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44 - 임진왜란: 상 -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2024, 임용한, 조현영)

마셜 2024. 10. 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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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라딘)

 

 임용한 박사를 처음 알게 된, 유튜브 인기프로그램 '토크멘터리 전쟁사'를 통해서였다. 
 그때는 어떤 분이지 전혀 몰랐고, 사실 프로그램 컨셉 자체도 저명한 학자인지, 아니면 그냥 전문가인지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임 박사는 확실히 뭔가 달랐다. 자료 활용도 어려운 앉아서 대화/설명으로만 전쟁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 포맷에도 정확히 사료에 근거한 주장을 펼치고, 세간의 오해를 하나하나 교정해주는 임 박사가 '역사학자'임을 확신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토크멘터리 전쟁사가 안 좋은 모양새로 갑자기 종영되면서, 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긴 것도 잠시... 다른 방송에서 바로 출연을 이어갔고... 이제는 적지 않는 나이 때문인지 방송 활동은 좀 줄여가는 느낌이다. 물론 '벌거벗은 세계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전쟁 관련해서도 박사들이 방송계에 쏟아져들어오기 시작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임용한 박사가 대중을 위한 교양서를 공격적으로 출판하기 시작한 건, 그 즈음인 것 같다. 국방TV 프로그램 치고는 이례적으로 프로그램 종영 과정이 파문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그 일등공신이 바로 임 박사였기에, 대중적 인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높았고, 방송 정기출연을 정리한 시점부터 임 박사는 의욕적으로 신간을 내기 시작했다. 

 

 시리즈명은 그야말로 직관적인 '임용한 시간순삭 전쟁사'!!!!

 

 첫번째 병자호란, 두번째 중동전쟁에 이어 세번째 단행본 신간이 바로 '임진왜란 : 상 -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이다. 

 

 독서모임에서 늘 임 박사 저작을 추천하는 멤버 말처럼, 전에 병자호란을 다룬 첫번째 신간보다 책 내용은 많이 다듬어져있었고, 문장과 구성의 완성도가 높았다. 사실... 저자 입장에서 난중일기와 징비록이라는 불세출의 사료가 존재하는 임진왜란이 병자호란보다 훨씬 쓰기 좋았을 것이다. 

 

 역사를, 그리고 전쟁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용이 엄청나게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역사콘텐츠물에서 다뤘던 임진왜란과 이순신 이야기, 2024년은 물론 흥행에 참패했지만,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편 '노량'이 개봉했던 해이기에...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은 많이 들어본 듯한, 그 중에서도 통쾌함고 아쉬움이 교차하는 해전 승리 얘기이다. 

 

 결국 임 박사 저작의 강점은 사료에 바탕을 둔 자유로운 상상이다. 

 

 임 박사의 책은 명료하게 '대중서'이다. 정확한 사료분석과 엄밀한 논증으로 구성되는 학술서와 달리 임 박사는 일반인들도 역사적 사건, 특히 한민족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기지 못한 전쟁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길 바라며 글을 쓴다. 그리고 그러한 의도에 맞추기 위해 서슴없이 자유롭게 상상을 가미한다. 물론 그 상상은 사료의 공백 사이 안에서만 존재하도록 한정지어서 가미하기에,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6장 '한 남매의 임진왜란'은 저자 스스로 주를 통해 상상력을 가미해 창작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여러 사료로 인해 추정되는 왜란 당시의 민초의 기구한 삶을 잘 재구성하고 있다. 왜군에게 포로로 잡힌 어린 민초가 겪었을 극한의 고초가 당시 사료에 이렇게 내러티브로 기재되었을리 만무하다. 그렇기에 1차 사료에 기반한 연구서들도 일반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극적인 창작이나 서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극 등 역사콘텐츠물에 기대기만 할 경우에는, 역사적 사실을 오해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간극 사이에 바로 임 박사 저작이 있고, 그 자리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경이로운 연승 퍼레이드와 마지막 전사까지를 다룬 이 번 저작에 이어서 임진왜란 하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가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다른 강점은 바로 디테일함과 필력이다.

 

 

 마치 교과서의 '더 알아보기'나 수험서의 '알고 넘어가기' 코너처럼 챕터 말미마다 배치된 '역사 다시보기' 코너는 임 박사 저작이 가진 또다른 강점, 디테일을 살린 역사 이야기를 잘 보여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예가 부산포 해전 챕터 마지막에 나오는 '정운'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투마다 선봉장 역할을 하다가 끝내 전사한 정운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만, 많은 이순신 장군의 부하 중 하나로 기억될 뿐, 무인으로서 그가 걸어온 길이나 성향까지 다룬 책은 흔치 않다. 물론 네이버나 구글에서 이름 두 글자만 입력하면 각종 사전부터 논문이 쏟아지는 시대이지만, 많은 부하들 중, 일반인이 관심을 가질만한 서사를 가진 인물을 찾아내어 소개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역할이라 한다면, 임 박사는 자기 역할에 충실한 학자이다. 

 더하여, 학자 임 박사의 강점은 그 디테일함에 있다. 짧은 박스형태 글로 정운에 대해 다루면서도, 불의를 못참는 그의 성향, 관직 커리어, 그리고 이순신 장군과의 인연을 모두 담았다. 그리고 인상깊었던 한 줄 '정운은 처음으로 진정한 군인으로 살 기회를 얻었고, 그 삶에 자신의 생명을 묻었다'를 보면, 학자로서의 성과 이전에 대단한 필력이 있기에 명성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중세 시스템 안에서 너무나 고생했던 이순신 장군

 

 전쟁기간 이순신 장군이 겪은 고초를 모르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병력을 동원하여 출정 준비를 하기까지 어려운 과정을 잘 묘사한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상비군 개념은 커녕 과학적 사고관 자체가 없었던 중세 시스템 안에서 그 어려운 과정을 매뉴얼 대로 진행하여 출정하고, 끊임없는 전력증강으로 판옥선 50척 이상이 출격할 수 있는 대함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얼마나 고난의 행군인지를 책은 초반부에서 잘 보여준다.  

 무적의 사령관이었던 이순신 장군 만큼이나, 병력 동원이 너무나 힘들었던 중세 시스템 안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군인 이순신도 참 대단하구나... 라고 느낄 수 있었던 게 새로이 알게된 이순신 장군이 가장 새로운 면모였다. 

 

(출처: 알라딘)

 

 

 출판사 레드리버에서도 이제는 임 박사 저작을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려는 듯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도 디테일하게 작성을 잘 했다. 또한, 학자인 임 박사를 보필할 수 있는 공저자도 호흡이 잘 받는 사람을 배치하여 다음 신간도 완성도에서 기대가 된다.  

 

 ps. 바쁜 일상에 통 글을 못 쓰다가....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이 연체되고 있는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얼마안되는 연체료지만, 막상 내려고 하니... 이리저리 게으름을 피우며 일을 쌓아놓은 나 자신의 비틀비틀 일상의 결과물인 듯 하여 속이 상한다. 그간의 행보를 반성할 겸 시간을 쪼개어 몇 글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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