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4 - 일곱 개의 회의(이케이도 준, 2020)

마셜 2023. 2. 20.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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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모임에서 많이 어려운 책을 겪고 나면, 자연스럽게 뭔가 재미있으면서도 무겁지 않은 책을 찾게 된다. 그래도 추천 장본인의 자존심상 뭔가 명작으로 평가받는 소설이라도 찾게 되는데... 눈여겨봐뒀던 책이 호불호가 심히 갈린다는 평을 뒤늦게 발견하고... 급히 고른 책이 '이케이도 준'의 '일곱 개의 회의'였다. 

 

 이 책 자체가 리스트업 되기에 부족하지는 않다. 다만, 전에 '루스벨트 게임'을 읽고 또 바로 소설로 같은 작가의 작품을 읽은 것이 뭔가 좀 아쉬웠을 뿐... 나오키상에 빛나는 기업 엔터테인먼트 최강자는 늘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출처 : 교보문고>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들을 적어본다. 

 

1. 베스트 한심상 닛타 

  • 각자 매력과 이유가 있지만, 유일하게 행동에 개연성이 없는, 하지만 한심한 일을 일삼는 인물
  • 이야기 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각자 스토리가 있고, 행동에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이 한심상을 수상한 닛타는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계속해서 한심하게 행동한다.
  • 바람피운 것도 모자라, 특별한 이유도 없이 타 부서 활동을 깊이 파고 들어서 일을 엉망으로 만들고, 노사협의회에서는 잘난 척하다가 내연녀에게 혼나고... 마지막으로 얼마 안 되는 도넛 값을 내지 않고 훔쳐먹다가 들켜서 개망신을 당한다. 이 개망신에 비하면, 좌천과 이혼은 소소하게 느껴지는 수준

 

2. 기업 엔터테인먼트 장르 

  • 이케이도 준이 최고봉이라지만, 다른 소설가(예_오쿠다 히데오)도 꽤 깊이 있으면서도 재미있다. 다만, 이렇게 기업 이야기를 꾸준히  해주는 베스트셀러 작가로는 이케이도 준이 최고일 듯한데, 배경이 '기업'으로 같다 할지라도, 미묘하게 장르가 다르고, 등장인물도 꽤 입체적이라 비슷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이케이도 준의 가장 큰 장점이다. 
  • 한국에도 대단한 소설가들이 많지만, 안타깝게도 기업 이야기를 이처럼 생동감 있게 풀어내는 만나지 못했다. 물론 내 독서의 폭이 좁아서일 수도... 하지만, '미생'의 윤태호 작가도 연재 중에 가장 어려웠던 부분으로 기업현장을 취재하기가 어려웠음을 꼽았던 것을 보면, 현실적인 어려움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웹소설, 웹툰 등으로 장르를 다변화하면서 폭넓게 진화하고 있는 K-Culture에 있어서, 정통 기업물이 한 구석이라도 더 많이 차지해 줬으면 바람은 여전하다. 

<출처 : 교보문고>

3. 결국 악한 자는 누구인가? 옳은 자는 누구인가?

  •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문득 의문이 생긴다. 결국 악한 자는 누구인가? 이 스캔들을 기획했던 미야노 사장? 아니면, 그 술수에 휘말려, 아니 궁지에 몰려 부정을 저지르고 만 사카도 과장? 아니면 끝까지 거짓말로 사태를 모면해보려고 했던 비겁한 도메이테크의 예기 사장? 업무상 판단/법적 판단이라면 오히려 쉬웠을 일이 복잡하게 머리에서 뒤엉키며 답을 내지 못하는 걸 보면, 독자로서 글에 꽤나 몰입했던 모양이다. 
  • 더 어려운 질문 하나. 결국 옳은 자는 또 누구인가? 회사 차원의 부정을 눈치채고 묵묵하게 자기 업무범위 내에서 사태를 수습한 하라시마 과장?  제보를 받고 모회사에 절차대로 보고하여, 전모를 밝혀낸 무라시니 부사장? 아니면, 언론에 전말을 폭로하고, 마지막에는 부정을 사주한 인물을 밝혀내 사카도 과장의 책임을 덜어주는 핫카구 계장? 모두가 자기 원칙대로 행동했지만, 딱히 공명정대해 보이는 인물은 없다. 나름 회사의 부정을 바로잡는데 공헌한 이 모든 사람들이 그다지 와닿지 않는 건,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업무상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악하지도, 그렇게 옳지도 않기 때문은 아닐까. 

 

4. 다양한 저돌적인 영업방식 - 이제는 옛날 방식

  •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뒷받침했던 다양한 저돌적 영업방식을 엿볼수 있는 것 또한, 이 책의 묘미이다. 영업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죽음이나 다름없다는 영업맨들의 생각 또한, 이제는 한국에서는 많이 들었지만, 찾아보기는 힘든 정서이다. 
  • 2012년에 일본에서 출판되었기에, 빠르게 바뀌는 기업정서를 감안하면, 진정 옛 이야기가 다 되었지만, 사실 목표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이윤추구의 본질.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면서도 익숙한 걸 보면, 진심으로 어느 드라마에서엔가 봤던 명대사는 틀리지 않았다.   "Classics never go out of style."

 

5. 처절하리만큼 철저한 원가관리

  • 나사 단가를 부정한 방식으로 낮춰서, 주력상품인 의자 가격을 낮춘 이 처절한 원가관리 방식은 제조업에서 일반적인 방식이라 익숙하기도 하고... 철저한 비교와 관리를 통해 원가를 낮추는 방식은, 한국인에게는 절대 피해 갈 수 없는 국민기업 삼성의 가장 잘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삼성을 잘 아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일본 기업이 삼성을 이길 수 없었던 이유라고 말하기도 한다. 
  • 물론 전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글로벌 기업이 원가관리 하나 만으로 1등이 되었을 리는 없다. 당연히 남다른 판단과 빠른 움직임, 첨단기술 등이 융합되어 나타난 결과이지만, 그런 위치를 차지하고도 기업으로서 가장 기본에 해당하는 원가관리를 늘 신경 쓴다는 점은 어찌 보면 호랑이가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진부하기까지 한 속담이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다. 

 

6. 군데군데 묻어나는 일본의 가업, 장인정신

  • 네지로쿠社 이야기에서도 잘 드러난 일본 특유의 가업 관념, 그리고 그 기저를 이루는 장인정신은 작품 전체에 잘 녹아있다. 같은 작가의 베스트 작품으로 꼽히는 '루즈벨트 게임'에서도 일본의 가업에 대한 극진함. 그리고, 장인정신에 대한 강조는 한결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소설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다양한 작품에서도 일본인들의 이런 정서는 잘 드러난다. 
  • 이제는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는 시대, 산업구조 개편은 더욱 파괴적이고 더욱 빨라질 터.. 이런 시기에 가업과 장인정신이 여전히 최고의 가치라 불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장인정신이라는 개념은 어떤 일에도 완벽을 기한다는 프로의식과 일맥상통하므로, 모든 경제활동의 기본이라 하겠지만, 갈수록 경력의 가치는 불분명해지고,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강조될 시기에 뭔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일부 있다. 
  • 하지만, 이제는 접하기 어려울수록 희소성도 올라가는 법. 일본 소설 곳곳에 드러나는 이러한 정서는 약방에 감초까지는 아니어도, 없으면 뭔가 허전한 존재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혹시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내일 사무실에서 펼쳐질 것 같은 그런 일곱 개의 회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한 번 책장을 넘겨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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