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상 10] 지구는 둥그니까~자꾸 걸어나가면~!! 레돈도비치에 다녀왔습니다.
뭔가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을 때 한국에서는 내가 뭘했었더라?... 생각을 더듬어보니 저는 한강에 꽤 자주 갔었습니다. 맥주 한 캔에 오징어 하나만 달랑 들고 가도, 뭔가 풍요로운 느낌, 그리고 감상에 젖는 그 느낌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종종 고수부지에 앉아 잔잔한 물결과 해지는 서울을 한참 동안 바라보곤 했었죠.
특히 복잡한 일이 있을 때는 머리를 비우러 가기가 딱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면 허공에 어퍼컷 한방 날리고는 새로운 다짐을 하곤 했었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지만 난 할 수 있다! 난 최고야! 등등ㅎㅎ 영업팀 시절도 생각나네요. 고객사의 접대가 끝난 늦은 밤에 현대 에쿠스 임원 차량으로 VIP들을 댁에 모셔다 드리고서는 잠시 한강을 들르는 맛도 참 좋았습니다. 한강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내일은 좀 더 나은 하루가 오겠지?? 뭐 이러면서요.
그런데 엘에이에 오니 딱히 한강스러운 그런 분위기의 장소가 없더군요... 한참을 찾다가 겨우 찾은 곳이 바로 토랜스시에 있는 레돈도비치라는 곳입니다. 제가 [미국 일상 07] 시간여행자가 된 이 기분은? - 레돈도비치 도서관 [엘에이 지역 도서관 탐방기 03-1]의 글에서도 잠시 소개했던 곳이지요. 바닷가 자체도 멋지지만 기나긴 모래사장 바로 위가 절벽 지형이라 더 좋습니다. 그래서 그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다와 하늘이 정말 한눈에 들어오거든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들도 곳곳에 많구요. 아는 동생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국 온지 얼마 안됐을 때, 너무 힘든 나머지 자기는 이 바닷가에 매일 와서 하염없이 울었다던데... ㅎㅎ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이전의 한강처럼 머리를 식히거나 기분전환하고 싶을 때 딱 좋았던 장소입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마음을 비운 채로 잠시나마 힐링할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바로 여기였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그 동네를 지나가가다가 문득 바다를 보고 싶더군요. 원래 가려던 행선지의 도착 시간에 약간의 여유가 있어서 바로 핸들을 돌려 바다로 향했습니다.
가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비행선 하나~ 한가롭게 떠 있더군요. 이 근방에 아주 붙박이로 자주 출몰하는 녀석입니다. 보통 육지 근처에서 서성이는데 이번엔 바닷가로 나왔네요. 그런데 오늘 따라 비행선을 땅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잠깐 딴 생각을 하는건지... 크게 돌지않고 자꾸 이리저리 왔다갔다...ㅎㅎ 이 비행선의 광고주 Good Year 는 사실 120년이 넘는 역사의 유명한 미국 타이어 회사지만, 그래도 저는 일편단심 한국산 타이어를 쓴답니다~ 비행선 광고도 나한텐 어림없어 굿이어! ㅎㅎ
이 교차로를 지나서 조금더 안으로 들어가면 바닷가 입구가 나옵니다. 오늘따라 유달리 파랗게 보이는 바다가 너무 반갑습니다... 파도도 아주 잔잔하고요. ㅎㅎ 얼마전에... 3주 전인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무려 80년만에 찾아온 허리케인 - 힐러리가 상륙할 때 모두가 긴장했지만, 다행히 레돈도비치과 엘에이의 다른 해안들도 큰 피해는 없었다고 합니다.
입구를 지나 제가 원래 주차하는 곳으로 갔더니 오늘은 벼룩시장이 열려는 날이어서 그런지 바리케이트로 막아놨습니다. 그래서 좀더 남쪽으로 운전해서 나와봅니다. 제 차 앞 뒤로 인파들이 지나가는데, 여기저기 운동복 차림에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들어오네요. 나도 운동해야되는데... ㅎㅎ 조깅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앱만 다운받아 놓고 그대로 있네요.
해안가의 호텔들을 지나 조금 더 가다가 드디어 갓길에 주차를 하고 창문을 열었습니다. 와... 창문을 열자마자 들어오는 이 시원한 바람!! 너무너무 좋네요!! 차 속의 에어컨 바람이랑은 비교할 수 없는 청량함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다 냄새도 오늘따라 유달리 진하게 느껴지네요. 오랜만에 가슴 깊숙히 큰 숨을 들이마셔 봅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시야가 정말 딱 좋은 위치입니다. 절벽 뒤로는 이러한 멋진 경치를 24시간 감상할 수 있는 럭셔리 맨션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있습니다. 미국 부동산 사이트 Redfin을 보면 3백만불에서 6백만불 가량하는 고급 주택들입니다. 자기 집 테라스에 앉아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이네요 ㅎㅎ
저는 그냥 바람도 하늘도 구름도... 저멀리 하얀 보트도...쳐다만 봐도 좋더군요. 결국 차에만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기가 태평양이지... 여기는 동쪽, 한국은 서쪽... 바다를 쳐다보는데 문득 옛날에 자주 불렀던 동요가 생각났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사실 이곳은 태평양의 일부이기 때문에 쭉쭉 걸어갈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한국이 나올텐데요 ㅎㅎ 오늘따라 한국의 가족들과 친구들도 많이 보고 싶네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응시해봅니다. 감시초소 양 옆으로 빨간색 트럭들이 파란 바다색과 대비되어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바다를 쳐다보고 있는데 왠 난간을 붙잡고 운동하는 커플 포착! 앉았다 일어났다 꽤 진지하게 열심입니다 ㅎㅎ 머리를 비우러 왔는데 웃겨서 비울 수가 없네요 ㅎㅎ
시선을 돌려 산책로의 왼쪽 편을 쳐다봅니다. 눈에 들어오는 저 앞의 언덕은 팔로스버디스라는 곳이죠. 이미 현대자동차 시리즈 두번째 글에서도 자세히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 HYUNDAI 02. 시원한 해안 도로를 달려보자! - 미국에서 보는 현대의 모습 (1) 멋진 자연풍광과 비싼 저택들이 즐비한 곳이라고요. 바로 저 곳의 한 내리막길에서 타이거우즈가 과속하다가 사고를 냈었죠. 제네시스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이 저 언덕에서 중간지점 쯤 됩니다. 사실 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도 경치가 아주 일품입니다. 언제 한번 사진 제대로 찍으러 가야겠네요. ㅎㅎ
지금 내 주위의 사람들은 열심히 걷고, 대화를 하고,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비치 발리볼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주차기계가 뭐가 안되는지 계속 조작하는 사람, 큰 소리로 전화통화 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 사람들이 뭐하는지 구경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입니다. 사실 이곳의 뭔가 생기있고 활달한 분위기도 제가 여기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지만 그저 그들을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뭔가 저한테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것 같네요. 그냥 그들이 자기 일에 열중하는 모습 자체가 저에게는 열심히 살자는 격려로 보여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ㅎㅎ 갑자기 얼마 전 알게된 문구 한마디가 귀에 맴돕니다. "살아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비록 이 상황에 딱 맞는 문구는 아닐지라도, 그냥 생각이 났습니다.
한참을 쉬었더니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원래 가려던 행선지로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네요. 엘에이에 온지 얼마 안되서 발견한 이곳이 너무 멋지고 좋아서, 처음 왔을 때 한참을 머물다 돌아간적이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 평화롭고 좋네요. 몇달뒤 다시 여기 올때가 있다면 또 같은 기분이 들고 힘도 얻고가겠지요. 무슨 생각을 해도, 언제 오던지 묵묵히 다 보듬어주는 큰 바다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한강만큼의 아기자기한 분위기는 아니어도 이 정도면 저에게는 일상의 도피처로 꽤 쓸만하다 싶습니다. ㅎㅎ
머리를 비우러 나갔다가 차 안으로 돌아와서 핸드폰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ㅎㅎ 다 쓰고 어서 약속 장소로 가야겠지요.
벌써 9월초네요~ 이제는 더위가 좀 싹 물러갔으면 좋겠는데요, 여러분들도 자주 가는 일상의 힐링 포인트가 있으신가요? 부디 이번 주말에는 모두 일상을 잊고 기분전환도 많이 하셔서,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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