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웃음 말고 모든 걸 빼버린 코미디 - 30일(2023, 남대중 감독)

마셜 2024. 9. 1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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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영화)

 

1. 웃음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한 영화 

 영화는 구상 단계부터 '웃음'만을 염두에 둔 듯하다. 장르가 코미디인데, 다른 걸 뭘 염두에 두었겠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애도, 생활고도, 리얼함도, 재벌가도, 삼각관계도 이 영화에는 없다. 길지 않은 상영시간에 녹여낼 수 없는 모든 요소를 치워버리고, 두 청춘스타 주연배우들이 사랑싸움을 보여줄 시간도 아까웠는지 영화는 바로 이혼소송의 마무리단계부터 시작한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영화의 설정과 초반부를 뻔하게 가는건, 장단점이 뚜렷하다. 관객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지만, 그만큼 예상되는 전개에 식상함을 줄 수도 있다. 이 양날의 검을 택한 남대중 감독은 보기 좋게 성공을 거뒀다. 너무나 뻔한 이 커플의 해피 엔딩을 예측 못한 관객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영화는 마지막까지 충실하게 웃음을 주고, 그 과정에서 두 청춘스타의 매력을 극대화시킨다. 

 너무나 뻔한 이 영화에서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는 건 훌륭한 보석 같은 조연들의 연기력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 스타기에, 씬 스틸러라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주인공 커플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를 늘 함께하는 배우 윤경호는 그야말로 물오른 연기력을 보여준다. 늘 조폭 아니면 경찰, 아니면 불쌍한 지인 정도의 캐릭터로 눈도장을 받는 수준이었는데... 군대동기를 살뜰하게 챙기는 자영업자 역할의 윤경호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연기력을 과시했고, 감독은 그에 걸맞는 위트로 기억에 남을 장면을 계속 만들어냈다. 아직 영화를 안 본 분이 있다면 자영업자 윤경호의 웍 질을 유심히 보시길... 혼신을 다해 웍으로 불맛을 낸 요리는 과연 무엇일지 기대하셔도 좋다. 

 

(출처: 네이버 영화)

 

2.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따라간 영화

 영화는 그야말로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따라간다. 연인들의 이별-재결합은 뭐... 수학의 정석의 집합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아무리 사랑에 경험이 없어도 그 정도는 한 번은 경험해보거나 주워들은 게 있을 게다. 헤어지는 커플이 나란히 앉아서 서로를 비난하는 컨셉도 사실 많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보여준 설정이다. 그 과정에서 찌질한 남자와 마초적인 여자로 뭔가 약간 뒤틀은 설정을 만들기는 했지만, 동 세대에서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걸로 손꼽히는 두 배우는 변칙 출제도 그냥 기본서 정석 학습만으로 풀어버리는 힘이 있다. 

 감독이 찌질함과 멋있음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 강하늘을 극찬했다는데, 그에 밀리지 않는 무대책 마초 성향 미인을 연기한 정소민도 대단한 매력을 뿜어냈다. 마지막 재결합을 확인하는 순간에도 두 배우는 찌질함과 쪽팔림을 말하며, 조금은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데, 그 재미가 결국 정석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편안하고, 그래서 더 웃으며 마지막을 음미하게 된다. 

 

3. 익숙하지만 별 기억이 없던 배우 정소민, 티켓파워를 입증하다

(출처: 네이버 영화)

 

 사실 정소민이라는 배우를 잘 몰랐다. 주목받는 배우라는 걸 알았지만, 주연으로 본 건 KBS '마음의 소리' 밖에 없었고, 그 작품에서 정소민이 연기한 애봉 역은 그렇게 미인도 아니고, 그렇게 매력적이도 않았기에...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었다. 그 후로도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늘려가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뛰어난 배우인지는 미처 몰랐다. 야구장에서 술에 취해 날뛰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듯.... 사실 많은 특이한 사람을 볼 수 있는 야구중계에서도 이 정도 미모에 이 정도 퍼포먼스를 보기는 어렵다.

 다만, 하필 두산팬으로 분한게 아쉽다. LG팬이었다면 바로 내 인생에 남을 짤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액션영화에 도전했다가 망해도 보고, 라디오 진행도 하고, 다양한 활동에 도전하는 성격인 듯하다. 학창 시절부터 악바리로 유명했다고 하니,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든 이 배우가 앞으로 어떤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줄지 더 기대가 된다. 

 

4. 2023년 한국영화 팝콘무비의 정수

(출처: 네이버 영화)

 

 한국영화가 위기여도 흥행할만한 작품은 있다. 그리고 영화가 재미있으면 사람들은 상영관을 찾는다. 이 평범한 진리를 '30일'은 입증했다. 마찬가지로 작년에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장르는 다르지만, 두 시간이 지루하지 않아야 사람들이 온다는 걸 보여줬다.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영화계에 두 청춘스타의 찌질한 로맨틱코미디는 수학을 못하면 기본서부터 다시 보라는 평범한 지적을 하는 듯하다. 적당한 제작비로 관객에게 편안함과 웃음을 주는 작품도 상영관에서 자주 볼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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