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30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2021, 심채경)

마셜 2024. 4. 3.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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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보문고 홈페이지)

 
 방송의 힘은 대단하다. 
 아니 방송에 출연해서, 얻은 인기의 힘은 대단하다. 
 딱히 천문학에 관심이 있는지 몰랐었는데,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책이라며 선물했을 때, 난 신기했다. 

 웬 천문학 책?

 
 아이는 이런저런 숙제를 하기에 늘 바빴고, 까만색 배경에 별이 떠 있는 예쁜 표지를 가진 이 책은 장서용으로 몇 년간 자기 몫을 다 했다. 
 독서모임을 위해 쉽고도 재미있는 책을 찾아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끙끙대며 책장을 둘러보던 내게 이 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예능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던 천문학자, 거기에 베스트셀러... 그래 일단 재미있을 거고, 분야도 색다르니 괜찮겠다는 생각에 한숨 돌리며 낙점하게 되었다. 

천문학 책이지만, 천문학 지식은 양념에 불과한 책

 
 
 책은 무척 재미있다. 천문학자가 아니라 뛰어난 인문학자 혹은 전문 저술가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글은 잘 읽히고, 심채경 박사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잘 전달된다. 하지만, 천문학 지식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 베스트셀러는 천문학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어렵고도 험한 길을 가는 천문학자에 대한 책이다. 
 심 박사가 뛰어난 글솜씨를 가지게 된 배경은 아마도 불안정한 위치에서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이런저런 계획서, 보고서, 교육자료, 실험자료 등 각종 문서를 수도 없이 작성했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며, 어떤 전공이든 대학원은 가리라 생각했었던 청소년이었기에 폭넓은 독서를 바탕으로 담백한 글쓰기 능력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공무원, 심사위원, 동료과학자, 학부생, 대학원생, 연구원 등 다양한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써온 심 박사의 이력이 내공을 단단하게 한 것만은 사실이리라. 

퀴즈, 지식과 상상력 사이의 그 절묘함은 인상적이다. 

 
Q1. '유니버스universe', '코스모스cosmos', '스페이스space'는 모두 우리말로 '우주'라고 번역된다. 무엇이 서로 다른가? 각 단어를 어디서 들어보았는가?
 
 교양과목을 수강하러 온 학생들에게 그야말로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문제.. 그 외에도 많은 문제와 답안이 책 초반부에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니, 예비독자들께서는 기대해도 좋다. 

하지만 우주인 이소연을 옹호하는 부분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심채경 박사는 책 전체 흐름에서 튈 정도로 강한 톤으로 우주인 이소연을 옹호한다. 그녀는 후속연구 등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발현시킬 기회가 없었으며, 여성이기에 과도하게 비난받았다. 여러 가지 사실이 아닌 오해도 많다. 이렇게 요약되는 심 박사의 주장은 신선한 면이 있다. 아직도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우주인 이소연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 우주인 이소연에 대한 이러한 구구절절한 디펜스가 왜 필요했는지 잘 모르겠다. 햇병아리 대학원생에서 젊은 천문학자로 성장해 가는 스토리 자체는 완성도가 높고, 흡입력이 있지만 갑자기 뭔가 덜컥하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우주인 이소연 프로젝트가 당장의 수익 혹은 산업발전에 기여보다는 미래의 과학 발전을 위해 세금을 통해 운용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중의 관심과 비판도 어느 정도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 이소연 연구원이 계약기간을 채운 후, 미국으로 떠난 데 여러 어려운 사정이 있었고, 어디까지나 계약기간 동안 열심히 했다는 논리 또한, 그대로 이소연 연구원에게 가해지는 비판의 논리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선택으로 미국으로 떠났으니, 국가를 대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가 계약이 종료되자마자 외국으로 떠난 것에 분개하는 것은 과히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 우주인 프로젝트가 내실이 없었고, 장기적 계획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한국의 기초과학 현실이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그나마 정권의 정치쇼이든 뭐든 간에 어쨌든 우주인이 탄생했으니, 단편적인 프로젝트였어도, 그 최초 우주인의 영광이 여성에게 돌아간 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비싼 등록금이라는 상투적 표현은 이제는 비현실적이다

 
 심 박사가 교양강의를 하던 시절이 얼마나 과거인지, 아니면 지금도 열심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식을 생산하는 능력을 검증받은 박사가 학생들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와중에 비싼 등록금을 낸 학생들을 안쓰러워 하는 것은 씁쓸하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대학교 등록금은 비싼가? 1년에 두 번 나눠 내야하는 천만원 이상의 돈, 물론 큰돈이다. 하지만, 네이처 지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수준 높은 전문가에게 강의를 들을 수 있고, 대학에서 제공하는 시설을 쓸 수 있고, 다양한 전공 학생들과 상상력을 겨루며 교양수업도 들을 수 있는 대학에 지불하는 돈으로서 지금 등록금은 과연 비싼가?
 그렇다면 흔히 초중고생들이 부담하는 사교육비는 비싼가? 아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등록금을 따로 받는 사립고에 내는 돈은 비싼가? 아니면 싼가? 적어도 그 등록금을 재원으로 인건비를 받으며, 수준 높은 강의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선생님께서 비싸다는 표현을 쓴 것은 아쉽다. 그리고 그 '비싸다'라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쓰다보니 신랄한 비판을 가하게 되었는데, 누군가 이 책을 평해달라고 한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유할 것이다.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비판을 적어두었을 뿐, 좋은 점이 훨씬 많은 책이고, 과학자가 성장해 온 이야기는 쉽게 공감되면서도 재미있다. 
 
 특히 심박사의 아이가 엄마에게 친구가 00로 이사 갔기에 너무 멀어서 가볼 수가 없다고 투정 부리는 부분은 눈앞에 해맑은 아이 모습을 펼쳐준 느낌이다. 어디로 이사 갔기에 아이는 부아가 나서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는지 궁금하신 부분은 꼭 책을 읽어보시길...
 심 박사의 다음 행보가 커다란 연구성과이길 빈다. 네이처 등재 직전까지 갔던 연구성과 때문만은 아닐지라도, 그저 별을 보는게 좋아서, 과학의 길을 걸었던 이 젊은 과학자가 연구성과로 다시 대중들에게 회자될 때, 그야말로 과학계의 빛나는 뉴스가 아닐까. 아 물론 다음 책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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