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2 - 마음(나쓰메 소세키, 1914)

마셜 2023. 1. 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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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일본문학 거장,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이제야 읽었다.
독서모임의 대표적인 좋은 점 중 하나인데,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책을 누군가 진심으로 골라주고, 그 이유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정도를 언뜻 들어본 것도 같은데, 읽어본 적이 없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어린 시절 일본소설은 그렇게 흔하지 않았고, 어른들이 권하지도 않았었다.

간간히 접하는 세계 명작 반열에 오른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역시 뭔가가 있다'라는 느낌을 준다.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이 소설도 마찬가지여서, 큰 사건이 펑펑 터지지도 않는데 읽을 수록 다음 내용이 궁금하고, 소개되는 20세기 초반 당시 일본의 모습도 많이 흥미로웠다.
세계 문학의 큰 효용 중 하나가 전혀 새로운 혹은 조금은 다른 문화, 역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인데, 이 소설 또한 그랬다. 한국과 가까운 위치지만, 많이 다른 길을 걸어온 일본이 급격히 근대화되던 시절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라면, 비교적 공감하기 쉬운 정서가 깔려 있다는 것은 모든 일본 소설의 매력이다.

한국에는 왜 이런 대문호가 없을까? 있을 수가 없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인으로서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서양 근대교육을 받은 작가였고, 근대-제국화를 향해 가파르게 나아가던 일본의 상징이자 자존심 같은 존재였다. 반면,  그 시기 근대교육을 받은 조선 작가들은 대부분 변절하거나 이념논쟁에 시달렸고, 결정적으로 조선 자체가 근대-제국화는 커녕 민족정체성 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이었기에 더욱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은 대문호가 탄생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 시절부터 이미 번역을 국가적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서양의 다양한 저술을 모든 국민이 읽을 수 있도록 번역/출판했던 일본의 전통 혹은 문화 또한 그 정책이 막 자리를 잡았던 시절, 딱 맞추어 일본에서 명작을 쏟아내기 시작한 '나쓰메 소세키'를 신성이자 거장으로 자리잡게 하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한 멤버는 이 작품이 작가의 다른 작품과 달리 개인주의가 아니라 교조주의적 측면이 강하다며, 이색적이라 평했다. 난 딱히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었는데, 새로운 시각에서 곰곰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은 일본이 전체주의로 흘렀다고 보기는 어려운 시대 배경인데, 언젠가 한 번쯤 다시 읽어볼 때는 그 관점에서 봐야겠다.

자살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가장 큰 죄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물론, 자살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등장인물 K는 무책임한 사람이다.
그래도 나는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가족과 모두 의절하고, 유일한 친구와 마음을 두었던 사람까지 모두 잃은 사람이 삶의 동력이 있을까.

멤버 중 전문가 조언을 받아 의문이 풀렸다.
'사람이 경동맥을 찌르면 거의 즉사한다. 살릴 수 없다'

  덕분에, 별 것 아니지만, 그 시절에도 대문호는 의학적 지식에 바탕하여 작품을 썼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독자들에게 아버지와 선생님이 오버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떠오르는 대로 정리하다보니, 작가가 참 정밀하게 캐릭터를 설정했단 생각까지 들었다.
모던한 매력에 끌려, 가족처럼 찾아뵙는 현대인 선생님이 오히려 이기적 행태를 보여주고, 아버지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주인공을 대하니.. 이 역설적인 구도가 어떻게 보면 소설 중반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 같기도 하다.

세계문학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정성들인 번역은 오랫만에 보는 것 같다. 적절한 각주 내용에 감탄하게 되었는데,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34 당시 도쿄 제국 대학 문과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논문과 구술시험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 중 논문은 4월30일까지, 이어서 구술시험은 6월 1일부터 20일까지였다. 따라서 졸업 예정자에게 논문이 통과된 4월 말부터 구술시험 전인 5월 말까지는 가장 마음 편한 때였다. ' - 90page

선생님이 주인공에게 6월이니 홀가분한 때겠다라는 말을 하는 부분에 각주로 달린 설명인데, 내용도 디테일하지만, 원문 번역에 충실하면서도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내용을 보완하는 각주로서 참 적절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많은 각주가 당시 일본 시대상을 잘 설명하고 있어서, 당시 시대상을 엿보는 재미까지 느껴졌다. 양윤옥 번역가는 주로 최근 일본 대중소설을 번역해온 줄 알았는데, 대문호의 명작을 번역하면서 각별히 더 신경을 쓰지는 않았나 싶고, 번역가 또한 진정으로 창작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각관계에 대해 웃고 떠들면서 모임은 끝이 났고, 대문호는 다른 느낌의 자기 작품을 읽어보라는 묘한 권유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가장 많이들 추천하는 작품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또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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