까지 많은 상점들이 입점한 곳이기도 하고요. 평화로운 주거지역 인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서 그 지역 여론이 요새 며칠 많이 시끄럽네요. 누군가 소셜미디어에 이런 범죄 목적의 글을 올리면 그것을 보고 마치 플래쉬몹을 하듯, 게임을 즐기듯 타겟이 된 상점가에서 불특정 다수들이 모여 일시에 약탈을 한다는 거에요.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가 최근 미국 대도시들에서 이따금씩 일어난다는데요, 여론을 보면 이제 엘에이 남부 지역에서도 안전지대는 없는 것일까? 이렇게 탄식하는 의견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범죄율이 미국에서 순위권을 다투는 디트로이트에서는 이 정도의 크고 작은 일탈들이 일상적으로 자주 일어나는 일들이지만요...
 
오늘은 디트로이트에 관련한 세번째 이야기를 다뤄볼까 합니다. 그래도 치안과 생활 환경이 나쁘지 않은 한국 서울에서 수십년을 살아오다가 성인이 다 되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앞편의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제가 미국 생활 초기, 고속도로 위에서 차가 멈춰버린 일은 그 자체는 끔찍한 기억이었지만, 그 결과 저의 긴장된 마음이 좀 다독여지고, 제가 이곳 생활에 적응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자동차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사서는 안된다는 중요한 교훈도 얻었죠. ㅎㅎ 그 후로 이곳 생활에 대한 맹목적인 두려움은 이전보다 확실히 줄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내가 이방인과 같다는 생각은 계속 드는 거에요... 사방을 둘러봐도 이 고담시티같은 디트로이트에서 제 스스로가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고담시티 (출처 : the chant)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일들이었다해도 당시엔 여전히 힘든 부분이 있더라구요. 하지만 오늘 소개할 두가지 경험은 마음의 안정을 넘어서, 그 덕분에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와 사람들에 대해 무언가 따듯한 연민의 감정을 갖게 된 기회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때는 2010년의 어느 겨울 밤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다음날 아침 일찍 학기말 파이널 프레센테이션이 예정 되어있었는데... 일정이 너무 빡빡했던 관계로 제 작업은 깜깜한 밤이 되서야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파이널 프레센테이션의 최종 작업물을 칼라로 크게 프린트 했어야 되었던 거에요... 그 오밤에 어디서 프린트를 해야되나 울상이 다되서 급히 전화를 돌려보니 인근 24시간 프린트 가게들은 이미 문을 닫거나 다른 작업물들이 밀려서 안된다고 그러더군요. 여러군데를 전화 돌려 겨우 찾아낸 딱 한 곳, 운전해서 약 한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뛸듯이 기뻤던 저는 바로 차를 몰고 날아갔습니다. 겨우 프린트를 끝내고서 이제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런데 이미 시간은 새벽이 다되었고... 집에 가서도 마무리 작업과 학교에 갈 준비 시간이 빠듯한 거에요. 하지만 왔던 길로 되돌아가자니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고, 지름길로 가자니, 디트로이트의 위험한 지역을 관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오밤에 폐허와 같은 동네를 지나가느냐... 그래도 안전이 중요하니 안전한 길로 우회해서 가느냐... 어떻게 해야하지..??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저는 그 지름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디트로이트의 밤거리 (출처 : 유튜브)

 


그런데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들어선 그길은... 예상과 달라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으레 경찰차 불빛과 사이렌, 싸우는 고성, 아수라장을 생각했는데 제가 운전하고 가는 길은 분위기가 너무 다르더군요. 그 황폐하고 불탄 건물들에도 사람이 사는지, 창밖으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불빛이 있었고, 간간이 흘러나오는 재즈풍의 음악 소리... 그 가운데 친구들, 가족들과 파티를 하는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리더군요.  새벽의 한 가운데 시간, 사람들의 인기척과 음식 향기가 은은히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는 동네의 밤거리보다 저에게는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어요.
 


별이 빛나는 새벽 거리 운전 (출처 : 미리캔버스)

 

 
원래 미국 동네가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 지역들은 사실 밤 8시-9시가 넘어가면 조명과 소리가 일체 OFF되서 그야말로 고요함과 적막함이 가득한 경우가 많죠. 그에 비해서, 그 황폐한 환경 속의 길거리가 역설적으로 너무나 인간적이고 따듯한 느낌으로 가득차 있게 느껴지는 거에요. 음... 사람 사는 환경이 폐허가 된다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마저 폐허로 만들 순 없는 거구나... 이렇게 사람의 따듯한 느낌만큼은 경우에 따라 침범되지 않고, 오롯이 간직될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결국 지름길로 온 덕분에 저는 아침 일찍 학교 프레센테이션을 무사히 준비할 수 있었고, 그 뒤로 평소엔 으레 외면했던 그 황폐한 지역에 대해 좀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이제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언젠가는 그곳이 나아져야 하고, 또한 반드시 좋은 곳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더불어 그곳을 좀더 따듯한 시각 -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얼마 뒤 누군가에게 그날의 경험을 이야기했더니 저보고 미쳤다고 하더군요. 그 위험한 길을 새벽에 운전하고 들어간 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들마저 위험한 디트로이트 근무를 회피하고, 개인의 보호는 자기가 알아서 하라고 미룬다는 치안의 사각지대에...  해가 떨어진 뒤에는 이유를 불문하고 절대 발길을 들이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마도 며칠 동안 학교 프로젝트로 인해 밤잠을 못자서 환청을 들은 것이 아니냐고 되묻더군요. 그럴리가요... 며칠 잠을 못자서 피곤했다면 한시간 넘게 운전할 수 있는 힘이 없었겠죠. 아무튼 그 날의 기억은 저에게 매우 특별한 느낌으로 남아 있습니다. 불완전한 환경이지만 그속에서도 꾸준히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은 있기 마련이고 이곳에서도 남아있구나 싶었습니다. 마치 지난 글에 제가 소개한 제임스 아저씨의 일화처럼요. 
 
디트로이트에 대한 저의 감정을 한번 더 변화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비가 오던 어느 일요일 오전, 사흘 째 집에 안가고 학교에서 버티는 중이었어요.ㅎㅎ 학기말 중요 과제의 데드라인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저 말고도 다들 학교에서 밤을 새더군요. 저도 이미 학교에서 약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간 뒤라,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집을 오고 가는게 너무 시간이 아까운 거에요. 그래서 학교 화장실 수도꼭지에서 찬물을 틀어 대충 머리를 감고, 삼시세끼 자판기 빵과 탄산음료를 먹으면서 과제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사흘째가 되니까 이게 고비가 오는 거에요. ㅎㅎ 바깥공기라도 쐬고, 햄버거라도 하나 사먹어야 될 것 같아서 일단 차를 타고 밖에 나왔습니다. 

 
 

낙후된 동네의 맥도널드 가게 이미지 (출처 : 유튜브)

 
 

그런데 학교 근처 햄버거 가게는 폭격맞은 것처럼 너무나 을씨년스러웠습니다. 드라이브쓰루 (drive thru)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점원의 목소리는 무슨 랩을 하는 것 같아서 도저히... 알아듣기도 어려웠고요. 제가 주눅이 들어 잘못 알아들으니 점원이 신경질을 내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주문한 음식을 받고 다시 학교로 운전하는 길에 확인해보니 아주 엉망에다가... 틀린 주문의 음식이 들어있는거에요. 며칠 학교서 밤을 새서 그런지, 가게로 돌아가서 따질 힘도 없더군요. 그냥 그걸 한손으로 입에 쑤셔넣으면서 학교로 돌아가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이런 뭔 쌩고생을 하러 미국에 온 건가 싶었기도 하고요. 그런데 눈앞에 아주 오래된 교회가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햄버거 가게에서 받은 괄시... 그리고 피로와 답답함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을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에 잠시 방문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 날씨에 사람들이 과연 모여 있을까 궁금한 마음과 함께, 삐걱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미국 낙후된 지역의 교회 이미지 (출처 : 아이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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