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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상 27] 도망자 VS. 추격자... 전설의 추격전 - OJ 심슨 이야기 (1)

꿈꾸는 차고 2024. 4. 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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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상 27] 도망자 VS. 추격자... 전설의 추격전 - OJ 심슨 이야기 (1)
 

아래 사진은 지난 2021년 스웨덴에서 벌어진 한 추격전의 모습입니다. 그 아래 동영상을 보면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검은색 차량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도로를 모두 뚫고 빠져나가고 있네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하는데요, 그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래 동영상의 말미를 보시면 그 결과가 나옵니다. 그 어려운 길들을 다 빠져나갔다가 결국은 외다른 곳에서... 한번 클릭해서 보세요~ 도망자가 혹시 전직 레이싱 드라이버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고비마다 턴과 속도 완급 조절이 예술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추격전이 다 이렇게 멋지진 않겠지요. ㅎㅎ

 

 

 

https://x.com/arzuyldzz/status/1778078334418592090 

 

 

 

 

한국에서도 종종 벌어지는 범죄자와 경찰 사이의 추격전... 기세 좋게 도주하다가도 결국은 중간에 장애물을 들이받고 멈추어 서거나 경찰들의 육탄 방어로 붙잡히는게 대부분의 결말이죠. 추격 시간도 대부분 몇 분 이하의 돌발행동으로 끝나고 마는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엘에이. 그곳에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세기의 추격전"이 있었으니... 바로 미식축구 수퍼스타 OJ 심슨과 엘에이 경찰의 (LAPD) 대결이었습니다. 수십 대의 경찰차들은 그가 타고 도망하는 하얀색 포드 프롱코 밴을 추격했습니다. 엘에이 한복판에서 무려 2시간 이상 벌어진 추격전이었다고 하는데요,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994년 6월 OJ 심슨 VS. 엘에이 경찰차 간의 추격전 장면 (출처 : The Athletic)

 

 

 

 

이틀 전 OJ 심슨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네요. OJ 심슨은 1970년대에 활약했던 미식축구의 전설이자 수퍼스타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성공적인 미식축구 커리어를 발판으로 스포츠 캐스터, 영화배우 등 다양한 방면으로 영역을 넓혔고, 그의 사회적 지위와 사교성 덕분에 그는 다양한 정치인, 유명인들과의 교류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범죄에 연루되고, 각종 구설수에도 오르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이틀전 76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OJ 심슨 (출처 : Deadline)

 
 
 
 
그의 사인은 전립선 암이라고 하네요. 세월이 참 야속합니다. 그토록 건장한 체구를 이끌고 NFL에서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휘젓던 그도... 운명하기 전에는 구부정한 자세로 평범한 노인의 삶을 살았으니까요. 전성기 시절 그의 포지션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러닝백으로서 특히 재빠른 달리기 실력과 판단력으로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고 합니다. 인터넷을 보면 현역 선수 시절의 사진들이 많이 떠도는데, 유니폼과 색상면에서 약간의 시대적 차이가 느껴질 뿐, 용맹 무쌍하고 저돌적인 그의 플레이스타일을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미식축구 현역 시절의 OJ 심슨 (출처 : Maximo Advance)

 

 

 

 

하지만 운명하기 직전 최근의 모습을 보면... 마치 마음씨 좋고 평범한 이웃 노인 아저씨로 보이네요. 길 가다가 인사하면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쳐줄 것 같은... 뭔가 센스 있고 흥 있는 미국 할아버지 느낌입니다. 이렇게 사람 좋아보이는 할아버지가... 한때 부인 살인 사건, 무장 강도 사건 그리고 마약 관련 사건들에도 연루되어 있다니요... 외모만 놓고 보면 그런 배경이 있을 것이라고 일반인들이 쉽게 예상하기는 정말 힘들겠지요. 
 
 
 

최근의 OJ 심슨 (출처 : Daily Mail)

 
 

 

 
스포츠계에서의 레전드 커리어와는 별도로 OJ 심슨의 이름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각인된 이유는 바로 30년 전의 충격적인 사건 때문입니다. 때는 1994년 6월 13일 오전, 그의 전처인 니콜 브라운 심슨과 그의 친구 론 골드만이 니콜의 집 앞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출동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OJ 심슨의 흔적을 여러 건 발견하였고, 그의 집에서도 피해자의 혈흔이 묻은 장갑 등을 찾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OJ 심슨은 강력한 용의자로 특정되었습니다.

 

흑인 슈퍼스타와 금발 백인 미녀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파국... 또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다른 남자... 이런 극적인 요소들은 각종 의혹들이 꼬리를 무는데 폭발적인 작용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워낙 탑티어 유명인사인 탓도 있지만, 1990년대 미국사회가 흑백 갈등으로 인해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가 법정에 출두하기 앞서 일찌감치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구요. 한편 일급 용의자로 지목을 받다가 결국 그가 혐의를 벗어나게 된 과정도 이른바 "세기의 재판"이라 불리우며...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지요. 
 
 
 
 

살인 사건의 피해자 니콜 브라운 심슨 (우)와 그의 친구 론 골드만 (좌) (출처 : People)

 
 
 
 
그의 추격전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봅니다. 1994년 6월 13일 벌어진 살인 사건 이후, 수사망이 좁혀져 가고, 결국 OJ 심슨에 대한 기소 결정이 내려지자... 그는 도주하기로 결심합니다. 사건 이후 그는 자신의 절친이자 변호사 출신인 로버트 카사디안의 집에 머물렀는데, 6월 17일 다른 또다른 친구와 함께 포드 브롱코 밴을 몰고 경찰의 체포를 피해 달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의 추격전은 하도 유명해서 시간대 별로 정리된 그의 당시 루트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래의 이미지를 보면 (1) 엘에이 북부 지역의 친구 집에서 (2) 자신의 전처가 묻힌 엘에이 남부 지역의 묘지까지 남동쪽으로 80여 킬로를 달리는 도중까지는 경찰이 그의 행적을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속적으로 핸드폰 통화를 시도하자, 경찰은 통신 신호로 그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성공하였고,  3) ~ 8)의 경로를 거치며 본격적인 추격이 시작됩니다.
 
 
 

OJ 심슨의 도주 루트 (출처 : 야후)

 
 
 
그런데 위에 나온 루트들은 엘에이 지역에서도 교통량이 상당하기로 유명한 핵심 고속도로들입니다. 그의 막판 추격전은 저녁 7시를 넘어 늦은 밤까지 계속 되었는데... 그때가 퇴근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텅빈 고속도로를 유유히 달릴 수 있었다고 하네요. 지난번 [미국 일상 26] 글에서도 잠깐 다루었듯이, 엘에이의 고속도로들은 출퇴근 시간이 되면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길이 꽉 막히기 마련인데... 어떻게 된 것 일까요? 알고보니 그 날만큼은 수백만의 운전자들이 긴급 라디오 방송을 듣고 고속도로에서 로컬 도로로 미리 다 빠져 나왔다고 합니다.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라디오 방송은 운전자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던 소중한 매체였던 것이죠. 
 



 

 

OJ 심슨과 경찰의 추격전 (출처 : Los Angeles Times)

 

 

 

 

텅빈 고속도로를 달리는 하얀색 브롱코와 그를 뒤따르는 경찰차들의 모습은 이렇게 연출된 것입니다. 또한 CNN방송이 헬리콥터를 띄워 실시간으로 이 추격전을 방송한 덕분에 당시 무려 9천5백만명의 시청자가 이를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사진을 보면 뭔가 경찰차들이 추격이라기 보다는 질서정연하게 호위하는 듯한 느낌도 나고... 절대 경찰차가 브롱코를 앞서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당시 동영상을 보아도 브롱코나 경찰차나 주행 속도가 그렇게 빨라보이지는 않습니다.

 

어? 이상하다... 미드나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전심전력으로 도망치는 범죄자의 차량을, 경찰차가 직접 충돌해서 막는다던지... 아니면 미리 쳐둔 바리케이트 저지선에 도망자가 결국 가로막히고, 완전무장한 군경들이 범죄자를 에워싸고 정조준을 하는 것이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던가요?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lqinPZTs0FQ


 

 

 

그런데 위에 동영상을 보면 경찰은 2시간 째 도망을 치는 OJ심슨을 그 어떤 총기나 무력으로 제압하지 않고 그저 저속으로 따라갈 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OJ 심슨이 자신의 어머니집에 도착할 때도 꽤 신사적인 대응 태세를 보입니다. 어찌된 일이었을까요?

 

그것은 브롱코를 모는 운전자가 따로 있었고, OJ 심슨은 조수석에 앉아 한 손에 권총을 들고 자신의 머리에 겨눈채 자살을 위협하며 주행했기 때문입니다. 유력한 용의자가 자살을 해버린다면 수사가 미궁으로 빠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경찰은 범죄자의 감정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추격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한 과한 체포로 인한 사회적 역효과를 우려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추격전이 벌어지기 불과 2년 전에 엘에이에서는 5일간의 폭동이 일어나서 큰 홍역을 치루었었죠. 흑인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던 네명의 백인 경찰의 행위에 맞서 흑인들이 들고 일어났고, 곧 이어 대규모 폭동으로 번져서 엘에이 시내를 포함한 곳곳에서 약탈과 방화가 일어나고 큰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인 교포 분들의 피해도 이루말할 수 없었구요.

 

 

 

1992년 엘에이 폭동 (출처 : isg.com.sa)

 

 

 

이후로 미국 사회 곳곳에 당시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로 남아 허덕이고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흑백간의 갈등과 긴장이 위험 수위에 달해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여파가 엘에이에서도 채 가시지 않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경찰은 자칫 돌발 행동으로 인한 성난 민심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추격전 당시 경찰의 목표는, 안전하게 추격을 멈추고, OJ 심슨의 차량 기름이 다 떨어져 차가 멈출 때 체포할 수 있기만을 기다렸던 것이죠. 어찌하였든 2시간에 걸친 추격전 덕분에 시간을 벌게 된 OJ 심슨은 그동안 정신적 안정을 취할 수 있었고, 핸드폰으로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추격전 당시 길거리 환영 인파 (출처 : Daily Mail)


 

 

추격전 당시 재밌는 점은 이로 인해 OJ 심슨이 반전의 기회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도주 소식을 듣고 고속도로 길거리에 수많은 인파들이 쏟아져 나와 OJ 심슨의 이름을 연호하며 응원했습니다. 피켓을 들었던 사람들, 손을 흔드는 사람들, 교량 위에서 내려다 보는 사람들 등, OJ 심슨은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워낙 이 추격전이 충격적으로 다가왔기에 당시 유명 방송사들은 정규 방송을 멈추고, OJ 심슨의 심리 상태나 향후 재판 관련하여 전문가들을 불러 대담을 진행하는 등 특집 방송을 실시하였습니다. 

 

아래의 영상을 보면 취재 헬기는 추격전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자세한 상황을 낱낱이 훑고 있습니다. 추격전 말미에 OJ 심슨은 어머니 동네에 들어서는데, 헬기는 바로 위 상공에서 매순간을 다 촬영합니다. 그가 어머니 집에 도착하고 차 밖으로 나와 이동하는 장면까지 전부 다 리얼하게 방송으로 송출하였습니다. 아나운서들은 매 순간, 마치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듯 상황 설명을 첨가했구요. 마치 잘 짜여진 한편의 시나리오를 보듯 일반인들은 안방에서 시시각각의 상황을 모두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라 아직 인터넷은 활성화 되지 못했지만, 당시의 기술력 수준에서 이미 저널리즘의 경계나 제한이 허물어지고, 사람들은 그 최전방에 편안하게 올라타 누릴 수 있는 시대임이 확인된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uRD3TQEoeY&rco=1

 
 

 

 

이 세기의 추격전으로 인해 이득을 본 쪽은 어디일까요? 마치 영화의 한장면보다 더 영화 같았던 세기의 추격전... 이것이 어떤 각본에 의해 미리 치밀하게 계산이 되었던 것인지 단지 우연이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날의 추격전 덕분에 OJ 심슨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체포 직후의 OJ심슨의 머그샷 (출처 : nb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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